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 환경성 질환 참사, 의료계도 책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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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헌신적으로 가습기 살균제 질환자들을 돌보았고 또 현재도 돌보고 있는 의사들의 노고에 찬사를 보내야 하지만 그렇다고 의료시스템, 그리고 의료계가 책임이 없다고 할 수는 없다.

가습기 살균제 태아 피해기준을 검토하는 위원회 활동을 하면서 산모가 아이를 조산시킨 후 호흡곤란으로 사망하거나 아이 역시 패혈증과 같이 생명을 위협받는 상태에 이르는 사례들을 접하고는 마음이 너무나 무거웠던 경험을 했다. 현대의학은 유전자치료나 줄기세포치료와 같은 놀라운 치료기술의 발전을 이루었지만, 한편으로는 생활환경에서 일어날 수 있는 독성물질에 의한 질병에 대해서 너무나 무지했다.

돌이켜보면 너무나 아쉬운 일이었다. 2004년부터 어린이 혹은 산모에게서 폐섬유화증이라는 병이 원인 모르게 생겨 기침과 호흡곤란을 심하게 겪다가 사망하는 경우가 나타났었다. 그런데 원인이 분명하지 않았고 과거에도 이와 같이 원인을 알 수 없지만 폐에 섬유화 변화가 일어나서 점차 폐가 굳어지고 호흡을 곤란하게 하는 병이 가끔씩 발생했다는 보고들이 있었기 때문에 이를 대수롭지 않게 넘겼던 것 같다. 따라서 2004년 이후에 발생했던 폐섬유화증에도 대부분 소위 ‘특발성 폐섬유화증’으로 이름이 붙여지고 특별한 원인이 없이 폐섬유화증이 발생했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특히 겨울이 끝나갈 즈음에 이러한 환자들이 발생했지만 별다른 특성이나 이유를 찾지 못했다. 그리고 한참의 시간이 지나서 2011년 4월이 돼서야 한 대학병원 호흡기중환자실에 환자들이 몰려오고 그 원인이 바이러스나 세균이 아니라고 확인이 되고 나서야 문제의 심각성을 깨달았다고 할 수 있다. 즉 4월 25일 임산부 중증 폐렴환자가 갑자기 늘었다는 신고를 받고 질병관리본부 중앙역학조사반이 출동하면서 문제를 규명하고자 하는 노력이 비로소 시작됐다.

2012년 1월 가습기 살균제 피해로 인해 사망한 산모 윤지영씨의 빈소를 방문한 사람들. 의료계가 좀 더 주의를 기울였다면 윤씨와 같은 피해자들의 규모는 훨씬 줄어들었을 것이라고 필자는 말한다. / 환경보건시민센터 제공

2012년 1월 가습기 살균제 피해로 인해 사망한 산모 윤지영씨의 빈소를 방문한 사람들. 의료계가 좀 더 주의를 기울였다면 윤씨와 같은 피해자들의 규모는 훨씬 줄어들었을 것이라고 필자는 말한다. / 환경보건시민센터 제공

‘특발성’이라 이름 붙여진 폐섬유화증

사실 폐질환이 빠르게 악화될 때 대부분의 의사들은 감염병을 먼저 떠올리게 되고, 이를 중심으로 진단하고 원인균을 찾으려는 노력을 한다. 하지만 여러 가지 검사에서 감염병이 확인되지 않자 비로소 다른 원인을 찾기 위한 역학조사가 시작됐다. 그리고 환자의 생활환경 및 습관을 물어본 설문조사 결과가 나오자 어렵지 않게 가습기 살균제가 원인이라는 것으로 밝힐 수 있었다. 또 이를 근거로 가습기 살균제 판매 금지를 내린 뒤에는 지금까지 이와 같은 ‘특발성 폐섬유화증’은 나타나지 않았다는 점에서 가습기 살균제가 원인이라는 것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었다.

사실 이러한 사건의 발생 및 경과를 보면서 누가 어떤 잘못을 했는지 책임의 소재를 따지는 일은 그리 간단하지 않을 것이다. 지금도 이 사건은 재판 과정에 있을 뿐 아니라 한편으로는 누가 피해자인지조차도 정확하게 산정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가습기 살균제로 인해서 생겼을 피해질환의 범위도 폐섬유화증에 국한되는지, 아니면 천식과 같은 다른 질환도 포함되는지에 대해서도 최종적인 결론을 내지 못하고 있다.

