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자들이 죽어간다. 구조조정으로 인한 과로와 스트레스로 죽고, 극악한 노동조건 때문에 생긴 각종 사고로 죽고 있다. 해고당해 자살하고, 그 가족도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국가와 자본은 죽음을 외면하고 마땅한 책임마저 회피한다. 사회는 노동자들의 죽음에 슬퍼하고 분노할까. 스티브 잡스 한 명의 죽음만도 못하다. ‘사회적 타살’ 지적이 나오지만, 주류 지식사회와 정치권은 ‘2011 전태일’에게 관심 없어 보인다.
지난 9일 서울역과 인천공항을 운행하는 코레일공항철도에서 작업 중이던 비정규직 하청노동자 5명이 열차에 치여 숨졌을 때 논평을 낸 곳은 진보신당 한 곳뿐이었다. 두 개의 ‘야권’은 ‘통합’ 때문에 정신이 없었던 것일까.

2011년 4월 20일 시민단체 회원들이 서울 여의도 전경련회관 앞에서 산업재해로 숨진 노동자들이 겪은 열악한 상황을 묘사하는 퍼포먼스를 펼치고 있다. /서성일기자
코레일에는 또다른 죽음이 있다. 지난 11월 21일 코레일 해고자인 허모씨(39)가 집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동료들이 죽음의 낌새를 채고 집을 찾아갔을 때 화장실 욕조 옆에는 연탄불이 피워져 있었다. 그는 2009년 철도파업 참여 이유 등으로 2010년 1월 말 해고됐다. 당시 사측은 108명을 해고했다.
쌍용자동차 노동자와 가족들은 19명이 죽었다. 11월 8일 쌍용자동차에 재직 중이던 윤모씨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틀 뒤 희망퇴직한 한 노동자의 아내도 주검으로 발견됐다. 금속노조 쌍용차지부는 “왜 살지 않고 죽음을 선택하냐고 소리쳐보지만 누구도 막지 못하고 있으며, 소위 산자와 죽은 자. 공장 안에서 일하는 노동자, 공장 밖으로 밀려나온 노동자를 가리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고강도 구조조정에 따른 사직 권고, 직무전환 요구 등은 노동자들의 죽음으로 이어진다. 지난 4년간 숨진 케이티(KT) 노동자 사망원인 중 심근경색, 뇌출혈 등 순환기계통 질병이 평균보다 높았다.
녹색병원 노동환경건강연구소의 ‘케이티와 케이티 자회사 노동자 정신건강 실태조사’ 보고서를 보면, 2007년부터 올해 10월까지 사망한 케이티 노동자 74명의 사망원인 1위는 순환기계통 질환으로, 무려 31명(41.9%)이 순환기계통 질병으로 숨졌다.(중략) 임상혁 노동환경건강연구소장은 “순환기계통 이상으로 인한 돌연사는 업무상 스트레스 때문일 개연성이 크다”고 말했다.(한겨레 2011년 12월 6일자, 사람잡는 KT 구조조정? 사망자 42%가 순환기계통 질환)
사업장 자체가 묘지다. 4대강 사업장에선 11월 기준으로 모두 23명의 노동자가 죽었다. 과속·과적·과로의 공사현장에서 노동자들은 굴착기가 전복돼 물에 빠져 죽고, 충돌사고로 트럭에 깔려 생을 마감했다. 집단사망으로 사회문제가 된 한국타이어 노동자들의 죽음도 이어지고 있다. 지난 3월 공모씨(52)가 재생불량성빈혈 질환으로 투병 중에 죽었다.
이주노동자들은 도망치다 죽는다. 지난 11월 7일 경기도 김포시에서 중국인 미등록 노동자 한 명이 도주하다 붙잡혀 이송되던 중 죽었다. 동료 노동자들은 구타를 주장했지만, 단속반은 심근경색 때문이라고 했다. 지난해와 올해 단속 때문에 직·간접적으로 죽은 이주노동자는 30여명이다.
청소·경비노동자들은 일하다 죽는다. ‘죽음의 각서’를 쓰고 말이다.
서울 대치동 일대가 폭우로 침수된 지난 7월 27일 아침 은마아파트 2동 청소노동자 김정자씨(64)가 아파트 지하실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동료들은 “지하실의 물을 빼내려다 감전사했을 것”이라고 했지만, 관리소장이나 용역회사는 “책임이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경향신문 2011년 10월 5일자, 은마아파트에서 생긴 일)
은마아파트 입주자대표회는 김씨 유가족에게 위로금을 주지 않기로 했다. 용역회사가 지급한 장례비는 화장비를 포함해 1600여만원이었다. 김씨의 딸은 “우리 엄마 목숨 값이 1600만원이냐”고 했다. ‘근무 중 사망해도 용역업체 책임을 물을 수 없다’는 취지의 각서까지 써야 했다. 이 업체는 다른 시내 아파트 청소·경비노동자들에게도 같은 각서를 요구했다.
고용노동부 산하 근로복지공단의 산업재해 보상보험은 누구를 위해 존재할까. 2010년 8월 주상복합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일하던 청소노동자가 폐암 증세를 진단받은 지 반년 만에 죽었다. 담배를 피운 적도, 폐암 가족력도 없던 이였다. 근로복지공단은 산재 신청을 거부했다. 유가족들은 소송을 걸었다. 재판부는 지난 10월 “이를 업무상 재해에 해당되지 않는다고 본 근로복지공단 처분은 위법하다”고 판결했다.

