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박하지 못하는 삶의 상징물, 이케아
  • 인쇄
  • |
  • 목록
  • |
  • 복사하기
  • 페이스북
  • 트위터
  • 밴드

전 세계의 젊은 세대는 전통적인 가구 문화의 이중감정으로부터 벗어나고자 했다. 부모 세대의 권위적인 가구로부터, 또는 가난했던 공간의 낡고 지저분한 가구로부터 벗어나고자 했다. 그 교차점이 이케아다. 이케아의 디자인은 어떤 흐름 속에 존재하는 삶이 아니라 즉물적으로 존재하는 삶을 표상한다.

5년 전, 깊은 밤에 광명역에 내려 외진 곳에 세워둔 차를 향해 걸어가다가 문득 서서 거대한 광명역사를 한참 쳐다본 적이 있다. 1994년 10월 14일에 위치를 확정하고 국비 4068억원을 투입하여 1999년 12월 착공, 2004년 3월 27일 준공한, 그리하여 그해 4월 1일 영업을 개시한 광명역은 그로부터 10여년 동안 허허벌판에 홀로 서 있었다. 흡사 19세기인 듯한 황량한 들판에 오직 홀로 21세기의 기념비처럼 서서 질주하는 KTX를 토해내고 있었다.

온종일 생라자르역에 앉아서 질주하는 근대성을 묘사했던 인상파 화가 클로드 모네라면 서울역보다 차라리 이곳에서 그야말로 21세기의 광명한 힘과 기개를 발견하지 않았을까 여겨질 만큼 광명역사는 첨단 트러스트와 유리와 철골이 빚어내, 단순하면서도 강직해 보였다. 영업 개시 이후 오랫동안 이 일대가 허허벌판이었으므로 특히 심야의 광명역사는 여러 가지 생활편의 시설과 잇닿아 있는 다른 역사들과 달리 오직 쾌속질주만을 위해 존재하는 강건한 물질성을 갖고 있었다.

단순하지만 장대한 이케아 매장의 모습. | 정윤수

단순하지만 장대한 이케아 매장의 모습. | 정윤수

그랬는데, 그저께 가보니 상전벽해! 상업 건물들이 들어서고 아파트 모델하우스가 난립해 있고, 꽤 큰 덩치의 대형 할인매장도 들어서 있었다. 그 바람에 21세기의 모뉴먼트 같았던 광명역사는 여러 덩치 큰 건물들과 사이에서 그저 또 하나의 편의시설처럼 서 있었다.

그곳에 장대한 건물 하나가 안팎으로 정비를 거의 마치고 본격적인 영업 개시를 준비하고 있었다. 한국 가구시장을 초토화시킬지 모른다는 이케아 광명점이었다. 철저한 보안관리 때문에 안으로는 한 걸음도 들어갈 수 없었기에 거대한 건물을 쉼없이 돌아보았다. 그들의 가구가 그렇듯이 그들의 건물은 단순하였고, 그들의 규모가 그렇듯이 매장 크기 또한 상당했다. 이 일대의 랜드마크로 광명역사 대신 이케아가 꼽히지 않을까 싶었다.

가구시장 초토화시킬지 모르는 이케아
스웨덴을 거점으로 하는 이케아는 2012년 말 기준으로 세계 43개국에 338개 매장을 운영하고 있는 다국적 기업이다. 전 세계에서 매일 150만명, 연간 5억8000만명이 이케아 매장을 방문하고 있다고도 한다. 창립자가 나치 추종자였다거나 소비자가 자신이 돈 주고 산 가구를 ‘즐겁게’ 낑낑거리며 조립해야 한다는 점은 이미 논외의 사실이 된 지 오래다.

놀라운 단순성! 실용적이면서도 경쾌한 디자인은 이케아에 맞서는 가구회사들마저도 이케아스럽게 만들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을 빚어냈다.

이케아가 ‘라이프스타일의 글로벌라이제이션’이 된 것은 이 단순성 때문이다. 전 세계의 젊은 세대들은 전통적인 가구문화의 이중감정으로부터 벗어나고자 했다. 조금 여유 있는 젊은 세대는 근엄한 부모세대의 권위적인 가구와 그 문화로부터 벗어나고자 했다. 가난한 젊은 세대들은 힘겹게 살았던 가난했던 공간의 낡고 지저분한 가구들로부터 벗어나고자 했다.

경기도 광명시에 들어선 이케아 매장의 모습. | 정윤수

경기도 광명시에 들어선 이케아 매장의 모습. | 정윤수

그 교차점이 이케아다. 이케아의 디자인은 어떤 흐름 속에 존재하는 삶이 아니라 바로 그 순간에 즉물적으로 존재하는 삶을 표상한다. 스스로 조립하면서 삶을 꾸민다는 착시현상까지 자아낸다. ‘체인징 룸 제너레이션’(Changing-Room-Generation), 즉 실용적인 목적이 아니라 기호와 취향에 따라 인테리어를 자주 바꾸는 세대가 이케아를 선택했다.

