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재단 최열대표 횡령·알선수재 혐의 선고 재판 참관기
“…피고는 이사회 승인을 받았다고 주장하지만, 회의록에는 사무실 이전과 관련한 언급이 없고, 장학금을 임대차 보증금으로 전용한다는 논의사항은 없습니다.… 따라서 이와 관련한 공소사실은 유죄로 판단됩니다.” 최열 환경재단 대표가 마른 침을 삼켰다. 굳어 있던 검사들의 얼굴에 순간 화색이 돌았다. 1월 28일 서울중앙지법 서관 510호. 최열 대표에 대한 1심공판이 열렸다. 긴 다툼이었다. 이른바 ‘먼지털기식 수사’는 26개월간, 총 87명이 참고인 조사를 받는 식으로 진행되었다. 총 17번에 걸친 공판이 마무리되고 마침내 지난 2010년 12월 30일 검찰이 구형을 했다. 적용된 혐의는 횡령과 알선수재였다.

2011년 1월 28일, 1심 선고재판을 마친 최열 대표가 법정을 나서면서 소회를 밝히고 있다. |정용인 기자
사전에 공지된 재판 시간은 오전 10시. 기자는 조금 이른 9시 15분쯤에 도착했다. 복도에 최열 대표가 홀로 앉아 있었다. 인사를 나누고 말을 건넸다. 오늘 결과를 어떻게 예상하냐고. “당연히 무죄를 확신합니다.” 그는 검찰, 보다 정확하게 권력 핵심부의 표적수사라고 했다. “제가 건네들은 말은 ‘최열은 반드시 구속시킨다’, 그리고 ‘재기불능상태로 만든다’는 거였습니다.”
안병옥 기후변화행동연구소 소장도 그렇게 말했다. “처음부터 표적은 최열이었습니다. 환경연합은 일종의 징검다리였고.” 안 소장은 검찰이 수사의 발단으로 이야기하는 환경연합 김모 간부의 공금횡령 사건(2008년 9월 초) 당시 환경연합의 사무총장이었다. 그는 공금횡령이 자신의 재임기간에 일어난 사건이 아니었지만 사건에 책임을 지고 임기를 1년 넘게 남겨놓은 시점에 사무총장직을 사퇴했다.
“처음부터 표적은 최열이었다”
최열 대표를 출국금지시킨 날은 2008년 9월 22일이었다. 윤미경 환경재단 홍보부장은 그날이 자신이 출산휴가를 마치고 첫 출근하는 날이어서 똑똑히 기억한다고 말했다. “오전 8시에 주간회의를 하고, 9시에 자리로 돌아왔는데 기자로부터 총장을 찾는 전화가 걸려온 거예요.” ‘최열 대표가 출국금지당했다’는 기자의 전언을 들은 이미경 총장은 “출금조치를 할 이유가 있나, 맞는지 확인해보라”고 반문했다. 다음은 이 총장의 말. “그때는 환경연합 일에 최 대표가 관여하지 않은 지 꽤 시일이 흘렀을 때라, 뭔가 잘못 안 것이 아닌가 생각해 대수롭지 않은 일로 생각했어요. 그런데….”
2008년 12월 1일, 공금횡령 혐의로 최열 대표는 1차 구속영장이 청구되었다. 그런데 검찰 뜻대로 되진 않았다. 영장은 기각됐다. 다시 2009년 3월 23일 알선수재 혐의가 추가되어 청구된 2차 구속영장 역시 결과는 기각이었다.
기자는 지난 2009년 3월, 일련의 제보를 받고 취재를 진행한 적이 있다. K산업단지 조성을 추진하던 K개발 오모 부사장이 검사로부터 ‘최열에게 정치자금을 줬다고 진술하면 회사를 살려주겠다’는 내용의 회유를 받았다는 주장이다. 2008년 촛불시위와 관련, “정권의 핵심부에서 시민사회단체가 배후에 있다고 판단, ‘핵심인사’인 최열과 박원순을 순차적으로 털 예정”이라는 소문이 돌던 시기다. 최열 대표와 개인적인 친분이 있던 오 부사장은 이와 관련, 기자회견을 준비 중이었다. 그런데 예정된 기자회견 전날, 오씨는 긴급체포되었다. 기자회견은 취소될 수밖에 없었다.
