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성인들은 술을 너무 자주, 많이 마십니다. 영국의학학술지의 연구에 따르면 뇌에 안전한 음주량은 일주일에 맥주 500cc 3잔 정도입니다.
30년 전 의과대학 학생이었을 때, 심근경색증이나 정맥혈전 등의 혈관병은 영어로 된 교과서에는 많이 나오는데 정작 우리나라에서는 보기가 힘든 희귀병이었습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피가 좋아서, 또는 마늘과 김치를 먹어서 그런 병에 걸리지 않는다고 하시던 교수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런 생각은 지금 와서 보니 완전히 오판이었습니다. 식습관의 서구화와 함께 이제는 동맥경화증과 같은 혈관병이 너무나 흔해졌습니다.
치매도 마찬가지입니다 10년 전만 해도 치매는 거의 남의 나라, 특히 일본과 같은 초고령화 사회의 이야기였습니다. 우리나라는 저렇게까지는 안 되겠지 하고 막연히 안심했는데, 우리 사회에 치매가 일본보다 훨씬 빨리 증가하고 있습니다. 건강보험공단 치매 통계에 따르면 2013년 40만명, 2015년 50만명 수준으로 빠르게 증가하고 있습니다. 2017년 현재 그 수가 69만명으로 추산됩니다. 2024년에는 100만명에 이를 것입니다. 현재 65세 이상 노인층을 보면 10명당 1명이 치매로, 굉장히 빠르고 무섭게 늘고 있습니다.
다른 병과 달리 치매는 여러 가지 어려운 점이 많은데, 대부분의 경우가 회복 불가능하고, 삶의 전체를 남에게 의존해야 하고, 천천히 진행된다는 점입니다. 따라서 국가는 물론이고 치매환자의 가족들에게는 엄청난 부담이고 고통이 됩니다. 치매는 현재의 의학수준으로서는 예방할 수 없는 치매와 막을 수 있는 치매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 치매의 70%인 알츠하이머 치매는 아직까지는 예측하기 힘들고 예방하기도 힘듭니다. 그러나 충분히 예방 가능한 치매가 있습니다. 당뇨병, 고혈압, 고지혈증, 흡연 등이 원인인 혈관성 치매와 술을 많이 마셔 생기는 알코올성 치매는 생활습관 조절과 질병 치료로 예방가능합니다. 알코올성 치매는 특히 음주습관만 고치면 되는, 예방해야 하는 병입니다.
알코올성 치매, 예방해야 한다
지금은 많이 좋아졌지만, 우리나라 사람들은 술이 센 것을 자랑으로 여기는 경향이 많습니다. 유럽인들에 비해 술 해독능력은 훨씬 떨어지는데 술은 훨씬 많이 마십니다. 2013년 WHO의 통계를 보면 우리나라 사람들의 평균 연간 술 소비량은 세계 13위입니다. 독한 술인 증류주 소비량은 연간 9.57ℓ로 세계 1위입니다. 에스토니아, 세인트루시아가 각각 2·3위이고, 보드카를 많이 소비하는 러시아가 6위, 일본은 28위입니다. 한국인은 술에 약합니다. 알코올 분해효소가 충분한 서양인은 술 마시고 얼굴이 붉어지는 일이 거의 없습니다. 우리나라와 일본 사람이 많은데 그래서 술 마셔서 얼굴이 붉어지는 것을 ‘아시아인의 홍조’(Asian Flushing)라고 합니다. 술이 약한 우리나라 사람들이 독주를 그렇게 마시니 몸이 성할 수 없습니다.
과거엔 술을 적당히 마시면 뇌의 기능 저하를 막는다는 주장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영국 의학학술지(BMJ) 6월호에 발표된 연구는 그런 낙관적인 생각을 철저히 배신합니다. 이 연구는 영국인 500여명을 30년간 추적·관찰하면서 인지능력과 MRI로 찍은 뇌의 변화를 자세히 측정한 연구입니다. 영국에서는 일주일에 맥주 500㏄ 6잔 정도는 의학적으로 건강에 무해하다고 인정됩니다. 그런데 이 정도만 마신 사람도 나중에 보면 언어능력이 떨어지고, 기억과 감정을 중계하는 뇌의 해마체가 퇴축되어 있었습니다. 그 이상으로 마시면 이런 경향이 더 심해집니다. 이 연구의 결론은 적당한 음주도 습관이 되면 인지능력을 저하시킨다는 것입니다.
