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들의 자발적 열기를 일부에서 ‘남성혐오’로 몰고가 의미 왜곡시켜
“사실 조현병이라는 게, 그 사람이 하는 말을 그대로 믿으면 안 된다.” 익명을 요청한 한 정신과 전문의 ㄱ교수의 말이다. 2011년까지 조현병은 정신분열증으로 불렸다. 의사들은 보통 ‘스키조(Schizo, Schizophrenia가 정식이름)’로 부르는 병이다. 조현병 환자의 전형적인 특징은 사고의 과정이나 내용이 망가진다는 점에서 강박적인 신경증과 다르다. 신경증환자는 자신이 특정한 ‘증상’을 앓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반면, 조현병 환자는 자신이 조현병이라는 것을 잘 모른다. 전체인구의 극소수만 앓고 있는 완치불가능한 병이다. “와해된 언어, 관계가 전혀 없는 두 사안의 관계성을 주장한다는 등의 특징을 갖고 있다. ‘내 귀에 도청장치’가 대표적이다. 그 사람이 도청장치가 있다고 주장한다고 그게 사실은 아니지 않나.”
조현병 환자 스스로는 환각과 현실을 구분할 수 없다. 병의 심도가 깊어짐에 따라 사고는 지리멸렬하게 된다. 환자에 따라 집요하게 인터넷 등에서 자기주장을 펴는 사람도 있지만 대부분 비체계적이며 비논리적인 일방적인 주장일 뿐이다. ㄱ교수의 지적에 따르면 비록 서로 얼굴이 안 보이는 익명의 공간이라고 하더라도 이런 사람은 다른 사람과 어울릴 수 없다. 5월 17일 강남역 살인사건의 경우, 사건 초기 피의자 김모씨(34)가 “특정 대형 인터넷 커뮤니티의 ㄴ갤러리에서 활동한 것이 아니냐”는 의심이 나왔지만 경찰은 “김씨는 인터넷을 거의 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일부 보도에서 알려진 것처럼 중퇴한 신학대생이라는 것도 사실이 아니다. 서초경찰서 관계자는 “한 교회에서 운영하는 교리학습 코스를 다닌 것을 신학원이라고 했을 뿐”이라고 밝혔다. ㄱ교수는 경찰의 초동대응부터 잘못되었다고 말했다. “병력이 확인되는 순간, 여성이 자기를 무시했다는 식의 김씨가 주장하는 ‘살해동기’를 전하지 말아야했다. 왜냐? 사실이 아니니까. 그런데 논란이 된 뒤에도 다시 실수했다. 현장검증 때 카메라 앞에 세워서 또 발언하게 했다. ‘여자들이 처신을 똑바로 해야 한다’는 등 유영철의 ‘헛소리’와는 차원이 다른 문제다. 김씨의 인권문제이기도 하다. 지금의 논란은 경찰이 자초한 것이다.”
묻지마범죄 vs.여혐범죄 구도 맞았나
강신명 경찰청장은 5월 23일 기자회견에서 “혐오에는 의지적 요소가 들어가야 한다”며 “실체가 없는 망상으로 인한 범행을 혐오범죄로 보기 어렵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 결론엔 바로 의문이 뒤따른다. 한국에서 혐오범죄는 아직 정의가 내려지지도, 범주화되지도 않았다. 경찰청 범죄통계를 보자. 범행 동기에 ‘혐오’는 공식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인터넷을 통해 직접 열람도 가능하다. 범행 동기는 경찰청이 공개하고 있는 범죄통계의 범죄자 특성 중 ‘기타’ 항목에 제시되어 있다. 이욕(利慾), 사행심, 보복, 가정불화, 호기심, 유혹, 우발적, 현실불만, 부주의 등의 동기 항목이 제시되어 있고, 그 외의 항목을 기타와 미상으로 잡고 있다. 2014년의 경우 가장 많이 차지하는 범주가 ‘기타’ 항목으로 전체의 31.1%다. 다음 순위는 ‘미상’으로 29.0%다. 혐오 내지 증오가 범주화되었다면 보복이나 현실불만 또는 기타 항목 중 일부에 해당하는 게 될 것이다.
