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보육을 따르자니 경력이 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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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력단절여성 경제활동 실태, 재취업 어렵고 임금도 취업지속자 비해 크게 낮아

“‘청년 백수’들 보고 눈높이 낮춰서 취직하라는 말이 얼마나 잔인한 건지 일 그만둬 보니까 알겠어요.”

김희정씨(39)는 이른바 ‘경력단절’ 여성이다. 이전까지 경제활동을 하다 결혼·출산·육아 등의 이유로 경제활동 경력이 도중에 끊겼다. 서울에 있는 이름난 명문대를 나온 김씨는 졸업 무렵 IMF 외환위기 가운데에서도 꿋꿋이 취업에 성공한 경험이 있었다. 때문에 출산 때문에 8년 전 다니던 회사를 과감히 그만둘 때만 해도 재취업은 어렵지 않을 것이라는 자신감이 있었다. 하지만 구직생활 두 달 만에 그 자신감은 완전히 무너졌다.

여성 20대 고용률 30대 들며 크게 하락
학력과 경력을 살리고 싶다는 건 희망사항일 뿐이었다. 아직 영어도 자신 있고 회계도 잊지 않았지만 그런 스펙이 필요하다는 일자리 자체가 없다. “취업지원센터에 나가 보니 나 같은 아줌마들이 우글우글하더라고요. 자격증 많고 경력단절 기간이 나보다 짧은 사람도 셀 수 없이 많은데 다들 ‘취직이 안 돼서 죽겠다’는 소릴 입에 달고 다녀요.” 일자리를 잡지 못한 푸념을 남편에게 늘어놓기도 힘들다. ‘그만둘 때 예상 못했냐’는 핀잔이 날아오기 때문이다. 커피 바리스타 과정 등록비라도 내려면 남편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

올해 여성 고용률은 7년 만에 50%를 돌파했다. 2007년 50.0%를 기록한 이후 줄곧 40%대에 머물던 고용률이 50.2%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한 것이다. 그러나 20대의 높은 고용률이 30대 들어 곤두박질치는 경력단절 현상은 그대로다. 25~29세 여성 고용률은 70.1%에 달해 같은 연령대 남성 고용률(69.3%)을 넘어섰지만 30~34세 여성 고용률은 57.3%, 35~39세에선 55.2%로 급격하게 떨어졌다. 경력단절 여성은 전체 규모로 따지면 200만명에 육박한다. 전체 미취업 기혼여성 406만명 가운데 절반에 가까운 195만명이 가사 때문에 경력단절을 겪고 있는 것이다.

지난 3월 가전제품 영업사원으로 재취업한 조은희씨(43)는 경력단절을 두 차례 겪었다. 두 번에 걸쳐 새로 얻은 일자리는 모두 이전과는 전혀 다른 업종이었다. 결혼 전까지는 연구원으로 일했던 조씨는 3년 전 국비 지원사업으로 디자인교육을 받아 재취업했다. 하지만 1년7개월간의 계약기간이 끝난 뒤로 영업직 일을 구하기까지 넉 달 동안 일자리를 잡지 못했다. 첫 번째의 경력단절은 조씨 자신의 뜻에 따른 것이었지만 두 번째는 불안정한 일자리 때문이었던 것이다.

두 번의 경력단절을 거치며 월급봉투는 더 얇아졌다. 지금의 일인 영업직은 조씨에게 익숙하지 않은 점도 있지만 소득이 불안정한 것이 가장 큰 걱정이다. 조씨가 지금 받고 있는 월급은 9년 전 받던 액수의 3분의 2 수준이고 디자인회사 때보다도 20만~30만원 적다. 9년 동안 물가가 오른 폭을 감안하면 체감상으로는 절반에도 못 미친다. “영업실적에 따라 매달 수입이 왔다갔다 하니까 공치는 달에는 오히려 적자 볼 때도 있고, 실적 때문에 무리하게 지인들 계약시켰다가 도로 철회하면 수당 다시 뱉어내기도 해야 되니까 주머니가 항상 비어 있는 느낌이에요.”

