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영논리에 빠져버린 ‘청년수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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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와 성남시의 시범사업, 정부·여당의 반대로 더 이상 논의 진전 없어

“우리나라에 정상적인 교육을 받고도 놀고먹는 청년층이 얼마나 될까. 현대경제연구원은 이런 청년들이 2015년 기준 전체인구의 1.71%인 86만명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했다. 이는 지난 10년 동안 4배 이상 증가한 것이다. 이처럼 일하지도 않고 일할 의지도 없는 청년 무직자를 니트(NEET)족이라고 한다.” 한 신문의 칼럼이다. 칼럼은 서울시 청년수당 정책을 비판하면서 ‘니트족’을 “일할 의지도 없는 놀고먹는 청년층”으로 정의했다.

다른 신문의 칼럼이다. “니트(NEET)족의 비사회성으로 고민에 빠진 곳은 한국뿐만이 아니다. 일할, 결혼할, 아니 살아갈 의욕조차 잃은 젊은이들을 보면 안쓰럽고, 때론 답답하다. 어떻게든 동기부여를 해야겠지만 방법론은 더 연구가 필요해 보인다.” 이 칼럼에서는 니트족의 특성으로 ‘비사회성’을 꼽는다. 니트족을 은둔형 외톨이인 ‘히키코모리’와 비슷한 개념으로 설명한 것이다. 이 칼럼에서 니트족은 사회구조적 문제라기보다는 개인의 병리적 현상으로 읽힌다.

박원순 서울시장 / 강윤중 기자

박원순 서울시장 / 강윤중 기자

서울시 선정방법 가장 큰 문제
‘니트족’이 최근 언론의 단골손님이 된 것은 서울시의 청년수당 정책 때문이다. 서울시는 중위소득 60% 이하의 청년들 중에서 정규교육이나 직업훈련을 받지 않고 고용되어 있지도 않은 니트(NEET·Not in Education, Employment or Training)족 3000명에게 월 평균 50만원을 최장 6개월간 지급할 계획이다. 서울시에서 말하는 니트족이 위 칼럼에서 언급하는 “일할 의지가 없는 비사회적인 청년층”일까. 그러다 보니 청년수당 정책은 경제활동에 의지가 없는 젊은이들을 유인하는 정책이라고 해석되기도 한다. 신윤정 서울시 청년허브 실장은 니트족을 “자발적 의사에 의해서 경제활동을 포기했거나 구직활동을 포기했다고 정의하는 것이 정책을 왜곡시키는 첫 번째 원인”이라고 말했다. 신 실장은 OECD에서 말하는 니트의 개념을 든다. 자발적이냐 비자발적이냐와 관계 없이 “훈련도 직업도 가지지 않은 경제상태에 놓여 있는 자” 모두가 니트족이라는 것이다. 청년실업률 10%가 넘고 비경제활동인구까지 합치면 20%가 넘는다. OECD 해석에 따르면 20%가 넘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니트족의 범주에 들어간다.

청년수당이 복지의 격전지가 됐다. 여당은 연일 ‘포퓰리즘’ ‘로또’ ‘아편’ ‘범죄’라는 원색적인 말로 청년수당 정책을 비난하고 있다. 오해와 억측, 비방이 이어지면서 정작 청년수당 정책 내용에 대한 논의는 실종됐다. 정책에서 규정하는 ‘니트족’의 정의도 공유되지 않고 있다. 당사자인 청년들의 의견 또한 원색적인 비방전에 묻혀 버렸다. 청년들은 청년수당 도입을 반가워하면서도 선정 절차에 대해 가장 큰 우려를 표했다. 또 하나의 ‘자기소개서’ 아니냐는 우려다. 서울시는 대상자들이 활동계획서를 제출하면 심사를 통해 선발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청년들 사이에서는 ‘자기소개서’ ‘능력주의’와 무엇이 다르냐는 말이 나온다. 청년수당이 시범사업이고 예산 제약이 있어 3000명만을 선정하다 보니 정책을 시행하는 데서 선정방법은 가장 큰 문제다. 서울연구원과 함께 청년수당 정책을 만드는 과정에 참여하고 있는 청년유니언의 정준영 사무국장의 말이다. “서울시가 활동계획서를 심사한다고 발표했는데, 청년들 사이에서는 또 하나의 자기소개서가 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들이 많았다. 3000명 대상자를 어떻게 선정하느냐는 아직 열어두고 방법을 찾고 있다. 소득수준 및 실업의 지속기간이라든가 얼마나 구직활동을 길게 해 왔는가, 가구소득은 얼마인가, 부모로부터 독립했는가 등 사회·경제적으로 측정할 수 있는 기준으로 선발하는 게 합리적이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청년들은 니트족을 위한 청년수당인 만큼 기존의 취업구조처럼 능력 위주로 선발하는 것은 적합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청년수당 정책 입안에 같이 참여하고 있는 신윤정 청년허브 실장도 ‘능력’ 위주의 선발은 취지가 맞지 않다고 말했다. 신 실장은 “‘보편적 무상복지’가 아니라는 맥락에서 지원 근거를 설명하다 보니 선발과정이 너무 부각되어 나간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아직 선정절차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의견이 존재하는 상태다. 경쟁적인 방식은 적절치 않다. 활동계획서를 심사한다는 게 자칫 프로젝트나 계획서 잘 내는 사람들만 지원하게 되면 안 된다. 그렇게 하지 않기 위한 방안을 확보하고 보완하는 방법을 모색 중이다. 어려운 청년을 돕자고 했는데, 정책 설계가 능력 있는 청년 지원으로 가게 되면 취지와 대상이 불일치하지 않나.”

