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우리 모두의 유기농업 길을 묻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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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과 환경, 지속가능성 가치보다 먹을거리 안전성 부각에만 초점

‘친환경의 배신’. 한 달 전 이른바 ‘살충제 계란 파동’이 터지자 신문과 방송에 연일 오르내렸던 말이다. 지난해 11월부터 불어닥친 조류인플루엔자(AI)와 최근의 살충제 계란 파문, 연이은 계란 및 닭고기 값 하락까지. 잇단 악재에 치명상을 입은 것은 양계농가뿐만이 아니다. 친환경 농·축산업 역시 ‘소비자의 불신’이라는 내상을 입게 됐다.

식품에 있어 안전성은 친환경 인증 마크나 제품 값에 따라 차등적인 ‘옵션’이 되어선 안 되지만, 정부의 친환경 인증을 믿고 더 비싼 값을 치른 소비자들은 친환경 농가의 계란에서도 살충제 성분이 검출된 데 대해 공분할 수밖에 없었다.

계란 파동 이후 한 달, 정부 인증제에 대한 전 국민적 불신이라는 소를 잃은 정부는 외양간 고치기에 한창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이번 사태에 대한 백서 발간을 지시했고, 농림축산식품부는 부실 논란을 일으킨 친환경 인증 요건을 강화하는 등 제도를 손보기로 했다. 인증제만 손 보면, 모든 농장을 동물복지형으로 고치면 모든 문제가 해결될까.

지난 8월, DDT가 검출된 경북 영천의 농장 닭장의 모습. 흙바닥과 모이주머니, 나무로 만든 횃대 등 닭을 위한 공간이 마련돼 있다. DDT 검출로 인해 닭들은 모두 살처분됐다. /우철훈 선임기자

지난 8월, DDT가 검출된 경북 영천의 농장 닭장의 모습. 흙바닥과 모이주머니, 나무로 만든 횃대 등 닭을 위한 공간이 마련돼 있다. DDT 검출로 인해 닭들은 모두 살처분됐다. /우철훈 선임기자

‘식품 공포’가 낳은 한 농장의 폐업

닭이 문제였을까, 그 닭을 키운 사람이 문제였을까. 그도 아니라면 땅이 문제였을까. ‘계란 공포’가 확산되던 지난 8월 23일, 경북지역 산란계 농가 2곳의 닭과 계란에서 맹독성 농약 성분인 DDT(디클로로디페닐트리클로로에탄)가 검출됐다. 친환경 상품을 취급하던 한살림을 통해 비교적 고가에 납품되던 계란이라 충격이 컸다.

문제는 땅이었다. 엄밀히 말하면 그 땅을 오염시킨 지난 역사의 사람들이 문제였다. 농촌진흥청 조사 결과, 농장 주변 토양에서 DDT 성분이 검출됐다. DDT는 과거 농경지에서 살충제로 광범위하게 쓰였지만, 1970년대부터 생산 및 판매가 전면 중단됐다.

농장주들은 제초제나 살충제는 물론 항생제도 쓰지 않았다고 말한다. 해당 양계장 부지는 과거 과수원이었다. 오로지 생산력과 효율성 중심으로 내달려 왔던 과거 농업정책의 관행이 이제 토양오염이라는 ‘환경 재앙’ 부메랑이 되어 돌아온 셈이다. 농진청이 2015년부터 잔류농약 분석을 진행 중이라지만, DDT로 오염된 토양이 얼마나 더 있는지, 거기에선 어떤 농산물들이 재배되고 있는지도 온전히 파악되지 않았다. 정권을 불문하고 이어진 농업 홀대로 농가들의 환경은 지속적으로 나빠지는데, 과학기술의 발전으로 온갖 위해성분을 측정하는 기기는 고도화되고 있다. 농가들은 의도치 않은 독성물질의 반격이라는 공포에 질렸다.

국제유기심사원협회 소속 심사원인 유병덕 이시도르지속가능연구소 소장은 9월 21일 ‘모심과살림연구소’ 주최로 열린 좌담회에서 DDT 검출 농가의 폐업을 “유기농업 역사에서 기억해야 할 사건”이라고 말했다.

“종의 다양성을 생각해 재래닭 품종을 방사해서 키웠는데, 계란에서 기준치 이하의 DDT가 검출됐다는 이유로 닭들은 살처분되고 농장은 폐업했다. 식품 안전이 아니라 소비자의 막연한 공포 때문이었다. 분명 다른 사건임에도, 공장식 축산에서 비롯된 살충제 계란과 이 사건이 동일하게 취급되고 단죄를 받았다. 이는 식품 안전과 유기농업을 어떤 철학과 관점에서 바라봐야 하는지와도 맞닿아 있는 문제다.”