혐오범죄의 다른 이름이 증오범죄다. 미국의 경우 1990년 이후 매해 증오범죄 통계를 내왔다. 증오범죄(hate crime)의 정의도 존재한다. “장애, 인종, 종교, 성적지향, 성별, 성별정체성 등에 근거한 적대 또는 편견이 동기가 된 범죄”다. 폭행, 살인 등 일반 범죄에 이런 편견동기가 들어가 있다면 가중 처벌된다.
김씨의 범행 성격이 무엇이냐를 두고 사건의 초기부터 논란이 되어 왔다. ‘묻지마 범죄가 아닌 여성혐오 범죄’, ‘여성혐오가 아닌 묻지마 범죄’라는 입장이 대립해 왔고, 강신명 경찰청장은 후자로 결론을 지었다. 홍성수 숙명여대 법학부 교수는 “성급한 결론이다”라고 말한다. “어떤 범죄가 증오범죄적 성격을 가지는지 여부를 판별하려면 편견이라는 동기가 존재했는지, 주변인에게 어떤 말을 했고 소속된 집단이 있는지, 최근에 읽은 책이나 영화 또는 자주 들르는 사이트가 어디인지 등을 다 체크해볼 필요가 있다. 정신감정이나 프로파일링 작업은 그렇게 빠른 시일 내에 이뤄질 수 없다.” 그는 “범죄학적, 형사법적으로 봤을 때 강남역 사건이 증오범죄가 아닐 수도 있다”라며 “오히려 범죄 직후 벌어진 사회적 상황이 진짜 ‘증오범죄’의 징후와 매우 유사했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강남역 10번 출구 추모’는 5월 18일 오후부터 시민들이 사건 현장 인근인 강남 지하철역 10번 출구 입구 근처에 포스트잇 등을 사용해 자발적으로 추모의 글을 붙이면서 시작됐다. 본격적으로 주최자가 나온 것은 5월 21일 이곳에서 이뤄진 침묵행진 때였다. 최초 행사의 제안은 5월 18일 오전 트위터를 통해 이뤄졌다. ‘강남역 살인사건 공론화(0517am1)’ 계정의 제안자는 ‘강남역 10번 출구 국화꽃 한 송이와 쪽지 한 장. 이젠 여성폭력, 살해에 사회가 답해야 할 차례입니다’라고 글을 올렸다. 그는 “강남역 유흥가에서 23세 대학생이 여성혐오 묻지마 살인으로 살해당했다”며 “사건이 묻히지 않도록 관심을 부탁드린다”고 적고 있었다. 트위터의 아이디는 사건이 벌어진 시간, ‘5월 17일 새벽 1시’를 모티브로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 이 최초제안자는 이 제안 글에서 ‘여성혐오 범죄 vs. 묻지마 범죄’라는 대립항을 사용하지 않았다.
‘남혐’으로 추모 성격 변질?
제안은 여성시대, 워마드 등 여성커뮤니티와 의견조율을 거쳐 이뤄진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해당 여성커뮤니티가 주도한 것은 아니었다. 행사를 위해 별도의 카페가 만들어졌었다. ‘강남역 추모집회’라는 카페다. ‘강남역 10번 출구’라는 페이스북 페이지도 개설되어 강남역 인근에서 행사프로그램을 진행했다. TV 인터뷰를 통해 이 집회의 제안자로 알려진 김아영씨는 ‘강남역 추모집회’ 카페에 올린 공지 글에서 “개인적으로 어떤 여성커뮤니티의 운영진을 맡은 사람도 아니며, 어떤 정치집단에도 소속되지 않은 지극히 평범한, 대한민국에서 회사를 다니며 살고 있는 사람”이라고 밝혔다. ‘추모’에 대한 비판여론이 일면서 김아영씨가 “워마드 카페의 운영자인 ‘느개비후장’이며 위 공지 글은 거짓말”이라는 루머가 퍼졌다. 김씨는 워마드카페 운영진과 초기 논의과정을 게시판에 공개하며 “터무니없는 인신공격석 루머”라고 반박했다.
