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타블로 마녀사냥, 공정사회 성장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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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평론가 이택광 경희대 교수“법치 사회정의 이슈화”

인기가수 타블로의 학위 진위 문제를 둘러싼 논란은 여전히 잦아들지 않고 있다. MBC스페셜이 스탠퍼드대학까지 타블로와 동행해서 직접 학위 검증절차를 보여줬지만, 논란의 중심에 서있던 “타블로에게 진실을 요구합니다”(타진요) 카페 회원들은 계속 또 다른 의혹들을 제기하면서 진실을 받아들이지 않으려는 것처럼 보인다. 이런 현상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그룹 에픽하이 멤버 타블로. |스포츠칸

그룹 에픽하이 멤버 타블로. |스포츠칸

문제의 핵심은 타블로의 스탠퍼드대학 졸업 여부에 있다기보다 타진요의 심리상태에 있는 것 같다. 타진요가 타블로의 학위에 문제를 제기하는 까닭은 ‘힙합이나 하면서 놀던 학생이 어떻게 그 어려운 스탠퍼드대학을 입학해서 졸업할 수 있는가’라는 의구심 때문이다. 사실 이런 생각을 가능하게 하는 메커니즘이 상당히 흥미로운 것이다. 기본적으로 이런 생각은 스탠퍼드대학과 그 학위제도에 대한 절대적 믿음을 전제하는 것이라는 점에서 그렇다. 스탠퍼드대학을 나온 사람이 절대 타블로처럼 행동할 수 없다는 확신이 여기에 스미어 있는 것이다.

학벌·학력우월주의 견제심리 작용
타블로가 이런 의심을 부추긴 이유는 예능프로그램의 특징을 잘 몰랐기 때문인 것 같다. 한국의 엔터테인먼트 산업에서 중요한 것은 남들보다 모자라는 위인이거나 아니면 항상 웃으면서 손이나 흔드는 인형일 뿐이다. 스탠퍼드대학 영문학과를 조기 졸업한 석사가 시시덕거리는 것을 용납할 수가 없는 것이다. 그가 예능프로그램에 나오지 않고 다른 힙합 가수들처럼 언더그라운드에서 음악만 했다면 이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예능프로그램에서 인기를 얻고 싶었고, 그래서 있는 사실을 부풀려서 말하는 일이 반복되다가 보니 역풍을 맞게 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타진요의 논리도 강고한 학벌주의의 산물이라면, 타블로 역시 여기에 편승해서 자신의 입지를 굳히려고 했다는 비판을 면하기 어려운 것이다.

여기에서 주목해야 할 사실은 타블로를 집중적으로 공격한 이들이 대체로 미국에서 대학을 다녀본 사람들이거나 자녀들을 진학시킨 경험이 있는 사람들이라는 점이다. 타진요의 매니저인 왓비컴즈는 미국 거주자로 알려져 있다. 타진요가 주장하는 ‘상식’은 이런 경험에 근거를 두고 있는 것이다. 재미있는 것은 이런 상식에 근거한 주장이야말로 전형적인 한국 시민사회의 논리이기도 하다는 점이다. 미국 또는 유럽의 상식을 보편적인 것으로 전제하고 대상에 대한 비판적 거리를 확보하는 사고의 구조가 한국식 민주주의를 떠받치고 있다는 사실을 다시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어쨌든 이처럼 한국 사회에서 지식엘리트집단을 구성하고 있는 이들이 타블로의 학력을 의심하고 학위 조작을 확신했다는 것은 상당히 의미심장하다. 이들이 타블로의 학력에 의문을 제기하는 근거 중 하나가 미국 명문대학을 나왔다는 타블로의 지적 능력이 그렇게 높아 보이지 않는다는 의심이다. 출간한 책의 내용도 그렇고, 평소에 방송에 나와서 쏟아내는 발언들이 전혀 ‘배운 사람’처럼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결국 이런 주장에서 확인할 수 있는 사실은 미국의 명문대학 학위에 대한 무조건적인 신뢰라고 할 수 있다. 스탠퍼드대학의 교육체계는 거의 완벽하기 때문에 그 과정을 졸업하고 타블로처럼 행동할 수가 없을 것이라는 확신이 깔려 있다. 그래서 이들은 타블로의 학위를 진짜일 수 없다고 믿는 것이다.

