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마다 차이나는 설 상차림, 제주도는 옥돔 등 특산물 올려
서울·경기도의 차례상에는 녹두전과 굴비, 산나물이 풍부한 강원도는 메밀전 등 부침류, 전라도는 특산물인 홍어가 빠지지 않고 상에 오른다. 또 해산물이 풍부한 경상도는 어물을 올리고, 제주도는 옥돔이 차례상에 빠지지 않는다. 이처럼 차례상에 오르는 음식은 종류도 다양하지만 지방마다 조금씩 차이를 보이고 있다.

설날 표준 차례상 |경향신문
지역마다 ‘설 상차림’에는 약간의 특징이 있다. 그 지방에서만 생산되는 특산 재료를 사용해 조리법에 의해 발전시킨 음식들을 상에 올린다. 차례상 음식은 지방과 가정에 따라 다른 경우가 많아 일명 ‘가가례(家家禮)’라고 한다. 차례는 원래 제사를 간소하게 지내는 약식 제사라고 볼 수 있다. 차례(茶禮)의 본래 의미는 ‘찻잔을 올리는 예’에서 비롯됐다고 한다.
강원도 평창은 메밀전 안 빠져
서울·경기 지방은 해산물이 풍부하고, 동쪽의 산간지대에는 산채가 많이 나기로 유명하다. 선조들은 차례상에 통북어를 꼭 올렸다. 또 녹두를 갈아 배추를 고명으로 넣어 만드는 녹두전을 올리기도 했다. 생선 가운데서는 으뜸으로 꼽히는 굴비를 많이 올렸으며, 요즘에는 가자미나 참조기를 올리는 곳이 많아졌다.
대부분이 산악인 강원도는 영서와 영동, 산악과 해안 지대에서 나는 산물이 다르다. 그러나 산악 지대가 많아 쌀농사보다 밭농사가 발달해 나물과 감자, 고구마를 이용한 음식이 많다.

북어적이 있는 서울·경기도 상차림 |가례원 제공
이 가운데 평창 지역은 메밀꽃이 유명해 차례상에 반드시 메밀전을 올린다. 감자전이나 무와 배추로 전을 부치기도 한다. 충북 충주에서 시집 온 서미희씨(38)는 “고향에서도 부침개를 올리긴 했지만 메밀이나 감자로 전을 부쳐 차례상에 올리는 게 생소했다”고 말했다.
전라도는 제사상에 홍어를 올리는 것이 특징이다. 잔치 때 빠지지 않는 음식이 홍어이고, 차례상이나 제사상에도 절대 빠지지 않고 올린다. 전라도 지방은 예부터 기름진 호남평야에서 나는 풍부한 곡식과 각종 해산물, 산채 등이 다른 지방에 비해 많아 음식 종류가 다양하고 정성이 유별났다. 병어나 낙지를 비롯해 남도 쪽, 특히 벌교에서 많이 나는 꼬막 같은 어패류도 단골 제물에 속한다. 이영모 흑산도수협 상무는 “예부터 전남 지역은 홍어가 많이 잡혀 잔치나 차례상에는 꼭 빠지지 않고 올렸다”면서 “홍어 맛이 가장 좋을 때가 설 전후여서 이때에는 평상시보다 3배 이상 팔리고 있다”고 말했다.

홍어가 있는 전라도 상차림 |가례원 제공
충청도는 다양한 제물을 올리기로 유명하다. 삼도가 인접해 있어 쌀·보리 등 곡식과 무·배추·고구마 등이 많이 생산되고 해안 지역에는 해산물, 내륙 산간 지역에는 산채와 버섯이 많이 난다. 경북에 인접한 지역에서는 대구포·별상어포·오징어 등 건어물을 차례상에 올리고, 호남과 인접한 지역에서는 병어·가자미·낙지 등을 많이 올린다. 내륙에 인접한 지역에서는 배추전 등 부침개류를 많이 올린다.
대구는 별상어 살을 구운 ‘돔배기’
경상도는 남해와 동해의 좋은 어장 덕에 해산물이 풍부하다. 이 가운데 경남 지역은 바다를 옆에 끼고 있어 어물을 제사상 등에 많이 올린다. 또 조기·민어·가자미·방어 등 많은 종류의 생선을 올리고, 조개 등 어패류를 올리는 지역도 있다. 대구는 적으로 별상어 살을 구워서 올리는데, 이곳에서는 별상어를 ‘돔배기’라고 한다. 대구가 고향인 이재홍씨(서울 영등포구·61)는 고향을 떠나온 지 30년이 넘었지만 차례를 지낼 때면 별상어를 꼭 올렸다. 이씨는 “오래 전에 고향을 떠나왔지만 전통을 잊을 수 없어 차례상에 꼭 ‘돔배기’를 올린다”고 말했다. 한편 안동에서는 가자미식혜가 차례상에 빠지지 않고 오른다.

