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임시국회 처리 안갯속 9월 등록금 투쟁 본격화 예고
기다리다 지쳤다. 지난 6월 거리에서 촉발됐던 반값 등록금 문제는 이후 국회로 논의의 장이 옮겨지는 것처럼 보였다. 여야는 6월 임시국회에서 등록금 문제 처리를 위해 노력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야당은 물론 한나라당도 임해규 의원을 단장으로 한 ‘등록금 부담완화 및 대학 경쟁력 강화 태스크포스(TF)’를 만드는 등 반값 등록금을 요구하는 시민사회의 목소리에 비교적 신속히 응답했다. 6월 15일에는 한나라당 주최로 국회에서 ‘희망 캠퍼스를 위한 국민 대토론회’도 열렸다. 시민단체 대표와 대학생 대표가 모인 이 토론회에 황우여 원내대표 또한 참석해 끝까지 자리를 지켰다.

한국대학생연합 소속 대학생들이 8월 12일 오후 국회 본청 앞에서 기습시위를 갖고 반값 등록금 실현 등 을 요구하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 연합뉴스
그러나 6월 임시국회에서 처리하겠다는 정치권의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학생과 학부모들은 6월을 지나 8월 임시국회에서도 반값 등록금 논의를 기다렸지만 말만 무성한 채 국회에서 이렇다 할 대안이 나오지 않았다. 최근 반값 등록금 투쟁을 해온 학생과 학부모들이 다시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 배경이다.
지난 12일에는 국회 본청 앞에서 대학생 70여명이 ‘조건 없는 반값 등록금 실현’을 주장하는 기습시위를 벌였다. 개강을 앞두고 이미 많은 대학생들이 500만원이 넘는 금액이 찍힌 등록금 고지서를 받았다. 기습시위를 벌인 대학생들은 501만4000원이라고 찍힌 ‘2학기 등록금 고지서’를 플래카드로 만들어 “반값 등록금 실현하라, 이명박 정부 물러나라”는 구호를 외쳤다. 박자은 21세기한국대학생연합 의장은 “6월 임시 국회 때 했던 약속을 한나라당이 지키지 않은 채 2학기 등록금 고지서가 발송됐다”며 “반값 등록금을 위한 학생들의 의지를 보여주겠다”고 말했다. 홍준표 한나라당 대표는 이날 이들의 면담 요구에 응하지 않았다.
납부연기와 분납신청으로 투쟁할 것
학부모들도 움직였다. 17일에는 ‘반값 등록금 실현을 위한 학부모 모임’과 ‘참교육을 위한 전국학부모회’ 회원들이 서울 종로구 참여연대 강당에서 전국의 학부모들에게 ‘등록금 납부 연기 투쟁’을 제안했다. 이들은 “9월까지 합법적인 등록금 납부 연기와 이후 10월에도 등록금을 분납 신청하는 방식으로 투쟁을 전개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반값 등록금 실현을 위한 학부모 모임 회원인 한서정씨(49)는 “반값 등록금은 한나라당과 이명박 대통령의 공약사항인데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오리발을 내밀고 있다”며 “합법적으로 9월 말까지 연기를 할 수 있고 분납도 가능하니 8월 임시국회와 9월 정기국회 상황을 보면서 투쟁을 해나갈 예정”이라고 말했다. 한씨의 큰 아들은 지난 3월 등록금 부담으로 2학년 1학기를 마치고 입대했다. 한씨는 “아이들이 공부해야 할 시기에 제대로 공부하지 못하고, 아직 친구들하고 떨어지기 싫었을 텐데 군대를 가게 만드니 부모로서 미안하다”며 “등록금 부담으로 부모 세대, 학생 세대 할 것 없이 다 팍팍하다”고 말했다.