따라서 이 사건은 아직까지 진행형이고 마무리가 되려면 상당한 시간이 더 필요하지만, 우리는 이 사건을 통해 교훈을 얻어서 다시는 이러한 참사가 되풀이되지 않도록 해야 할 필요가 있다. 여러 가지 고쳐나가야 할 부분이 있지만, 그 중의 하나가 우리나라의 의학교육과 의료시스템일 것이다. 만일 의과대학에서 환경의학을 좀 더 잘 가르치고, 환자를 접한 의사들이 질병과 관련이 될 수 있는 환경적 요인에 대해서 환자나 보호자들에게 충분히 묻고, 그 결과 의심되는 요인에 대해서 학계에 보고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소위 ‘원인미상’이나 ‘특발성’이라고 이름 붙여졌던 가습기 살균제에 의한 폐섬유화증도 2011년 이전에 확인이 됐을 것이고, 아마도 많은 목숨을 구할 수 있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사실 가습기 폐질환으로 병원을 방문했던 환자 중 많은 사람들이 의사들의 헌신적인 노력에 의해 생명을 구했다. 우리는 이러한 의사들의 노력에 대해서 칭찬을 아끼지 않아야 하지만, 의사들이 그 원인을 좀 더 일찍 찾아냈다면 훨씬 더 많은 생명을 구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 또한 떨쳐버릴 수가 없다. 가습기 살균제에 의한 폐섬유화증만이 아니라 천식과 같이 좀 더 흔히 발생하고 또 여러 가지 요인에 의하여 생기는 질환의 경우도 가습기 살균제가 그 중의 한 요인이었다면 예방할 수 있었던 피해자는 훨씬 많았을 것이다.

환경성 질환에 대한 의과교육 강화해야

그런데 의사가 어떤 특정한 환경적인 요인이 가습기 폐섬유화증의 원인일 수 있다고 판단했다고 해도 이를 전문학술지에 사례로 보고하는 이상의 방법이 없다면 이러한 사례들은 개별적인 특이한 사례로만 남게 되고, 원인을 체계적으로 분석하고 조치를 취하는 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리게 된다. 실제로 이번 가습기 참사의 경우도 소아과·내과 의사들의 폐섬유화증 사례 보고들은 있었으나 이는 학술적인 관심의 대상에 머물렀다. 그런데 원인을 체계적으로 규명할 수 있는 시스템이 갖춰지지 않은 상태에서 이들에게 사례 보고만 하고 왜 원인규명을 하지 않았느냐고 따질 수는 없다.

우리는 헌신적으로 가습기 살균제 질환자들을 돌보았고 또 현재도 돌보고 있는 의사들의 노고에 찬사를 보내야 하지만 그렇다고 의료시스템, 그리고 의료계가 책임이 없다고 할 수는 없다. 의사들은 질병을 예방하고 치료하는 사명을 갖고 있는데, 치료만 잘 한다고 사명을 완수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러한 사건이 더 이상 발생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질병예방시스템을 강화해야 한다. 또한 질병예방교육도 강화돼야 한다. 특히 감염성 질환뿐 아니라 환경성 질환에 대한 교육이 의과대학에서 지금보다 훨씬 강화돼야 한다. 실제로 의과대학에서 이루어지는 환경의학 교육은 중금속이나 유기용제와 같은 몇 가지 화학물질에 대한 기초적인 내용만을 가르친다. 현대인이 일상생활에서 접하고 또 상당한 영향을 주는 환경요인에 대해서는 거의 교육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환경요인과 독성학적 작용, 임상양상에 대해서 배우지 않고 어떻게 환경성 질환자를 제대로 대할 수 있을 것인가?

정부 차원의 관리시스템도 크게 변화하지 않으면 안 된다. 현재는 가습기 살균제 질환과 같은 환경성 질환의 재발 방지를 할 수 있는 조직과 인력이 정부 차원에서 확보된 상태가 아니기 때문에 유사한 사건이 발생했을 때 이를 조기에 발견해 조치를 취할 수 있는 시스템이 없다고 할 수 있다. 또한 재발 방지를 위해서는 가습기 살균제와 같은 살생물제 관리와 유해물질 관리 강화가 반드시 필요하지만 현재의 조직과 인력으로는 제대로 할 수 없다. 이를 담당하는 조직과 인력의 확대가 반드시 이루어져야 하는 것이다.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들이 2013년 12월 17일 서울 온실가스정보센터에서 윤성규 환경부 장관과 가진 면담에서 요구사항을 전달하고 있다. / 김영민 기자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들이 2013년 12월 17일 서울 온실가스정보센터에서 윤성규 환경부 장관과 가진 면담에서 요구사항을 전달하고 있다. / 김영민 기자

한편 이와 같은 사건이 발생하는 경우에 이를 신속하게 발견해 대책을 마련할 수 있게 하는 환경성질환 모니터링 체계를 갖출 필요가 있다. 이와 같은 모니터링 체계가 있었다면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를 최소한으로 줄일 수 있었을 것이다. 사실 재발 방지를 위해서 법과 제도, 기구에 대한 정비도 필요하지만 이와 같은 예방적 조치로 환경성 질환을 완전히 막을 수 없기 때문에 조기 발견해 신속하게 조치할 수 있는 환경성질환 모니터링 시스템이 반드시 필요한 것이다.

