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학수학능력시험을 치르고 있는 수험생 / 김기남 기자
취재를 위해 사회교과 과목들의 교과서를 훑어나가던 중 이 교과서로 공부한 고등학생들이 어떤 시험을 보는지 궁금해졌다. 지난해 치러진 2015학년도 대학수학능력 사회탐구영역 선택과목 시험지들을 찾았다. 어려웠다. 대학에서 인문학과 사회과학을 복수전공했고, 특히 두 전공 다 사회탐구 선택과목 중 가장 많은 수험생들이 선택하는 ‘생활과 윤리’, ‘사회·문화’와 관련이 깊었지만 대충 봐서는 풀기 힘든 문제가 적지 않았다.
지난호 표지이야기 기사 서두에도 등장한 윤리학 학설 간 차이점을 묻는 문제를 비롯, 일부 사회과학 전공자가 아니라면 대학에서도 들을 일이 없는 양적·질적 연구방법론에 관한 내용까지, 요즘 들어 취업난 탓에 경영학과로 더욱 몰리는 대학 지원자들에겐 대학생활 중에도 마주칠 일 없는 이론적 논의가 고등학생의 학문적 관심을 끌기는 어려워 보였다.
관련 분야를 대학에서 전공까지 하고도 ‘대학에서 수학할 능력을 가리는’ 시험조차 제대로 볼 수 없다면 어느 한 쪽이 문제이긴 할 것이다. 비록 졸업 후 여러 해가 지났다지만 전공자의 머리에 아무것도 남기지 못한 대학교육이 문제이거나, 필요 이상으로 추상적이라 관련 전공자조차 여러 번을 되풀이해 읽어야 문제의 의도를 파악할 수 있는 시험이 문제일 것이다. 물론 기자의 지적 역량이 낮을 수도 있다는 점은 일단 논외로 한 상태에서 말이다.
어느 쪽이 더 문제인지를 파악하기 위해 보다 실용적 지식에 가까운 ‘공업’, ‘가사·실업’ 등 직업탐구 영역의 시험지도 보았다. 다행이었다. 사회탐구 영역보다는 정도가 덜했지만 ‘공업’ 시험지에 품질관리 국제인증에 관한 경영학 관련 내용, 하인리히의 재해발생 모형이 등장하는 산업공학 관련 내용이 나올 정도로 추상적이라는 점은 매일반이었기 때문이다. 기자의 무식을 변호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인문학의 위기를 넘어 ‘문과의 위기’라 불릴 정도로 인문계열 전공자들에게 더 혹심한 취업 한파가 불긴 하지만 한편으로 고교에서부터 깊이 있는 인문·사회과학 지식을 가르치는 것 자체가 문제는 아닐 것이다. 그러나 그 지식이 단지 시험만 넘기면 필요없는 일회용 지식이었다면, 적어도 한 과목 정도는 고교 이후 현실의 사회생활에서 가장 필요한 내용을 시험문제로 만들어 대비하게 해주는 방법도 괜찮지 않을까.
<김태훈 기자 anarg@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