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태여 검찰이 붙들고 있다가 공소시효 하루 전날 법 상식을 뒤엎고 기습 기소한 것이 이번 사건이다. 누가 보아도 납득하기 힘든, 다른 어떤 목적을 위한 정치적 판단에 의한 무리한 기소의 의혹이 짙다.
당락에 영향을 주는 어떤 불법적 요소의 개입도 없이 공정하게 치러진 선거에서 당선되어, 선거공약에 따라 소신껏 교육행정을 펼치던 조희연 서울특별시교육감이, 엉뚱한 소송에 휘말리며 서울의 보통교육이 혼란 속에 빠져들고 있다. 법은 사회정의를 올바로 세워 해당 공동체의 안정과 질서를 확보하고, 개인의 인권을 보장하여 억울함이 없게 해야 함에도, 지금 진행되고 있는 재판은 그것에 역행하므로 법치의 본래 목적에 상반된 길을 가고 있다. 상식적으로 납득이 안 되는 상황 앞에서 학생들, 교사들, 학부모들만 발을 동동 구르고 있다.
교육은 ‘백년대계’라 할 만큼 그 목적이나 과정이 지속적이고 안정적이어야 하는데, 4년의 임기를 보장하고 뽑은 교육자치의 수장을 1년도 되지 않아 일을 못하게 하는 것은 교육 본래의 성격을 무시할 뿐 아니라, 헌법사항인 교육의 자주성, 전문성, 정치적 중립성과 그에 기초한 교육자치의 의미도 퇴색시키고 있어 심히 우려스럽다. 그래서 교육과 관련된 문제는 교육적 관점이 우선시돼야 하는데, 이번 사태는 그것을 몰각한 저급한 우리 사회의 일면을 드러내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깝고 창피하기까지 하다.

지난 4월 23일 국민참여재판에서 유죄 판결이 내려진 뒤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이 서울중앙지법 법정을 나서고 있다. | 이준헌 기자
신뢰하기 힘든 보수단체의 ‘묻지마 고발’
그 빌미를 제공한 것은 극우단체였다. 이 단체는 진보진영의 일이라면 무조건 고발해서 ‘아니면 말고’ 식의 ‘묻지마 고발’로 애를 먹이는 대표적인 단체다. 이 단체가 선거 당사자도 선관위도 문제 삼지 않는, 조희연 후보의 선거운동 중 있었던 일을 검찰에 고발한 것이다. 조희연 후보의 고승덕 후보에 대한 후보검증 차원의 의혹 제기가 허위사실 공표죄 위반이라는 것이다. 이 단체는 이 건 외에도 박원순 시장 관련 등 여러 건을 진보진영에 대한 악의로 무차별 고발하여 대부분 무혐의 처리되는 등 신뢰하기 힘든 단체다.
두 번째는 검찰이다. 검찰은 지난번 교육감 선거에서 후보 상호 간 후보검증을 통한 유권자의 알 권리 충족 차원의 선거운동에 대해, 여러 건의 허위사실 공표 혐의에 대한 고소·고발이 있었음에도 모두 불기소 처리하고 유독 이 건에 대해서만 문제 삼고 있다. 선관위가 경미한 사안으로 보고 양편에 대한 동시경고로 처리했고(그 사안이 기소될 만한 소지가 있었으면 선관위가 당연히 고발조치하였을 것임), 그 사건을 먼저 조사한 경찰도 불기소 의견으로 품신하였음에도, 구태여 검찰이 붙들고 있다가 공소시효 하루 전날 법 상식을 뒤엎고 기습 기소한 것이 이번 사건이다. 누가 보아도 납득하기 힘든, 다른 어떤 목적을 위한 정치적 판단에 의한 무리한 기소의 의혹이 짙다. 아마 지난 지방선거에서 13개 시·도에서 진보교육감이 당선되자, 당황한 박근혜 정부의 진보교육감 흠집내기와 발목잡기의 한 방법으로 활용되었음이 분명한 것 같다. 그렇게 보면 이 사건은 명백한 검찰의 공소권 남용으로밖에 볼 수 없다.
세 번째는 1심 재판부이다. 국민참여재판으로 진행된 이 재판은 판사의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결과가 철저히 왜곡된 혐의가 짙다. 이번 재판에서 쟁점이 된 ‘허위사실에 대한 인식’의 문제라든지, ‘미필적 고의’ 또는 ‘진실인 것으로 믿을 만한 상당한 이유’ 등은 관련 현행 선거관련법이 위헌소지가 제기될 만큼 복잡하고 예민하다. 법원이 제공한 참고자료와 3일간의 방청으로만 배심원단이 유무죄를 가리기엔 힘들 수밖에 없고, 그 판단을 돕는다는 명분으로 판사가 개입해서 판결 내용을 좌지우지한 정황이 포착되고 있다. 배심원단이 평결회의를 4시간 이상 진행했음에도 결론이 나지 않자, 판사가 들어가서 논의에 개입해 만장일치가 이루어진 것을 보더라도, 판사의 의견이 강하게 반영된 것으로 여겨진다. 그것은 1심 재판부의 판결문에도 잘 드러나 있다.
