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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법 개정안은 ‘삼성특혜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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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주회사 설립 과세 특례 3년 연장… “지배주주 일가 세부담 경감” 지적

8월 말 한 포털사이트의 삼성전자 주식 시세 게시판에는 한 네티즌의 분석이 눈길을 끌었다. 이 네티즌은 “지주회사 설립 과세 특례가 2018년 말까지로 3년 연장되었으므로 당분간은 인적분할 등의 사유로 주가 하락 방치사례들은 없을 것으로 전망함”이라고 적어 놓았다. 여기에서 말하는 지주회사 설립 과세 특례란 지주회사를 설립하거나 전환할 때 현물출자나 주식 취득의 경우 양도차익 과세를 주식 처분 때까지 이연(移延)해주는 것을 말한다. 네티즌의 이 분석은 정부에서 내놓은 과세특례 조치가 어떤 식으로든 삼성그룹의 재편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것을 암시하고 있다. 증권가 일각에서는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합병 추진 당시에 과세이연 혜택이 올해 말까지이기 때문에 삼성그룹이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하기에는 너무 촉박하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하지만 이 시한이 3년 뒤로 연장된 것이다.

정부에서 내놓은 과세특례 조치는 사실 그동안 큰 눈길을 끌지 않았다. 8월 6일 기획재정부는 2015년 세법 개정안을 발표했다. 이날 발표된 세법 개정안은 민감한 문제였던 종교인 과세, 체크카드 및 현금영수증에 대한 소득공제율 확대 등만이 관심을 끌었다. 삼성 등 재벌 대기업이 민감하게 받아들일 만한 내용은 화제가 되지 못했다. 당초 올해 말이 일몰시한이었던 ‘지주회사 전환 시 과세이연’이 2018년까지 3년 연장됐다는 발표는 수많은 세법 개정안의 일부였다. 이런 가운데 경제개혁연대가 세법 개정안에 대한 논평을 내면서 삼성 등 재벌 대기업에 특혜를 주는 법이라며 문제를 제기했다.

서울 서초동 삼성그룹이 모여 있는 삼성타운. / 이준헌 기자

서울 서초동 삼성그룹이 모여 있는 삼성타운. / 이준헌 기자

경제개혁연대 “시대적 요구에 역행”
경제개혁연대는 “최초 도입 당시에 비해 지주회사 제도의 내용이 많이 후퇴해 재벌의 지배구조를 개선하기보다는 지배주주 일가의 지배력만 강화시키는 부작용이 심각하게 나타나고 있다”면서 “이런 중에도 계속 지주회사 설립 및 전환을 촉진하기 위한 과세특례가 일몰시한을 연장하면서까지 유지되는 것은 애초의 취지에도 어긋날 뿐만 아니라 시대적 요구에도 역행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경제개혁연대는 이 혜택 연장이 삼성에 특혜를 주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경제개혁연대는 논평에서 “특히 삼성그룹이 경영권 승계과정에서 지배권을 강화하거나 자녀들 간 그룹 분할을 위해 지주회사 전환을 하게 될 경우, 이재용 부회장 등 지배주주 일가에게 세부담을 지우지 않는 엄청난 특혜가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기획재정부는 세법 개정안을 발표한 후 8월 7일부터 26일까지 20일간 관련 법안을 입법예고했다. 기획재정부는 이들 법안을 9월 초 국무회의에 상정한 후 11일까지 정기국회에 제출할 계획이다. 지주회사 전환 시 과세이연과 관련된 법은 조세특례제한법이다. 조세특례제한법 제38조 2항(주식의 현물출자 등에 의한 지주회사의 설립 등에 대한 과세특례)에는 ‘내국법인의 내국인 주주가 2015년 12월 31일까지 다음 각 호의 요건을 모두 갖추어 주식을 현물출자함에 따라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에 따른 지주회사(금융지주회사법에 따른 금융지주회사를 포함한다. 이하 이 조에서 “지주회사”라 한다)를 새로 설립하거나 기존의 내국법인을 지주회사로 전환하는 경우 그 현물출자로 인하여 취득한 주식의 가액 중 그 현물출자로 인하여 발생한 양도차익에 상당하는 금액에 대하여는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그 주주가 해당 지주회사의 주식을 처분할 때까지 양도소득세 또는 법인세의 과세를 이연받을 수 있다’고 명시했다.

