국민에게 다가서는 탈권위 행보…
논란 부른 정책들은 정치적 시험대
많은 것이 달라졌다. 가까운 비교대상이 임기를 다 채우지 못하고 탄핵으로 끝난 박근혜 정부여서 차이점은 더욱 두드러져 보인다. 대통령 취임 후 7개월여가 지나고 있는 문재인 정부에서는 박근혜 정부를 비롯한 과거 정권들과는 다른 면모들이 나타나고 있다. 대통령은 물론 청와대와 정부 고위인사들의 탈권위 행보나 국민청원을 찾는 국민들의 요구에 비교적 빠른 대응을 보이는 면들이 대표적이다. 지난 겨울 내내 촛불을 든 시민의 힘이 정권 수립에 영향을 미친 만큼 시민 눈높이에 가깝고 친숙하게 다가가려는 움직임들이 적극적으로 드러난 것이다. 이러한 표면적인 이미지를 넘어 문재인 정부의 국정운영 전반에서도 이전 정부와 달라진 점들은 여러 부분이 눈에 띈다.
5월 10일 국회의사당 로텐더홀에서 취임식을 마친 문 대통령은 여의도 국회 앞 도로에서 시민들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대선후보 때보다 더 가까이서 (문 대통령의) 사진을 찍었죠. 전용차 뚜껑으로 대통령 얼굴이 나와 있는 게 뭔가 생소하면서도 생각보다 너무 가까우니까 되게 친근한 느낌이 들더라고요.” 여의도 금융가에서 일하는 직장인 강병선씨(40)도 그 모습을 스마트폰 카메라에 담았다. “어릴 때 노태우 대통령 차 지나가는 걸 본 적이 있거든요. 그때부터 대통령이 타는 차는 경호문제 때문에 여러 대 중에 어느 차에 탔는지 모르게 한다고 들어왔는데, 그런 거 신경 안 쓰는 모습이 멋져 보였죠.”
불특정 다수에게 셀카 기회 제공
19대 대선은 대통령 궐위에 따른 보궐선거로 치러졌다. 때문에 문 대통령은 인수위 기간 없이 당선 후 바로 취임선서를 했다. 300여명만 참석한 약식 취임식에 가까웠다. 이전 정부에서 새로운 정부 출범을 알리는 취임식이 국회 광장에서 성대하게 열렸던 것과는 달랐다. 2013년 2월 25일 박 전 대통령의 취임식만 봐도 국회의사당 앞마당에서 열린 취임식에는 역대 최대인 7만여명이 참석했다. 하지만 시민들과의 직접적인 접촉은 드문 편이었다. 박 전 대통령도 취임식을 마치고 청와대로 향하던 중 시민들과 마주칠 기회는 있었지만, 광화문 광장에 들러 오방색으로 장식된 커다란 주머니를 여는 행사를 마친 뒤 이를 지켜본 시민들과는 별다른 접촉 없이 곧바로 청와대로 들어갔다. 훗날 국정농단 사태가 드러나자 최순실씨가 직접 관여한 것이라는 의혹을 낳은 그 오방낭이었다.
이와 달리 취임식 날 역시 청와대로 향하다 광화문 주변에서도 차를 세워 시민들에게 인사한 문 대통령의 모습은 이후로도 여러 번 재연됐다. 인천국제공항 소속 비정규직 정규직화를 공언하는 자리에서 공항 직원들과 출국자들에게 둘러싸여 셀카를 찍은 사진을 비롯, 불특정 다수의 시민들이 모인 자리에서도 셀카 촬영음은 계속 이어졌다. 경호·수행을 맡은 청와대 관계자들에겐 업무상 부담이 가중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지만, 시민들과의 접점을 강조한 현 정부의 국정 방향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으로 인식되게 하기에는 더없이 좋은 행보이기도 했다.