그는 반대로 질문을 던졌다. “‘깨끗하고 안전한 먹을거리’만이 중요하다면, 안전하고 깨끗한 산을 개간해 유기농업을 하는 것은 올바른 일인가?”

이 질문은 살충제 계란 문제에 있어도 변주가 가능하다. 너른 마당에서 흙목욕을 하며 뛰어노는 닭보다 케이지에 갇힌 닭은 오염된 흙을 쪼아먹을 우려가 적다. 그렇다면 케이지에 갇힌 닭이 DDT 오염 가능성이 덜하니, 이를 더 좋은 축산방식으로 봐야 할까?

‘인증제’가 대체한 생산자-소비자 신뢰

이날 좌담은 ‘살충제 달걀 사태 이후, 유기농을 다시 생각한다’를 주제로 열렸다. 유기농의 가치는 생명과 환경, 지속가능성에 있다. 2000년대 들어 본격화된 정부의 친환경 농업 육성 정책으로 한국의 유기농업은 외형적으로 크게 성장했지만, 정부 인증제 시행으로 상품화의 논리 역시 투입되면서 이런 가치들보다는 ‘먹을거리의 안전성’만이 중시되고 부각되기 시작했다. 유기농업의 관행화에 대한 우려도 나온다.

다시 유 소장의 말이다. “정부의 유기농 인증절차 가운데 물 검사가 있다. 깨끗한 물로 유기농업을 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준 것이다. 그런데 주목할 점은 한국을 제외한 다른 국가들의 물 검사 기준은 농사를 지으며 수자원을 오염시키지 말라는 데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정부 정책에 따라 물 검사를 했고, 그 결과를 경쟁했고, 그 과정에서 일부 농가들은 지하수를 농업용수로 쓰기도 했다. 그래서 이제 지하수에서 농약성분이 검출되기도 한다. 10년 전에는 없었던 일이다.”

이른바 ‘살충제 계란’ 파동 때도 비슷했다. 농업당국도, 생산자도 소비자도 살충제 성분 검출이라는 ‘결과’에만 신경이 곤두서 있었다. 같은 생산과정을 취했어도 피프로닐이 검출되지 않은 농가는 면죄부를 얻었고, 검출된 농가는 전 국민적 비난에 직면했다. 결과가 과정을 장악했다.

지난여름의 ‘살충제 계란’ 파동은 친환경 유기농업에도 소비자 신뢰 회복이라는 숙제를 남겼다./우철훈 선임기자

지난여름의 ‘살충제 계란’ 파동은 친환경 유기농업에도 소비자 신뢰 회복이라는 숙제를 남겼다./우철훈 선임기자

왜 이렇게 된 걸까. 윤병선 건국대 경제경영학부 교수는 “유기농 운동 초기, 생산자와 소비자 사이의 상호신뢰를 바탕으로 한 관계는 망가져 버리고 그 사이를 국가의 인증제가 메워버리는 결과가 초래됐다”고 지적했다. 정부는 친환경 농업의 ‘양적 성장’만을 좇고, 농가들 사이에 친환경 농업이 새로운 소득 모형으로 자리잡은 데 따른 필연이었다. 그리고 소비자-생산자 간의 연결고리를 파고든 ‘국가 인증제’는 이번 살충제 계란 파문으로 신뢰에 금이 갔다. 한살림, 두레생협 등이 조합원 스스로가 정한 기준과 원칙에 따라 ‘자주인증제’ 등 자체 인증 기준 마련에 속도를 내는 이유기도 하다.

따지고 보면 유기농은 인류 역사에 있어 가장 앞서 존재했던 농업이지만, 세계적으로 약 100년 전 시작된 유기농업은 관행 농업, 즉 산업적 농업의 ‘대안’으로 출발했다. 자본이 종자에서 식탁까지 전 과정을 장악하는 산업적 농업에 대한 문제의식에서 출발한 것이다. 국내에서는 1970년대 중반부터 정농회와 가톨릭농민회를 중심으로 유기농 운동이 시작됐고, 1980년대 후반부터 한살림 등 소비자생활협동조합운동이 등장하며 유기농 운동 역시 활발해졌다. 친환경 유기농업이 본격적으로 ‘규모’를 키운 것은 1997년 친환경농업육성법 제정 이후 정부 인증제가 시작되고 예산 역시 뒷받침되면서부터다. 김영규 전국친환경농업인연합회 정책기획실장은 “애초 유기농은 국가나 소비자가 주도한 것이 아니라 자각한 농민들이 꾸려왔고, 더딘 과정이 있었지만 생협이 그 가치를 알고 함께해 왔다”면서 “친환경 농산물이 전체 농산물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1999년 0.1%였는데, 2009년엔 12.1%로 늘었다. 0.1%까지 이르는 데 20년이 걸렸다면 10년 만에 엄청난 양적성장을 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그게 바로 국가의, 자본의 힘”이라고 말했다.

