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총선유권자 네트워크 공천배제 명단 발표…‘파급력’ 관심
유권자의 기억, 약속, 심판. 2012년 유권자운동의 핵심 모토다. 채 두 달도 남지 않은 4·11 총선. 시민사회발 유권자운동은 어느 정도의 변수가 될까.
이번에 결성된 총선유권자네트워크에는 1000여개의 시민사회단체가 참여했다. 9일 발족식 자리에서 18대 국회예산안 날치기 참여 국회의원 명단 143명을 발표하면서 활동을 시작했다. 이어 14일 4대강복원범국민대책위원회(이하 4대강 대책위)의 ‘4대강 사업 추진·찬동 인사 심판과 재자연화 약속 촉구 기자회견’이 이어졌고, 17일엔 한·미 FTA 저지 범국민운동본부가 ‘한·미 FTA 관련 심판대상 정치인 명단발표’를 했다. 4대강 대책위가 1차로 발표한 찬동 정치인 명단은 30명. FTA 심판대상 정치인 명단은 160명이다.

2월 16일 참여연대 느티나무홀에서 열린 한·미 FTA 심판 대상 정치인 명단발표 기자회견장에서 참석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 정지윤 기자
2월 20일에는 ‘조중동방송저지네트워크’가 ‘조중동 방송을 만드는 데 앞장선 10적(敵)’ 및 20적, 30적 정치인 명단을 발표한다. 이 밖에도 ‘역사정의날조 주범 명단’, 노동단체 등이 주도하는 ‘노동악법 날치기 관여 정치인 명단’ 역시 늦어도 2월 말 이전에 발표된다. 이들 명단은 총선유권자네트워크가 개설한 홈페이지(remenberthem.kr)에 게재된다. 각 명단에서 중복되어 거론된 인사들, ‘4관왕’, ‘5관왕’ 인사들도 점쳐진다. 주로 새누리당 친이계 인사들이다.
‘5관왕’ 주인공은 새누리당 친이계 의원?
시민사회 정치개입운동의 시작은 2000년 총선시민연대 활동이다. “바꿔!” 열풍을 몰고 온 총선시민연대의 낙천낙선운동은 당시 16대 총선의 최대변수가 됐다. 17대 국회의원을 뽑았던 2004년 시민사회의 정치개입은 ‘2004년 총선시민연대’와 ‘물갈이연대’라는 양대 축으로 진행됐다. 2008년 18대 국회의원 선거. 2007년 대선의 후유증인지 시민사회의 ‘총선연대’ 활동은 없었다. 보수정권으로 정권교체 후 여당이 된 한나라당의 압승이었다.
2000년 총선시민연대 주역들의 모습은 기자회견장에서 보이지 않는다. 2000년 총선시민연대 공동대표를 맡았던 박원순 당시 참여연대 사무처장은 현재 서울시장이다. 박 시장만이 아니다. 지난 10여년간, 시민사회의 많은 인사들이 제도정치권에 진입했다.
무엇보다도 궁금한 것은 이들의 유권자운동이 과연 얼마나 파괴력을 발휘할 것이냐는 것이다. 2월 말까지 예정된 1차 명단 발표는 각 정당의 공천을 염두에 둔 것이다. 공천 단계에서부터 배제해야 한다는 것이다. 리스트의 편중성 논란도 있다. 지난 18대 국회에서 한·미 FTA뿐 아니라, 첨예한 논란의 대상이었던 법안들은 대부분 날치기로 통과되었다. 주인공들은 현재 새누리당 의원들이다. 향후 발표될 리스트에서도 ‘절차적 정당성 결여’가 주요한 고려사항이 될 경우 확실한 ‘증거’가 남는 표결과정에 참여한 새누리당 의원 대부분이 리스트에 오르게 된다.
반면 아예 표결 과정에 참여하지 않은 야권인사들은 상대적으로 명단에 적게 들어갈 수밖에 없다. 여기에 ‘시민정치’나 ‘야권연대’ 등을 표방하고 각 당의 예비후보로 등록한 시민사회 인사들이 포진하고 있다는 점도 논란을 더한다. 즉 시민사회 밖에서 볼 때 결국 ‘자기 후보를 밀어주기 위해 공천에서 배제하자는 운동을 하는 게 아니냐’는 논란이다. 이항진 4대강범대위 상황실장은 “4대강의 경우, 사업 찬동 발언 등을 A급, B급, C급으로 구분해 그 중 A급과 B급에 해당하는 19대 총선 예비후보 등록자 30명을 1차 명단에 올린 이유가 바로 그런 우려 때문”이라며 “그렇다고 하더라도 4대강 추진 주체 등을 볼 때 대상자가 여당에 편중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현실”이라고 말했다.