20~30대 젊은 여성들을 중심으로 5월 18일 저녁부터 시작된 자발적 추모열기에 대해 일부 남성들의 반발을 불러일으키는 데 방아쇠 역할을 한 것은 언론 보도 등을 통해 부각된 포스트잇 문구였다. ‘살女주세요. 넌 살아 男았잖아’가 대표적이다. 김씨의 ‘묻지마 살인’이 처음부터 여성을 타깃으로 한 것이라는데 우리 사회에 만연해 있는 여성혐오가 원인이라는 지적, 그리고 그에 대해 자신의 경험을 말하며 “운이 좋아 그 자리에 없어서 살해당하지 않았을 뿐”이라고 이야기하는 강남역에 포스트잇으로 남긴 여성들의 주장에 대한 반박이었다. 조현병에 의한 묻지마 살인일 경우 반드시 그 대상이 여성만은 아니라는 것이다. 실제 형사정책연구원이 2014년도에 낸 ‘묻지마 범죄자의 특성 이해 및 대응방안 연구’ 논문을 보면 가해자의 97.3%가 남성이었는 데 비해 피해자의 경우 남성(53.3%)과 여성(46.7%)으로 반반이었다. “김씨 범죄의 피해자는 남자일수도, 여자일 수도 있다”는 함의다.
처음에는 앞의 女, 男과 같은 한자어 사용을 그대로 활용해 변용한 온라인 조롱이었다. 그리고 오프라인으로의 진출. 5월 19일, 한 일간베스트저장소 사용자가 게시판에 자신이 인터넷 꽃배달 서비스를 통해서 추모현장에 ‘남자라서 죽은 천안함 용사들을 잊지 맙시다-일간베스트저장소 노무현 외 일동’이라고 적힌 화환을 보냈다며 영수증 등을 인증했다.
오프라인에서 본격적인 ‘충돌’은 5월 21일 강남역 10번 출구 일대에서 이뤄졌다. 일베 회원들과 추모의 방향이 변질됐다고 주장하는 일부 사람들과 여성혐오 범죄를 주장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충돌이 벌어졌다. 양측의 설전은 이따금씩 거친 몸싸움으로 이어졌다. 한때 경찰의 폴리스라인이 쳐지기도 했다.
“세월호의 경우 50일 정도가 걸렸다. 49재가 지나고 나서야 유족들에게 ‘이제는 그만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나온 것이. 이번의 경우 그런 ‘리액션’이 나오는 데 채 일주일이 안 걸렸다.” 여성학자 권김현영씨의 말이다. 권김씨가 말하는 ‘폭력’은 물리적 폭력만을 말하는 아니다. 추모집회에 나온 여성들에게 던져진 조롱이나 비난이다. 자발적인 포스트잇이 붙던 초기, 일부 여성참가자들이 셀카찍는 사진 등을 제시하며 ‘결국 SNS에 올리는 것이 목적이 아니냐’는 조롱이 나왔다. “추모가 가식적”이라는 비아냥이다. 계속되는 권김씨의 말. “사실 계속 있어 왔던 일이다. 어떤 사람들은 심각한 문제가 아니라고 하는데, 그렇다면 질문을 누구에게 해야 할까. 심각한 문제가 아니라고 하는 사람들에게 왜 아닌지 물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
내용을 떠나 이번 강남역 추모집회의 성격에 대한 문제제기가 이뤄진 ‘방식’만 보면 최근년간 한국의 시민사회에서 논란이 되었던 사건에 대한 비난여론과 다르지 않다. 2008년 미국산 쇠고기 반대 촛불시위나 아직도 현재진행형인 세월호 사건에 대해 나왔던 비난은 정치적 목적을 가진 일부 단체가 추모를 변질시켰다는 것이었다. 이른바 배후설이다. 2008년 당시 광우병국민대책회의나 세월호참사국민대책회의에 시민사회운동단체들이 광범위하게 참여한 것은 사실이다. 이번 경우는 급진적 여성주의를 표방하고 있는 메갈리아나 메갈리아에서 분리돼 나온 보다 과격분파인 ‘워마드’와 같은 ‘남혐’ 여성 온라인단체들이 추모를 내걸고 있지만 ‘남성혐오’의 확산을 위해 이용했다는 주장을 ‘변질론’을 주장하는 쪽에서는 펴고 있다.
