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 라덴이 사살된 파키스탄 지역…
무슬림의 땅에도 평화를 사랑하는 삶이 있다
지난 5월 2일(현지시간) 파키스탄 아보타바드에서 미군 특수작전에 의해 오사마 빈 라덴이 사살됐다. 7월 19일 이곳은 겉보기에 평온한 일상으로 돌아간 듯했다. 미군 작전 이후 들끓던 이슬람권의 여론은 이제는 잠잠하다.
![[사회]아보타바드는 평온으로 돌아갔다](https://img.khan.co.kr/newsmaker/937/20110809_937_42a.jpg)
파키스탄 북서변경주 아보타바드는 교통과 전략의 요충지이다. 인구 12만 명이 조금 넘는 작은 도시이며 과거 실크로드의 관문이었고 카라코람 하이웨이가 시작되는 곳이다. 기후가 좋고 물자가 풍부하여 살기 좋은 곳으로 꼽힌다.
여성의 낮은 사회 진출은 소득·교육 때문
아보타바드의 낮은 평온하다. 사람들은 바쁘게 일하고 가게는 번창하고 있다. 간간이 경찰의 모습이 눈에 띄지만 길기트처럼 무장 군인이 도시를 순찰하는 정경은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심야가 되자 상황은 조금씩 달라졌다. 가끔 전기가 나가고 도시가 암흑에 싸이면서 멀리 기관소총의 연사음이 들렸다. 둔탁한 소리를 내며 서너 발씩 허공을 가르는 총소리가 들리면 더 멀리서 이에 응답하는 총소리가 이어졌다. 빈 라덴이 사살당한 곳이라는 점을 일깨우는 소리다.
다시 아침이 되자 사람들은 말짱한 얼굴로 출근을 서두른다. 아보타바드의 출근 시간에는 여성의 모습도 자주 눈에 띈다. 대부분은 전통의상 차림새로 간단한 베일만 머리에 둘렀을 뿐 전신을 감싸는 부르카나 얼굴을 가리는 히잡도 보기 힘들었다. 전문직으로 보이는 여인들이 책과 필요한 물건을 들고 부지런히 출근길에 나서는 모습은 우리와 별 다를 바 없이 보였다. 부르카를 덮어쓴 모습과 히잡은 차라리 중국 신장 위구르 자치구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정경이다.
출근 시간을 제외하고 아보타바드의 거리에서 여성의 모습을 만나기란 쉽지 않았다. 가게를 지키거나 거리를 오가는 이들의 대부분은 남성이다. 여성은 주로 집안일을 하기 때문에 외출을 삼가는 것이 일상적이다.
오랫동안 외국인 상대 가이드를 해온 아시프씨는 파키스탄 여성들의 상황에 대해 이야기했다. “여성들이 히잡을 쓰거나 벗는 일은 전적으로 가족의 선택이다. 교육 받은 여성의 경우 대부분 히잡을 쓰지 않는다. 파키스탄에는 일자리와 교육 기회가 부족하므로 여성에게 공평한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고소득층과 지식인계층에서 남성 중심의 전통은 무의미하다.” 그는 여성의 사회적 진출이 낮은 것은 사회 전반의 소득과 교육 수준 때문이며, 외부에서 보듯이 종교적 이유나 사회적 억압 때문이 아니라고 강조했다.
과거 베나지르 부토가 두 번이나 총리를 지냈고 장관 등 고위직을 거친 여성이 흔할 정도로 파키스탄의 여성 지위는 아시아권에서 높은 편이다. 지난 7월 19일 파키스탄 외무장관으로 세 아이의 어머니인 34세의 히나 라바니 카르가 임명되고 그녀의 화려한 외모가 화제가 되었다. 정치인이나 고위 관료직에 여성 진출이 비교적 자유로운 편이라는 설명이다.
![[사회]아보타바드는 평온으로 돌아갔다](https://img.khan.co.kr/newsmaker/937/20110809_937_42b.jpg)
파키스탄의 6월과 7월은 종교 축제와 추수감사절이 연이어 있다. 농촌마을에서 소박한 축제가 열리고, 신을 찬미하는 종교행사를 벌인다. 파키스탄의 오지 훈자 출신의 청년 무함마드는 파키스탄도 서서히 달라지고 있다고 말했다. “외부와의 접촉이 점점 늘어나면서 특색 있던 지역 전통문화도 퇴색하고 있다. 이제는 오지에서도 도시와 같은 공산품을 쓰고 같은 문화를 즐긴다.
