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반값 등록금 향한 99%의 역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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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가 총학생회 선거 최대 화두… 운동권-비운동권 문제의식 공감

11월 9일 서울시립대 총학생회 선거에서 ‘반값 등록금’을 공약으로 내건 후보가 당선됐다. 총학 선거에 대한 학생들의 관심도 높아졌다. 지난 몇 년간 서울시립대 총학생회 선거 투표율은 40%대를 유지했다. 하지만 이번 선거 투표율은 10%가량 높아진 53%를 기록했다. 

총학생회장에 당선된 ‘무한동력’ 선거본부의 정후보 김경원씨(25)는 “서울시장 선거에서 학생들이 투표로 현실을 바꿀 수 있다는 경험을 했다. 이런 열망이 총학생회 투표로도 이어진 것 같다”고 말했다. 서울지역 총학생회 선거 중 가장 빨리 치러진 이번 선거는 대학사회 변화의 가늠자가 될 것으로 보인다.

서울 시내의 한 사립대 학생들이 총학생회 선거 포스터를 지켜보고 있다. / 백철 기자

서울 시내의 한 사립대 학생들이 총학생회 선거 포스터를 지켜보고 있다. / 백철 기자

10·26 서울시장 선거 이후 관심 늘어
올해 반값 등록금 투쟁을 주도해온 21세기 한국대학생연합(한대련) 집행부 김영식씨(28)는 올해 총학생회 선거에서는 대학생들의 높은 사회참여 욕구가 반영될 것으로 보았다. 그는 “그동안 대학생들이 함께 힘을 모아서 승리했던 경험이 많지 않았다. 하지만 올해는 반값 등록금 투쟁에 이어 박원순 시장의 당선으로 승리의 경험을 했다는 사실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한대련을 비롯한 학생단체들은 지난 11월 13일 서울 중구 대한문 앞에서 ‘반값 등록금 실현을 위한 공동선거운동본부 선포식’을 열었다. 20대에게서 70%의 지지를 받은 박원순 서울시장이 내년부터 서울시립대의 등록금을 반값으로 인하하겠다고 발표한 이후 ‘반값 등록금은 당장 실현 가능하다’는 인식에 공감한 학생들이 모인 것이다.

새롭게 서울시립대 총학생회장이 된 김경원씨도 13일 선포식에 참석했다. 그는 선거운동 기간 중 한대련 가입을 추진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운동권’에 대한 고정적인 비판세력이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김씨는 과반수의 득표율로 당선에 성공했다. 엄밀한 의미에서 김씨는 ‘전통적 운동권’과 조금 거리가 있는 경우였다. 서울시립대의 한 학내언론 기자는 “김씨가 한대련 등과 함께 반값 등록금 투쟁에 열심히 나선 것은 맞지만 같은 계열로 보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김씨는 한대련과 가까워진 계기에는 반값 등록금 투쟁이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비싼 등록금에 관해 고민하는 과정에서 한 학교 내에서 문제를 해결하기는 어렵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그리고 여러 학교 학생들의 힘을 모으는 활동을 핵심적으로 했던 것이 한대련이었다”고 말했다.

앞으로 김씨는 “등록금 문제 이외에 다른 학내 현안에 대해서도 학생 입장에서 목소리를 내겠다”고 말했다. 김씨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학내 현안은 법인화 문제다. 서울대, 부산대 등 국·공립대 법인화가 추진되는 상황에서 서울시립대도 예외가 될 수 없다는 것이다. 김씨는 “올해 초 비상학생총회에 1000명 가까운 학생들이 모여 법인화 반대 목소리를 냈다. 국·공립대 법인화의 큰 물결 속에서 우리도 자유롭지 않고, 법인화 이후에는 어렵게 따낸 반값 등록금도 무효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앞으로 김씨는 한대련 등과 연계하여 내년 총·대선에서 정치권에 대학생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라는 요구를 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한편 최근 찾아보기 어려웠던 급진적 구호를 선거본부 이름으로 채택한 곳도 있다. 고려대 총학생회에는 ‘1%에 맞선 99%의 역습’ 선거본부가 등장했다. 이 선본의 정후보는 ‘고대녀’ 김지윤씨(27)다. 선본의 이름은 금융자본의 탐욕을 규탄하는 ‘월가 점령시위’에서 따온 것이다. 김지윤씨는 “대학이 1%를 육성하느라 99%의 학생들을 희생시키고 있다”며 반값 등록금 실현, 불합리한 등록금 차등책정 철폐, 학생 공간 확대 등을 주요 공약으로 내걸었다.