여성학계에서는 어떻게 볼까. 여성학자 박이은실씨는 이렇게 답했다. “주목하고 싶은 것은 이번 강남 사건이 나고 난 다음 젊은 여성들이 보여줬던 연대의식이다. 설사 조현병에 의한 살인사건이라고 하더라도 왜 우리 사회의 젊은이들이 이토록 커다란 공포를 느끼고, ‘더 이상 이런 사회가 지속돼선 안 된다’고 거리에 나왔는지를 주목해야 한다. 일부분에 확대경을 들이대 여혐 대 남혐 식의 성대결을 강조하는 것은 추모의 성격을 왜곡하는 것이다.”
이른바 “추모의 의미가 남혐으로 변질되었다”고 주장하는 근거 제시도 과거와 비슷한 측면이 있다. 이번 사건 후 온라인에서 공유되고 있는 동영상을 보면 한쪽에 고립된 일베 사용자가 눈물을 흘리자 “울지마! 울지마!”를 연호하던 여성들이 다시 구호를 바꿔 “재기해! 재기해!”라고 외치는 영상이 있다. 특정 맥락을 모르면 이 상황이 어떤 뜻인지 이해하기 어렵다. “재기해”라는 것은 워마드와 같은 온라인 공간에서 통용되던 은어다. 남성연대 고 성재기씨가 마포대교에서 뛰어내려 익사한 사건을 빗댄 것으로, 일베 등의 공간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을 조롱하는 여러 패러디와 같은 일종의 ‘고인드립’이다. 지난 2014년, 이른바 폭식투쟁 이후 일베회원들이 노무현 전 대통령의 목소리를 조합해 만든 ‘응디시티’라는 노래를 틀고 따라부르며 춤춘 사건을 떠올리게 한다.
이른바 핑크코끼리(핑코게이) 영상도 있다. 일베충으로 몰린 핑크코끼리 옷을 입은 청년을 둘러싸고 실랑이가 벌어지는 영상이다. 이 청년은 핑크코끼리 분장을 하고 애니메이션 주토피아에 빗대 “육식동물이 나쁜 것이 아니라 범죄를 저지르는 동물이 나쁜 것”이라며 “현재 세계 치안 1위이지만 더 안전한 대한민국 남·여 함께 만들어요.”라고 적힌 피켓을 들고 추모현장에 나갔다. 세 시간 가까이 그는 피켓을 들고 현장 주변에 머물렀다. 누군가 그의 코끼리 탈 뒤통수에 ‘이 사람은 일베충’이라고 적힌 포스트잇을 붙인 뒤 모여든 군중과 시비가 붙었다. 그가 일베 회원인 것은 사실이었다. 후원계좌 오픈 등을 이유로 일베의 운영진이 그의 아이디를 탈퇴 처리하자 디시인사이드 주식갤러리에 옮겨 글을 적었다. 그는 “디시인사이드의 여러 갤러리 활동도 하고 있지만 일베도 했던 것이 맞다”라며 “나쁜 면이 더 커보이지만 일베가 절대악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라고 밝혔다. 그는 최근 올린 근황 글에서 “피해자 입장에서 나와 시비를 벌인 이들을 고소하기 위해 준비 중”이라고 밝혔다. ‘남혐, 여혐 싫다. 서로 사이좋게 지내자’라고 적힌 피켓을 들고 복면을 들고 시위하던 여중생이 복면이 벗겨지고 피켓을 뺏기는 영상도 있다.
