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은 기륭전자였다. 2005년 사측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갑작스럽게 해고를 통보한다. 그해 10월 시작한 천막농성은 1895일간 지속됐다. 오랜 싸움 끝에 2010년 ‘불법파견 노사합의’가 이뤄지면서 노동자들이 회사로 돌아갈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됐다. 그러나 그게 끝이 아니었다. 사회적 합의에도 불구하고 회사는 사업을 몰래 처분한 후 야반도주했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집은 다시 거리가 될 수밖에 없었다.
‘비정규노동자의집 꿀잠’ 건립추진위원인 송경동 시인은 “10년이 넘게 기륭전자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이 이어졌는데 결국 돌아갈 곳이 없어져 버린 것이다. 비단 기륭전자 노동자들만의 일이 아니다. 수많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기륭전자 노동자들의 처지와 다를 바 없었다. 1000만에 이르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삶의 권익을 지키기 위해서 무언가를 함께해야 하지 않겠냐는 논의가 시작됐다”고 말했다. 방법을 모색하던 중 공장에서 쫓겨난 기륭전자 노동자들이 잠깐 살았던 조합사무실을 겸한 방이 떠올랐다. 거리에서, 천막에서, 고공에서 투쟁하며 한뎃잠을 자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잠깐이라도 편히 쉴 수 있는 공간을 만들자는 ‘비정규노동자의집 꿀잠’ 건립은 그렇게 시작됐다.
‘꿀잠’은 송경동 시인의 시 제목이기도 하다. 20여년 전 배관공·용접공으로 일했던 시인은 고된 노동을 시로 표현했다. “전남 여천군 소라면 쌍봉리 끝자락에 있는/ 남해화학 보수공장 현장에 가면, 지금도/ 식판 가득 고봉으로 머슴밥 먹고/ 유류탱크 밑 그늘에 누워 선잠 든 사람들 있으리.” 잔업과 철야로 늘 잠이 부족한 노동자들이 점심시간에 부리나케 밥먹고 잠깐 눈을 붙일 수밖에 없는 고단한 현실을 담은 시다. 송 시인은 지금의 한국 사회의 노동 현실은 그때보다 더 나빠졌다고 말했다. “그 경험이 20년 전인데, 그나마 당시에는 비정규직이라는 말 자체가 한국 사회에 없었다. 지금은 1000만에 이르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생겨났다. 더 비참한 사회가 된 것이다. 지금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미래가 없는 삶을 산다. 불안하기 때문에 잠 하나 편히 잘 수가 없는 삶이다.”
‘꿀잠’ 건립추진위원회는 10억원의 모금액을 목표로 하고 있다. 현재까지 3억5000만원의 기금이 모였다. 얼마 전에는 문정현 신부,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 소장이 나섰다. ‘꿀잠’ 건립추진위원회의 요청으로 문정현 신부는 새김판 77점을, 백기완 소장은 붓글씨 36점을 내놓았다. 내놓은 작품은 <두 어른> 전시회를 통해 판매됐고, 1억5000만원의 기금이 모였다. 5억원이 모였으니 절반이 모인 셈이다. 기금모금연대는 계속 이어지고 있다. 문정현 신부, 백기완 소장의 소식이 알려지자 박재동 화백, 신학철 화백 등도 도움을 주고 싶다는 의사를 전해 왔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현실을 담은 잡지 <꿀잠>도 기획 중이다. 노동·사회 담당 기자들에게 무료기고를 받고, 잡지 판매 수익금 전액은 ‘꿀잠’ 건립기금에 보탤 계획이다. 송경동 시인은 “‘꿀잠’이 최소한의 요구를 관철하기 위해 수백 일 수천 일 동안 길거리에서 한뎃잠을 자야만 하는 비정규 노동자들이 하루라도 편안하게 자고 먹고 빨래도 하고 쉬기도 하는 그런 공간이 됐으면 좋겠다. ‘꿀잠’은 거창한 목표를 내세우지는 않는다. 그러나 비정규 노동자들이 자연스럽게 ‘꿀잠’에 모여 서로의 경험을 나누고 공유하면서 이후의 싸움을 어떻게 해나가야 할지 모색해보는 자연스러운 단결과 연대의 공간이 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박송이 기자 psy@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