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익요원 향응 파문’ 본지 자료분석…총근무기간 중 43% 쉰셈
공정거래위원회 산하 국가출연기관인 한국소비자원(소비자원)이 떨고 있다. 소비자원의 일부 직원들이 한 공익요원으로부터 금품과 향응 접대를 받고, 이 공익요원의 근무지 이탈 및 무단결근을 방조했다는 혐의를 받고 경찰 수사선상에 올랐기 때문이다. 기업으로부터 소비자의 권익을 향상시키기 위해 설립된 소비자원이 이같은 도덕적인 문제로 타격을 받은 것은 1987년 설립 이래 처음 있는 일이다. 이재근 참여연대 행정감시팀장은 “소비자원이 기업들의 불공정행위를 감독하는 기관인데, 내부적으로 향응을 받았다는 의혹이 나오고 있어서 안타깝다”며 “만약 직무와 관련해 직원들이 공익요원으로부터 향응을 받았다면 받은 액수의 경중에 따라 책임을 철저히 물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국회 정무위 임영호 의원이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한국소비자원을 상대로 질의하고 있다.
문제의 발단은 한 고발자가 지난 7월 병무청에 소비자원에서 근무했던 공익요원 전모씨의 비리사실을 신고하면서부터 시작됐다. 이 고발자는 전직 소비자원 직원으로 추정된다. 전씨는 소비자원에서 지난 2006년 3월부터 2008년 3월까지 공익요원으로 근무했다. 그는 공익으로 입대하기 전에 강남에서 사설학원을 운영하는 등 재력가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고발자의 제보에 따르면 전씨는 ▲근무 기간 중 자신의 학원 직원을 불러 소비자원에서 학원 일을 보게 했으며 ▲공익 신분으로 중국에 자주 출국해 자신의 중국 현지 학원 일을 보고 ▲2007년 8월부터는 소집해제 전까지 정식으로 출근하지 않고 가끔 들러서 일일 복무상황부(출근부)와 복무기록표에 한꺼번에 사인하거나 후배 공익요원에게 대리 서명을 지시했다는 것이 골자다. 제보자는 이런 모든 것이 가능했던 이유는 전씨가 소비자원 일부 직원들에게 술과 성(性) 접대, 고가의 선물이나 현금을 뇌물로 제공했기 때문에 입막음이 가능했다고 주장했다. 이 제보자는 전씨의 로비 대상 추정명단(소비자원 직원) 20여명을 실명으로 제보하기도 했다.
휴가 승인서류 현행법 위반 가능성
병무청은 우선 소비자원을 대상으로 서류와 담당직원 조사 등을 한 후 정식으로 검찰에 수사의뢰했다. 병무청 관계자는 “이 사건이 3년 전에 일어난 것으로 당시 서류와 담당자들의 진술만 갖고는 사실을 확인할 수 없었다”며 “향응 제공 등 사실을 자세히 밝혀내기 위해 검찰에 수사를 의뢰했다”고 말했다.
현재 이 사건의 수사는 서울 서초경찰서에서 담당하고 있다. 서초경찰서는 지금까지 전씨를 피의자 신분으로 조사했으며, 소비자원 직원 10여명을 참고인 신분으로 불러 조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경찰의 수사 결과가 어떻게 나올지 주목된다. 서초경찰서 측은 “이 사건의 수사가 진행 중인 상황이므로 현재로서는 어떤 것도 대답해 줄 수 없다”고 말했다.
과연 제보는 어느 정도가 사실일까. 소비자원이 국회 정무위원회 임영호 의원(자유선진당·대전 동구)에게 제출한 자료를 「Weekly 경향」이 분석한 결과 의혹이 상당 부분 발견됐다.
전씨는 소비자원에 근무한 기간에 각종 명목으로 총 80.5일의 휴가를 받았다. ▲정기휴가 37일 ▲병가 30일 ▲특별휴가 6.5일 ▲청원휴가 7일을 사용했다. 즉 전씨는 무단결근 의혹 등을 제외더라도 근무 기간 총 757일 중 주말(토·일요일)을 포함해 328일을 쉰 셈이다.

공익요원 전모씨의 일일 복무상황부를 보면 출근 사인이 전○○에서 이름의 마지막자를 한자로 쓴 것으로 바뀌어져 있다.
