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60 “집값 잡아라”·2030 “집을 잡아라”… 결국 목동 시범지구 지정 해제
이다솔씨(27·여)에게 ‘내 집 마련의 꿈’이라는 흔한 말은 별로 와 닿지 않는다. “부동산 관련 뉴스를 보면 ‘내 집 마련의 꿈이 멀어졌다’ 흔히 이런 말이 나오지 않나. 그런데 애초에 내게는 그런 꿈 자체가 없다. 내가 집을 사는 게 가능할 거라는 생각이 전혀 없다.” 이씨의 꿈은 임대주택처럼 정부가 지원하는 저렴한 주택에 입주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씨에게는 그것도 로또 당첨 수준으로 운이 좋아야만 가능한 일일 뿐이다. 이씨는 지난 7년 사이에 다섯 번 이사를 했다. 고시원부터 시작했다. 하숙집에 들어갔다가 친구와 자취를 했다. 친구와 떨어져야 할 상황이 되면서 지금은 새 집을 찾는 동안 오빠 집에 잠깐 살고 있다. 보증금 2000만원에 월 40만원을 상한선으로 잡고 있다. “쉽지는 않다. 주거환경이 안 좋으면 사는 게 힘드니까 도심에서 좀 멀어지더라도 괜찮은 집을 찾고 있다.”
젊은 세대는 주거안정을 목표로 삼아
청년세대의 주거권에 대한 목소리를 내고 있는 민달팽이유니온은 1·2인 가구를 대상으로 연령대별 거주기간을 조사했다. 연령대가 높을수록 3년 이하 단기 거주비율이 낮고 10년 이상 거주비율이 증가했다. 반면 청년층일수록 단기 거주비율이 높았다. 20대 1인가구의 71.0%가 단기 거주로 나타났다. 주거불안은 청년세대의 일반적 현상이 된 셈이다. “월 30만원을 내고 룸메이트와 하숙집에서 살고 있는데, 룸메이트가 이사를 가면서 하숙집 주인이 방을 독방으로 바꾸겠다며 갑자기 월 53만원을 내라고 하더라. 요즘 방을 같이 쓰려는 사람이 적다 보니 사람을 못 구해서 그러는 것 같은데, 아르바이트로 방값을 충당하고 있는 내 입장에서는 53만원은 버겁다.” 취업 준비와 아르바이트를 병행하는 윤성현씨(가명·25)는 민간임대주택과 공공임대주택을 알아봤다. 그러나 윤씨에게 해당사항은 없었다. “공공주택 수가 너무 적으니 요건이 되는 건 오래 기다려야 하고, 최근의 행복주택은 지원하는 대상자에서 제외되더라. 제한이 크다 보니 신청조차 할 수 없는 것들이어서 많이 소외된다는 느낌을 받았다.”
행복주택은 2012년 대선 당시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의 공약이었다. 대학생, 신혼부부, 사회초년생을 위해 직장과 학교가 가까운 곳에 임차료가 저렴한 도심형 아파트를 짓겠다는 것이었다. 주거 취약계층인 청년세대를 위한 첫 공공임대주택이었다. 주거불안과 열악한 주거환경에 고통을 받고 있었던 청년층들의 기대가 높았다. 서울시 20대의 공공임대주택 입주 비율은 1.2%에 불과하고 30대의 경우는 약 8%다. 주거빈곤 청년은 서울에 52만명을 넘으며, 이는 청년 전체의 5분의 1인 넘는 22.9%에 달한다. 주거빈곤은 주택법에 규정돼 있는 최저주거기준 미달과 함께 지하 및 옥탑, 비닐하우스, 고시원 등 주택 이외의 기타 거처에 사는 것을 포함한다. “하숙하면서 집에 대한 상상을 많이 했다. 하숙집은 저렴하지만 방음도 안 되고 위생도 별로 안 좋다. 하숙집 어머니가 방에 사람이 없을 때 드나들다 보니 사생활 침해가 용인되는 부분도 있었고. 내가 내 방에 있을 때 안전하다는 느낌이 있는 공간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윤성현씨(가명)의 설명이다.