법-시민사회-국가 관계 재정립 과정
타블로를 둘러싼 논란은 전형적인 마녀사냥의 형식논리를 체현하고 있다는 점에서 범상한 사건이라고 보기 어렵다. 말 그대로 이 사건은 마녀사냥의 구조를 드러내고 있다. 개똥녀나 디워, 또는 황우석의 경우와 상당히 다른 측면이 여기에 도사리고 있는 것이다. 개똥녀 사건은 개인에 대한 이지메였고, 디워는 반지성주의, 그리고 황우석은 민족주의에 근거했지만, 타블로는 이 모든 것이 복합적으로 작동하는 한편 세 범주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심리의 문제를 드러내고 있다. 사회정의를 위해서 진실이 승리해야 한다는 ‘신념’이 개입하고 있는 것이다. 이 사회정의에 대한 주장으로 인해 타진요의 발언들은 특정한 이해관계를 떠난 ‘공정성’을 띠고 있는 것처럼 받아들여지는 것이다.

타블로의 스탠퍼드대 학위가 거짓이라고 주장하는 네이버 카페 ‘타블로에게 진실을 요구합니다’. |경향신문

타블로의 스탠퍼드대 학위가 거짓이라고 주장하는 네이버 카페 ‘타블로에게 진실을 요구합니다’. |경향신문

이런 까닭에 이 사건은 단순하게 신정아의 경우처럼 학위 조작 문제라고 볼 수 없다. 타블로 논란은 법과 사회, 그리고 국가의 관계 문제를 매개로 회전한다는 측면에서 다분히 근대적인 마녀사냥의 양상을 띠고 있다. 마녀사냥의 조건은 시민사회와 법의 관계가 완전히 정립되지 못한 상황, 급격한 사회 변동으로 인한 가치판단의 혼란, 대상에 대한 혐오를 뒷받침할 합리적인 근거, 사회정의에 대한 집단적 공감,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 모든 것을 주도하고 선동하는 집요한 지도자와 이를 추종하는 열렬한 군중의 존재이다. 마녀사냥에서 중요한 것은 개별 지식들을 판타지의 논리에 따라 재구성해서 현실을 설명하는 근거로 제시하는 행위이다. 타진요 카페 게시판을 채우고 있는 내용들을 살펴보면, 이 과정들이 어떻게 그럴 듯하게 합리적 과정을 거쳐서 이루어졌는지를 명쾌하게 알 수 있다.

타블로에 대한 마녀사냥은 어떤 변화를 예고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논란의 중심에 선 이들이 ‘법’을 통해 이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판단을 내렸다는 것도 재미있지만, 궁극적으로 마녀사냥은 법과 시민사회, 그리고 국가의 관계가 정립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징후라는 사실을 이번 사건은 다시 한 번 확인시켜준다. 마녀사냥에 대한 ‘비판’은 계몽주의로부터 공급되는 것이고, 이 과정에서 개인은 법의 금지를 내면화하고 국가는 이를 포섭하며 재현한다. 말하자면 마녀사냥은 시민사회를 요동치게 만드는 과잉의 욕망을 ‘나쁜 것’으로 규정하고 제거하는 과정을 필연적으로 수반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마녀사냥 자체가 ‘자신의 억압’을 극장화해서 아버지의 법에 자신이 얼마나 고통 받고 있는지를 호소하는 도착적 퍼포먼스라는 사실을 인지할 필요가 있다. 이런 까닭에 마녀사냥의 주체는 아무리 과격한 내용을 주장하더라도 결코 법의 경계를 돌파하지 못한다.

마녀사냥에 대한 계몽주의적 비판과 규제는 곧 과잉의 욕망에 휘둘리는 주체의 망동을 법의 이름으로 심판하는 절차이기도 하다. 법의 금지를 내면화한 ‘깨어난 개인’이 그렇지 못한 ‘몽매한 개인’을 질타하는 이중구조가 여기에서 발생하는 것이고, 이것이 바로 근대사회의 가치체계를 구성한다. 이렇게 법은 계몽주의의 논리를 체득하게 되고, 개인은 근대적 시민으로 국가에 자신의 공백을 고정시키는 절차를 통해 다시 태어난다. 이런 맥락에서 이번 타블로 논란은 변화의 와중에 있는 한국 사회의 상황을 정확하게 보여주는 거울상이기도 하다. 이런 전체 과정을 파악하지 못하고 인터넷 때문에 이런 일이 발생했다는 단순논리로 문제의 해결책을 찾는 것은 동그라미를 네모 속에 집어넣으려는 불가능한 시도에 지나지 않는다. 인터넷은 단지 이 모든 것을 실시간으로 우리에게 보여주는 스크린일 뿐이기 때문이다.

이택광<경희대 교수·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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