별상어(돔배기)적이 있는 경상도 상차림 |가례원 제공
제주도는 땅은 넓지 않지만 어촌, 농촌, 산촌의 생활 방식이 서로 차이가 있다. 제주도는 다른 지역에서 볼 수 없는 특산물이 많아 제사상 등에도 이런 음식들이 차려진다. 특히 옥돔처럼 제주도에서만 잡히는 생선 등은 빠지지 않는다. 요즘에는 제주도에서 생산되는 귤은 물론 파인애플 같은 열대과일도 상에 올린다. 유래는 우럭을 썼었다. 김지순 제주향토보존연구원 원장은 “아궁이 때던 시절에는 우럭, 그 후로는 설 차례상 등에 옥돔을 많이 올린다”면서 “과일로도 귤을 올리고, 서귀포 지역에서는 바나나나 파인애플 등 열대과일을 올리는 곳도 있다”고 설명했다.
우리나라는 이처럼 지역과 사는 고장에 따라 상차림에 차이가 있다. 그러나 상차림에는 몇 가지 공통적인 원칙이 있다. 우리나라는 예부터 주자가례(朱子家禮:주자가 유가의 예법의장에 관해 기술한 책)에 바탕을 둔 전통적인 진설 방식을 따른다.
상차림의 기본 원칙은 다음과 같다. 가장 보편적 방식으로 과일의 진설 위치에 다라 크게 두 갈래로 나뉜다. ‘조율이시(棗栗梨枾)’와 ‘조동율서 이동시서(棗東栗西 梨東枾西)’다. ‘조율이시’ 방식이 보편적인 관행이다. 제상의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차례로 대추, 밤, 배, 감(곶감) 순으로 놓는다. 다만 국불천위를 모시는 ‘선정집(국가로부터 국불천위로 배향된 선조를 둔 가문)’을 비롯한 일부 가문에서는 ‘조율동서’방식의 진설이 관행이다.
‘치’가 들어간 생선은 상에 안 올려
상차림에서 오른쪽은 동쪽, 왼쪽은 서쪽이다. 남향 가옥을 짓는 적도 북방에서 가옥을 바라보는 방위를 기준으로 위쪽이 북방이고 아래쪽이 남방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가옥의 구조상 지리적 방향과 다르더라도 오른쪽은 동쪽, 왼쪽은 서쪽으로 간주한다.

‘설 차례상 음식 맞추기 행사’에 참여한 어린이들이 모형 음식으로 차례상을 꾸미고 있다. |김정근 기자
다음은 야채 진설이다. 야채의 위치는 모르고 지나치는 경우가 많지만 전례의 관행이 지역이나 가문마다 명백한 차이가 있기도 한다. 흔히 고사리와 시금치, 도라지(콩나물 등)를 준비하는데 전례 원칙은 ‘산동야서(山東野西)’ 기준이 적용된다. 즉 산에서 채집한 고사리가 맨 오른쪽, 가운데는 시금치 등 들에서 재배한 나물을 놓는다. 가장 왼쪽에는 집에서 기른 흰색나물(도라지, 콩나물이나 숙주나물 등)을 올려야 한다.
육류와 어물을 진설하는 기본 원칙은 어동육서(魚東肉西)다. 어류는 동쪽, 육류는 서쪽에 놓는다는 말이다. ‘두동미서(頭東尾西)’도 잊지 말아야 할 원칙이다. 즉 머리를 동쪽, 꼬리는 서쪽으로 향하게 놓아야 한다. 세부적인 원칙으로는 ‘우모린(羽毛鱗)’ 순이다. ‘우(羽)’는 닭이나 꿩 등 날짐승, ‘모(毛)’는 쇠고기나 돼지고기, ‘인(鱗)’은 어류를 뜻한다. 특히 ‘좌포우혜(佐鮑右醯)’로 마른고기를 왼쪽에 놓고, 생선과 삭힌 음식을 오른쪽에 놓는다. 단 비늘이 없는 어류나 ‘치’가 들어가는 물고기는 상에 올리지 않는 게 일반적인 상식이다. 이 밖에 조기와 자반, 간장 등 식사에 꼭 필요한 밑반찬과 편(떡) 등을 준비하는 것도 차례상 차림에 필수 요소다.
황의욱 성균관 전례연구위원회 상임부위원장은 “차례상은 단순히 상을 차리고 절만 하기 위한 요식 행위로 생각해선 안된다”면서 “조상으로부터 이어온 문화와 지혜가 담긴 전통교육으로 생각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서상준 기자 ssjun@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