조씨처럼 경력단절 경험이 있는 여성의 월평균 임금은 약 149만원으로 일반 취업 여성의 임금보다 55만원가량 적었다. 여성가족부의 ‘경력단절여성 경제활동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결혼·임신·출산 경험이 있는 전국 25~59세 여성 5854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이 조사에서 취업 경험이 있는 여성 5493명 중 경력단절을 겪은 여성은 절반 이상인 3185명(58%)에 달했다. 재취업했을 경우 월평균 임금은 122만원으로 이전 일자리의 임금 144만원보다 22만원이나 줄어들었다. 특히 경력단절 전후의 임금 차이는 연령대에 따라 차이가 컸다. 30~34세 여성이 51만9000원으로 가장 컸고, 35~39세(38만6000원), 25~29세(38만원), 40~44세(22만2000원) 순이었다.

경력단절로 나이 들수록 남녀격차 심화
경력단절 없이 다니던 직장을 쭉 이어서 다녔다면 경력단절 여성이 현재 받는 임금보다 3분의 1가량 더 받는 것으로 나타났다. 경력단절 이후 재취업한 여성은 전체의 66.3%인 2112명이었는데, 경력단절 여성의 월평균 임금 149만6000원보다 경력단절 없는 여성의 임금이 204만4000원으로 54만8000원 높았다. 조씨의 경우처럼 재취업 후 다시 경력이 단절돼 일자리를 구하지 못한 여성도 26.7%로 4명 중 한 명 꼴이었다.

전문가들은 경력단절 문제를 경제적으로만 따져보면 보육비에 대한 부담이 경력단절로 이어지고, 경력단절은 다시 저임금의 불안정한 일자리밖에 구할 수 없는 악순환을 낳는다고 지적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노동력 통계를 보면 한국 여성의 경제활동 참가율이 20대 후반 70% 안팎 수준에 도달하는 점은 OECD 평균과 비슷하다. 그러나 30대에 들어서서도 경제활동 참가율이 완만하게 상승하는 OECD 평균과는 달리, 한국에서는 30대 여성의 경제활동 참가율이 급격하게 하락한 뒤 60대 이상 고령층에서만 오히려 OECD 평균에 비해 높아지는 현상이 나타난다.

게다가 남녀간 경제활동 참가율 격차(29.6%포인트)에 비해 임금 격차(36%포인트)는 더 크다. 경력단절 현상 자체가 세계적으로 드문, 한국에서 고유하게 나타나는 현상인데, 그 때문에 남녀간 격차가 높은 연령대로 갈수록 더욱 심해진다는 결론이다.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의 최정은 연구원은 “경력단절 시기 여성의 경제활동은 남성의 57.8%로 급격히 하락하고, 임금도 남성의 82.4%로 같이 낮아진다. 그러나 경력단절 시기 이후 40대에 여성의 경제활동 인구는 남성의 68.6%로 약간 회복되지만, 임금은 오히려 남성의 58.1%로 더 떨어진다”고 지적했다.

경력단절 현상을 완화하려면 세간의 예상과는 달리 남성의 육아휴직을 활성화하는 것이 더욱 효과적이라는 의견이 다수다. 지난해 육아휴직을 한 노동자 6만9616명 가운데 3.3%(2293명)만이 남성이었다. 정부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남성이 아내에 이어 육아휴직을 쓰는 경우 통상임금의 40%인 육아휴직 급여를 올해 10월부터 첫 달엔 통상임금의 100%까지 지급하기로 했다. 하지만 고작 1개월만 유효하다는 점과 육아휴직을 거부해도 기업에는 제재가 없어 실효성이 낮을 것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노르웨이·스웨덴 등의 국가에서 남편의 의무적 육아휴직 기간을 60일까지 보장한 뒤 활용률이 90%를 넘긴 사실을 되새겨봐야 한다는 것이다. 김종숙 여성정책연구원 여성일자리·인재센터장은 “일·가정 양립 정책이 사업장의 여건은 그대로인 채 기혼여성의 가정부담을 완화하는 지원방식에 머물게 되면 목표를 달성하기 어렵다”면서 “남성중심적 기업문화의 변화와 함께 남성의 육아 참여와 육아휴직제도의 평등한 활용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김태훈 기자 anarq@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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