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용인 기자의 생활 속으로

“얼떨결에 절도사건 피의자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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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방에서 애들 옷인 줄 알고 들고 온 털조끼…

절도범으로 몰려 경찰 조사받아

지난 1월 말 아침 출근길, 버스에서 꾸벅꾸벅 졸다가 모르는 휴대폰 번호로부터 전화를 받고 깼습니다.

“정용인씨 맞습니까.” 맞다고 하니 수화기 넘어 상대방이 대뜸 물었습니다. “지난해 12월 ××일에 ㄱ노래방에 갔죠?” 무슨 말인가 잠깐 생각해 보니 한 달 전쯤 토요일 오후, 동네 인근 상가 노래방에 갔던 것이 기억났습니다. 중학생 아들 친구 생일잔치가 열렸고, 잔치가 끝난 후 모인 어머니들이 커피를 마시는 동안 엄마들의 부탁으로 아이들을 이끌고 간 자리였습니다. 잠시 생각하다 “그 노래방에 간 것 같다”고 답하니 이런 답이 돌아왔습니다. “거기 있던 옷은 왜 가져갔습니까?”

순간, 잊어버리고 있던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천방지축인 중학생 아이들을 인솔하는 일은 꽤 힘든 일이었습니다. 좁은 노래방 안에 10명의 아이들이 가득 차니 내부는 더웠습니다. 겨울 외투를 벗고 중구난방으로 노래를 부르던 아이들은 복도의 음료수 자판기 앞과 화장실 등을 부산하게 들락거렸습니다. 시간이 끝나기도 전부터 반 정도는 이미 밖으로 나간 상태. 하나씩 불러 붙잡고 외투, 목도리, 장갑, 가방들을 챙겨 입히고 나오는 일도 쉽진 않았습니다.

그러고 보니 남은 털조끼 하나. ‘먼저 밖으로 나간 아이의 것’이라고 생각해서 들고 나왔습니다. 그런데 정작 먼저 나갔던 아이를 건물 밖에서 만나서 물어 보니 자기 옷이 아니라는 것이었습니다. 털조끼를 어머니들이 모여서 담소를 나누고 있는 곳에 들고 가 어느 아이의 옷도 아니라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학부모 모임 회장을 맡고 있는 처에게 “돌아가는 길에 노래방에 들러 돌려주고 가자”고 말하고 건넸는데, 돌아오는 길에 깜빡하여 노래방에 들르지 못했습니다. “그 옷을 어쨌냐”고 물어보는 말에 선뜻 대답을 못했습니다. 그 뒤에 어떻게 됐는지는 기억이 안 남아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나저나 다짜고짜 “옷을 왜 가져갔냐”고 묻는 이 사람은 도대체 누굴까요. 노래방 주인? 물어보니 형사라고 합니다. 농담이 아니라 진짜였습니다. 제가 절도사건 피의자로 접수되었다는 겁니다. 옷은 노래방 주인의 것이라고 합니다.

사실 당황스러웠습니다. 불찰이었습니다. 잘못은 잘못이었으니까요. 연달아 질문이 이어졌습니다. “오전 중 경찰서에 출석 가능하겠느냐”는 질문에 “경찰서가 어디 있냐?”고 엉겁결에 반문했습니다. “인터넷 찾아보면 다 나온다”는 답이 돌아왔습니다. 다소 짜증스러워 하는 목소리였습니다. 저도 마침 바쁜 일정이 많은 날이라 “그날은 어렵겠다”고 답을 한 뒤 다시 토요일 오전으로 시간을 서로 조정했습니다.

절도혐의로 기자가 조사를 받았던 경기지역의 모 경찰서. 조사 당일 출두하면서 찍은 사진이다. / 정용인 기자

절도혐의로 기자가 조사를 받았던 경기지역의 모 경찰서. 조사 당일 출두하면서 찍은 사진이다. / 정용인 기자

형사는 휴대폰 번호 어떻게 알았을까
일단 옷을 찾는 것이 우선이었습니다. 처에게 전화해 물으니 “차에 있지 않을까”라는 자신 없는 답이 돌아왔습니다. (그날 저녁 퇴근 후 처와 함께 주차장에 내려가 차 내부를 뒤져보니 뒷좌석 발 밑 부분에 구겨져 있었습니다.) 찾은 옷은 토요일 출두할 때 들고 오라는 안내를 받았습니다.