2013년 5월 서승환 국토교통부 장관이 행복주택 시범지구를 발표하고 있다. / 김창길 기자
표를 의식한 지자체장과 정치권의 압력
그러나 윤씨처럼 행복주택에 기대를 건 청년층은 행복주택의 입주자 신청공고를 보고 좌절할 수밖에 없었다. 행복주택은 직장에 다니고 있는 사람들만 입주할 수 있었다. 사회·경제적으로 가장 취약한 미취업 청년과 구직 청년은 행복주택에 입주신청조차 낼 수 없었다. 행복주택의 임대료도 청년, 사회초년생이 감당하기에 너무 비싸다는 지적도 나왔다. 시세 대비 60∼80%로 책정된 행복주택 임대료를 내려면 보증금만 3000만∼4000만원이 필요했다. 현실적으로 행복주택에 입주하기 위해서는 빚을 내야 했다.
그나마 이마저도 사업이 흐지부지될 위기에 처했다. 국토부는 지난 7월 22일 서울 양천구 목동 행복주택 시범지구 지정을 해제했다. 목동 유수지에 청년층을 위한 공공임대주택을 짓겠다는 구상은 완전히 무산됐다. 행복주택 사업이 사실상 껍데기만 남은 게 아니냐는 비판이 이어졌다. 목동지역 주민들은 2013년 지구 지정과 동시에 반발했다. 주민들은 유수지의 안전성을 문제 삼았지만, 집값 하락을 우려한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왔다. “단 1세대라도 목동 행복주택이 지구지정되고 착공에 들어가면 그동안 우리가 만들어온 목동스타일, 더 나아가 양천스타일은 처참하게 무너지게 된다. 우리 모두가 양천을 지켜야 한다.” 한 목동 주민은 행복주택 지구지정 취소를 요구하며 만든 주민들의 인터넷 카페에서 이와 같이 적었다. 양천구는 지구지정 취소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양천구는 2심 모두 패소했다. 하지만 정작 무릎을 꿇은 것은 국토부였다. 국토부가 지구지정을 해제하자 지역주민들의 표를 의식한 지자체장과 정치권의 압력에 국토부가 무릎을 꿇었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제기됐다.
목동 행복주택 지구지정과 취소까지 이어진 흐름은 집값을 지키려는 장년층 지역주민과 주거안정을 찾는 청년층의 이해관계가 대립할 수 있음을 보여줬다. 문제는 정부가 책임을 지지 않고 오히려 대립구도를 만들었다는 데 있다. 임경지 민달팽이유니온 위원장은 “목동 행복주택 지구지정 취소는 책임을 져야 할 정부가 정책에 대해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고 있음을 보여준다. 집값을 떠받치려는 장년층과 주거불안을 해소하려는 젊은층의 싸움처럼 보이게 하고 정부는 빠져버렸다. 조직화된 지역주민들과 조직화되지 않은 예비 입주자들이 맞붙으면 예비 입주자들이 질 수밖에 없다. 갈등을 조정해야 할 정부가 아무런 역할을 하지 않은 것이다.”
그러나 이는 익숙한 풍경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사회적 약자를 보호한다고 내건 정책이 갈등을 조정하기보다 갈등을 부추기는 쪽으로 흘러간 것은 과거의 패턴이었다. 박권일 칼럼니스트는 이명박 정부가 청년들의 일자리를 늘리겠다고 하면서 대졸 초임을 삭감한다고 발표했던 사례를 들었다. “행복주택도 애초에 청년을 위한 종합적 정책이 아닌 선거를 겨냥한 단발성 이벤트였다. 청년층의 주거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데 목동 주민들이 막아서 안 됐다고 보기보다는 근본적으로 청년층이 주거문제로 겪고 있는 고통을 깊게 생각해보지 않은 보여주기식 정책이었다. 칼을 대어야 할 곳에는 칼을 안 대고 사람들끼리 싸움만 부추기는 꼴이다.”
