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목 전준헌씨-“도편수는 이제 옛것만 고집하면 안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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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목수는 “그래도 새로운 방식으로 집을 지어야 하지 않겠나. 우리 같은 전통 목수의 일거리는 또 다른 일이 생기리라 믿는다. 옛것만 고집하고 세상이 변하지 않기를 바라는 것이야말로 어리석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한다.

전준헌씨는 대목이다. 전통한옥을 설계하고 집을 잘 짓는 이를 대목, 또는 도편수라 한다. 그는 요즘 충남 보령에서 낙선재를 본뜬 한옥을 짓고 있다.

“옛집들이 보기는 좋지만 앞으로 얼마나 더 이런 집을 지을지는 의문입니다. 우선 돈이 너무 많이 들고 요즘 세상에는 맞지 않는 부분도 많기 때문입니다.” 전 목수는 그와 같은 전통 목수일이 점점 줄어들 것이라고 전망했다. 한옥을 짓는 데 드는 평균 건축비는 평당 1200만원선. 낙선재처럼 공을 많이 들여 지으려면 그보다 두 배가 훌쩍 넘는 돈이 든다고 설명했다. 일반 양옥집에 비하면 몇 배나 더 많은 비용이 든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돈은 많이 들고 실용적인 면은 떨어진다. 그래도 호사가들은 제대로 지은 한옥의 아름다움을 극찬한다.

대목 전준헌, 부친을 이어 2대째 대목 일을 하고 있다.

대목 전준헌, 부친을 이어 2대째 대목 일을 하고 있다.

“나무 고르는 일이 제일 어려워”

전 목수는 세상이 달라졌고 사람들의 삶도 달라졌다고 말한다. 그러니 사람이 사는 집도 당연히 달라질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그런 면에서 한옥은 요즘 세상에는 맞지 않는다고 설명한다. 그는 “좋은 집은 사는 사람을 편하게 해주는 집이다. 한옥은 전통문화의 집약이지만 오늘의 삶을 담기에는 불편한 것도 사실이다. 그 점을 인정해야 한다”고 말한다.

목수로서 변해가는 시대의 쓸쓸함을 지니고 있지만 그는 태생이 목수임을 피할 수 없다. 그의 부친은 전북 김제 금산사 대적광전을 지었던 전명복 대목수. 대팻밥 좀 먹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안다는 목수 중의 목수로 꼽히는 이다. 강증산이 후천개벽의 천지공사를 벌였다는 금산사 아래 동곡마을이 그의 고향이다. 어린 시절부터 아버지의 일터를 기웃거린 까닭에 어깨 너머로 목수일을 눈에 익혔다. 그러나 그 길은 자신이 걸어야 할 행로가 아니라고 믿어 피하려 했다고 말한다.

그는 목수 아버지의 그늘을 벗어나고자 젊은 시절 고향을 떠나 살 길을 찾으려 무던히도 고생을 했다. 몸으로 할 수 있는 일은 다 했다고 한다. 공사판을 헤매고 장터로 물건을 팔러 다니면서도 목수는 되지 않으려 했지만 피는 속일 수 없었던 모양이다. 전 목수는 “결국은 목수가 내 일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릴 적부터 봐온 일이라 한 번 해보자는 마음을 먹으니 편해졌다. 아버지께 일을 배우면서 제대로 된 목수가 돼보자고 생각을 고쳐먹었다”고 한다.

부친이 금산사 미륵전을 보수할 때 일을 도우며 집에 대한 생각이 달라졌다. “미륵전은 탑인 듯 집인 듯 참 아름다운 건물이다. 3층인데 그야말로 잘 지었다고 감탄할 수밖에 없는 집이다. 목수로서 옛 선배들의 실력이 얼마나 뛰어났는지 새겨볼 수 있었다”고 말한다. 그 무렵 그가 일하는 품새를 지켜보다가 부친은 전 목수에게 설계도를 그려보라고 했다. 나무를 깎고 다듬어 끼우는 일이 목수의 전부인 양 생각했지만 설계는 그에게 또 다른 안목을 열어주었다.

도편수는 현장에서 가장 먼저 일을 시작하고 가장 늦게까지 일하는 사람이다.

도편수는 현장에서 가장 먼저 일을 시작하고 가장 늦게까지 일하는 사람이다.

전준헌 목수는 “그야말로 물어볼 수도 없고 몇 날을 방에 틀어박혀 도면을 그렸다. 한 번도 해보지 않았던 일인데 며칠 밤을 새워서야 그림 한 장을 그릴 수 있었다. 그렇게 하고 보니 집 한 채를 짓는 데 드는 부재며 치수 등 세세한 부분에 대해 깨닫게 됐다”고 한다. 그의 부친은 일의 방법보다 일의 이치를 깨우쳐주려 했던 것이다.