권위를 벗은 소탈한 행보는 역시 정권 출범 초기부터 탈권위 행보를 보인 노무현 전 대통령의 참여정부를 연상시켰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 출범 직후 세간에 나온 ‘참여정부 2기’가 될 것이라는 전망에 대해 두 정부의 차이를 내다본 관측도 만만치 않았다. 7개월이 지난 현재로서는 참여정부와 문재인 정부를 연관짓는 시각은 점차 힘이 빠지고 있다. 참여정부 출신 인사가 다시 문 정부에서도 요직에 자리잡은 사례가 없지 않은 데다, 정책실을 되살린 청와대 내부 직제개편에서도 두 정부 사이의 연관성을 찾을 수는 있다. 그러나 참여정부의 국정운영을 재현했다기보다는 과거를 학습한 결과를 바탕으로 새로운 방향을 모색한 것이라고 읽는 시각이 더 힘을 얻고 있다.
야당과의 관계설정 문제가 참여정부와는 차이를 보이는 대표적인 지점이다. 임기 초 여소야대 정국을 돌파해야 했던 점은 참여정부와 현 정부 모두 가장 큰 정치적 과제 중 하나지만, 문재인 정부는 적어도 표면상으로라도 ‘좌우 통합’을 내세우며 비교적 ‘우회전술’을 쓴다는 것이 야권에서 나오는 평가다. 참여정부 시절에도 국회 안팎의 사정에 정통했던 바른정당의 한 의원은 “노 전 대통령이 국회에서 탄핵 결의를 맞았던 이유 중 하나가 그 전의 DJ정부에선 자민련이라는 파트너가 있어서 국정 전반에서 일방적으로 밀어붙이기만 하지는 못했던 건데, 노 대통령은 반대세력을 개의치 않는다는 인상이 강했던 것”이라고 말했다. 이 의원은 “겉은 여소야대지만 사실 야당들이 속으로 썩어들어가고 있는 상황인데, 현 정권은 그래도 완급을 조절하며 신중하게 움직이기 때문에 야당 입장에서는 더 (대처하기가) 어렵다”고도 말했다.
대선 공약 정책 로드맵 신속 발표
2018년 새해 예산안을 두고 국회 안에서 치열한 공방이 벌어질 것이라는 관측도 나왔지만 예상보다는 ‘싱겁게’ 통과된 것도 그 연장선상에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임기 초반의 높은 지지율이 큰 변동 없이 유지되고 있다는 점과 야권이 분열돼 있다는 점이 유리하게 작용하고는 있다. 그래도 여야의 정면대결로 대립이 극렬해지는 상황을 피하는 관리능력이 빛을 발한다는 평가다. 그에 더해 비교적 정치적 논란을 적게 부르는 분야를 중심으로 과거 정부와의 차별점을 부각시키는 정책을 내놓는 것도 눈길을 끌었다.
취임 후 5일 만인 5월 15일 스승의 날을 맞아 세월호 참사 당시 학생들을 구하려다 숨진 단원고등학교의 기간제 교사 김초원·이지혜씨에 대한 순직을 인정하라는 업무지시를 내린 것이 대표적이다. 세월호 참사의 책임이 있는 박근혜 정부의 미진한 대처를 신속하게 처리하는 한편, 세월호 참사 외에도 공무수행 중 공직자가 순직할 경우 정규직과 비정규직을 가리지 않고 동등한 대우를 받는 방안을 지시해 신분에 따른 차별을 시정하는 모습을 강조한 것이다. 또 보상금을 받지 못하고 있는 독립유공자의 후손 중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이들에게 생활지원금을 지급하고, 유공자 의료비 감면혜택 확대과 국립묘지 추가 조성 등 보훈체계를 개선하는 정책도 여론의 지지를 이끌어냈다. 보수정부보다 더 적극적으로 보훈정책을 우선한 모습이 차별점을 보인 것이다.