이와 관련, 공익요원의 근태 관리를 담당한 소비자원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특히 전씨의 각종 휴가가 현행 법규를 위반하면서까지 진행됐다는 의혹도 사고 있다. 우선 병가 규정 위반 의혹이 있다. 공익 근무요원의 복무관리 규정(제21조 제3항)에 따르면 행정관서 요원이 병가를 신청할 때는 진단서를 제출해야 한다. 다만 병가 기간이 연속 7일 이내의 단기간으로 진단서 제출이 곤란한 사람에 대해서는 복무기관장이 질병상태를 직접 확인해 복무가 곤란하다고 판단되는 경우 진단서를 생략할 수 있다고 규정돼 있다. 하지만 소비자원은 7일 이내 병가의 경우 진단서를 아예 제출 받지 않았으며, 7일 이상으로 제출된 해외 병원 진단서 역시 중국 모 지역에 위치한 병원 안내서, 진찰 주의사항 등으로 핵심 서류는 빠져 있었다.
또한 소비자원이 전씨에게 준 특별휴가도 본래의 취지와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공익요원의 복무관리 규정에 따르면 특별휴가는 ‘근무 성적이 극히 우수하여 모범이 되거나 특별근무 등에 대한 위로의 필요성이 있는 경우에 연 5일 이내의 특별휴가를 허가할 수 있다고 돼 있다. 하지만 소비자원은 관례적으로 특별한 사유 없이 공익요원에게 특별휴가를 준 것으로 알려졌다. 전씨의 경우 특별휴가 사유가 ‘가사’다.

한국소비자원 김영신 원장과 주한 유럽연합상공회의소 장 마리 위르티제 회장이 9월 14일 서울 서초구 한국소비자원에서 양해각서(MOU)를 체결하고 난 후 기념촬영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와 함께 전씨의 병 치료를 위한 중국 여행 허가도 석연치 않다. 병역법 시행령에는 공익요원의 국외여행 허가를 철저히 규제하고 있다. 다만 치료 목적의 국외여행의 경우 ‘국내에서 치료가 곤란한 질병의 치료’로 엄격히 한정하고 있다. 하지만 전씨가 제출한 진단서가 부실해 확실히 알 수 없지만 일일 복무상황부에는 ‘눈수술(양안 고도근시 수술)’이라고 돼 있다. 하지만 이런 수술은 국내에서도 쉽게 받을 수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견해다.
근무일지 대필사인·결재누락 의혹
마지막으로 전씨의 근무일지(일일 복무상황부·복무기록표)를 보면 일률적 대필 사인, 결재 누락 등 허위기록 의혹도 보여지고 있다. 예를 들면 2006년 5월 9일 병가에는 담당자, 팀장의 결재가 없으며, 복무기록표에도 누락됐다. 또한 2006년 10월 9일 일일 복무상황부에는 휴가로 처리됐으나, 근무상황표와 복무기록표에는 역시 기재되지 않았다. 또한 2006년 11월 이후에는 근무상황표에서 전씨가 출근하면서 한 서명은 기존의 한글이름 전○○에서 이름의 마지막 자를 한자로 쓴 것으로 바뀌어져 있다. 전씨의 출근 서명이 갑자기 바뀐 것이다. 이는 전씨가 출근하지 않고 다른 사람이 대신 서명한 의혹을 받을 만한 부분이다. 특히 제대 마지막해인 2007년 1월 이후에는 전씨의 근무상황표에 결재가 누락되기도 했다.
이에 대해 소비자원은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하며 경찰의 수사 발표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소비자원 박현서 홍보실장은 “당시 공익요원 배치부서와 인사관리부서 책임자들이 조사를 받은 것으로 알고 있다”며 “수사 결과가 나오는 대로 관련 직원들에 대한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 임영호 의원은 “공익요원 관리를 담당하는 라인에서 문제의 공익요원으로부터 향응·금품 접대 등을 받았을 경우 뇌물죄가 성립될 것이고, 직무를 태만히 했으면 직무유기죄가 성립된다”며 “이번 국정감사에서 이 부분을 철저히 추궁할 것이며, 이번 사건을 계기로 공익요원 근무실태에 대한 감사원 감사를 청구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권순철 기자 ikee@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