‘유기농운동의 정체성 회복’을 말하는 이들도 국가 인증제 시행 이후 비료 사용 감소 및 친환경 식품 확산 등 긍정적인 효과를 부정하진 않는다.

다만 정부가 친환경 농업을 지원하면서도 과거 ‘산업적 농업’ 방식의 생산력주의를 버리지 못해 양적 지표의 성장에만 몰두해 왔고, 친환경 농가에 대한 지원 역시 농자재 지원에만 집중된 점을 문제로 꼽는다. 이런 정책 방향에서 “유기농이 ‘유기적인 농업’이 아니라 ‘유기질을 활용한 농업’으로 정착되어 버린 것”(윤병선, ‘흔들리는 유기농업의 정체성’, <모심과 살림> 3호)에 대한 문제의식이다. 윤 교수는 “농업 생산의 물적 순환을 원활하게 하는 ‘유기적 시스템’ 구축이라는 과정에 대한 고민보다 ‘안전한 농산물’이라는 결과만이 중시되는, 전혀 유기적이지 못한 구조가 만들어졌다”고 지적한다.

이런 인식은 농촌경제연구원이 2015년 시행한 소비자 대상 설문 결과에서도 드러난다. 응답자의 88.3%가 친환경 농산물 구입 동기로 ‘안전성·가족건강’을 꼽았다. 환경보호를 위해 구입했다는 응답은 1.5%에 그쳤다. 1~3 순위(가중 평균) 고려 시에도 안전성 및 가족건강(46.1%) 비중이 가장 높았고, 영양가(12.1%), 인증제도 신뢰(9.4%), 환경보전(8.9%) 순으로 나타났다. 다만 연구원은 응답자 500명을 일반고객(305명)과 충성고객(95명), 비구매자(100명)로 나눠 조사를 진행했는데, ‘충성고객’은 환경보호(11.9%)와 농업의 지속가능성(4.4%) 등 환경보전 관련 응답이 일반 고객(각각 8.0% 3.3%)보다 높았다.

“결과 중심, 사후징벌적 인증제 개선해야”

모든 농산물을 반도체 공장처럼 ‘클린 룸’에서 만들어 내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이번 살충제 계란 사건에서 드러난 것처럼, 좁은 국토에 경작지들이 붙어 있는 상황에서 농민이 친환경 농업을 한다 해도 다른 곳에서 농약이 비산된 것까지는 막을 수 없는 것도 현실이다.

농촌사회학자이자 <대한민국 치킨전> 저자인 정은정씨는 친환경 농산물을 대하는 소비자의 관점 역시 바뀌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생산자와 소비자를 연결하는 생협들도 매장 적자에 과거처럼 소비자 조합원 교육에 쏟을 여력이 없어지고, 이런 상황에서 소비자들은 말 그대로 ‘유기농 쇼핑족’이 되어가는 악순환에 빠지고 있다”면서 “소비자들도 변화하는 환경에 대한 이해를 갖고, 생협들도 적극적으로 유기농업의 가치와 논리를 소비자들에게 말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날 좌담 참가자들은 살충제 계란 사건 이후 정부가 밝힌 인증제 강화 방침에 대해서도 우려를 드러냈다. ‘과정’이 아니라 ‘결과’만을 중시하는 사후징벌적 인증제는 친환경 농업 발전에도, 소비자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얘기다. 윤 교수는 “생산과정이 어떻든 검출 결과만 문제없으면 된다는 식의, 국가 중심의 인증체계라는 것이 인증 마크만 있으면 안전하다는 허상을 어떻게 소비자에게 심었는지 이번 계란 파문으로 확인됐다”면서 “사태가 터지고 책임이 농민들에게만 전가된 상황에서 양심있게 친환경 농업을 해온 농민들까지 한꺼번에 궁지에 몰리는 상황이 됐다”고 지적했다. 유병덕 소장은 “한국을 제외한 거의 모든 나라에서 유기농 인증은 결과 중심의 잔류농약 검사가 아니라, 생산과정을 평가해 이뤄진다”며 “결과 중심 인증체계 강화는 오히려 농민들이 친환경 농업을 포기하게 하는 결과를 낼 수 있다. 농약의 폐해가 과거 농민들이 친환경 농업을 하게 된 출발이자 이유였는데, 이제는 반대로 친환경 농업을 못하게 하는 이유가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선명수 기자 sm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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