일련의 폭풍과 같은 시간이 지난 후 찬찬히 생각해봤습니다. 형사는 제 휴대폰 번호를 어떻게 알았을까요. 그날 노래방 비용을 카드로 계산했던 것이 기억났습니다. 토요일 오후라 그 시간대 손님은 제 일행밖에 없어 물건이 없어진 사실을 깨달은 주인이 ‘범인’을 특정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노래방 주인의 입장도 이해가 갔습니다. 카드결제를 한 사람의 인상착의는 알더라도 그 손님의 개인정보를 아는 방법은 이번과 같이 ‘수사의뢰’밖에 없었을 테니까요.

그런데 뭔가 ‘억울’했습니다. 개인적으로 취재 때문에 경찰서를 방문한 경험은 꽤 있지만 이렇게 재산범죄사건의 피의자가 되어 경찰에 출두를 요구받은 것은 처음입니다. 억울했던 건 결과적으로 절도사건의 당사자가 되었지만 ‘착오’에 의한 것이었고, 또 돌려줄 의사가 없었던 게 아니었으니까요. 게다가 일반 손님이 드나드는 업장에 개인물품을 보관해-확실히 기억나지 않지만 그 털조끼는 노래방 룸 안쪽 의자 구석에 놓여져 있었습니다- 손님들에게 착오를 일으키게 한 것은 해당 노래방 업주였으니까요. 사실 이런 경우 어떻게 법이 적용되는지 궁금했습니다. 이 기사를 기획하게 된 이유입니다. 이런 경우 어떤 식으로 법이 적용되고 또 어떻게 처리되는 걸까요.

절도죄는 형법 38장 ‘절도와 강도의 죄’에 규정되어 있는 범죄입니다. 다시 하부조항을 보면 형법 329조 ‘절도’ 조항에 ‘타인의 재물을 절취한 자는 6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이외에도 다시 330조 ‘야간주거침입절도’, 331조 ‘특수절도’, 331조의 2 자동차 등 불법사용, 332조 상습범 관련 조항이 있습니다.

일단 제가 노래방에 간 시간은 낮이어서 330조는 해당되지 않습니다. 331조의 특수절도엔 ‘야간에 문호 또는 장벽 또는 기타 건조물의 일부를 손괴하고’라고 되어 있으니, 쉽게 말해 문을 따거나 담을 넘어가야 성립하는 범죄이므로 역시 적용이 안 됩니다. 처음 겪는 일이라 332조 상습범도 해당되지 않겠지요.

절도죄와 점유이탈물 횡령죄, 차이는
여기서 중요한 개념이 불법영득의사입니다. 불법영득의사란 ‘재물에 대한 권리자의 종래의 지위를 계속적으로 배제하려거나, 타인의 재물을 자기의 소유물과 같이 이용 처분할 의사’로 정의됩니다. 서윤성 법무법인 세한 변호사는 “간단히 말해, 다른 사람의 물건을 가져가 안 돌려주면서 자신의 것처럼 사용하는 경우”라고 설명합니다. 기자가 겪은 케이스는 어떻게 봐야 할까요. “절도죄가 성립하지 않습니다. 쉬운 비유를 들면 접객업소 같은 곳에서 다른 사람의 우산을 착각해 쓰고 간 경우를 놓고 생각하면 됩니다. 그 우산이 특수한 거라서, 예를 들어 남다른 추억이 있거나 비싼 것이라고 하더라도 착각해서 우산을 쓰고 간 사람이 돌려줄 의사만 밝히면 불법영득의사가 없는 것으로 형법은 보고 있어요.” 그러니까 서 변호사의 설명에 따르면 ‘다른 사람의 물건을 잠시 사용하고 돌려줄 의도로 가져간 경우’까지도 절도죄가 성립하지 않습니다. (예외가 운송수단에 관련한 것입니다. 앞서 언급한 331조 2에 언급된 자동차 등 불법사용의 경우가 이에 해당합니다. 오토바이라든가, 자동차를 타고 간 뒤 “돌려줄 작정이었다”고 말한다고 통하지 않는다는 것이겠지요.)