문제는 이들 영상이 담고 있는 내용이 5월 18일부터 21일까지 강남역 10번 출구 일대에서 진행되었던 집회에서 본질적인 부분이었냐는 것이다. 결국 일종의 프레이밍 효과다. 그렇게 많은 영상들은 아니지만 이들 영상이 보여주는 효과는 ‘여성혐오에 반대한다’는 추모를 ‘남혐’의 프레임으로 덮는 효과를 가져온다. 이른바 ‘강남역 여중생’ 폭행 영상에서 인상적인 것이 있다. 폭행한 사람은 ‘멧퇘지(메갈리아 회원을 비하해 부르는 표현)’, 폭행당한 여중생을 ‘암베충’(일베를 사용하는 여성을 두고 비하해 부르는 표현)이라고 부르고 있다. 일베와 메갈리아를 따지기 전에 그들 개인 간의 의견충돌로 볼 수는 없을까. 박이은실씨는 이렇게 말했다. “비유적으로 말해보겠다. 폭력으로 상처를 입고 아파해 하는 사람이 있다. 너무나 아파하는 사람 앞에 가서 ‘아프다고 하지 말고 너랑 나랑 잘해보자. 나도 너처럼 아픈 적이 있다. 그러니 징징거리지 말고 내 이야기를 들어라’. 이렇게 말한다면 그건 아프다는 말을 듣지 않겠다는 메시지 아닌가.”
여혐 ‘미러링’은 효과적인 전략이었을까
“발신자 표시제한으로 걸려온 전화만 7~8통이었다. 호주에서 낯선 번호로 전화가 걸려온 적도 있다. 원래부터 익숙한 일이라서 크게 신경쓰지 않지만 이전과 다른 점은 새벽이나 밤 시간에도 불쑥 전화가 걸려온다는 점이다. 전화를 받으면 ‘여보세요’ 하기도 전에 쌍욕을 퍼붓는다. ‘너는 죽어야 한다 ××년아’라는 식으로.” 정휘아씨의 말이다. 주말 강남역에서 추모 비판 시위자와 설전을 벌였던 그는 동영상에 찍힌 뒤 이른바 ‘신상털이’를 당했다. 음악활동, 퀴어퍼레이드에 참여했던 과거 경력부터 정당활동, 휴대폰 번호까지 온라인에 모두 ‘아웃팅’되었다. 그의 정당활동과 관련, 국정원에 신고도 당했다. 친북활동이라는 것이 신고사유이지만 얼핏 봐도 북한체제를 패러디한 활동이었다. 정씨는 “딱히 개인적으로 대응할 생각은 없지만, 피해사례를 모으는 여성단체 쪽에 내가 당한 사례를 제보할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신상털이’는 무차별적이었다. 특히 워마드나 여성시대와 같은 여성커뮤니티 활동에 관련한 ‘캡처’가 집중적으로 이뤄졌다.
캡처된 내용을 보면 확실히 남성혐오적 발언들이 많다. 온라인 여성단체 쪽에서는 이것을 미러링(mirroring)이라고 주장한다. 여성혐오를 담은 원본을 그대로 반사해 여성혐오적 실체를 드러내는 전략이라는 것이다. 노 대통령에 대한 고인드립에 맞서 성재기 대표의 죽음을 거론한다든가, 김치녀에 대비해 한남충이라는 단어를 만들어 쓰는 것과 같은 일이다. 그런데 과연 이것은 효과적인 전략일까. 여성혐오를 더 견고하게 만드는 결과를 초래하는 것은 아닐까. 실제, 강남역 이후 남초(남성회원이 상대적으로 많은) 온라인 커뮤니티 대부분에서 워마드, 메갈리아 등에 대한 비판여론이 압도하고 있다. 이번 사건 이전부터 “일베나 메갈이나”는 말이 있었다. ‘혐오’를 본질로 한다는 점에서 똑같다는 지적이다.