하지만 부친은 그에게 잘한다는 칭찬을 한 번도 하지 않았다. 다만 함께 일하고 지켜보고 살펴봐주었을 뿐이다. 평생 기둥을 세우고 서까래를 깎던 그의 부친은 지금은 현장을 떠났다. 문화재연구소에서 옛 건물들을 살펴보고 조언해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아버지의 뒤를 따른 것은 전 목수뿐이 아니었다. 그의 동생 또한 목수의 길을 걷고 있다. 누구의 일머리가 더 낫냐는 짓궂은 질문에 “아버지가 직접 이야기한 적은 없었는데 어느 날 어머니께 슬며시 말씀하셨다고 들었다. ‘큰애보다 셋째가 나아’ 그러시더라는 것이다”라며 웃었다. 다 같은 자식인데 누가 더 나으면 어떠냐는 것이다. 동생보다 못하다는 아버지의 평가를 편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은 자기 일에 대한 그릇이 생겼기 때문이라고 했다. 나이 40대까지는 어떤 일이건 크게 해보려 했으나 50을 넘기며 모든 것을 받아들일 수 있게 됐다는 것이다.

부친으로부터 우두머리는 가장 험하고 궂은 일을 마다하지 않아야 한다고 배웠다.

부친으로부터 우두머리는 가장 험하고 궂은 일을 마다하지 않아야 한다고 배웠다.

금산사 미륵전 보수하며 많이 배워

그는 자신의 일에 대해 “목수로서 해볼 수 있는 일은 다 해본 것 같다. 중층집도 지어봤고 큰 규모의 집, 특이한 누각과 전각도 직접 설계해서 지어봤다. 한마디로 목수로서 더 이상의 원이 없다”고 말한다. 대목과 도편수라는 직함에 끌려 이런 일은 하고 저런 일은 거절하지 않는다고 강조한다. 흙벽을 헐어내는 궂은일이라도 자신에게 주어졌다면 최선을 다한다는 것이다. 자신이 있어야 할 자리, 할 수 있는 일을 요청하면 어떤 궂은일이라도 외면하지 않는 것이 일에 관한 전준헌 목수의 생각이다.

그는 문화재 수리기술자 자격을 갖고 있다. 덕분에 고건축물의 보수작업을 꾸준히 할 수 있었다. “사실 집을 새로 짓는 것보다 옛 건물을 뜯고 보수하면서 배우는 것이 더 많다. 고건축물에는 사는 이를 위한 세세한 배려와 섬세한 공법이 숨어 있다. 요즘에는 찾기 힘든 지혜도 배우게 된다. 한편으로 내가 지은 집도 훗날 누군가가 뜯어보고 평가할 것이라는 생각을 갖게 된다”고 설명한다. 특히 그의 고향 인근과 호남평야 주변 사찰들을 살펴보면 감탄할 만큼 아름답고 훌륭한 건물들이 많다고 했다.

그는 좋은 집을 지으려면 목수나 공사하는 이들과 끝없이 이야기하고 싸우고 조정하라고 조언한다. “집을 잘 지으려면 목수의 실력만으로 가능한 것이 아니다. 건물주의 생각과 목수의 마음이 잘 맞아야 좋은 집을 지을 수 있다. 한쪽의 주장이 너무 강하거나 서로의 욕망이 부딪히면 겉은 멀쩡해 보여도 시간이 지나 불편한 것들이 튀어나오게 된다”는 것이다.

그에게 현장에서 가장 힘든 것은 노동의 강도보다 사람과의 다툼이라고 했다. 건축주와 다퉈야 할 일도 있고 함께 일하는 이들과 언성을 높일 일도 있는 것이 일하는 현장의 풍경이다. 젊어서는 자기주장에 목소리를 높일 때가 많았지만 이제는 다른 눈으로 현실을 본다고 했다. “절대 옳고 절대 그른 일은 없는 것 같다. 다만 서로의 입장 차이는 분명히 있을 것이다. 세상이 나쁘다고 비난하는 일도 달리 보면 그럴 만한 이유가 있지 않겠나. 옳다는 주장이 후일 진실이 아닌 경우도 있지 않았나. 그러니 자기 안목으로만 세상을 보는 편협에 사로잡히지 않아야겠다고 늘 다짐한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문화재수리기술자 자격을 가지고 있어 옛건물을 뜯고 고치며 배우는 것이 많았다.

문화재수리기술자 자격을 가지고 있어 옛건물을 뜯고 고치며 배우는 것이 많았다.

