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일본서 20년 가까이 운항하던 선박… 연안여객선 4척 중 1척은 20년 넘은 노후선
“일본에서 쓰던 여객선을 한국에 매각.”(2014년 일본 교도통신)
“한국에서 쓰던 여객선은 동남아 국가에 헐값으로 매각.”(2009년 국토해양부)
일본에서 20년 가까이 사용되던 여객선은 한국으로 흘러오고, 한국에서 10년 더 운항하면 동남아 국가로 흘러들어간다. 즉 ‘해양선진국’에서 사용되는 여객선은 ‘해양중진국’으로 갔다가 ‘해양후진국’으로 소유가 바뀌게 되는 것이다.
MB정부 때 선령제한 30년으로 늘려
침몰된 여객선 세월호(6825톤)는 이런 운명을 지닌 채 지난해 우리나라에 들어와 인천과 제주를 왕복했다. 세월호는 1994년 6월부터 2012년 9월까지 ‘페리 나미노우에’라는 이름으로 일본 규슈 남부 가고시마 현과 오키나와를 잇는 일본 내 정기선으로 운항한 것으로 일본 언론에 의해 확인됐다. 교도통신은 ‘일본이 만든 선박이 15∼20년 운항하고 나서 아시아 지역에 매각되는 사례가 많으며, 정비·개조하면 30년 정도 운항 가능하다’고 전했다. 일본의 선박법에 의하면 세월호 같은 2000톤 이상 여객선의 내용(耐用) 연수는 15년이다. 15년 이상 운항하면 쓸 만큼 썼다고 보는 것이다. 이 배들은 동남아시아로 매각된다는 것이 일본 언론의 보도다.

사고로 침몰한 여객선 세월호의 운항 당시 모습. | 연합뉴스

일본에서 페리 나미노우에로 18년 3개월 동안 운항된 이 배가 지난해 한국으로 들어와 세월호로 바뀌었다. | AP연합
해양수산부가 국회 농림해양수산위 김승남 의원(새정치민주연합)에게 제출한 자료를 <주간경향>이 분석한 결과, 국내에서 5000톤급 이상 대형여객선 7척 모두가 일본 등 다른 나라에서 운항하던 여객선을 수입해 운영해오고 있다. 일본에서 5척, 스페인과 프랑스에서 각각 1척이 수입됐다. 수입연도와 건조연도를 비교해 보면 대형여객선은 우리나라에 수입될 당시 이미 선령((船齡·배의 나이)이 12∼26년에 이르렀다. 7척의 대형여객선 중 1척을 제외하고는 6척이 현재 20년 이상 노후화된 여객선이다. 침몰한 세월호는 20년 이상 노후 여객선 중 가장 선령이 어리다. 1987년에 건조돼 선령이 27년인 여객선도 있다. 하지만 법적으로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매년 검사를 거치면 30년까지 운항할 수 있다.
2009년 당시 국토해양부(장관 정종환)는 내항 여객선에 대한 ‘규제완화’를 단행했다. 선령 25년까지만 허용되던 사용가능 연한을 5년 연장해 최대 30년까지 사용할 수 있게 한 것이다. 해운법 시행규칙의 개정·시행을 알리는 이 보도자료에는 ‘그동안 내항 여객선은 25년이 되면 더 이상 운항할 수 없게 되어, 유람선·화물선 등 타 선종으로 개조하여 운항하거나 동남아 국가 등에 헐값으로 매각을 해야 하는 부작용이 있다’고 밝혀 놓았다. 우리나라에서 선령 25년까지 이용됐던 여객선들이 과거에 동남아시아로 헐값에 팔려나갔다는 사실은 역설적으로 일본에서 20년가량 이용한 여객선을 한국이 사온다는 현실을 더욱 뼈아프게 인식하게 만든다. 한 선박전문가는 “우리나라도 대기업의 조선소에서 얼마든지 안전한 대형여객선을 만들어 수출하곤 하지만 정작 국내에 판 적은 한 번도 없었다”며 열악한 여객산업 상황을 한탄했다. 이 전문가는 “일본에서 싸게 사서 운항해도 적자인데 비싼 배를 (우리나라에서) 지어서 운항하면 어떻게 수지를 맞출 수 있겠나”라고 반문했다.