시민사회에서는 한나라당에 등록금 문제를 해결하려는 의지가 없다고 판단하고 있다. 등록금넷의 김동규 팀장은 “한나라당이 지난 6월에는 2014년까지 명목 등록금을 30% 낮추는 안을 제시했는데, 홍준표 대표 취임 이후 그보다 후퇴해 장학금 방식으로 전환하려고 한다”며 한나라당이 말을 바꾸고 있다고 비판했다. 김 팀장은 “소득별로 장학금을 지급하는 방식은 근본적으로 등록금 문제 해결책이 아니다”라고 말하며 “등록금이 이미 대학생 학부모가 부담할 수 있는 수준을 뛰어넘었기 때문에 명목 등록금을 인하하는 것이 중장기적으로 예산문제나 대학교육 발전에도 근본적인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 국회 기습시위에서 학생들이 한나라당 홍준표 대표에게 면담을 요구했는데 이 또한 모른 척했다”며 “한나라당이 반값 등록금과 관련한 시민들의 목소리를 무시하고 가려는 것 같다”고 말했다.
등록금 투쟁은 9월 개강 이후 본격화될 전망이다. 등록금넷은 8월 말에 야5당과 함께 ‘반값 등록금 국민본부’를 발족할 예정이고, 9월에는 대학생 총회 거리수업과 ‘전국민 반값대회’를 개최할 예정이다. 21세기 한국대학생연합 측은 8월 말께 시민단체들과 학교 대표자들이 모여 연석회의를 열 예정이다.

8월 1일 국회 교과위 소위원회의실에서 열린 교과위 법안심사소위원회에서 여야 의원들이 반값 등록금과 대학 구조조정 관련 법안 처리를 놓고 격론을 벌이고 있다. / 연합뉴스
민주당을 비롯한 야 5당도 한나라당을 압박했다. 8월 16일 국회에서 개최된 ‘반값 등록금 실현을 위한 야5당 시민사회 대학생 학부모 협의모임’ 공동기자회견에 참석한 김진표 원내대표는 “8월 국회에서 반값 등록금 관련법안을 반드시 실현할 것”이라며 “국회 교과위에 법안심사 소위원회가 마련되어 있지만 한나라당의 오락가락하는 행태 때문에 아직까지 논의가 제대로 진전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김 원내대표는 “대학생들이 등록금 인하가 물건너 간 것이 아니냐는 우려와 걱정을 했다”며 “한나라당이 야당과 합의한 반값 등록금 법안을 8월 중에 처리할 수 있도록 최선의 당력을 모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나라당 예산 마련 외 논의 진척 없어
한나라당은 6월에 내놓은 안과 큰 변화가 없다는 입장이다. 한나라당 임해규 의원은 “1조5000억원의 국가 재원으로 등록금 인하 예산을 마련한다는 것은 6월과 큰 차이가 없다”며 “당내에서는 학생들에게 나눠주는 방식에 대한 사소한 생각의 차이가 있을 뿐”이라고 말했다. 한나라당은 대학 구조조정에 따른 차등분배 및 소득별 차등분배를 염두에 두고 있다. 임 의원은 “대학 구조조정이 정책의 목표에 들어가 있어 등록금 차등 지원에서 대학은 큰 변수가 될 것”이라며 “지도부에서는 모든 계층에 평균적으로 나눠주기보다 소득별로 차등적으로 분배하는 장학금 방식을 선호한다”고 말했다.
임 의원은 국가 재원으로 확보한 1조5000억원의 배분방식에 대한 정확한 입장은 제시하지 않고 “재원이 정해져 있는 상황에서 등록금 지원금이냐 장학금이냐는 큰 의미가 없는 논쟁”이라고 말했다. 그는 “야당에서는 여당의 입장이 정해지지 않았다고 하지만 야권 내에서도 등록금 정책에 대해 의견 차이가 큰 것으로 알고 있다”며 “모든 방식을 열어두고 이야기할 수 있는 만큼 야당이 법안소위에 열심히 참여한다면 당장 내일이라도 등록금 논의가 타결될 수 있다”고 말했다.
국회에서 여야의 줄다리기가 계속되는 가운데 대학생들은 등록금 마련을 위한 아르바이트로 방학을 보내고 있다. 이들은 개강과 함께 등록금 납부를 앞두고 있다. 대학생 이문희씨(가명)는 “이번 학기 등록금이 350만원 정도 나왔다”며 “방학 동안 조교활동을 하고 출판사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등록금에 보태려고 했지만 턱없이 부족한 수준”이라고 말했다. 이씨는 “학생들이 거리에 나와 의제를 제시했으면 국회가 이를 받아 잘 처리해야 하는데 잘 안 되고 있어서 답답하다”고 말했다.
<박송이 기자 psy@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