환경성질환 모니터링은 실시간 모니터링과 정기적인 모니터링으로 나눌 수 있다. 실시간 모니터링은 환경보건센터 등 전문기관에서 전국의 주요 대학병원급에서 발생하는 환자 자료를 모아서 평상시보다 다르게 나타나는 질병 발생양상을 분석하는 시스템을 갖추는 것이다. 정기적인 모니터링은 질병관리본부나 국립환경과학원 등 국가중앙기관에서 전국민 건강보험 자료를 이용하여 병·의원 이용양상을 분석하는 시스템이라고 할 수 있다. 정기적인 모니터링이 보다 정확한 정보를 줄 수 있으나 몇 달이 경과한 후에야 파악이 가능하기 때문에 실시간 모니터링과 정기적인 모니터링을 둘 다 갖추어 상호 보완적으로 활용하는 것이 필요하다.

국립환경과학원 기능 강화도 필요

사실 이미 환경부는 전국의 의과대학 및 대학병원에 14개의 환경보건센터를 두고 있다. 따라서 이들의 역할과 역량을 늘려서 환경성질환 모니터링과 같은 사업을 하게 하고, 지역사회에서 발생하는 환경보건문제에 적극적으로 대처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또한 현행 환경보건센터에 환경성질환 진단과 치료 등의 업무를 부여하고, 이를 수행하기 위하여 그에 맞게 조직과 기능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 이번 가습기 살균제 사건에서 환경성질환을 다루는 환경보건센터의 역할이 거의 없었기 때문에 가습기 살균제 사건을 환경보건센터의 목적과 역할에 대해서 크게 반성하고 개선해 나가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즉 환경보건센터가 최일선에서 지역사회에서 발생하는 환경성 질환에 실질적으로 대처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좀 더 적극적으로 환경성 질환에 대한 시스템을 만든다면 현재의 국립환경과학원의 기능을 지금보다 훨씬 강화하는 것이다. 국립환경과학원은 현재 환경보건에 대한 일부 연구의 기능은 하고 있지만 환경성질환에 대한 적극적인 예방과 관리 등의 역할은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한 면에서 가습기 살균제 피해와 같은 환경성 질환에 대해 원인 분석 및 피해구제(보상) 등을 즉각적이고 통합적으로 하기 위한 정부 조직의 마련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미국의 국립환경보건센터와 같은 독립적인 ‘국립환경보건원’을 신설하거나 현재의 국립환경과학원을 ‘국립환경보건과학원’으로 확대 운영하고, 환경보건을 담당하는 조직이 크게 확대 개편되는 안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이렇게 조직이 확대돼야 전국에 있는 환경보건센터를 통제하고 관리하는 사령탑의 기능을 할 수 있다. 또한 이와 같이 신설 또는 확대된 중앙정부기구는 환경피해 유발 기업들로부터 기금을 마련해 관리하고, 국가 보상 형평성에 맞도록 피해를 보상하는 업무도 수행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와 같이 환경보건업무를 관장하는 정부 기구를 신설 또는 확대해 환경성질환에 대해 적극적이고 즉각적인 대처를 할 뿐 아니라 사전에 유사사건이 발생하지 않도록 예방시스템을 마련해야 국민들이 다시는 가습기 살균제 참사와 같은 사건을 겪지 않을 것이다.

어쩌면 앞으로 환경성질환은 더 많이 발생할지도 모른다. 그동안은 환경요인들이 질병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 잘 모르고 있었지만 점차 과학이 발전하면서 환경요인들이 여러 가지 질환, 예를 들어 심혈관질환, 뇌졸중, 당뇨병, 암 등 많은 질환에 상당한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 밝혀졌기 때문이다. 또한 가습기 살균제 사건을 보면 미세먼지나 생활화학물질 등의 환경적인 위해요인에 우리가 얼마나 둘러싸여 있는지 알 수 있다. 따라서 가습기 살균제 참사가 우리 사회에, 그리고 전문가 집단에게 요구하는 변화를 정리해보면 다음의 세 가지 정도라고 할 수 있다. 첫째는 사회가 가습기 살균제와 같은 생활화학물질에 대한 경각심을 갖고 이에 대한 주의 및 관리를 철저히 하는 것이다. 둘째는 가습기 살균제 질환과 같은 환경성 질환에 대한 체계적인 의학교육, 그리고 환경성 질환에 대처할 수 있는 의료시스템이 마련돼야 한다는 것이다. 셋째는 국립환경과학원과 같은 정부 조직이 환경성 질환을 예방하고 관리할 수 있는 조직으로 크게 탈바꿈돼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변화에 대한 시대적 요청을 또다시 무시한다면 우리는 언제 다시 가습기 참사를 겪을지 모른다.

<홍윤철 서울대 의과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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