하나 더 살펴봐야 하는 것이 ‘점유이탈물 횡령죄’입니다. 휴대폰을 잃어버렸을 때 주운 사람이 누군가 잃어버린 것을 알면서도 안 돌려줄 때 성립하는 죄입니다. 여기서도 기준은 ‘불법영득의사’입니다. 남의 물건인 것을 알면서도 가져간 것이면 절도죄이고, 주인 없는, 혹은 버린 물건으로 생각하면서 가져갔다면 점유이탈물 횡령죄에 해당합니다. 제 경우는 아이들 중 누군가의 옷으로 생각했기 때문에 적용되는 법이 절도죄이겠지요.

토요일 오전, 경찰에 출두해 조사를 받았습니다. 생각보다 조사시간은 훨씬 길었습니다. 일단 출두한 사람이 본인이 맞는지 인적사항부터 확인한 뒤 많은 것을 묻습니다. 학력이나 재산 정도, 가족관계, 주거 여부 등에 대해 묻는 것입니다. 나중에 현직 경찰로 있는 지인에게 왜 그런 사항을 묻는지 물었습니다. “사실 사건이 나던 당시에 그 사람이 정말 절도를 할 의사가 있었는지 여부를 판단하기란 쉽지 않다. 모든 것이 드러난 상황에서는 필사적으로 의도가 없다고 부인할 것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상습적인 무전취식자나 주거부정자 등 생활환경 등이 그런 사실 판단에서 중요한 판단 근거가 되기도 한다.”

인적사항 확인 후 본격적으로 그날 있었던 일에 대해 묻습니다. 사전에 ‘사건이 안 된다’는 이야기를 변호사로부터 듣고 갔지만 형사의 질문은 예리했습니다. 경찰은 그날 노래방 내외부 CCTV 자료 등을 제시하며 여러 각도에서 “아이 옷이 아닌 것을 알면서도 가져간 것이 아닌가” 반복해 물었습니다. 그곳에서 몇 블록 떨어진 아이들 엄마들이 있는 커피숍에 가는 길에 기자가 옷을 치켜들며 살펴보는 CCTV 자료도 확보되어 있었습니다. 뭔가 등골이 서늘한 대목이었습니다.

2월 초, 경찰로부터 무혐의 의견으로 검찰에 사건을 송치했다는 안내장을 받았습니다. 무혐의로 불기소 조치를 했다는 검찰 통보장이 온 것은 2월 18일입니다. 제 인적정보를 얻은 것은 카드사를 통해서일 텐데, 계좌정보 조회사실 통보는 어찌된 일인지 아직 오지 않고 있습니다.

<정용인 기자 inqbu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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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총리 한덕수씨에게 드리는 질문
오늘을 생각한다
전 총리 한덕수씨에게 드리는 질문
관료 출신으로 경제와 통상의 요직을 두루 거쳐 참여정부에서 국무총리를 지내고, 윤석열 정부에서 다시 국무총리를 지냈으며, 대통령 윤석열 탄핵소추안이 가결된 뒤 대통령 권한대행직을 수행하다 21대 대통령선거를 한 달여 앞두고 사퇴해 공직에서 물러난 자연인 한덕수씨에게 몇 가지 궁금한 것을 묻는다. 2007년 첫 총리 지명 당시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한나라당이 제기한 ‘2002~2003년 김앤장 법률사무소 고문 재직 시절 외환은행 매각 사태(론스타 게이트) 연루 의혹’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이와 관련해 서울중앙지검에 고발된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뇌물죄 사건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가? 첫 총리직과 주미대사를 역임하고 공직에서 물러난 뒤 2012년부터 3년간 무역협회장으로 재직하며 받은 급여 19억5000만원과 퇴직금 4억원, 2017년부터 5년간 김앤장 법률사무소에서 고문으로 재직하며 받은 보수 18억원, 2021년 3월부터 1년간 에스오일 사외이사로 재직하며 받은 보수 8000만원 등 퇴직 전관 자격으로 총합 42억3000만원의 재산을 불린 일에 문제가 없다는 인식은 지금도 그대로인가? 이처럼 전관으로 왕성하게 활동하다 다시 윤석열 정부의 총리 제안을 수락해 공직으로 복귀한 것 역시 관료로서 부적절한 처신이 아니냐는 문제 인식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