2009년 4월부터 공판이 진행되는 한편, 환경재단에 대한 가시적인 ‘압박’이 계속됐다. 환경재단에 기금을 낸 기업들에 대한 정보기관원의 방문이 잦아졌다. 6월 개최한 환경영화제와 관련, 당초 관련 지원금을 교부하기로 한 서울시와 환경부가 갑자기 난색을 표하며 돈을 주지 않았다. 서울시 부시장, 정권 실세도 만나 하소연해 봤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한결같았다. “우리도 이유를 모르겠다. ‘저기 위’에서 하지 말라고 해서….” (주간경향 832호 커버스토리 기사 참조) 최열 대표에게 적용된 혐의는 언론들이 대서특필했다. 환경운동연합 건물 건립을 명목으로 기업으로부터 받은 돈을 개인적으로 인출하여 동생 사업자금, 자녀 유학비 등으로 사용했고, 또 환경재단으로부터 시민사회단체 활동가 장학금 용도로 받은 돈도 임의로 재단 전세금과 피스&그린보트 참가 비용으로 전용했다는 것이다. 새롭게 추가된 알선수재는 앞의 폭로 기자회견을 열 예정이었던 오 부사장으로부터 K개발 사업과 관련, 용도변경 로비 대가로 돈을 받았다는 것이다. 최열 쪽은 어떻게 반박할까. 자신이 인출한 돈은 환경연합 쪽에 빌려준 돈을 순차적으로 돌려받아 개인용도로 사용한 것일 뿐이며, 환경재단 전세금 관련해서도 이사회에 보고해 승인을 받아 진행했고, 또 장학금도 차질없이 지급했다는 것이다. 오모씨로부터 빌린 돈 1억3000만원은 기존에 소유하고 있던 아파트를 처분하고 전세로 살던 아파트를 매입하는 과정에서 ‘1년 후 갚겠다’는 차용증을 쓴 후 빌린 급전이었고, 실제로 다 갚았을 뿐 알선수재가 아니라는 입장이다.
재판이 진행되면서 최 대표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증거들이 나왔다. 환경연합 3억원 대여사실이 기록된 장부가 저장된 당시 컴퓨터 하드디스크 등이 그것이다. 당초 예상된 1심 재판 결과는 ‘횡령 부분은 무죄, 알선수재는 다퉈볼 일’이라는 것이었다. 1월 23일, 재판부는 예상과 다르게 환경연합 건물과 장학금 횡령건과 K개발건에 대해서는 무죄를 선고했다. 그런데 환경재단 임대보증금과 관련된 부분에 대한 판단은 ‘유죄’였다. 선고는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2년.
“4대강 저지 운동 계속 벌일 것”
“허를 찔린 셈이다.” 이날 아침부터 나와 재판을 지켜보던 양길승 녹색병원 원장의 말이다. 최열 대표 공판에 매번 빠짐없이 나와 지켜본 양 원장은 이렇게 덧붙였다. “설혹 이사회의 결정이 잘못되었다고 하더라도 버젓이 이사장(이세중 변호사)이 있는데, 대표 또는 상임이사가 책임져야 한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시민사회 원로들과 ‘최열 죽이기 표적수사와 인권침해에 대한 대책회의’를 만들어 활동했던 윤준하 전 환경연합 대표는 “눈치보기 판결이었다”고 강도높게 비판했다. 최열 개인의 횡령이나 알선수재 부분은 무죄를 때리는 대신, 최열 수사를 지시한 ‘윗선’의 압력에 대해선 눈치가 보이기 때문에 공적인 업무를 수행한 부분에서 유죄를 선고하는 방식으로 절충한 것이 아니냐는 주장이다. 역시 ‘대책회의’에 참여하고 있는 문화예술인 임진택씨는 “처음부터 검찰의 의도는 ‘최열 모욕주기’였고, 그건 이미 재판이 시작되는 시점에서 성공한 것으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이번에 개인적 횡령, 알선수재와 관련해서는 모두 무죄 판결이 났지만, 최 대표와 대척점에 선 언론들은 최근까지 검찰의 구형을 바탕으로 기정사실화해 보도했다.
권력기관이 ‘최열 수사’에 나섰던 것에 대해 시민사회 주변에서는 ‘의외다’라는 반응이 많았다. 그도 그럴 것이, 이명박 서울시장 당시 최 대표는 청계천 복원위원회, 서울숲 조성 등의 사업에 참여했고, 여전히 이 대통령은 환경재단의 136환경포럼 멤버다. 최 대표 주위에서는 세 가지 괘씸죄 때문이라는 풀이를 내놓는다. 첫째로 대운하를 반대했고, 둘째로 지난 대선 때 자신을 도와달라고 했지만 돕지 않았고, 셋째로 촛불 배후세력이라는 의심이다. 이 중 ‘촛불 배후’라는 것은 사실이 아니다. 재판 결과에 대해 환경재단은 “공금횡령과 알선수재라는 ‘파렴치범’으로 몰아 최열 대표를 사회적으로 매장시키려 한 현 정권의 음모는 이번 무죄 판결로 산산히 부서졌다”며 “대운하 반대 때문에 시작된 탄압임에도 불구하고 4대강 저지를 계속할 것”이라고 밝혔다. 최 대표의 변론을 맡고 있는 김호철 변호사(법무법인 한울)는 “이번에 유죄판결난 이사회 부분과 관련해서는 당시 이사회에 참여했던 이사들의 증언을 모아 대비할 것”이라고 밝혔다. 또 다시 긴 다툼이 시작될 예정이다. 이날 재판정을 나서는 검사들의 얼굴은 굳은 표정이었다. 반면 최열 대표는 일부 유죄에도 불구하고 미소를 지으며 입구에서 대기하고 있던 기자들을 맞이했다. 과연 누가 최후에 웃을까.
<정용인 기자 inqbus@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