해마체는 술을 마시면 손상받는 부위로, 흔히 필름이 끊겼다고 할 때 손상받는 부위입니다. 알코올성 치매의 원인이 되는 뇌의 중요한 부분이고, 단기 기억과 공격성을 담당하는 부위입니다. 술을 마시면 이 부분과 전두엽이 손상받기 때문에 알코올성 치매는 다른 치매에 비해 공격성이 두드러집니다. 술만 마시면 폭력적이 되는 주폭이나 술 마실 때의 기억이 끊어지는 증상이 자주 있으면 알코올성 뇌병증 또는 치매를 의심해야 하고, 꼭 병원에 가서 검사를 받아야 합니다. 우리나라의 알코올성 치매는 전체 치매의 10% 정도로 생각하고 있는데, 과음이 잦은 젊은층부터 많아지기 시작합니다. 이런 치매는 예방할 수 있는 치매이기에 안타까운 면이 있습니다. 우리나라 성인들은 술을 너무 자주, 많이 마십니다. BMJ의 연구에 따르면 뇌에 안전한 음주량은 일주일에 맥주 500㏄ 3잔 정도입니다.
매일 반 잔의 와인도 유방암 위험을 높인다
WHO에 의하면 술은 이미 1급 발암물질입니다. 하지만 허용 안전치가 있습니다. 우연히 한두 잔을 마신다고 덜컥 암에 걸리는 건 아닙니다. 일정 수준 이하로 마시면 현실적으로 암에 걸릴 위험은 높지 않습니다. 하지만 최근 연구를 보면 그 허용 안전치가 점점 낮아지고 있습니다.
세계 암연구기금(World Cancer Research Fund)의 최근 연구에 의하면, 하루에 반 잔 정도의 와인을 마신 사람의 경우 그렇지 않은 사람에 비해 유방암의 위험이 높은 것으로 나타납니다. 암연구기금은 최근 암과 술에 대한 연구 중 1200만명의 여성을 포함한 119개의 연구를 추려서 시스템 분석을 했습니다. 놀랍게도 술의 허용 안전치는 생각보다 훨씬 낮았습니다. 연구 결과에 따르면, 매일 반 잔(76㎖)의 와인을 마신 여성의 경우 폐경기 여성은 9%, 폐경기 전 여성은 5% 정도 유방암 발병위험이 증가합니다. 다른 술과 비교하면 와인 반 잔은 알코올 도수 4%의 맥주를 매일 250㏄ 마시는 것과 동일하고, 40% 위스키를 매일 25㎖ 마시는 것과 같습니다. 이 수치는 앞에서 언급한 치매 위험 알코올 섭취량과 비슷합니다. 두 연구 결과에 의한 술의 허용 안전치는 현재 미국의 알코올 제한 권장량보다 훨씬 낮고, 미국보다 엄격한 영국의 알코올 제한량의 절반에 불과합니다. 서로 다른 질병인 치매와 암에 대한 각기 다른 연구에서 비슷한 결과가 나온 것입니다. 우리가 술에 대해 너무 관대했던 것 같습니다.
50세가 넘으면 매년 약 1% 정도 근육 손실이 일어납니다. 80세 이상의 근육량은 청년기보다 75% 정도 줄어 있습니다. 이것을 근감소증이라 합니다. 근육이 감소하면 낙상이나 골절 등의 위험이 크고, 골다공증이 함께 오게 됩니다. 사실 노년에 겪는 고관절 골절은 암보다 더 나쁠 수 있습니다. 따라서 근육을 보전하면서 나이 드는 것이 굉장히 중요합니다. 술을 마시면 나중에 근감소증으로 고생하게 됩니다. 이번 6월, 세계적 학술지 ‘폐경’(Menopause)에 우리나라 연구자들의 중요한 연구가 게재됐습니다. 술을 많이 마시는 여성노인의 경우 적게 마시는 사람에 비해 근감소증이 훨씬 많다(22.7% 대 7.6%)는 사실을 밝혀낸 연구입니다. 술은 많이 마실수록 좋지 않고, 같은 양이라도 여성에게 더 해롭습니다. 여성의 알코올 처리능력이 남성보다 떨어지고, 많은 발암물질이 지용성이라 체지방이 많은 여성에게 더 오래 남아있습니다.
적당한 술은 사회생활을 부드럽게 하고 감정을 치유하는 약이 됩니다. 이제 그 ‘적당하다’는 양을 다시 생각해야 합니다. 1주 맥주 500㏄ 3잔 이하가 새로운 ‘적당한’ 양이 되겠습니다.
<연세조홍근내과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