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목! 이 사람]김수환 추기경 전기 펴낸 이충렬 작가 “김 추기경의 소신은 어디에서?”](https://img.khan.co.kr/newsmaker/1165/20160301_08.jpg)
“1951년 9월 15일. 전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지만 대구는 평온했다.” 김수환 추기경 선종 7주기에 맞춰 출간된 전기 <아 김수환 추기경>은 구체적 날짜·장소와 함께 29살 청년 ‘김수환 스테파노’가 검은 사제복을 입고 서품식을 받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축성기도, 부복, 성인열품도문 기도, 안수, 강복 등의 서품절차가 영화를 보는 것마냥 자세하게 묘사된다. 서품식을 마친 아들에게 어머니는 “신부님. 사제들을 잘 보살피이소”라며 존댓말을 한다. ‘사제가 된다는 것’의 무게감과 인간적 애잔함이 느껴진다.
<아 김수환 추기경>은 이충렬씨(62)의 네 번째 전기다. 1994년 <실천문학>에서 소설가로 등단했지만 전기 장르에 꾸준히 관심을 갖고 집필해왔다. <간송 전형필>(2010년), <혜곡 최순우 한국미의 순례자>(2012년), <김환기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2013년)를 썼다. 김 추기경의 일생을 다룬 것은 작가로서 도전이었다. 그는 “문화계를 빛낸 인물의 전기를 연달아 세 번 쓰다 보니 패턴이 생겼다. 사회를 빛낸 인물의 전기를 써보려 했는데 인물이 너무 드물었다”고 말했다. 전기는 특정 인물의 삶 자체를 보여주는 것이지 그에 대한 호오를 드러내는 작품이 아니지만 국내에서는 전기는 훌륭한 인물의 삶을 다룬 일대기, 곧 ‘위인전’으로 받아들여진다. 한국 현대사의 인물들이 대부분 이념갈등에서 자유롭지 못한 데다 척박한 국내 전기문학 풍토가 인물 선정을 더 어렵게 만들었다. 6개월 고민 끝에 민주화 역사를 관통하는 인물인 김수환 추기경으로 결정했다.
전기 집필은 자료 조사와 연보 만들기부터 시작한다. 김 추기경의 미사, 강론, 개인 메모, 회고, 언론 인터뷰뿐 아니라 그의 동정을 전한 주요 일간지와 가톨릭신문, 평화신문, 미국 가톨릭 뉴스까지 50년어치를 샅샅이 훑었다. 김 추기경의 신학교 동창과 가족들을 만나 인터뷰해 연도별로 정리했다. 유신을 전면 비판한 1971년 성탄미사 순간이나 5공정권의 명동성당 진입을 막은 1987년 6월의 순간은 시간대별로 정리했다. 원고지 1만5000장. 연보 원고를 추려서 글로 다듬었다. 최종 원고는 5000장이었다. 하루 10시간씩 1000일, 집필에 1만 시간이 걸렸다.
이씨는 김 추기경의 삶에 집요하게 의문을 던졌다. ‘1970·80년대 김 추기경의 사회적 발언과 민주화에 대한 소신은 어디에서 나올 수 있었던 것일까?’ 김 추기경을 영웅으로 격상시키지 않으면서, 종교인이자 사회인으로의 삶을 조화롭게 다루기 위해서였다. 김 추기경이 31세 때 교황청 통신원으로 활동하면서 유럽에서 한창이던 교회의 사회참여 운동인 가톨릭 액션에 관심을 가져 독일 유학을 떠났고, 교회의 적극적인 실천을 주문한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선언에 깊은 감명을 받았음을 확인했다. ‘짜릿한 순간’이었다. 탐정마냥 치밀한 자료 조사를 통해 인물의 잘 알려지지 않은 부분을 찾아내는 것은 전기문학 작가만이 느낄 수 있는 보람이자 재미다.
이씨는 “인물이 정리돼야 역사가 정리된다”고 말했다. 전기가 풍성해질수록 사회는 극렬한 대립이 줄어들고 인물을 매개로 과거와 현재, 이념이 다른 사람들에 대한 이해의 폭이 넓어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이념문제 외에도 일본에서 온 순문학이란 개념 때문에 소설과 시만 문학으로 간주하는 경향이 있어 전기문학의 발전을 더디게 하고 있다”며 “사회가 좀 더 성찰적 방향으로 나아가기 위해서 전기문학이 좀 더 풍성해져야 한다”고 말했다.
<박은하 기자 eunha999@kyunghyang.co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