세월호 침몰사고는 급격히 항로를 바꾼 변침(變針)이 가장 큰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여기에다 증축 의혹, 운항 관리 부실, 승무원들의 잘못된 대처가 큰 참사를 불러일으켰다. 때문에 20년 이상 된 노후 여객선이 사고와 직접 관련이 있다고 말할 수는 없다. 해수부는 노후 여객선이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해수부 관계자는 “사고가 나니까 그렇게 볼 수 있는 것이지, (안전에) 문제가 있으면 검사증서가 나오지 않는다”고 말했다. 한 선박전문가 역시 “배는 건조될 당시 안전에 대해 거의 완벽하게 설계되기 때문에 20년 이상 되었다고 해서 안전에는 크게 문제될 것이 없다”고 설명했다. 일본의 언론이 언급했듯이 30년 동안은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것이다. 국회 농림해양수산위 한 야당의원 측은 “해양선박업계에 노후 선박의 문제점에 대해 물어보니까 30년 정도까지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인식이 널리 퍼져 있어 묻는 사람이 더 무안해졌다”고 말했다.
하지만 1인당 국민소득이 2만6000달러에 이르는 OECD 가입 국가에서 20년 가까이 다른 나라에서 운항하던 여객선을 통상적으로 이용한다는 사실은 육·해·공 중 해상 교통산업이 가장 열악하다는 점을 말해준다. 이에 비해 우리나라 항공 여객기의 경우 모두 새로운 기종을 사들여와 사용한다. 저가항공사도 새로 만든 여객기를 운항한다. 항공사들은 여객기를 20∼25년 사용하다가 다시 제조회사에 팔고 있다. 이 비행기는 제조회사에서 수리된 후 아프리카 등지로 팔려나간다. 일본에서 20년 사용된 후 한국에 들어왔다가 다시 동남아로 팔려나가는 여객선과 비슷한 예다. 한 야당 국회의원 측은 “노후 여객선이 안전에는 문제가 없다지만 이번 사건을 계기로 해양 후진국이라는 딱지를 떼려면 해상 교통망에 대한 근본적인 개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2012년 국토해양부가 발표한 제1차 국가해사안전기본계획(2012-2016)의 비전 및 목표는 “세계 10대 해양안전 강국 실현”이다. 세부 목표는 ‘대형사고 제로화(5년간 1건→0건)’다. 여기에 ‘선박 안전성 강화’가 등장하며 ‘노후 선박 안전검사 강화 및 선박 검사제도 선진화’라는 항목이 등장하고 있다.
국내서 건조해 운항할 수 있게 지원을
세월호가 침몰함으로써 이 비전은 모두 물거품으로 돌아갔다. 해양수산부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운항 중인 연안여객선은 모두 173척이다. 이 중 20년 이상이 된 배는 모두 42척으로 전체 여객선의 24.5%에 이른다. 문제는 최근 20년 이상된 배가 부쩍 늘고 있다는 점이다. 2008년 국토해양부 자료에 의하면 20년 이상 선박은 12척(전체 166척)에 불과했다. 2011년에 20년 이상인 배가 23척(전체 167척)이었다가 불과 2년 후인 2013년에는 42척(전체 173척)으로 대폭 늘어났다. 세월호처럼 일본 등지에서 사온 배가 불과 몇년 사이에 30척 증가했음을 알 수 있다.
2009년 국토해양부는 여객선의 선령 연장에 대해 선령 제한이 없는 외항선 및 내항 화물선과 형평성을 기한다는 이유를 근거로 내세웠다. 외항선과 내항 화물선의 경우 노후화된 선박이 여객선에 비해 훨씬 많다. 해양수산부의 2013년 자료에 따르면 여객선을 포함한 우리나라 선박은 모두 9435척이며, 이 중 무려 35년 이상이 된 배는 1112척(11.8%)이다. 20년 이상된 배는 4365척으로, 전체 선박의 거의 절반에 가깝다.
국토해양부는 당시 “다만 선박 노후로 인한 해상사고 가능성을 보다 철저히 예방할 수 있도록 선박검사 기준을 합리적으로 보완한다”고 덧붙여 놓았다. 세월호 침몰사고로 볼 때 이 예방 기능이 보완됐다고 볼 수 없다. 선령제한 연장은 결국 여객선의 노후화만 부추겨 사고 위험성을 크게 해놓았을 뿐이다. 새정치민주연합 조정식 의원은 “노후화된 선박의 경우 고장으로 인한 사고의 위험이 높은 것을 고려할 때 여객선 선령제한 완화는 해상사고의 위험성을 키울 수 있다”고 지적했다.
우리나라는 일본처럼 자국에서 여객선을 만들어 15년 정도까지만 이용하는 것은 불가능할까. 한 선박전문가는 “정부에서 조선사와 여객선사에 충분한 인센티브를 준다면 국내 조선사에서 가격을 낮추고 안전성을 확보한 여객선을 만들어 여객선사에 공급할 수도 있을 것 같다”고 일말의 희망을 피력했다.
<윤호우 선임기자 hou@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