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전투기 길목에 있는 제2롯데월드 안전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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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주로 중심축과 거리도 가까워 비행기 전술대형 유지하기도 곤란

2009년 2월 국회 국방위원회 주관으로 열린 제2롯데월드 신축 관련 공청회. 필자는 그때 신축 반대 측 진술인으로 참석한 바 있다. 공청회가 열리기 직전 당시 공군본부 정보작전참모부장이었던 윤우 소장으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요지는 “특히 전투기 운용과 관련된 전술적인 분야에 대해선 언급하지 말라”는 것이었다. “나는 당신의 부하가 아니다”라는 대답을 하고 끊긴 했지만, 이명박 대통령이 공군 참모총장까지 바꿔가면서 추진하는 사업인데 윤 소장이 무슨 죄가 있겠나 싶어 고민 끝에 전술분야에 관련된 진술은 빼고 발표했다. 골자를 뺀 상태에서 설명하려니 핵심적인 사항을 전달하기가 무척 어려웠던 기억이 남아 있다.

성남 공군기지는 유사시 전투비행단으로 전환될 수밖에 없는 공군의 최전방 기지다. 인구 2500만명이 운집한 수도권의 동부지역에는 전투비행장이 없다. 후방에 원주기지가 있으나, 유사시 전선이 이동하거나 다른 기지에서 출격한 비행기들이 기상악화 등으로 비상상황에 빠지면 성남기지를 이용할 수밖에 없다. 

신축 중인 제2롯데월드(사진 우측 중앙) 주변으로 지난 16일 헬기 충돌사고가 발생한 서울 삼성동 아이파크 아파트(좌측 상단) 등 고층건물들이 밀집해 있어 항공사고 위험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다. | 이상훈 선임기자

신축 중인 제2롯데월드(사진 우측 중앙) 주변으로 지난 16일 헬기 충돌사고가 발생한 서울 삼성동 아이파크 아파트(좌측 상단) 등 고층건물들이 밀집해 있어 항공사고 위험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다. | 이상훈 선임기자

또 최소한의 비상 요격기들은 성남기지로 이동시켜 적의 공습을 최대한 원거리에서 저지해야 한다. 이를 위해선 성남기지는 민간공항의 기준이 아니라 군용공항의 요건을 충족시켜야 하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군용기의 전술 입·출항 절차가 가능해야 한다는 얘기다.

전투기 우회하는 만큼 대응 늦어져
전술 입·출항이란 이·착륙시 가장 취약한 상태에 놓이는 전투기들을 보호하기 위해 편대장과 요기급 조종사가 서로를 보호하는 대형을 펴는 것을 뜻한다. 같은 편대원 전투기의 후미에서 날아오는 미사일이나 적기의 진입을 경계하기 위한 것이다. 

보통 이륙 직후와 착륙 전 비행장 상공 진입 시에 전술대형을 유지하는데, 그 간격은 4000~6000피트, 대략 1.3~2㎞의 간격을 유지해야 한다. 때문에 성남기지의 동편 활주로를 동쪽으로 3도 틀더라도 제2롯데월드가 동편 활주로의 중심축 선에서는 1.2㎞, 서편 활주로의 중심축 선에서는 1.9㎞밖에 떨어져 있지 않아 여전히 전술기의 운용은 제한될 수밖에 없다. 2009년 국회 공청회 당시 윤 소장이 빼달라고 요구했던 부분이 바로 이 부분이었다.

전시가 되면 적의 기습에 대비해 비상대기 전력을 전방으로 추진 배치하여 유지시킨다. 비상대기 전력은 긴급발진 명령을 받으면 이륙 직후 적기가 오는 방향으로 선회해야 한다. 

성남기지의 위치가 서울을 기준으로 동부에 위치하기 때문에 주전선인 서북부지역으로 가려면 이륙 직후 즉시 좌선회를 해야 한다. 바로 그 길목에 제2롯데월드가 위치하고 있기 때문에 비상대기 전력은 이 건물을 우회하는 과정에서 그만큼 대응이 늦어질 수밖에 없다.

