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수 고갈로 정화능력 떨어져 최근 급속히 흐려져
창덕궁 후원(일명 비원)에 있는 연못 부용지의 물이 갈수록 탁해져 문화재청이 ‘골머리’를 앓고 있다.
창덕궁은 현재까지 남아있는 조선 왕궁 중 가장 아름다운 궁으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돼 있다. 창덕궁의 빼어난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곳이 바로 후원이다. 후원으로 들어서자마자 보이는 연못인 부용지는 후원 경관 중 백미로 일컬어지고 있다. 특히 맑은 연못 물에 비친 주변 경관은 관람객들의 발길을 사로잡아왔다.
그런데 부용지의 물이 최근 급속히 탁해지고 있다. 문화재청에서 최근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부용지에서 나오는 지하수가 고갈상태에 있기 때문에 물의 정화작용이 제대로 되지 않고 있다. 즉 부용지에서 지하수가 흘러나와 그 물이 지속적으로 밖으로 나가야 물이 맑아지는데 그렇지 못하다는 것. 여기에 부용지에 쌓이는 각종 낙엽과 꽃가루 등 퇴적된 유기물이 부용지 물을 흐리게 하는 한 요인이 되고 있다. 부용지뿐만 아니라 창덕궁 내 다른 연못들의 물도 계속 마르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부용지 물이 급격하게 탁해지는 것은 창덕궁 주변의 각종 개발로 지면이 콘크리트로 덮이면서 빗물이 땅속으로 스며들지 못해, 저장된 지하수의 양이 모자라기 때문이다. 서울환경운동연합 염형철 국장은 “창덕궁 주변의 거리를 모두 콘크리트로 포장해 비가 오면 하수구를 통해 그대로 한강으로 흘러들어간다”며 “예전에 비해 빗물이 스며들 땅이 줄어들다보니까 지하수가 마르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개발만능주의가 부용지의 물길을 끊어놓은 것이다. 일각에서는 이 지역의 지하수가 청계천 개발로 청계천으로 흘러들어가기 때문에 부용지의 물이 마르고 있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뾰족한 방법 찾지 못해 골머리
문화재청 창덕궁관리소는 항상 맑은 부용지를 보여주기 위해 갖은 방법을 썼으나 현재까지는 뾰족한 방법을 찾지 못했다. 관리소에서 독성이 없는 정화제를 뿌려봤으나 물이 한동안 맑아지나 싶더니 다시 탁해졌다. 부용지에 일반 연못처럼 분수대를 설치하는 방안도 제시됐으나 자연미를 보여줘야 하는 이미지와 맞지 않아 실행이 되지 않았다. 창덕궁관리소 관계자는 “창덕궁에서 가장 아름다운 공간에 기계장치를 두는 것 자체가 말이 안돼 철회했다”고 말했다. 외부에서 물을 매일 부용지 근처까지 끌어오는 방안도 있으나 이는 비용이 만만치 않아 엄두도 못 내고 있다. 연못을 준설하는 방안도 근본적인 대책은 아닌 것으로 판명났다.
창덕궁 측은 마지막으로 외부 연구기관에 미생물을 이용해 물을 정화시킬 수 있는지 자문을 해놓고 있다. 연구소 측에서는 부용지 주변의 우물로 부용지 물을 끌어들여, 미생물을 통해 정화시킨 뒤 다시 부용지로 내려 보내는 안을 제시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부용지 가운데 작은 섬에는 나무가 심어져 있으며, 남쪽 석축에는 부용정이라는 작은 정자가 있다. 정조실록에 따르면 왕이 이곳에서 낚시를 했다는 기록도 있다. 연간 35만명(내외국인 포함)의 관람객이 후원의 경치를 감상하기 위해 이곳을 찾고 있으며, 창덕궁 측은 입장시간을 하루 17회로 제한해 자연경관을 보존하고 있다.
<권순철 기자 ikee@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