기획재정부는 이 조항에서 ‘2015년 12월 31일까지’를 ‘2018년 12월 31일까지’로 개정해 입법예고했다. 기획재정부는 세법 개정안 보도자료에서 지주회사 전환 시 과세이연에 대한 혜택 종료 시점을 연장한 조치를 ‘기업구조조정 뒷받침’으로 분류하고 있다. ‘기업 혁신역량 강화를 위해 선제적 구조조정을 뒷받침한다’는 것이 기획재정부의 구호다. 경제개혁연대의 채이배 회계사는 “재벌 대기업의 지주회사 전환이 투명성 확보보다 지배권 강화에 이용돼 오히려 부작용이 크다”면서 “원래 취지대로 지주회사의 요건을 강화해서 한다면 모를까 지금 상황에서는 그럴 말한 유인이 없다고 보기 때문에 혜택 연장에 대해 반대한다”고 말했다.

[특집]세법 개정안은 ‘삼성특혜법’?

“정부는 당근이 아니라 채찍을 마련해야”
재벌 대기업을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하도록 유도하는 과세이연이 과연 재벌 대기업에 당근이 될 수 있을까. 삼성은 그동안 ‘지주회사 체제 전환 계획이 없으므로 딱히 답할 것이 없다’는 취지의 답변을 해왔다. 이번 세법 개정안에 대해서도 삼성의 한 관계자는 “정부 차원에서 추진하는 법 개정에 대해 개별 기업이 일일이 언급하기가 어렵다”고 말했다.

하지만 증권가에서는 세법 개정안이 지주회사 전환에 큰 도움을 줄 수 있다고 보고 있다. KB투자증권의 강선아 선임연구원은 “지주회사로 전환할 때 비용이 많이 들기 때문에 과세이연은 충분한 유인책이 될 수 있다”면서 “하지만 지주회사로 전환하려면 금산분리라는 장벽이 있어 삼성그룹이 이를 선택할 가능성은 낮다”고 예측했다. 강 선임연구원은 “삼성은 중간금융지주회사법이 국회에서 통과돼야 지주회사 체제로의 전환을 모색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혜택 연장에 대해 강 선임연구원은 “이미 3년 주기로 계속 연장돼 왔고 이번에 연장하면 다섯 번째”라면서 “아마 대기업에서는 연장될 것으로 미리부터 알고 있었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혜택 연장에 대한 비판 이전에 기업집단의 현재 상황에 대한 비판적인 견해가 만만찮다. 박상인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는 “지주회사로 전환하도록 유인하는 세제혜택을 연장하는 것에 대해서는 찬성”이라면서 “하지만 계속해서 이렇게 시기를 연장해주는 방식으로 가면 안 된다”고 말했다. 박 교수는 현재 재벌 대기업이 지주회사로 전환하지 않고 순환출자 체제를 그대로 유지하는 것을 비판했다. 박 교수는 이에 대해 “정부가 당근만 줄 뿐 채찍이 없다”고 표현했다.

박 교수는 “기업집단의 지배구조에 대해서는 총체적으로 접근해야 한다”면서 “과세이연이라는 큰 혜택을 줘도 지주회사로 전환하지 않는 현실을 냉철하게 바라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삼성처럼 순환출자 구조를 유지해도 3세 승계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면 굳이 지주회사를 선택할 이유가 생기지 않는다는 것이 박 교수의 주장이다. 박 교수는 “삼성은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 시 금산분리 적용을 받아야 하는데, 지금 그대로 있는다고 해서 규제가 없다”면서 “과세이연 연장이라는 당근만 내밀 것이 아니라, 기업집단이 특정기간 안에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하도록 강제하는 법을 제정하는 등 채찍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윤호우 선임기자 hou@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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