일하다 죽어도 책임을 묻지 않겠다는 내용의 각서. /경향신문 자료
지난 6월 법원은 삼성전자 반도체사업부에서 근무하다 백혈병에 걸린 직원과 유가족 중 일부에게 처음으로 산업재해를 인정했다. 당시 삼성반도체에서 일하다 백혈병에 걸린 노동자들이 근로복지공단에 산재 요청한 건수는 18건이었는데, 계류 중인 2건을 제외하고 16건은 모두 거부 처리됐다. 산재 사망자 수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 국가 중 가장 많다. 2008년 기준으로 노동자 10만명당 산재사고 사망자 수는 18명이다. 미국은 3.7명, 일본 2.7명이다.
‘알바’하러 간 청소년은 어떤가. 최저임금에 인권침해도 심각한 데다 죽음으로 내몰리기도 한다. 지난해 12월과 올해 2월 오토바이로 배달노동을 하던 청소년들이 교통사고로 사망했다. 열여덟살 청소년의 말이다.
이시우군(18·가명)도 “목숨 내놓고 오토바이 타는 거예요. 돈 때문이죠. 다 돈이 한편으로 사람을 살리고 한편으로 죽이는 거예요”라고 말했다.(경향신문 2011년 5월 20일자, ‘목숨 건 배달노동’ 청소년, 열악한 인권실태… “사고 나니 사장님은 오토바이만 걱정, 산재보험 모르고 야간수당 말 못하고”)
신자유주의 세상에서 이 죽음들은 새삼스럽지 않다. 1990년대 이후 수많은 노동자가 죽어났다. 밤샘근무로 죽고, 고용불안에 시달리다 사망했다. 자재에 깔려, 지게차에 치여 죽었다. 참여정부 시절마저 시위 중에 죽고, 분신해서 죽었다. 강수돌 교수는 경향신문에 ‘휴대폰과 자동차, 그리고 노동자’란 제목의 칼럼(2010년 4월 2일자)을 보냈다.

2010년 10월 30일 경찰의 연행 시도에 맞서 분신했던 김준일 구미 KEC 노조지부장을 다룬 김용민의 그림마당(2010년 11월 2일자). 검찰은 병원에 입원 중이던 김 지부장에게 구속영장을 청구했고, 법원은 기각했다. 법원은 지난 6월 업무방해로 기소된 김 지부장에게 징역 2년을 선고했다.
모두의 명복을 빌 뿐이다. 그들의 피와 눈물을 기억하는가. 이렇게 노동자들은 일하며 죽어가고, 일을 못해도 죽어가고, 일하게 해달라고 싸우다 죽는다. 그런데 이들이 만든 휴대폰과 컴퓨터, 자동차를 무심코 소비하는 우리는 과연 이들을 기억하는가? 그들의 노동을, 그들의 피와 땀과 눈물을, 그들의 고통과 두려움을, 그들의 절망과 투쟁을, 그들의 소박한 바람과 희망을.
<김종목 경향신문 기자 jomo@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