지역의 공동체 의식도 점점 옅어졌다.” 그는 전통문화가 붕괴되면서 자부심조차 사라지는 모습을 지켜보며 착잡한 심정을 느끼게 된다고 토로했다. 결국 파키스탄도 서구사회와 같이 돈을 따라 모든 가치가 재편될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비관적 전망도 드러냈다.
중국 농민공이 닦은 카라코람 고속도로
육로를 통해 아보타바드까지 가려면 중국 최서쪽 국경도시 탁스쿠르칸에서 국경을 넘어 카라코람 하이웨이를 따라가야 한다. 타클라마칸 사막 끝 톈산 산맥 아래의 탁스쿠르칸은 한눈에 시내가 모두 보이는 작은 마을이지만 국경도시답게 곳곳에 무장경찰과 군인의 왕래가 일상적이다.
파키스탄 출국을 위해 거쳐야 하는 세관과 이민국은 오전 10시가 넘어야 문을 연다. 파키스탄과 중국의 시차는 세 시간. 시차를 고려해 늦은 시간에 업무를 개시하는 것이다. 세관을 통과하기 위해 줄을 선 이들 대부분은 파키스탄의 보따리 무역상들이다. 중국 카슈가르와 파키스탄 길기트를 오가며 중국에서 마늘 등의 농산물과 저가의 공산품이, 파키스탄에서 향신료 등을 가져와 거래한다. 가끔 마약밀매상이 끼어 있어 세관의 검색은 꽤 까다로운 편이다.

외국인 탑승차량을 무장 호위하는 파키스탄 군차량.
이민국을 통과하면 국경 사이를 오가는 국제버스가 기다리고 있다. 파키스탄 세관까지 10시간, 길기트까지 48시간을 버스로 달려간다. 중국과 파키스탄 국경은 해발 4733m의 쿤제랍파스. 세관을 통과해 버스로 다섯 시간을 더 가야 하고 고산준령을 넘은 후 다시 다섯 시간 동안 산을 내려가야 파키스탄 이민국에 도착한다. 그 사이는 일종의 비무장지대이므로 버스는 쿤제랍파스 정상에서 잠시 쉴 뿐 도로에서 정차할 수도 쉴 수도 없다.
탄탄대로로 포장된 중국 측 도로와는 달리 국경을 넘는 순간 길은 전형적인 비포장 산길이 된다. 산사태로 곳곳이 무너져 내려 긴급 보수의 손길이 계속 이어지고 있었다. 국경도로부터 카라코람 하이웨이까지 대부분의 도로는 중국 회사에서 맡아 시공하고 있다. 농민공 출신의 중국 노무자들이 저임금을 감수하며 위태로운 환경에서 길을 닦는 것이다. 중국과 파키스탄은 외교적 긴장에 따라 가깝고 멀기를 반복하고 있다. 국경 통과도 상황에 따라 쉽고 어려워진다.
과거 당나라의 서쪽 끝이었다고 하는 길기트는 군사적 요충지다. 인도와 중국, 파키스탄이 서로 자신의 영토임을 주장하는 분쟁지역으로, 험준한 산악지형이라 외부세력과 무장세력의 침투와 활동이 용이한 곳이다. 도시 곳곳에 무장군인들의 초소와 순찰이 눈에 띄고 각종 군사시설이 줄지어 있다. 외국인이 묵는 호텔은 겹겹이 바리케이드로 둘러싸여 있고 삼엄한 검색을 거친 후에야 출입이 허용된다. 외국인 탑승차량이 지나가면 군인들의 무장차량이 끼어들어 일정 구간 호위를 한다. 도시에 들어서자 분쟁지역이니 빨리 떠나라는 외교부의 문자메시지가 즉각 휴대전화를 울린다. 외신에서 흔히 보던 전시 상황의 긴장감이 있다.
파키스탄에 대한 인상을 규정짓는 테러와 전쟁 분위기는 딱 거기까지이다. 군인들과 달리 길기트 시내 대부분의 사람들은 생업에 몰두하고 있었고 이방인을 보면 손을 흔들며 특유의 순박한 미소를 보였다. 길기트에서 외과 간호사로 일하는 자왈 후세인은 현지 분위기를 간결하게 설명했다. “어쩌다 무장세력이 체포되었다는 뉴스를 본다. 그럴 때마다 경계가 강화되곤 하지만 일상에서 테러나 폭력을 실감하지 못한다. 이곳 사람들은 대부분 무슬림이고 시아파다. 우리가 추구하는 것은 평화이고 다른 이의 신념과 종교를 존중한다.”