이번 사건을 두고 잘못 이해되어 거론되는 개념이 있다. 여성혐오(misogyny)라는 여성주의 개념이다. 이 이론에서 남성과 여성은 대칭적 개념이 아니다. <여성혐오를 혐오한다> 저자 우에노 치즈코에 따르면 남자는 남자들의 집단에 동일화되는 것을 통해 ‘남성이 된다.’(책 288쪽) 여성혐오는 그 증명의 도구다. 그렇다면 여자를 ‘여성’으로 만드는 것은? 역시 남자다. ‘여성됨’을 증명하는 것도 남자다. 이 남성됨과 여성됨의 압도적인 비대칭적 메커니즘 아래 동성애 혐오와 여성혐오가 있다. 페미니스트는 이렇게 만들어진 ‘여성’을 혐오하는 사람들이다(책 297쪽). 여성혐오는 두 가지로 발현된다. 하나는 남성들의 여성 멸시, 다른 하나는 여성의 자기혐오다. 한국어 번역 제목(원제는 女ぎらい, 그냥 여혐이다) 때문에 오해를 받고 있지만 우에노 치즈코의 책은 미러링 전략을 다룬 것이 아니다. 우에노 치즈코는 “페미니즘이 부정하고 있는 것은 ‘남성성’이지 개개의 ‘남성존재’가 아니다”라며 “‘남성’으로 분류된 사람들이 자신을 긍정하고 싶다면 여성이 ‘여성혐오’에 맞서 싸우는 것처럼 남성도 ‘여성혐오’에 맞서 싸워야 한다”고 말한다.
이나영 교수는 “사실 우에노 치즈코의 논의 역시 일본사람들이 이해하는 일본식 방식이고, 아직 우리나라에서는 이 단어를 어떻게 이해할까 합의된 방식이 없다”고 말했다. 그는 “이번 경우가 독특한 것은 놀랍게도 시민들이 스스로 이 사건을 여성혐오로 규정하고 나섰다는 것”이라며 “반면, 경찰이나 언론들은 특별한 사람의 개별범죄로 규정하면서 질병을 가진 사람들에 대해 낙인을 찍고 그들을 감금하면 해결된다는 식으로 가부장국가의 안전을 회복하려 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번 사건의 여성혐오적 성격을 외면하는 대응은 사건으로부터 성차별적 사회의 ‘분열증적 탈출’이라는 것이 그의 진단이다. 신진욱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애초의 발단이 된 살인사건 자체를 여혐사건이라고 단정할 수 없지만, 그 뒤 이어진 추모라는 현상이 왜 여성들 사이에서 광범위한 공감대를 얻었는지를 주목해야 한다”라며 “성범죄의 연장선상에서 남성들의 여성관, 그리고 직장에서부터 가정까지 모든 곳에 스며들어있는 남성지배체제를 돌아보고 젠더불평등을 극복해 나가는 계기가 되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들의 활동은 마땅히 정의의 프로젝트다.” 5월 26일 서울시청에서 여성단체들이 마련한 ‘강남 여성 살해사건 관련 긴급집담회’에 참석한 이나영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의 말로, 온라인 여성단체들의 활동에 대한 그의 생각이다. “메갈리안에 대해 어떤 사람들은 이 사람들이 과연 페미니스트라고 할 수 있냐고 물었는데, 나는 (이들이) 페미니스트가 되어 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일각에서는 ‘극단적인 언어가 아니냐’며 남혐이라고 하는데, 공기처럼 누렸던 ‘니네’(남성들)의 특권이나 우월적 지위를 해체하는 작업이기 때문에 (주류 남성들은) 경기를 일으킬 수밖에 없다.”
이날 집담회가 끝나고 이어진 질의응답에서는 이런 질문이 나왔다. “일부 남성들은 강남사건이 개인적인 범죄행위인데, 모든 남성은 잠재적 가해자라고 하는 것을 억울해 한다. 이런 질문에 어떻게 답하는 것이 옳은가.” 다음은 질문에 대한 이날 토론회 참석자들의 답이다. “우리 사회에는 여성혐오가 만연해 있다는 데 동의하면서 물어보는 사람에게는 역사적·문화적 맥락을 설명하면 된다. 동의하지 않으려는 사람들에게는 아무 소용 없다.”(김수아 서울대 기초교육원 교수) “그 말이 어떤 맥락에서 나오는 건지 모르는 사람은 잠재적 가해자가 아니라 실질적 가해자다. 당당히 맞서 싸우는 것밖에 답은 없다.”(이나영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 “잠재적 가해자라는 '높은 지위'에서 가해자로 떨어지지 않도록 노력하라"(김금옥 한국여성단체연합 상임대표) 그런 질문을 받을 때는 이렇게 답하면 된다. ‘남혐이 아니라 님혐이거든’.”(송란희 한국 여성의 전화 사무처장)
<정용인 기자 inqbus@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