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쇄
  • |
  • 목록
  • |
  • 복사하기
  • 페이스북
  • 트위터
  • 밴드

가정은 가족들이 일상생활에서 화나고 지친 상태로 돌아오는 곳이다. 그리고 또다시 일상생활이라는 전쟁터로 나가서 이길 수 있는 원기를 북돋워주는 곳이다. 그 역할을 잘하기 위해서는 가정은 상담소가 되어야 한다.

모든 부모가 바라는 것은 ‘자녀들이 건강하게 자라는 것’이다. 새해에 가족들이 모여 세배를 드릴 때도 제일 자주 오가는 덕담이 “새해에도 건강하게 지내라”는 것이다. 그리고 오랜만에 지인을 만났을 때도 제일 먼저 하는 인사가 “요즘 건강은 어때?”인 것을 보아도 건강이 우리 모두에게 최고의 관심사인 것은 분명하다. 건강 이외의 기대와 소망은 모두 건강하다는 것을 전제로 이루어진다.

일반적으로 ‘건강’이라고 하면 우리는 보통 몸의 건강에 대해서만 관심을 가진다. 특히 우리 문화는 몸의 건강에 대해 지나칠 정도로 관심이 많다. ‘몸에 좋다’는 소문만 퍼지면 야생의 동식물이 남아나지를 않는다. 내세(來世)에 특별한 관심을 가지고 있지 않은 우리의 전통문화에서도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저승보다 낫다’는 말이 있듯이, 이승에서 ‘장수(長壽)’를 누리는 것이 복 중의 북이라고 생각했다. 다행히도 이제 우리 여성은 평균 세계에서 세 번째로 오래 사는 나라가 됐다.

하지만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는 몸의 건강 못지않게, 아니 어쩌면 그보다 더욱 중요한 것이 마음의 건강이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우리의 부모들은 자녀들의 마음의 건강에 대해서는 그동안 별로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고 또 기울일 겨를도 없었다. 이 결과, 현재 우리나라가 당면한 큰 문제 중 하나는 몸은 건강하지만 마음이 건강하지 못하고 병든 사람들이 급격하게 증가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최근에 이루어진 한 연구에 의하면 우리나라의 초·중·고등학교에 재학 중인 학생의 25%가 최소한 한 가지 이상의 정신장애를 가지고 있다. 이제 마음의 건강은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는 긴급한 문제가 되어 있고, 더 이상 방치했다가는 우리 사회가 앞으로 커다란 대가를 치러야만 하는 사회적 문제로 대두될 것이다.

경기도의 한 정신건강증진센터 내부의 모습. / 정지윤 기자

경기도의 한 정신건강증진센터 내부의 모습. / 정지윤 기자

몸은 ‘내가’ 아프지만 마음은 ‘너를’ 아프게

몸이나 마음이나 병이 들면 ‘아프다’는 공통점이 있다. 몸이 병들면 고통스럽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알고 있다. 그리고 그 고통은 오로지 본인만이 감당해야 한다. 아무리 자녀를 사랑하는 어머니라고 해도 자녀를 대신해서 아파줄 수는 없다. 그냥 괴로워하는 자녀를 보면서 안타까워하며 빨리 낫게 해달라고 마음속으로 기도할 뿐이다. 그래서 몸이 아픈 사람은 누가 권하지 않더라도 스스로 병원에 가거나 전문가의 도움을 받으려고 한다. 우리 말에도 ‘병은 자랑하라’는 격언도 있다.

마음이 병들어도 아프다. 하지만 몸이 병든 것과는 달리 자신이 아프기보다는 주위 사람들이 고통을 받게 한다. 이 점에서 몸의 건강과 마음이 건강이 큰 차이가 있다. 즉, 몸은 ‘내가’ 아프지만, 마음은 ‘너를’ 아프게 한다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몸의 건강은 ‘개인적’이지만, 마음의 건강은 ‘사회적’이다. 즉, 마음의 건강은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고통스럽게 한다. 그리고 자신이 얼마나 주위 사람들을 고통스럽게 하고 있는지 잘 알지 못한다. 그렇기 때문에 마음이 병든 사람이 자기 발로 도움을 청하러 가는 경우는 거의 없다. 견디다 못한 주위 사람들이 ‘전문적인 도움을 받아보라’고 권하면 오히려 “나를 정신병자로 몰고 있다”고 화를 낸다. 예를 들면, 가족 중에 마음이 병든 사람이 있다면 본인보다는 가족들이 더 고통스럽다. 참다 못한 가족이 병원이나 상담소에 억지로 데리고 간다 하더라도 저항을 하며 치료나 상담에 비협조적인 자세를 보인다. 그리고 오히려 “가족들이 나를 모함한다”고 하소연하거나 큰소리친다.