카라코람 하이웨이는 대부분 평온했다. 국경에서 시작하여 승용차마저도 시속 20㎞를 넘지 못하는 험한 도로는 인더스 강 협곡을 끼고 아보타바드까지 이어졌다. 1박2일의 긴 여정 동안 중간에 간간이 보이는 무장 검문소를 제외하고는 분쟁의 분위기란 찾아볼 수 없는 곳이다.
외부 접촉에 점차 사라지는 전통문화

추수감사축제를 즐기는 파키스탄 여성들.
아보타바드를 지나치면 파미르 고원과 힌두쿠시 산맥, 히말라야 산맥이 뒤섞여 이어지던 고산 사막지역을 완전히 벗어나게 된다. 수도 이슬라마바드와 인도 국경까지 비옥한 펀자브 평원이 이어지고 자연은 가혹함보다는 풍요로움을 선사하고 있다. 높은 곳에 있는 길이라는 의미의 하이웨이, 즉 카라코람 하이웨이가 아닌 왕복 6차선의 잘 정비된 고속도로가 이어지고 파키스탄의 광활함을 실감할 수 있는 풍경들이 눈에 보인다.
간다라 미술의 중심 도시인 탁실라 길가에서 한 가족을 만났다. 머리에 베일조차 쓰지 않은 여성이 다가와 악수를 청했다. 올해 나이 30세의 바크와르, 대학에서 교육학과 컴퓨터를 전공한다는 이 여성은 남편과 함께 자가용 차량을 직접 운전하며 여행 중이었다. 뒤에서 웃고 있는 자신의 남편을 소개한 후 자신의 남편이 어떻게 보이냐고 물었다. 히잡과 베일 대신 스카프 하나를 손에 들고 자신은 무슬림이지만 모든 전통을 고스란히 따르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그녀의 남편에게 아내를 어떻게 생각하나 물었다. 그는 활짝 웃고 하늘을 가리키며 짧게 대답했다. “신이 내게 보낸 고귀한 선물.”
도시로 올수록 서구화된 모습은 쉽게 눈에 띄었다. 수도 이슬라마바드의 나이트클럽은 심야에도 젊은이들의 즐거운 놀이가 이어졌고, 패밀리 레스토랑에선 청바지 차림의 젊은 부부들이 격식 없이 외식을 즐기고 있다. 인도를 맞대고 있는 국경도시 라호르에서 히잡을 쓴 여인은 가뭄에 콩 나듯 신기한 모습에 불과하다.
작년 파키스탄은 우리 정부가 정한 여행 제한 지역이었다. 여행객을 대상으로 한 인질범죄나 테러에 대한 우려가 높았기 때문에 취한 조치였다. 10년째 한국 관광객 상대로 운전을 해온 압둘 자만은 한국에 대한 인상을 이야기한다. “한국은 꿈의 나라다. 비자를 받기가 하늘의 별 따기보다 힘들지만 언젠가는 꼭 가보고 싶다. 파키스탄에는 일자리도 없고 있어도 힘든 일밖에는 없다.” 그의 말은 대부분의 파키스탄 사람들이 느끼는 심정을 대변한다.
열악한 여성의 권리와 무참한 종교적 관습, 테러리즘에 대한 우려 등이 파키스탄을 비롯한 무슬림에 대한 통념으로 자리 잡고 있다. 간통을 저질렀다며 돌을 던져 살해하는 동영상이 공개되고, 명예살인과 폭력에 대한 소식이 전해진다. 폭탄을 안고 군중 사이로 뛰어든 테러리스트도 분명 존재한다. 무지와 빈곤, 광신과 거짓된 믿음의 결과이다.
국민 생활수준과 보편적 지성이 높다는 노르웨이에서도 종교적 광신과 무슬림에 대한 배타적 신념에 사로잡힌 광기의 테러가 일어났다. 광기는 인간의 나약한 틈을 노리고 언제든 굴복시킬 틈을 노리고 있다. 광신에 사로잡힌 이들은 어디에나 존재하지만 그것이 그 사회의 전체적인 모습은 아닌 것이다. 무슬림이 살고 있는 땅에도 누구보다 평화를 사랑하는 삶이 있고 이방인을 향해 웃음을 보내는 순박한 이들이 살아간다. 편견에서 벗어날 때 진실한 모습을 볼 수 있다. “앗살라무 알라이쿰 - 신의 가호가 있기를.” 파키스탄 국경을 벗어날 때 1달러짜리 짐꾼이 건네준 축복의 인사이다.
파키스탄 아보타바드 | 김천<자유기고가> mindtemple@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