성남은 보편적 복지, 서울은 실업부조
청년수당 정책의 근거가 되는 명확한 패러다임도 아직 모호하다. 성남시의 청년배당 정책은 기본소득을 근거로 한다. 성남시는 내년 1월 1일부터 24세 청년 1만1300명에게 1인당 한 해에 100만원씩 지급하기로 했다. 보편적 복지인 셈이다. 성남시 관계자는 “사실 실업정책은 청년 일자리가 늘어나는 게 우선인데, 이는 지자체에서 할 수가 없다. 산업구조를 바꿀 수 없기 때문에 청년들의 소득을 보장해주는 방식을 택했다. 실업부조 형식으로 구직수당을 주는 방식도 있으나 세대 자체가 굉장히 어려운 세대라는 측면에 주목해 전체적으로 모든 청년들에게 주는 게 훨씬 더 효과적이라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반면 서울시는 실업부조 개념으로 청년수당을 도입했다고 말했다. 실업부조란 근로능력이 있고 취업하고자 하는 의지가 있으나 일거리가 없어서 생계가 어려운 저소득계층에게 국가가 일정한 소득을 지원하는 제도다. 일종의 취업촉진수당을 지급해 생계부담을 완화해주는 형식이다. 청년실업이 심각하지만, 취업 경험이 없는 청년들은 실업수당 같은 고용보험의 지원을 받지 못한다. 전문가들은 노동시장 환경이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는 상황에서 한국형 실업부조 도입이 시급하고, 특히 청년층을 대상으로 한 지원이 필요하다고 강조해 왔다. 서울시의 청년수당이 실업부조를 근거로 한다면 이는 한국형 실업부조의 첫 모델이 되는 셈이다. 그러나 서울시 정책수당은 실업부조의 성격이 명확하지 않다. 이병희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원의 말이다. “아직은 서울시 청년수당이 정확히 구직활동에 대한 지원으로 갈 것인지가 모호하다. 이게 지금 사회참여활동 지원을 주된 목적으로 할 것인지, 구직활동에 대한 지원을 포함할 것인지 불명료하다. 노동시장을 통합하려는 실업부조 정책과 사회통합을 목적으로 하는 사회참여 지원정책은 구별될 필요가 있다. 지금으로서 청년수당은 사회통합적 성격이 더 강하다.” 전효관 서울시 혁신기획관은 청년수당의 성격을 ‘실업부조’와 ‘활동’의 중간 정도로 규정했다. “전통적인 정책범주로는 실업부조로 볼 수 있다. 실업부조의 성격이 강한 구직수당으로 가기에는 상당한 비용이 필요하다. 청년들은 구직수당을 많이 주장하지만 사회적 동의 수준도 그렇고 중앙정부 차원에서 할 일이기도 하다. 일단 테스트버전, 시범사업으로 새로운 정책을 던지면서 사회적인 확산을 보며 검증하고 동의를 얻는 과정이 필요하다.”

청년수당은 처음 시행되는 시범사업으로 다양한 사회적 기구를 통해 논의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그러나 정부와 여당이 정책 자체를 막아 논의는 더 이상 진전되지 않고 있다. 정준영 국장은 “청년 당사자의 목소리가 더 많이 반영되면서 정책이 다듬어지고 변화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그러나 정부가 사회보장위원회를 앞세워 모든 지역복지를 중앙에서 컨트롤하려고 하면서 청년수당이 총선을 앞두고 희생양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있다”며 “지금처럼 협의를 강제하며 ‘범죄’라는 식으로 몰아세우는 것이야말로 비정상적이다”라고 말했다.

박원순 서울시장 / 강윤중 기자

<박송이 기자 psy@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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