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간다보다 못한 우리나라 금융시장
  • 인쇄
  • |
  • 목록
  • |
  • 복사하기
  • 페이스북
  • 트위터
  • 밴드

재벌은 금융기관 가지고 일감 몰아주기 수단으로 사용하고, 금융감독기구는 국회가 만들어준 감독법규를 정면으로 어겨가면서 그 조항이 ‘개정’될 것을 상정해 감독권을 남용하고, 자신들의 이해관계만 추구해도 되는 것일까?

필자가 ‘비상식의 사회’란의 집필자로 참여한 지도 제법 시간이 흘렀다. 그런데 개인적인 사정이 생겨서 더 이상 기고를 하기 어렵게 되었다. 언론사가 새 필진을 섭외하는 데 시간이 필요할 것이므로 대략 연말 정도까지만 이 난에 글을 쓰게 될 것 같다. 그동안의 연재를 마무리하는 심정으로 남은 기고문에서는 시의성을 약간 포기하더라도 독자들과 나누고 싶은 보다 ‘근본적’인 주제를 건드리고자 한다.

삼성물산 건설부문 최치훈 대표이사 사장이 지난 7월 17일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을 승인하기 위해 서울 양재동 aT센터에서 열린 삼성물산 임시 주주총회에 참석해 안건을 의결한 뒤 인사를 나누고 있다.  / 김영민 기자

삼성물산 건설부문 최치훈 대표이사 사장이 지난 7월 17일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을 승인하기 위해 서울 양재동 aT센터에서 열린 삼성물산 임시 주주총회에 참석해 안건을 의결한 뒤 인사를 나누고 있다. / 김영민 기자

장면 1 최근 우리나라 경쟁력 지수가 발표되었다. 조사방법상의 문제를 감안하더라도 그 추세가 계속 하락세를 보이는 것은 분명 문제가 있다. 특히 금융시장에 대한 평가는 늘 인용되던 ‘우간다’보다 훨씬 못한 수준으로 떨어졌다. 금융개혁이라고 일을 벌이고 있는 임종룡호의 입장에서는 ‘안타까운’ 일일지 모르지만 많은 사람들은 이런 평가에 상당히 공감하고 있다. 도대체 왜 우리나라 금융시장이 우간다보다도 못하다는 평가가 계속되고 있는 것일까?

장면 2 얼마 전 한화증권 사장에 대한 ‘예고된 경질’이 경제면을 장식했던 적이 있다. 그런데 언필칭 언론에 떠돌고 있는 경질의 이유가 가관이다. 왜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건에 대해 ‘합병 반대’라는 진실을 얘기하면서 전체 주주들의 이익을 보살폈는가라는 점이 질책 사유로 알려지고 있다. 대주주인 한화그룹의 이익을 돌보지 않고 전체 주주의 이익을 위해 바른 소리를 한 것이 ‘잘못’이라는 것이다. 언론에 떠도는 두 번째 이유는 점입가경이다. 총수 일가가 소유하고 있는 계열사에 ‘일감 몰아주기’를 하지 않고, 왜 정상적으로 회사 업무를 처리했는가가 질책 사유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대주주는 후임자를 공개적으로 ‘내정’하고 이제는 임시 주주총회까지 열려는 낌새다.

장면 3 최근 인터넷 은행에 대한 예비인가가 한창이다. 그런데 산업자본의 은행 소유를 금지하는 은행법이 멀쩡하게 살아 있는데, 산업자본들이 버젓이 은행업을 하겠다고 명함을 들이밀고 있다. 이것을 저지해야 할 감독기구인 금융위는 오히려 ‘혁신성’을 평가하겠다며 기존 은행의 신청은 사실상 봉쇄하고 은행법이 금지하는 산업자본의 은행 설립을 선도하는 역할을 자임하고 있다. 그러면서 과거 자신들이 ‘컨소시엄’이라는 동일인 연합체에 대해 내렸던 유권해석도 뒤집고 있다. 더욱 가관인 것은 아직 개정되지도 않고 개정될 가능성도 없는 은행법의 금산분리 관련 조항이 개정될 것이라고 ‘간주’하고 일을 추진하고 있는 점이다. 얼마 전에 대통령이 국회법의 일부 조항이 삼권분립에 위배된다며 거부권을 행사했지만, 지금 금융위의 행태야말로 삼권분립을 맘대로 넘나드는 것이 아닌가.

장면 4 종합신용정보집중기관이 변칙에 변칙을 거듭하며 기형아 형태로 세상에 나올 기세다. 그런데 일반 독자들이 들어서는 쉽게 그 의미를 파악하기도 어려운 이 ‘불가사의한 조직’의 탄생에 금융위 관련 부서가 목을 매고 있다. 이런 불가사의한 조직을 금융위가 밀어붙이는 표면적인 이유는 각 금융회사가 보유한 개인신용정보를 이제까지는 업권별로 해당 협회에 집중하여 관리하고 있었는데, 그것을 기세좋게 한 곳에 집중해서 관리하겠다는 것이다. 한 곳에 집중해서 관리하면 더 잘 관리될 것이라는 것이 그 이유다. 그렇다면 조선왕조실록 등 중요한 역사적 자료를 전국의 4대 사고(史庫)에 분산해서 배치하고 보관했던 우리 선현들은 모두 멍청이가 된다. 그 중요한 실록을 한 곳에 집중해서 관리해야 경비병도 더 붙이고 담장도 더 높이 쌓을 수 있는데 이곳 저곳에 분산해 버렸으니 말이다. 금융위가 굳이 이 조직을 별도 기구화하려는 이유는 혹시 그것을 통해 자리를 못잡고 있는 현직 인공위성 공무원이나 공직자윤리법에 묶여 금융기관에 낙하산으로 갈 수 없는 퇴직자를 처리하기 위한 것은 아닌가.