김지윤씨는 선거운동 기간 중 학생들로부터 10·26 서울시장 선거 이후의 변화를 느낄 수 있었다고 했다. “20대가 정치적으로 무관심해졌다는 얘기들이 많지만, 이번 서울시장 선거에서는 투표했다고 자랑하는 친구들이 어느 때보다 많았다. 또한, 유세 기간 중 ‘우리도 서울시립대처럼 등록금을 낮출 수 있지 않겠느냐’는 의견을 여러 번 들었다.”

대학생들의 변화는 명백한 비운동권 선본에서도 나타난다. 홍익대 총학생회 선거에 나선 ‘Change We Can’ 선본은 올해 초 청소노동자 문제로 논란의 중심에 섰던 비운동권 총학생회와 같은 계열이다. 하지만 이 선본의 정후보 이웅재씨(28)는 “이제는 가만히 있지 않겠다”며 등록금 문제와 청소노동자 처우 개선을 핵심 공약으로 들고 나섰다.

이씨는 2010년부터 총학생회 활동을 해왔다. 이씨는 수 차례 학교 관계자들을 만나면서 학교 측이 자신들의 입장을 이해해달라고 말할 뿐 학생들의 목소리는 외면해 왔다고 말했다. 그는 “그동안 비운동권을 표방해 오면서 학교에 대한 투쟁보다는 협상을 통해 학내 복지를 높이는 데 우선순위를 둬 왔다. 하지만 이제는 비운동권이라는 수식어를 떼고, 대학의 상업적 마인드를 바꾸고 지나치게 비싼 등록금을 낮추는 문제에 집중하겠다”고 말했다.

최근의 사회적 흐름과 비운동권 학생의 변화된 모습은 무관하지 않았다. 이씨는 “그동안 학교 측에서 이런저런 이유를 들어 등록금의 인상률을 낮출 수는 있어도 금액 자체를 낮출 수는 없다고 했는데, 현재 사회적으로 충분히 대학 등록금을 내릴 수 있다는 분위기가 형성돼 있다. 우리 학교의 등록금에도 뻥튀기가 많다”며 “당선이 되면 올해가 지나기 전에 학교 당국에 항의방문도 하고, 필요하면 학생총회 등의 수단을 동원하는 가능성도 열어두고 있다”고 말했다.

비운동권도 변화 바람
청소노동자들의 농성에 참여한 타교 학생, 노동조합 인사들을 ‘외부세력’으로 지칭했다가 여론의 질타를 받았던 올해 총학생회에 대해서도 이씨는 “약자에 대한 배려가 적었다”며, 홍익대 측이 청소노동자들에 대한 손해배상소송을 취소해야 한다고 말했다.

물론 이것이 그림의 전부는 아니다. 기존 운동권-비운동권의 대립구도가 재현된 곳도 있다. 국민대에서는 운동권 후보가 선거관리위원회의 부적절한 판정으로 후보 자격을 박탈당했다며 삭발시위를 벌였다. 국민대 총학생회 선관위는 비운동권 성향의 올해 총학생회장 등으로 구성돼 있다.

국민대 총학생회 선거에 출마한 ‘99%의 역습’ 선본은 선관위로부터 3회의 경고를 받아 후보 자격을 상실했다. 이들은 선거 공보물을 통해 상대 후보가 올해 초 학교의 등록금 인상에 타협했다고 주장했다. 선관위는 이를 상대 후보에 대한 ‘비난’으로 보고 징계를 내렸다. 또한 선관위는 ‘99%의 역습’ 선본 측의 선거운동원 복장 색깔이 다른 선본과 겹친다는 이유로 추가 징계를 내렸다. 이에 대해 ‘99%의 역습’ 측은 14일 “선관위가 정당한 비판을 비난으로 몰고, 예전에는 없었던 복장 색깔과 관련한 규칙을 갑자기 만들었다”며 표적징계 의혹을 내세운 상태다.

고려대의 경우 몇 차례 총학생회 집권을 한 바 있는 비운동권 성향의 ‘고대공감대’ 선본이 한대련 탈퇴를 제1공약으로 내걸었다. 이들은 배후단체와 정당이 개입하지 않는 총학생회를 내세우며 학생 총투표로 한대련 탈퇴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내세우고 있다.

한대련 집행부 김영식씨는 “최근 반값 등록금에 대한 사회적 분위기가 높아지는 한편으로 뚜렷한 대립구도를 가지고 나온 경우도 있다. 반값 등록금 촛불시위를 주도한 것이 한대련인 만큼 우리를 명시적으로 공격하는 사례도 생겼다”고 말했다.

<백철 기자 pudmaker@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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