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도쿄마라톤 참가자의 완주율은 96.6%다. 신청자가 30만442명이었는데, 추첨으로 뽑힌 3만5556명이 달려 3만4126명이 골인했다. 일본 아마추어 마라토너들은 충분한 연습을 거쳐 42.195㎞를 몇 번씩 뛰어보고 나간다. 공식 대회는 일종의 축제다. 일부 당일 몸이 안 좋은 사람을 제외하고 거의 모두가 완주하는 이유다. 지난 겨울에 참가한 도쿄마라톤에는 각종 가장(假裝)이 나타났다. 못 말리는 짱구, 마이클 잭슨, 샐러리맨, 자판기, 말과 기수로 분장한 사람도 있었다. 모두가 즐거워했고 기념사진을 남기며 달린다. 물은 대부분 서서 마시고 컵은 쓰레기통에 버린다. 사탕 껍질조차 주머니에 넣고 뛰다가 자원봉사자가 받쳐든 비닐봉지에 넣는다.
2014년 춘천마라톤 신청자는 1만8038명이고, 정원을 못 채워 전원 배번호를 받았다. 완주자는 1만2161명으로 완주율 67.4%다. 42.195㎞를 제대로 달려 레이스를 마치는 사람은 절반도 안 된다. 평소에도 꾸준히 달리다가 대회에 참가하는 것이 아니라, 연습이 없던 사람들이 ‘반드시 완주’를 해내려 나가기 때문이다. 이들의 목적은 인간승리다. ‘아빠는 목숨 걸고 완주, OO는 수능대박을’이라는 글을 붙인 사람을 지난해 춘천마라톤에서 봤고, 올해 서울마라톤에서는 “이제 우리는 모든 것을 할 수 있다”고 외치는 커플이 있었다. 프로도 아닌데 종이컵을 바닥에 던지고, 초코파이를 빨리 내놓으라고 고함을 지른다. 하지만 30㎞ 지나면 상당수가 걷다가 포기한다. 완주자라도 몸을 상한다.
어쩌다 보니 달리기 시작해, 공식 풀 마라톤에 10여 차례 참가했다. 기록은 자랑할 만한 수준이 못 되지만 달리는 자체는 좋아해 연간 2000㎞라는 기본 연습량은 채운다. 돌이켜 보면 ‘인간승리’를 위해 달렸던 이들은 ‘완주’가 아닌 ‘완보’를 해내고 다시는 달리지 않았다. 주변에 완주를 과시하는 게 목적인 데다 몸을 혹사한 경험으로 달리기가 싫어져서다.
마라토너이자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는 달리기에 관한 에세이에서 말했다. “어제의 자신을 조금이라도 넘어서는 것, 그것이 중요하다. 장거리 달리기에서 이겨야 할 상대가 있다면, 그것은 과거의 나이기 때문이다.” 달리기뿐 아니라 모든 일에서 과정을 부수고 단계를 넘어서려는 욕심은 불행의 시작이다. 길에는 꽃과 바람, 억세와 햇볕이 가득하다. 달리기의 계절이다. 가혹한 완주가 아닌 즐기는 자의 위대함에 나서 보자.
<이범준 기자 seirots@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