정부의 빠른 대처가 빛을 보일 수 있게 대응체계를 개선한 점도 정권 초기 인기를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됐다. 인수위 없이 출범했다는 한계를 감안하더라도 대선공약으로 제시했던 정부 핵심 정책들의 로드맵을 비교적 빠르게 발표한 것이 호응을 얻었다. 일자리·에너지 전환·주거복지 로드맵 등이 잇따라 발표된 것이다. 물론 향후 정책 추진과정에서 계획대로 실행돼 효과를 거둘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아직 서로 다른 예상이 나오고 있다. 실제 효과가 나오는지를 확인한 뒤에 평가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한반도 안보 문제의 ‘이상과 현실’
참여연대의 한 관계자는 “보수진영에서 비판하는 것처럼 이번 정부가 이상적인 정책만 나열하는 ‘NGO 정부’라는 의견도 완전히 틀린 말은 아니고, 아무리 좋은 정책이라도 계획대로 다 실행되긴 어렵기 때문에 시민사회 안에서도 더 지켜봐야 한다는 의견이 다수”라면서도 “무엇보다 이전 정부와는 달리 대선국면에서 ‘문재인 1번가’라는 정책 캠페인을 내세워 시민들의 의견을 수용하고 직접 정책에 반영할 수 있는 통로를 만들었다는 점에서는 높은 평가를 내릴 수 있다”고 말했다.
포항 지진 대처와 지진 발생 다음날로 예정된 대학수학능력시험 연기를 결정하는 과정에서도 신속한 대응을 보인 점은 특히 세월호 참사에 늑장대처한 전 정권과는 차별되는 지점이다. 하지만 장기적이면서 정치적으로 반발을 부를 수 있는 문제에 대해서는 섣불리 현 정부의 국정을 평가하기는 어렵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비정규직 정규화나 공공부문 일자리 창출과 같은 정책은 취임 초 단편적으로 주목을 끈 것과는 달리 향후 장기적인 지속이 관건이 된다. 더 나아가 ‘문재인 케어’나 검찰개혁, 지방자치분권 개헌 등 굵직하면서도 논란이 예상되는 주제에 대해서는 이미 문재인 정부의 국정방향에 대한 반발과 저항이 터져나오고 있어 정치력을 시험받는 무대가 펼쳐질 것이라는 관측이다.
특히 북한의 핵·미사일 개발 등 한반도 안보위협 문제에 대해서는 문재인 정부가 과거 정부들보다 진일보한 면모를 보이지 못한다는 평가가 보수진영을 중심으로 나오고 있다. 남광규 고려대 아세아문제연구소 교수는 “북한에 대한 제재와 대화를 병행할 것을 강조하는 문재인 대통령의 방향과 미국 트럼프 대통령이 언급한 ‘전략적 인내는 끝났다’는 발언 사이의 현실 인식의 차이는 매우 크다”면서 “문재인 정부는 노무현 전 대통령이 ‘동북아 균형자론’을 제시한 것처럼 한국이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역할을 다할 수 있으리라고 인식하겠지만, 미국 입장에서는 한·미동맹의 이완 혹은 이탈로 해석할 여지도 있다”고 지적했다.
대북문제는 역대 정권들에서 공통적으로 골머리를 앓은 문제였다. 그리고 전 정권이 남긴 사회 전반의 문제점이 많기 때문에 ‘적폐청산’을 위시해 기존 문제를 개선시키려는 접근방식 자체가 최소한의 성과를 꾸준히 내기만 해도 적어도 꾸준한 동정여론은 받을 수 있는 여지가 있다. 때문에 지금까지 보인 차별성을 유지하는 한편 현실적인 차원의 후속대책이 지속적으로 뒷받침되어야 한다는 주문도 나온다. 조진만 덕성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문재인 정부가 적폐청산과 국민대통합이라는 서로 상충되는 과제를 다루면서 시민의 뜻에 따라 정책을 추진하는 것은 바람직하지만 다수가 원하는 정책이 옳은 정책인 것인가에 대한 검토는 끊임없이 이루어져야 한다”며 “문재인 정부의 개혁정책이 폭넓은 공감대를 이루려면 현실성과 지속성, 그리고 가장 우선적으로 안정적인 재원 마련 방안이 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태훈 기자 anarq@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