우리나라 경쟁력 지수 계속 하락세
필자는 이런 현실을 보면서 우리나라 금융시장의 현실이 정말로 우간다보다 우수한 것인지 자신할 수 없다. 물론 우간다의 금융시장을 본 적이 없으므로 똑 부러지게 무어라 말할 수는 없지만 현재 우리 금융시장 돌아가는 모습이 비상식적인 것만은 분명하다.

경제학 교과서가 아무리 금융시장은 기업의 의사결정을 견제하고 의미있는 정보를 생산함으로써 경제 전반에 기여한다고 강조해도 그것은 우리나라 현실이 아니다. 감히 삼성의 의사결정에 찍자를 붙다니 이것은 천벌을 받을 노릇일 뿐이다.

회사법 교과서가 아무리 주식회사에서 이사의 충실의무가 중요하고, 이사는 회사와 주주 전체의 이익을 위해 행동해야 한다고 강조해도 이것은 우리나라 현실이 아니다. 사내이사는 말할 것도 없고 심지어 사외이사조차 그저 몇백만원씩 거마비 받으면서 대주주의 눈치를 보는 비정규직 월급쟁이일 뿐이다.

헌법 교과서가 아무리 삼권분립을 통해 국회는 룰을 만들고, 행정부는 그 룰에 따라 국가의 업무를 집행한다고 설명해도 그것은 우리나라 현실이 아니다. 행정부는 국회가 룰을 통해 자신을 통제하려는 것은 위헌적 발상이고, 자신들이 룰의 변경을 예상해서 일을 처리하는 것은 지극히 정상적이라고 믿는 아전인수의 달인일 뿐이다.

화폐금융론 교과서가 아무리 금융시장의 안정성과 건전성을 위해 금융감독당국이 필요하다고 공적인 감독기구의 존재를 합리화해도 이것은 우리나라 현실이 아니다. ‘모피아’로 통칭되는 금융감독기구는 조직 확대와 이권 추구에 혈안이 된 조직 이기주의의 연합체에 다름 아니다.

사외이사는 대주주 눈치 보는 월급쟁이
정말 이래도 되는 것일까. 재벌은 금융기관 가지고 일감 몰아주기 수단으로 사용하고, 금융감독기구는 국회가 만들어준 감독법규를 정면으로 어겨가면서 그 조항이 ‘개정’될 것을 상정해 감독권을 남용하고, 자신들의 이해관계만 추구해도 되는 것일까? 상식을 추구하고 진실을 말하는 것이 잘못하는 것이고, 비상식과 탈법을 추구하는 것이 잘하는 것인 사회가 정말로 오래 버틸 수 있는 것일까? 지금이라도 삼성의 합병에 찬성한 국민연금 책임자를 문책 경질하고, 공정위가 재벌의 일감 몰아주기 행태에 대해 일제 조사에 착수하는 것은 잘못된 정책방향일까? 대주주의 이해관계 때문에 주주 전체의 이익을 돌보지 않았다는 비판에 직면하고 있는 증권회사 이사들을 충실의무 위반으로 소송하는 것은 정말 불가능한 일일까? 국회가 만든 은행법을 위반해 가면서 헛일을 추진하는 금융위를 국회법 위반으로 문제삼는 것은 월권일까? 금융위의 집단이기주의 앞에서 국민의 사생활 보호라는 헌법적 권리를 홀랑 말아먹고는 ‘아 몰랑’ 하면서 변칙을 눈감아주고 사실상 맞장구를 쳐준 정무위 국회의원들을 선거로 심판하자는 것은 지나친 선동일까?

그 대답은 우리 사회가 해야 한다. 언론이 해야 하고, 학자가 해야 하고, 무엇보다 국민이 해야 한다. 그렇지 않고는 우리 금융시장이 절대로 선진국 금융시장이 될 수 없다.

역사책을 보면 실록은 원래 서울의 춘추관과 충주 사고 두 곳에만 보관했었다고 한다. 그러다가 세종 때 이것으로는 불안하다고 하여 전주와 성주에 추가로 사고를 설치하여 4대 사고 체제로 운영했다고 한다. 이후 임진왜란이 났을 때 춘추관, 충주, 성주 사고가 모두 소실되었지만, 다행히 새로 만든 전주 사고가 화를 면해 실록이 보존될 수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우리는 지금 4대 사고를 폐지하고 실록을 다 춘추관에 집중하고 있다. 정보를 더 잘 관리한다는 명목으로. 지하에서 세종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전성인 홍익대 교수>

비상식의 사회바로가기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