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차 투표 연장에 결선투표는 중단… 직선제 무용론까지 대두
지난 12월 14일 밤 10시, 민주노총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급하게 공고를 냈다. 결선투표를 중단하고 일부 투표소에서 재투표를 실시한다는 내용이다. 242개 투표소 8829명의 투표 결과 값이 입력되지 않았다는 사실이 뒤늦게 확인됐기 때문이다. 민주노총 위원장을 뽑는 이번 선거는 계속 삐거덕거렸다. 전산 문제로 1차 투표 기간이 하루 연장되는가 하면, 결선투표를 하루 앞두고는 결선 자체가 중단됐다.
어떻게 8829개나 되는 투표 결과가 입력되지 않을 수 있느냐는 질문에 남정수 민주노총 대변인은 “현장에서 입력이 제대로 안 됐거나 현장에서는 제대로 입력한 후 전송했는데 전송과정에서 오류가 발생한 경우들”이라고 설명했다.
누락됐던 투표 결과가 반영되자 각 선거본부 득표율에 변동이 생겼다. 4개 후보조 중 1위를 차지한 기호 1번 김명환 후보조는 그대로 1위를 유지했으나, 2위 이호동 후보조와 3위 조상수 후보조 간의 격차가 줄었다.
더 복잡한 상황은 다음부터다. 전체 투표를 다시 검사한 결과 2위와 3위의 격차(3910표)보다 무효표(4173표)가 더 많이 나왔다. 민주노총 선관위는 무효함, 용지초과함, 임의등재함이 나온 투표소에서 재투표를 실시한다고 밝혔다.

제 9기 민주노총 지도부 선출선거가 결선투표를 하루 앞두고 중단됐다. 지난 14일 오전 서울역광장에서 민주노총 관계자들이 투표물품 배송준비로 분주한 모습이다. / 연합뉴스
“동네 반장 선거도 아니고…”
이에 따라 무효함, 용지초과함, 임의등재함이 나온 294개 투표소의 조합원 4만9000여명은 19일과 20일 재투표를 하게 됐다. 1차 투표 이후 선거운동을 접었던 3번과 4번 후보조가 14일 밤부터 다시 선거운동에 나서는 황당한 상황도 벌어졌다.
이쯤 되니 조합원들 사이에서는 “동네 반장 선거도 아니고 너무 심하다”는 비판이 나온다. 선거과정 내내 잡음이 일었기 때문이다. 가령 1차 투표 첫날인 지난 11월 30일 오전, 모바일과 ARS 전자투표소가 개설됐지만 오류가 발생해 투표가 중단됐다. 모바일 투표 오류는 사흘이나 지속됐다. 이에 민주노총 선관위는 1차 투표 마감 하루 전날에서야 급하게 투표기간을 하루 연장한다고 밝혔다. 기술적 오류로 모바일 투표에 참여하지 못했거나 참여했지만 완료하지 못한 이들이 많다는 이유였다.
물론 투표율은 높을수록 좋다. 더 많은 의견을 반영하자는 차원에서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선거가 무산될 위기에 이르자, 모바일 투표 오류를 핑계 삼아 투표기간을 연장한 것 아니냐는 이야기도 나왔다. 투표율이 50% 미만일 경우 투표는 무산된다. 이런 상황을 두고 박성식 전 민주노총 대변인은 당시 “모바일 투표 시스템 오류 때문인지 현재 투표율이 낮다고 한다”며 “후보 간 승패를 떠나 저조한 투표율은 무엇을 보여주는가. 노동운동은 무슨 생각을 해야 할까”라는 질문을 던졌다. 실제 투표를 하루 연장했음에도 투표율은 55% 수준에 그쳤다. 2014년 치러진 첫 번째 직선제 투표율은 63%였다. ‘처음’에 대한 관심도가 높다고 해도 10% 가까이 낮은 투표율이 민주노총에 시사하는 바는 적지 않다.