새누리당보다는 절대적으로 적게 선정되겠지만 야권에 얼마만큼 ‘영향력’을 가질지도 미지수다. 4대강 찬동 명단에는 전남 화순에서 출마한 최인기 후보가 민주통합당 공천신청자 중에서는 유일하게 들어가 있다. 최인기 예비후보 쪽에서는 4대강 명단이 발표되던 당일 해명서를 4대강 범대위 쪽에 제출했다. 최 후보 측은 “MB의 대운하 4대강에 대해서는 당연히 반대하며, 우리가 찬성한 것은 영산강 살리기”라고 주장하며 “영산강 수질 개선 등이 지역사회 염원이기 때문에 당이 공천배제 요구를 받아들일 리 없다”고 주장했다.
4대강이나 종편과 관련된 정책이나 입안이 MB정책이라면, FTA는 참여정부와 이명박 정부 양대 정부에 걸쳐 있는 사안이기 때문에 보다 논란의 대상이다. 16일 FTA범국본은 표결에 참여한 새누리당 의원 이외에 ‘합의비준 주도’ 민주당 의원 7명의 공천배제를 요구했다. 박석운 FTA범국본 공동대표는 “현재 발표한 1차 명단 7명이 전부가 아니며 민주당 비공개 의총에서 ‘선비준 후재협상론’을 편 7명을 추가로 선정해놓은 상태”라며 “이분들이 자신의 정확한 입장이 무엇인지 공개적으로 해명하길 요구한다”고 말했다. 관전 포인트는 앞으로 진행될 각 부문별 명단 발표에서 민주통합당에서도 중복 거론되는 인사가 나올 것이냐는 것이다. 만약 ‘2관왕’ 이상의 의원이 나온다면 민주통합당 공천심사위원회에서도 결코 무시할 수 없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이번 유권자네트워크의 공천배제 명단이 ‘18대 국회의원’, ‘정책에 대한 태도와 입장’ 중심으로 선정되면서 빈 구멍이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지난 2000년과 2004년 총선시민연대의 리스트 선정과정에 참여했던 한 시민사회 인사는 “지난 18대 국회의원에 당선되지는 않았지만, 지금 예비후보를 신청한 인사들이 여야를 막론하고 꽤 된다”고 지적했다.
또 하나의 관전포인트는 지난 12월 29일 헌재가 ‘SNS 이용 선거운동 금지는 위헌’이라는 판결을 내리면서 인터넷에서 낙천낙선운동을 비롯한 선거운동이 전면 허용되었다는 것. 이번 4·11총선은 일반시민들으로선 온라인에서 무제한적으로 선거에 대한 발언이나 행동이 허용된 첫 선거다. 선관위 관계자는 “이번 총선은 허위사실에 근거한 후보자 비방이 아닌 경우 퍼나르든 게시하든, 메일로 보내든 일반인들이 인터넷 상에서 진행하는 선거운동은 상시 허용된다”며 “다만 오프라인에서 인쇄물이나 현수막 등 선거에 영향을 미치는 내용이 들어가면 180일 안에는 제한하고 있는 공직선거법 상 규정이 여전히 유효하다”고 말했다. 유권자네트워크 홈페이지는 일반인들의 SNS 참여를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고안되었다. 페이지에서 각 후보자를 검색하면 후보자 인적정보와 함께 이들이 특정 공천배제 리스트에 들어있는지 여부가 자동으로 표시된다. 그리고 클릭 하나로 그 ‘사실’은 트위터와 페이스북 등 SNS를 통해 공유할 수 있다.
총선유권자연대 비장의 무기, SNS
박상필 성공회대 연구교수는 “과거 2000년 총선의 경우 총선연대의 낙천낙선운동이 선거 시기 담론을 주도했지만 그 후 시민사회가 분화·다양화를 거치면서 하나로 묶는 담론이라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해졌다”라며 “하지만 이번 총선에서는 SNS라는 유력한 수단을 매개로 한 특히 젊은 층의 참여로 기존 구도가 허물어질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낙관론만 있는 것은 아니다. 이원재 카이스트 문화기술대학원 교수는 “과거 촛불의 경험에서 봤듯이 ‘깃발’이 나타나면서 호응은 오히려 줄었다”며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벌이는 운동을 조직화된 운동단체가 자신들의 지지 세력으로 간주하거나 자기운동의 모멘텀으로 내부화하려고 하면 큰 공감을 얻지 못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SNS가 없었던 2000년 낙천낙선운동 때는 최초로 시민들이 자발적인 목소리를 낸다는 의미가 있었지만, DJ·참여정부 시기 시민단체 출신인사의 제도권 참여를 ‘경험’한 지금엔 그 정당성 주장이나 호소력이 예전 같진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조대협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는 “흔히 시민정치라는 표현을 많이 쓰는데, 선거정치에 직접적으로 뛰어든 것만 시민정치가 아니라 과거 낙천낙선운동과 같은 행위도 정치감시·권력감시라는 측면에서 일종의 시민정치라고 할 수 있다”며 “SNS 발달과 함께 기존 조직운동 중심의 ‘운동정치’가 네트워크 중심의 미시정치로 나아가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데, 성공 또는 실패 여부를 떠나 시민사회로서는 온라인 공간에서 대중과 접근성을 넓히면서 새로운 전환의 길을 발견하는 성과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유권자들의 자발적인 심판은 이미 시작되었다”

정용인 기자
2000년 총선시민연대 일정과 비교해본다면 명단 발표 등이 다소 늦은 감이 있다.