이번 사건의 내용은 의외로 간단하다. 방송통신대 최정학 형법학 교수의 이 사건에 대한 사실관계 요약은 다음과 같다.
<선거를 10일 앞둔 어느 날(법정 선거운동 기간이 14일인 점으로 보면 선거 초반이라 할 수 있다), 한 후보의 캠프에서 다른 후보가 미국 영주권을 갖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의혹을 접하게 된다. 몇 군데 확인을 해 보았지만 정확한 사실은 알 수 없었고, 그 사이 의혹은 인터넷상에서 눈덩이처럼 확대되어 갔다. 더 이상 지체할 수 없다고 판단한 캠프는 이 의혹을 공개적인 기자회견에서 제기하기로 결정하고 이를 실행하였다. 상대 후보는 이에 대해 즉각 반론을 제기하고 자신의 자서전 등을 이러한 반론의 근거로 제시하였다. 그러나 그 근거가 충분하지 않다고 판단한 원래의 후보 측은 다시 객관적인 자료로 이를 소명해 줄 것을 요구하는 공개 답신을 보내고 이러한 사실을 언론과의 인터뷰에서도 그대로 밝혔다. 이로부터 하루가 지난 후 상대 후보는 자신의 여권을 공개하면서 이러한 의혹이 허위임을 주장하였고, 이를 접한 원래의 후보는 더 이상 이 의혹을 제기하지 않아 사태는 마무리되었다.>
허위사실공표죄에 대한 위헌제청 제기를
이러한 사실관계를 두고 1심 재판부가 내린 결론은, 검사의 공소 내용을 대부분 그대로 인용하여 ‘조희연 후보가 고승덕 후보의 미국 영주권 소지 여부를 철저히 알아보지 않고 그것이 허위사실인 줄 알면서도 방송 등을 통해 공표함으로 선거법상의 낙선 목표 허위사실 공표죄를 저질렀음’으로 그 법이 정하는 바에 따라 500만원의 벌금형에 처한다는 것이다.
일언이폐지하고 검사의 주장대로, 조희연 후보 측이 사실관계 확인에 미흡했고, 낙선 목표 허위사실 공표에 대한 미필적 고의가 다소 인정된다 하더라도, 그 양형이 유권자의 참여에 의한 공정한 선거결과를 뒤집어엎고 당선을 무효로 할 만큼인가에 대해 상식적으로 물어보고 싶은 것이다. 허위사실 공표죄는 왜 있는가? 공직선거에서 ‘선거의 공정’을 지키기 위해서라는 사실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다. 후보자 상호 간에 활발한 토론이 보장되고 반론의 기회가 주어지는 선거제도에서는 사실 이렇게 엄격한 법이 필요 없다. 그래서 대부분의 유럽 국가들은 선거법상의 허위사실 공표죄를 알지 못하고, 미국에서도 17개 주에서만 경미한 범죄로 다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판례는 허위사실의 인식에 관한 미필적 고의를 너무 쉽게 인정하고 있어, 공직선거에서의 공정성을 오히려 침해하는 결과를 초래하고 있다. 이번 1심 재판의 결과가 바로 그런 비상식과 불합리의 대표적인 예라 할 것이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이에 관한 우리 선거법 조항은 위헌법률 심의를 거쳐 그 법이 현행 선거제도와 현실에 맞도록 개정되어야 한다. 따라서 2심 재판부는 마땅히 현행 낙선 목적 허위사실 공표죄에 대한 위헌제청을 헌법재판소에 제기해야 한다. 그리고 헌법재판소의 위헌판결이 나서 본안 소송이 무죄로 확정될 때까지는 조희연 교육감의 교육행정이 흔들림 없이 안정적으로 수행될 수 있도록 같이 노력해야 한다.
또한 불합리한 현행 선거법 아래서도 선거의 공정성과 교육의 특수성과 중요성이란 법익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처벌대상인 불법의 정도가 매우 가볍다는 점을 감안하여, 선고유예의 판결을 내리는 것이 법정신에 맞는 일이다. 유권자나 시민 누가 이런 정도의 위법으로 교육감 직을 박탈당하고 교육계가 회복하기 어려운 혼란 속으로 빠져든다면 그것을 올바른 법집행으로 받아들이겠는가? 우리 법원이 판결에서 그렇게 귀하게 여기는 ‘건전한 상식’에 근거하여 진지하게 물어보고 싶은 것이다.
<이수호 갈등해결센터 상임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