물론 외부적인 요인도 있다. 박 전 대변인은 “박근혜 정부보다 시대적 긴장감이 덜하고 언론의 문제도 있다”며 “80만명의 선거인데 언론은 이를 일반 노동자의 과제로 다루지 않고 특정세력의 문제로 다루는 측면이 있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핵심은 일반 조합원들의 무관심이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조합원 ㅇ씨는 “선거 관련 문자가 왔는데 전교조 상급단체가 민주노총인지 모르는 조합원들도 많다”며 “우리가 왜 민주노총 위원장을 뽑느냐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관심 부족·선관위 미숙함·기술적 문제
투표에 참가한 조합원이라고 다르지 않다. 언론노조 조합원 ㄴ씨는 “선거가 무산되면 6억원이 날아간다고 들었다. 조합비가 아까워서 투표했다”고 말했다. ㄴ씨는 자신이 어느 후보조에게 투표했는지 잘 기억하지 못했다. 금속노조 조합원 ㅊ씨는 “같이 활동하는 사람들이 O번을 찍으라고 해서 찍었다. 그게 아니라 해도 얼굴 아는 사람이 그 후보자밖에 없었다. 우리가 비정규직 투쟁할 때 자주 왔다”며 “정책이나 공약은 잘 모르겠다”고 말했다.
무관심 선거에 기술적 오류까지 더해진 결과는 1번 김명환 선본의 압도적인 우위다. 기호 1번 김명환 후보조는 1차 투표에서 46.7%를 득표했다. 과반을 넘겼다면 결선까지 갈 필요 없이 당선 확정이다. 다른 3개 후보조는 10%대에 머물렀다. 김 후보조는 ‘깜깜이 선거’에서 유리한 점을 모두 갖췄다. 먼저 ‘인물’이다. 김 위원장 후보는 활동가 조직이 아닌 일반 조합원들이 그나마 아는 후보다. 김 후보는 2013년 철도노조 파업을 이끌면서 전국적인 유명세를 얻었다. 기호 효과를 무시할 수 없다는 이야기도 나왔다. 1번 선거본부 관계자도 “대놓고 이야기하면 이렇게 관심 없는 선거는 1번에 쏠리는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4번 선거본부 관계자는 “‘기호 빨’이 최소 5%는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가장 핵심적인 요소, ‘조직표’다. 김 후보조는 노동운동 내 최대 정파인 ‘전국회의’ 상당수의 지지를 받고 있다. 전국회의는 정당운동에 중점을 두고 있으며 이 중 일부는 지난 10월 창당된 민중당의 현장조직을 구성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전국회의 소속 활동가들이 집행부 주를 이루고 있는 전국학교비정규직노동조합와 전국건설노동조합의 경우, 1번 후보조에 대한 지지율이 90% 이상인 것으로 알려졌다. 학비노조와 건설노조 조합원은 각각 5만여명 수준으로, 2위 후보조가 받은 표보다 많다.
때문에 일각에서는 직선제 무용론까지 대두된다. 한 비정규직 활동가는 “어차피 정파선거로 치러질 거면 이렇게 많은 비용과 시간과 노력을 들일 필요가 있는지 모르겠다”며 “이런 직선제가 과연 민주주의인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고 꼬집었다. 언론노조 조합원 ㅇ씨 역시 “다 마음에 안 들어서 그나마 덜 마음에 안 드는 사람에게 투표했다”며 “여전히 각 정파운동을 대표하는 ‘올드보이’들이기 때문이다. 정파운동을 아는 사람만 후보들 간의 차이를 구분할 수 있는 선거”라고 비판했다.
이번 선거과정에 대해 남 대변인은 “조합원들 관심이 부족했고 선관위의 미숙함으로 인한 기술적인 문제들도 발생한 선거였다”며 “일단 시작했으니 선거는 잘 치러야 한다. 선거 이후 평가를 통해 3년 뒤 다시 직선제를 하게 된다면 반면교사로 삼아야 하지 않겠나”라고 말했다.
<이하늬 기자 hanee@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