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예술인, 시민단체 활동가, 법률가들의 연대체인 문문(문화문제 대응모임)에서는 <문화예술 공정화에 관한 법률>의 입법을 청원하고 있다. 예술가, 제작자, 행정기관이 자정적으로 규율하지 못하는 문화예술계의 ‘관행’을 제도적으로 규율하는 법률이다.
소설 <향수>의 주인공 그르누이는 향화학의 천재다. 하지만 향수 제조시설과 재료를 구매할 돈이 없어 장인들의 조수가 된다. 그가 만들어낸 향수는 장인의 이름이 박힌 채 불티나게 팔려나간다. 장인의 지위는 격상하지만 그르누이의 지위는 그대로이다. 향수의 진짜 제조자가 누구인지 세상이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미국 드라마 <브레이킹 배드>는 그 다음 단계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를 보여준다. 천재적 화학자 월터는 갱단에 고용되어 지하실에 감금된 채 마약을 제조한다. 이 마약이 시장을 독점하면서 월터를 통제하기 어려워지자 갱단은 조수를 붙여 마약 레시피를 배우도록 도제 제도를 도입한다. 레시피를 남김없이 뽑아내는 순간 월터는 살해당할 운명이다. 월터의 후임자는 수명이 얼마나 될지 알 수 없다.
도식화하면 이렇다. 유명 작가 ‘A’는 조수로 ‘B’를 거느린다. 결과물은 언제나 A의 명의로 발표된다. 사람들은 모든 작품이 A의 손에서 나왔다고 믿는다. B의 존재를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A가 내치면? 한 줄 경력조차 남기지 못한 B는 출발선으로 돌아가야 한다. 도제 제도에서 장인이 갖는 권력의 원천이다.

방송음악 작곡가 김인경씨가 2015년 12월 25일 드라마 JTBC 앞에서 외주 제작사 로이 엔터테인먼트의 작곡가 착취 및 음원수익 갈취 문제 해결을 요구하고 있다. / 김창길 기자
조영남에게 왜 저작권법 적용하지 않았나
문화연대가 2016년 문화예술계 10대 뉴스로 꼽은 ‘조영남 대작 사건’과 ‘로이 엔터테인먼트 사건’은 창작능력이 없는 유명 인사 혹은 회사가 실제 창작자의 존재를 숨긴 채 작품을 자신의 이름으로 세상에 발표했다는 점에서 이 ‘도제 착취 도식’에 들어맞는 경우다. 미학자 진중권은 “조수에게 작품의 물리적 실행을 맡기는 것은 창작의 일반적 관행”이라면서 조영남을 변론했는데, 그가 언급하는 ‘관행’은 용인 범위가 정의되지 않은 모호한 개념이다. 관행에 호소하는 논리가 사회의 관행 인식과 충돌하는 논란을 변호할 때만 동원되는 것은 재미있는 아이러니가 아닌가? ‘콘셉트에 의한 지배’로 표현되는 창작의 물리적 위임 관행은 자본에 의한 지배까지 관행으로 정당화해주지 못한다.
저작권법 역시 창작의 성립 범위를 모호하게 열어두고 있다. 저작권법 제2조는 ‘저작물’을 인간의 사상 또는 감정을 표현한 창작물로 정의한다. 나머지 모든 조항들이 제2조가 정의한 저작물을 보호하기 위한 세부 규정들이다. 그런데 인간의 사상 또는 감정을 표현했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렘브란트풍으로 그린 그림은 렘브란트가 사상과 감정을 표현한 창작물인가? 화투를 그려달라는 조영남의 요구에 따라 조수가 그린 그림은? ‘슬픈 음악 좀 만들어봐’라는 로이 엔터테인먼트 대표의 문자 한 통을 받아 작곡가들이 작곡한 음악은? ‘나랏말싸미 듕귁에 달아’ 안타까워 한 왕의 감정을 받들어 탄생한 훈민정음은 세종대왕의 발명품인가?
검찰은 조영남에 대해 사기죄만을 적용했을 뿐 저작권법 위반은 적용하지 않았다. 대작이 창작자-소비자 사이에서 발생한 기만행위일 뿐 창작자-창작자 사이에서 발생한 권리 침해행위는 아니라고 본 것이다. 예술계의 창작 관행을 법적으로 판단하는 것에 대해 부담을 느낀 것으로 보인다. 예술계 관행의 범위가 무한하게 확장되면 저작권법은 창작자의 권리를 배제하도록 돕는 법률적 근거가 돼 버린다. 이때 저작권법은 물적·상징적 자본가를 ‘창작자’로 둔갑시키고 실질적 창작자를 ‘용역 제공자’로 전락시킨다. 이 문제는 명확한 입법적 제한으로 해결돼야 한다.
만약 조수의 성명표시권을 법이 보호한다면? 사람들은 A가 발표한 명작마다 조수 B의 이름이 항상 따라다닌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진짜 재능을 가진 쪽은 혹시 B가 아닐까? B에게 직접 창작을 의뢰하려는 사람이 나타난다. B가 스스로 발표한 작품이 성공을 거둔다. B는 더 이상 조수일 필요가 없으니 독립한다. A의 전성기가 저물고 예술의 새로운 시대가 도래한다. 바빠진 B는 다음 세대의 재능 C를 조수로 고용하고, 한때 자신의 권리를 보호해줬던 법률에 따라 C의 이름을 표시해준다. C의 재능을 이용하는 동시에 그 대가로 미래를 개척할 기회를 지불하는 것이다. 예술이 선순환하는 길이다. 이 길을 막기 위해 유명 작가들은 조수의 이름을 목숨 걸고 숨겨왔다. 최선의 전략은 조수의 이름뿐만 아니라 존재까지 삭제하는 것이다. 조영남과 로이 엔터테인먼트 대표가 똑같이 조수가 다른 창작자들과 교류하며 작업내용을 발설할 기회를 봉쇄했다는 사실은 우연이 아니다.