몸이 건강하기 위해서는 운동도 하고 보약도 먹고 또 정기검진도 받아야 한다는 것은 상식이다. 대중매체에서 연일 건강하기 위해 필요한 ‘운동’에 대해 자세한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덕분에 요즘은 일반인도 건강에 대해서는 거의 전문가 수준의 지식을 가지고 있다고 자부하는 사람도 많아져서 오히려 의료진들을 당황하게 하거나 잘못된 지식으로 무장하고 있는 경우까지 생겼다.

몸이 건강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운동을 해야 한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알고 있는 사실이다. 당연히 초등학교부터 대학교까지 ‘체육’ 시간이 있다. 그리고 우리는 운동에 대해 많은 관심과 경제적 부담과 시간을 투자하고 있다. 비록 특정한 병을 앓고 있지는 않지만 평상시에도 다양한 운동을 한다. 하지만 마음의 건강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기 때문에, 마음의 건강을 지키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대해 알지 못하고 있다.

마음의 건강을 유지하고 증진시키기 위해서는 상담이 필요하다. 상담은 여러 가지로 정의할 수 있지만, 상담이라는 한자어를 풀어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상담은 ‘상대방’을 뜻하는 상(相) 자와 ‘이야기나 대화’를 뜻하는 담(談) 자로 구성되어 있다. 또 담(談) 자를 살펴보면 ‘말’을 뜻하는 언(言) 자와 ‘뜨겁다’는 것을 뜻하는 염(炎) 자로 구성되어 있고, 염(炎)은 ‘불’을 뜻하는 화(火) 자가 2개 있는 모습을 하고 있다. 이 한자들의 조합을 통해 알 수 있는 상담의 의미는 ‘상대방(相)의 마음속에 뜨겁게 타오르는 불(火)을 대화(言)를 통해 풀어주는 것’이다. 우리의 일상적인 말에서도 “화가 나서 열 받는다”든지 또는 “네가 말썽을 부리니 엄마 속이 타들어간다”는 표현을 보면 그 의미를 조금 더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상담은 마음이 건강할 때 필요한 것

다시 말하면, 우리의 마음 건강은 “일상생활을 하면서 느끼는 화를 얼마나 효율적으로 푸느냐?”에 달려 있다고 볼 수 있다. 마음속에 화를 많이 담고 살면 폭력적이 되거나 아니면 마음의 병을 얻게 되는데, 이 병을 화병(火病)이라고 한다. 우리 사회에서는 상담에 대해 편견을 가지고 있다. 즉, 상담은 문제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에게만 필요한 것이고, 내 자녀는 마음의 문제가 없기 때문에 상담을 받을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누군가가 자녀에게 상담이 필요하다는 조언을 하면 화가 나고 부정적인 감정이 일어난다.
하지만 운동은 몸이 아플 때 필요한 것이 아니라, 몸이 건강할 때 필요한 것이다. 그래야만 건강이 유지되고 증진되기 때문이다. 이미 몸이 병든 사람은 빨리 치료를 받아야지 운동을 해서는 안 된다. 마찬가지로 상담은 마음이 건강할 때 필요한 것이지, 이미 마음이 병들었다면 치료를 받아야만 한다. 즉, 상담은 마음이 건강할 때 그 건강을 유지하고 증진시키기 위해 필요한 활동인 것이다.

부모는 자녀들이 건강하게 자라기 위해 여러 가지 역할을 해야 하지만, 제일 중요한 것은 ‘마음의 건강’을 지켜주기 위한 상담자의 역할이다. 자녀들의 마음의 건강에 일차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대상이 바로 부모이기 때문이다. 모든 사람은 부모를 통해 이 세상에 태어나고 부모의 품에서 생활을 시작한다. 동시에 자녀들의 마음의 건강은 부모와의 관계에서 그 기초를 형성해나간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모두 직·간접적으로 부모의 역할을 한다. 따라서 우리 모두는 상담자이다.

가정은 가족들이 일상생활에서 화나고 지친 상태로 돌아오는 곳이다. 그리고 또다시 일상생활이라는 전쟁터로 나가서 이길 수 있는 원기를 북돋워주는 곳이다. 그 역할을 잘하기 위해서는 가정은 상담소가 되어야 한다. 매일매일 학교, 직장 또는 반복되는 일상에서 지치고 화가 났을 때 일차적으로 그 화를 풀어주어야 하는 곳이다. 그리고 다시 신명나는 생활을 할 수 있도록 돌보아주는 곳이어야 한다. 가정은 ‘상담소(相談所)’이고 동시에 ‘상담소(相談笑)’이다. 가정은 “가족원들의 화를 풀어주어 웃게(笑) 만드는 곳(所)이다.” 그리고 가족원 모두는 상담자이다.

<한성열 고려대 심리학과 명예교수 syhan@korea.ac.kr>

한성열·서송희 부부의 심리학 콘서트 ‘중년, 나도 아프다’바로가기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