이케아는 특히 한국의 젊은 세대의 욕망과 절묘하게 어울렸다. 이케아가 상륙하기 이전에도 서울이나 수도권의 제법 큼직한 이케아 매장은 당장 사고 싶은 게 없어도 나들이 삼아 구경 가는 곳이었다. 유모차를 밀고 방문한 젊은 부부들에게 이케아는 깔끔하고 산뜻한 라이프스타일을 팔았다. 지난 11월 19일 발매한 한국어판 이케아 카탈로그는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서울 외곽에 산재해 있는 이른바 ‘가구거리’의 국내 가구들은 욕망을 팔지 못했다. 가격도 신뢰하기 어려웠다. 반면 이케아는 글로벌 시대의 라이프스타일을 팔았다. 이케아를 방문한 신혼부부들은 매장을 둘러보면서 지금 살고 있는 집과 앞으로 꾸미고 싶은 집 사이를 상상으로 채웠다. 많은 사람들이 이케아를 샀고, 이케아 카탈로그를 구해서 보았다. 그곳에 가까운 미래의 자기 집 거실과 아이 방과 주방기구가 투영되어 있기 때문이다.

전 세계에 관철되는 획일적 라이프스타일
이는 유럽에서도 쉽게 발견되는 현상이다. 독일의 경우, 이케아 매장은 가구를 구경하고 사는 곳일 뿐만 아니라 젊은 부부들이 산책하는 곳이고 여성들의 커뮤니티가 형성되는 곳이다. 근사한 쇼룸 곳곳에 간이 카페가 있고, 대화를 나눌 수 있는 미팅룸이 있으며, 심지어 무료 탁아소도 있다. 그래서 이케아에 가서 하루를 보내기도 한다.

카메룬 출신의 프랑스 화가 바르텔레미 토구오는 이러한 현상, 즉 특정한 라이프스타일이 전 세계에 획일적으로 관철되는 것에 주목해 왔다. 2013년에 국내에서 첫 개인전을 열기도 했던 토구오는 이케아의 침대, 베개, 가방 등을 층층이 쌓은 작품을 선보인 적이 있다. 전 세계의 다양했던 삶이 단일한 라이프스타일로 단일화되는 ‘비동시성의 동시성’을 보여주는 것이면서 동시에 그 작품에 주렁주렁 매달린 가방들이 채 열리지도 않은 상태로 있다는 점에서 한 군데 뿌리내리지 못하고 언제든지 다른 곳으로 찾아 떠나가거나 추방당할 수 있는 21세기의 ‘디아스포라’를 보여주는 작품이었다.

둘러보니, 내 작업실의 소파도 이케아 제품이고, 음악을 듣기 위한 의자도 이케아 제품이며, 주전자도 그러하다. 물론 나 역시 이 작업실에서 영원히 살지는 않는다. 그럴 마음도 없다. 그래서 나 또한 이케아를 선택했는지 모른다. 이케아는 한 군데 정박하지 못하고 끝없이 ‘미끄러지는 현대적 삶’의 상징물이다.

<문화평론가>

정윤수의 도시 이미지 읽기바로가기

이미지
전 총리 한덕수씨에게 드리는 질문
오늘을 생각한다
전 총리 한덕수씨에게 드리는 질문
관료 출신으로 경제와 통상의 요직을 두루 거쳐 참여정부에서 국무총리를 지내고, 윤석열 정부에서 다시 국무총리를 지냈으며, 대통령 윤석열 탄핵소추안이 가결된 뒤 대통령 권한대행직을 수행하다 21대 대통령선거를 한 달여 앞두고 사퇴해 공직에서 물러난 자연인 한덕수씨에게 몇 가지 궁금한 것을 묻는다. 2007년 첫 총리 지명 당시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한나라당이 제기한 ‘2002~2003년 김앤장 법률사무소 고문 재직 시절 외환은행 매각 사태(론스타 게이트) 연루 의혹’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이와 관련해 서울중앙지검에 고발된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뇌물죄 사건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가? 첫 총리직과 주미대사를 역임하고 공직에서 물러난 뒤 2012년부터 3년간 무역협회장으로 재직하며 받은 급여 19억5000만원과 퇴직금 4억원, 2017년부터 5년간 김앤장 법률사무소에서 고문으로 재직하며 받은 보수 18억원, 2021년 3월부터 1년간 에스오일 사외이사로 재직하며 받은 보수 8000만원 등 퇴직 전관 자격으로 총합 42억3000만원의 재산을 불린 일에 문제가 없다는 인식은 지금도 그대로인가? 이처럼 전관으로 왕성하게 활동하다 다시 윤석열 정부의 총리 제안을 수락해 공직으로 복귀한 것 역시 관료로서 부적절한 처신이 아니냐는 문제 인식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