몇 년 전 만화작가 윤인완씨가 보조작가로 전진석씨가 참여했다는 사실을 부인하면서 분쟁이 일어났는데, 작년에는 또 다른 만화작가 허초롱씨가 자신이 전진석씨 작품에 보조작가로 참여했다고 주장하며 가해자와 피해자만 바뀐 똑같은 상황이 반복됐다. 예술이 악순환하는 최악의 길이다. 공인된 창작자의 권리만을 배타적으로 보호하는 저작권법의 사각지대로 밀려난 ‘예술 용역 제공자’들도 권리를 보장받을 수 있어야 한다.
행정기관 창작자 사이 ‘불공정’ 검토돼야
창작자-창작자 사이 불공정뿐만 아니라, 제작자-창작자 사이 분배 불공정도 문제다. 동화 <구름빵>의 경우 파생상품으로 4400억원 규모의 수익을 창출했는데도 작가는 1850만원만을 받았다. 신인 창작자를 수익 분배에서 완전히 배제시키는 것 역시 문화예술계의 관행이다. 조지 루카스는 <스타 워즈>의 계약 체결 당시 판권 수익 지분을 지켜낸 덕분에 보유 재산 5.5조원인 전 세계 문화예술계 최고의 부자가 됐으니, 이 관행은 창작자의 권리를 심각하게 침해하는 것이다.
회사는 장래 수익이 예측 불가능한 문화예술상품에 대한 수익 권리를 투기적으로 독점하려 한다. 대중음악 업계에서는 심지어 기간제 전속계약의 형태로 가수의 활동 수익 대부분을 갈취하는 ‘노예계약’도 종종 발견된다. 따라서 예측 범위를 넘어선 수익이 발생하는 경우 등에 창작자가 통상적인 수준의 보상을 받을 수 있도록 계약 변경권을 보장하거나, 수익 분배 계약의 갱신 기간을 법적으로 지정하는 식의 제도적 조정이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행정기관과 창작자 사이에 발생하는 문제 역시 불공정행위의 측면에서 검토될 필요가 있다. 행정기관의 지원금 심사가 사적이나 정치적으로 편향될 경우의 제재수단이 현재로서는 마땅치 않다. 가장 극단적인 사례가 ‘블랙리스트’다. 특검은 블랙리스트 작성이 직권남용이라고 해석했지만, 시국사건에서나 가능한 상황이다. 사실 특검이 블랙리스트 작성에 대해 직권남용죄라는 추상적인 법률을 적용한 것 역시 해당 행위에 대한 별도의 처벌규정이 없기 때문이다. 전형적인 ‘법의 구멍’이다. 블랙리스트 작성을 지시한 김기춘 전 비서실장은 누구보다 이 구멍의 크기와 용도를 잘 이해하고 있는 사람이다. 지금도 김 전 비서실장은 블랙리스트 작성이 직권남용이 아닌 ‘문화정책’이라면서, 특검이야말로 직권남용으로 구속돼야 한다고 반격하는 중이다. 법의 구멍을 능숙하게 들락거렸던 그 역시 문화정책 집행의 ‘관행’을 호소하는 논리를 구사하고 있는 셈이다.
불투명한 집행이 이뤄지는 밀실행정의 영역에서는 심사제도 자체가 정치적 검열을 위해 존재하기도 한다. 한국 영화 절반 정도에 투자하는 큰 손인 정부의 모태펀드는 경영 노하우를 이유로 비공개 운용돼 왔다. 작년 국회 국정감사 과정에서 밝혀진 바에 따르면 모태펀드 영화 투자심의에 참여한 전문위원들은 관광대학원 교수, 행정학 박사, 정치연구자 등의 비전문가들이며, 이들은 투자심의에 오른 모든 영화에 대해 만장일치로 투자집행을 가결하는 거수기 노릇을 해왔다. 그렇다면 모태펀드 투자를 받지 못한 영화들은 투자심의가 열리기도 전에 어떤 지시에 따라 미리 ‘걸러졌을’ 확률이 높다. 모태펀드 전문가 투자심의제도가 김기춘 비서실장이 영화 <변호인>을 관람하고 노발대발했다고 알려진 시점 직후에 도입됐고, 그 뒤로 특정한 정치 성향의 영화들이 투자를 받지 못하게 됐다는 사실은 의미심장하다.
문화예술인, 시민단체 활동가, 법률가들의 연대체인 문문(문화문제 대응모임)에서는 ‘문화예술 공정화에 관한 법률’의 입법을 청원하고 있다. 예술가, 제작자, 행정기관이 자정적으로 규율하지 못하는 문화예술계의 ‘관행’을 제도적으로 규율하는 법률이다. 예술은 불공정행위를 면책받는 자유 지상의 성역이 아니다. 법의 구멍에서 자라나는 음침한 관행을 향해 법은 응답할 수 있어야 한다. “그따위 관행은 이 사회에서 용납되지 않는다.”
<손아람(작가·문문(문화문제 대응모임) 공동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