그는 자신의 손으로 고향에 집 한 채를 지었다. 조부모가 농사를 짓던 고향집 텃밭에 그의 아내와 자식들을 위한 집을 지었다. 전준헌 목수는 “평생 떠돌아다니며 일했다. 집에 들어가 사흘을 지내본 적이 없는 것 같다. 한 달이 지나 집으로 돌아가도 어제 나온 듯하다”고 했다. 묵묵히 집을 지키고 자식 셋을 키운 아내가 한없이 고맙다고 했다. 전 목수는 그러면서도 “맨날 같이 붙어서 어찌 사나. 떨어져 있으니 그립고 서로 믿으니 정겨운 것이다”라며 속없는 웃음을 지었다. 자신이 아버지의 뒤를 이은 것과 달리 자식들은 새로운 길을 걷기를 바란다고 했다. 다행히도 스스로 길을 찾아 제 앞가림은 해가는 자식을 보면서 아버지의 마음을 헤아린다고 말한다.

그의 고향이 강증산의 행적과 깊이 연관된 탓에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들을 수 있었다고 한다. 그 중에도 사람을 가르치고 배움을 찾는 일에 증산이 남긴 말이 인상 깊다고 했다. 전 목수는 “증산은 아이들에게 세상 지식과 기교를 가르치지 말라고 했다고 들었다. 물건 훔치는 도적은 기껏해야 금붙이를 훔칠 뿐이지만 펜대 든 도적은 세상을 어지럽힌다는 말을 남겼다는 것이다. 세상을 살다보니 그 이야기가 실감날 때가 있다”고 한다. 민초들이 살아보겠다고 발버둥칠 때 배운 이들이 잇속을 위해 세상을 훔쳐 어지럽히는 모습이 역력하지 않느냐는 것이다.

“좋은 집 지으려면 끊임없이 다퉈야”

30년 넘게 한옥을 짓는 그에게 제일 어려운 일은 나무를 고르는 일이다. 기술이나 설계로도 어쩔 수 없는 것이 나무라고 설명한다. “나무는 자식과 꼭 같다. 내 뜻대로 되지 않는다는 이야기다. 한 산판, 같은 곳에서 나온 나무도 성질이 다 다르다. 크기에서 굽은 정도나 마르는 속도나 비틀리는 정도까지 하나도 같은 것이 없다. 집을 지으면 틀어지고 구부러지는 것이 나무 때문에 일어난다”고 한다. 제 각각인 나무를 붙잡는 것은 건물 전체의 하중이라고 설명한다. 집 전체가 누르는 힘으로 부재 하나하나의 성질을 붙들어놓을 수가 있다는 것이다. 가족이라는 울타리가 식구 개개인의 성격을 어느 정도 제어할 수 있고, 사회 전체의 불협화음도 국가 전체가 움직이는 방향에 의해 조정된다는 것이 집짓기로부터 그가 배운 통찰이다.

세상은 변하고 목수들의 일도 점점 줄어들고 있다. 실력 덕분에 당분간 그의 일거리는 그치지 않는다 해도 일이 줄어드는 것이 눈에 보인다고 한다. 전 목수는 “그래도 새로운 방식으로 집을 지어야 하지 않겠나. 우리 같은 전통 목수에게는 또 다른 일거리가 생기리라 믿는다. 옛것만 고집하고 세상이 변하지 않기를 바라는 것이야말로 어리석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한다. 새로운 일이 생기고 새로운 건물이 지어져야 사람이 편한 세상이 된다는 것이 그의 확신이다.

그는 요즘 아버지를 다시 생각한다고 했다. 대를 이은 그의 직업에 대해 “내가 이제껏 해온 일들을 아무리 돌아봐도 아버지의 그늘을 벗어나지 못했다. 그 음덕으로 평생을 일하고 살았다는 것을 마음에 새긴다. 우리는 누구나 앞선 세대의 그림자를 밟으며 살아가고 있지 않은가”라고 말한다.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이 없으며 선인의 덕에 오늘의 번영이 있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겨울의 건축현장은 매섭다. 기둥과 대들보를 깎는 일은 추위 속에서도 바람과 싸우며 해내야 한다. 한파가 닥친다 해서 기둥 세울 일을 미룰 수 없다. 전 목수는 그런 가혹한 환경 속에서도 동틀 무렵이면 어김없이 현장을 둘러본다. 일이 끝나고 모두가 연장을 챙겨 떠난 자리를 그는 마지막까지 남아 빠뜨린 것이 없는지를 살폈다. 그가 긋는 먹줄 하나에 따라 기둥 하나가 바로 서고, 아니면 집이 기울어지는 결과가 온다는 것을 안다. 전준헌 목수는 도편수라는 직책이 얼마나 엄중한지를 알고 있었다. 고수는 자기에게 닥친 어려움과 무거운 직책을 피하지 않는 사람일 것이다.

<김천 자유기고가 mindtemple@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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