민간 항공기들은 정해진 경로를 따라 움직이기 때문에 지금 내놓은 조치로도 운항이 가능할지 모른다. 그러나 전술기의 운용개념은 다르다. 더욱이 전시상황에서는 적군과 아군 모두 서로의 항법장비를 운용하기 어렵게 방해작전을 수행한다. 

때문에 롯데가 좋은 장비를 사준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만일 미군이 운용하는 오산이나 군산기지 주변 비슷한 위치에 제2롯데월드와 같은 고층건물을 짓겠다고 제안한다면 미군은 미친 짓이라고 바로 거절할 것이다.

참여정부 시절 노무현 전 대통령도 공군을 여러 차례 설득하려 했다고 알려져 있다. 당시엔 공군이 단호하게 거부하는 태도를 보였고, 노 전 대통령도 안보를 우선해 공군의 의견을 받아들였다. 게다가 특히 중요한 것은 공군이 이때는 동편 활주로를 최소 7도 이상 틀어야 한다고 결론을 냈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 들어 이 각도는 2.97도로 조정됐다.

이 부분이 가장 큰 문제인데, 방향을 7도 틀게 되면 비행장 외부의 부지까지 매입해야 하고 인접 야산 하나를 없애야 했다. 또 제2롯데월드 방향은 고도제한이 풀리지만 반대편인 동쪽 방향의 성남지역에는 고도제한구역을 새로 추가해야 하는 등의 문제가 발생한다. 엄청난 비용과 새로운 민원이 발생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기지 내부에서 해결 가능하도록 2.97도만 방향을 틀게 결정한 것은 사실상 롯데그룹에 엄청난 특혜를 준 것으로 볼 수 있다.

전투기 동원 실전적 안전점검해야
2009년의 공청회 당시 여당인 한나라당(현 새누리당)의 내부에서도 제2롯데월드 문제를 지적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유승민 의원은 “내 지역구에도 공군 비행장이 있어 소음 등 많은 문제가 있지만, 비행장을 없애거나 이전하기 전까지는 작전에 지장을 주는 장애물을 건설해서는 안 된다. 제2롯데월드의 고도도 제한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여당 의원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이명박 정부는 제2롯데월드 신축 허가를 강행했다.

필자는 한 재벌기업의 이익을 위해 공군을 무기력하게 만든 문제는 지난 정권의 책임이 가장 크다고 본다. 공군은 참여정부 시절 노 전 대통령에게서 제2롯데월드의 고도제한을 이끌어내기도 했지만,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자 제2롯데월드의 건설이 가능하도록 앞장설 수밖에 없었다. 

자신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하는 훌륭한 군인들이 정치적인 이유로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많은 사람들로부터 잘못된 평가를 받으며 평생 마음의 짐을 지고 살아야 한다는 것을 생각하면 가슴이 아프다.

이번 서울 도심의 헬기 추락사고 이후 새누리당 이혜훈 최고위원의 입에서 제2롯데월드의 고도를 제한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지만, 이미 시작된 공사로 인한 안보와 안전 위협에 대해 책임을 묻는 소리는 없다. 새누리당은 인허가 과정부터 철저히 조사하도록 나서야 한다. 온갖 꼼수를 동원, 공군 최전선 비행장의 주요 경로에 전봇대를 박아 국가안보에 위협을 초래한 자들에게 철저한 심판을 내려야 한다.

박근혜 대통령과 정부·여당에 간곡히 청한다. 이미 시작된 제2롯데월드의 신축공사는 진행하더라도 공사 기간 중 실제 전투기를 동원한 실전적인 안전점검을 지속적으로 실시해 안전에 저해가 되는 고도에서 층수를 제한하는 조치를 취해주기 바란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베트남전 당시 미군이 운용하던 최신예 기종인 F-4 전투기를 한국 공군이 도입할 수 있도록 오랜 협상을 거쳐 미국을 설득했을 정도로 공군에 애정을 가졌다. 이런 박 전 대통령의 무덤에 자칭 애국세력들이 오히려 침을 뱉는 결과가 나오지 않기를 기원한다.

 김성전 <국방정책연구소 소장·예비역 공군 중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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