“그때와 상황이 많이 다르다. 2000년 총선연대는 여러 단체가 모여 단일한 기준을 만드는 것이었다. 자료를 모으고 조정·의견을 구하는 기간과 비교해보면 지금은 오히려 빠르다. 엄밀히 말해 현재 유권자 운동은 낙선운동이 아니다. 의정 정책과 관련 정치인 활동을 기억하자는 것이다. 그동안 관련 운동을 해오던 연대기구들이 자신들의 활동을 통해 검증된 기억을 공개하는 방식이다. 연대기구별로 늦게 발표하는 데도 있지만, 일정은 당겨질 것이다. 또한 2000년 총선연대처럼 단일한 리스트가 아니라 다양한 분야에서 상대적으로 독자성이 있는 리스트가 발표될 것이다.”
파급력이 어느 정도일 걸로 예상하나.
“일단 온라인에서 시너지 효과가 날 것으로 기대한다. 올해 총선유권자네트워크의 특징은 아무래도 단체가 주도한다는 것이다. 게다가 단일한 단체 주도가 강조되는 것이 아니라 유권자의 선택권이 강조되는 형태다. 다양한 리스트가 공개되거나 발표된다. 어떤 문제를 더 중시하게 될지, 어떤 것을 기준으로 판단할지는 유권자 판단이나 재량에 맡겨져 있다. 리스트가 배포되거나 알려지는 방식도 유권자들이 보고, 이 정보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면 그 정보를 퍼 나르는 방식이다.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보는 이유는 유권자들이 이전보다 능동적으로 변했다는 점이다. 스스로 기록을 만들어 돌리는 것은 이미 시작되고 있다. 단체들의 리스트는 이런 유권자들의 자발성을 촉진하는 역할이다.”
진보단체가 대거 결합했다는 것도 특징이다. 몇몇 단체의 참여를 두고 색깔시비가 나올 수도 있는데.
“2000년 이후 시민단체와 진보단체 이슈의 벽이 약화되었다. 활동방식에서도 예를 들어 ‘민중단체는 거리에서, 시민단체는 입법로비를 통한 제도적 변화’라는 식의 도식이 많이 흔들리고 있다. 복지나 한·미 FTA, 평화 등의 이슈에서 의제분리가 사라졌다. 이를테면 최근 4대강 등 환경문제에 대해서 노동단체들의 관심도 높아졌다. 의제수렴현상이 생기는 까닭은 현재 세계적으로 큰 경제위기를 겪고 있고, 한반도 정세가 급변했기 때문이라고 본다. 전체적으로 어떻게 새로운 사회를 만들까 사회개혁운동이 거시적 비전을 가져야 한다. 그 점에서 수렴점이 생기는 것 같다. 정치권도 자신들의 정치강령을 근본적으로 검토하고 있다. 심지어 새누리당까지도 변화를 모색하고 있지 않나. 사회경제적 환경의 변화가 바탕에 깔린 것이라고 본다”
아무래도 정파적이라는 공격이 나올 것 같다.
“부인하지 않는다. 과거처럼 도덕성이 기준이라면 정파적 편향 논란이 덜하겠지만, 실제 결정된 정책을 근거로 하기 때문에 정치적으로 편중될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유권자에게 선택을 강요하는 것은 아니다. 유권자의 정서도 현 정부의 정책에 대해 비판적인 것이 사실이 아닌가. 비판적인 유권자들에게 구체적으로 기억해 봐야 할 것을 상기시키는 활동이다. 이것은 지금의 야당에 대한 경고 메시지이기도 하다. 만약 이번 총선에서 야당이 승리한다고 하더라도 그들이 잘못된 정책의 길로 간다면 역시 그 기록은 축적되어 다음 총선에서 심판의 대상이 될 것이다.”
<정용인 기자 inqbus@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