집을 둘러싼 세대 간 갈등은 한국 사회에서 필연적인 흐름이 됐다. 우석훈 민주정책연구원 부원장은 “집값이 올라가면 전·월세도 따라서 올라가게 돼 있다. 지금 20대 대부분이 월세를 산다. 부동산값이 떨어지면서 주택시장을 정상화한다고 하면 집 없는 사람에게 피해가 갈 것이고, 그 충격은 20대에 더 강하게 올 수밖에 없다. 이론적으로 부딪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2013년 서울시 광진구 구의동 유수지에 서울시가 대학생들을 위한 기숙사 700실를 건축하려 추진했으나 무산됐던 것도 비슷한 갈등 사례의 하나다. 정치권의 조정 없는 갈등 상황에서 번번이 밀리는 것은 청년층이다. 이다솔씨는 답답한 상황을 이렇게 토로했다. “행복주택 이전에도 기숙사 건립한다고 했을 때 임대업자들이 반대했다. 나이 드신 분들이 노후준비를 위해서 목숨을 걸 수 있는 상황을 우리도 모르지는 않는다. 그런데 그게 기숙사 안 짓는 걸로 해결되는 게 아니다. 그 분들 노후대책은 또 다른 방식으로 제도적으로 지원해야 하지 않나. 그런 것들이 없으니까 어려운 사람들끼리 치고받고 싸우는 게 답답하다.” 이택광 경희대 교수는 “외국에서는 임대주택 건립과 같은 집 문제가 세대 간 갈등으로 간 경우는 없다. 그러나 이민자들이 들어오면 집값이 떨어진다고 반대하는 경우는 있다”고 설명했다. 이 교수는 “중산층이 자신의 자산가치를 보호하려는 경향은 보편적이다. 영국 채스터필드주가 이민자들의 임대주택을 건설하려다가 지역 중산층들의 반발을 샀다. 시장이 나서서 조정을 해서 해결이 됐는데, 그게 정치의 몫이다. 정치가 약자 쪽에 서서 이를 조정하는 역할을 해야 하는데, 이것 없이 이 갈등을 해결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2013년 6월 서울 양천구 오목교역 주변에 행복주택 건립을 반대하는 주민비상대책위원회가 내건 현수막이 걸려 있다. / 경향신문 자료사진
송파·잠실·공릉지역도 반대 투쟁 계획
그러나 사회·경제적 약자인 청년층은 정치의 힘을 전혀 실감하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정책에서 더 소외된다고 느낀다. 윤성현씨(가명)는 “같은 문제라고 해도 청년문제라고 했을 때 문제 자체가 간과되는 측면이 있다”면서 “청년의 문제는 개인이 스스로 해결하라는 식이다. 정책의 수혜자가 만약 중년이나 노년층이었다면 그렇게 흘러가지 않았을 텐데 청년의 이야기에는 공감대를 형성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세대 간 사회·경제적 격차가 커지면서 정책을 만들 때 세대간 영향평가를 의무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제기되는 배경이 여기에 있다. 관련법으로 이 문제를 풀려는 우석훈 부원장의 설명이다. “청년정책기본법을 준비 중에 있는데, 일정 규모의 정부 사업에 대해 예비타당성 검토를 해야 한다. 예컨대 이 사업이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하듯이 마찬가지로 사업이 세대별로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분석을 하는 것이다.” 지금 국회에서는 비슷한 법안인 청년발전기본법이 발의돼 있다. 새정치연합, 새누리당 양당이 각각 발의했지만, 두 법안 다 관심 밖으로 밀려나 잠자고 있다.
행복주택이 목동에서 좌초되자 송파·잠실·공릉지역의 주민들도 보다 적극적인 반대투쟁에 돌입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 국토부 관계자는 다른 지역에서는 사업을 계속 추진한다는 방침을 가지고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국토부의 일관성 없는 행정은 다른 지역에도 파장을 미칠 것으로 전망된다. 우석훈 부원장은 “목동은 다양한 사회계층이 함께 섞여 살아가는 ‘소셜믹스’를 시도해볼 수 있는 좋은 사례였는데 이것을 취소하면서 더 큰 문제가 됐다. 이후 다른 지역에서 목동은 취소해줬는데 우리는 왜 취소 안 해주냐는 반발이 일어날 것은 불보듯 뻔하다”고 말했다. 특히 낙후된 지역의 박탈감은 더 크다. 공릉지역의 한 주민은 “행복주택 지정지구 취소는 없다고 해놓고 이제와 목동을 취소해버린 데 대해 화가 난다. 목동은 잘사는 동네라서 취소해주고 여기는 낙후된 동네니까 취소하지 않는 것이냐. 주민들도 그간의 협의는 파기하고 행복주택 지정지구 취소를 요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임경지 민달팽이유니온 위원장은 행복주택 사업이 결국 세대 갈등으로 막을 내렸다고 지적했다. “갈등이 생기는 복지정책마다 정부가 주춤하면 누가 복지정책을 펼 수 있을까. 정부가 임대주택정책에 대한 의지 자체가 없는 것이다. 정부는 국민연금도 장년세대와 청년세대의 갈등으로 만들었다. 어쩌면 장년세대와 청년세대들은 같은 불안을 공유하고 있는 것인데, 책임을 져야 하는 주체들이 빠져나가면서 불안을 같이 어떻게 극복해야 할 것인가의 문제가 사라져버렸다.”
<박송이 기자 psy@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