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장학사 술판 폭행, 홧김에 ‘뇌물’ 실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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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녀장학사 단순폭행 사건 ‘임용 비리’로 비화… 서울시교육청 불똥

서울시교육청의 장학사 선발을 둘러싼 금품수수 비리가 불거지면서 연초부터 교육계가 시끄럽다. 소문으로만 나돌던 교육계의 부패 구조가 확인되면서 서울시교육청은 졸지에 비리복마전이라는 오명을 얻고 있다. 특히 돈을 준 여성 장학사의 취중고백이 발단이 돼 수사가 시작된 것으로 밝혀지면서 세간의 관심이 증폭됐다.

석연치 않은 말다툼과 폭행 사건으로 시작된 장학사 선발 과정의 뇌물 수수·공여 사건의 파장이 일파만파로 번지고 있다.

석연치 않은 말다툼과 폭행 사건으로 시작된 장학사 선발 과정의 뇌물 수수·공여 사건의 파장이 일파만파로 번지고 있다.

서울 서부지방검찰청이 뇌물 수수·공여 혐의로 서울시교육청 소속 장학사 2명을 수사하기 시작한 것은 지난해 12월 초였다. 시교육청 소속 장학사 임 모씨(50)가 또 다른 서울시교육청 소속 장학사 고 모씨(50·여) 등으로부터 장학사시험 합격 대가로 3000여 만원을 받았다는 것이 비리 내용이었다. 수사가 진행될수록 사건은 커져 지난해 12월 25일엔 급기야 임씨의 상위 직급인 현직 고등학교 교장(장학관)이 연루된 정황이 드러났다. 1월 12일 검찰은 임씨를 구속하면서 “임씨가 윗선을 비호하려 할 가능성이 크다”고 구속 사유를 밝혔다. 검찰 수사의 칼날이 서울시교육청을 정면으로 겨누면서 시교육청은 물론 이곳을 거쳐간 교장·교감 등에게까지 불똥이 튈 수 있는 상황이다.

검찰, 윗선 연루 정황 포착 수사확대
그런데 이 사건이 세상에 드러나게 된 계기가 특이하다. 당사자 둘만 아는 비밀이던 이 사건의 폭로는 제3자의 제보나 감사기관의 감사 때문이 아닌 뇌물을 공여한 당사자가 홧김에 한 ‘고자질’ 때문에 이뤄졌다.

지난해 12월 3일 오전 3시쯤 서울 노원구 불암지구대에 50대의 남성과 여성이 단순 폭행 혐의로 붙잡혀 왔다. 임 장학사와 고 장학사였다. 이들은 과거 같은 학교에서 함께 근무한 교사들과 함께 서울 노원구에 있는 한 호프집에서 술을 마신 뒤였다. “상대방의 말이 기분 나쁘다”는 이유로 말다툼한 끝에 고씨가 자신이 신고 있던 하이힐로 임씨를 내리치는 등 폭행사건으로 번진 것이다. 당시 고 장학사가 하이힐을 벗어 몇차례 때리긴 했지만 외상이 날 정도는 아니라고 조사한 경찰관은 전했다.

그런데 분을 이기지 못한 고 장학사는 노원경찰서로 호송돼 조사를 받던 중 형사에게 엄청난 사실을 실토했다. “임 장학사가 나를 장학사시험에 합격시켜 주겠다며 2000만원을 요구해 받아 갔다”고 불어버린 것이다. 조사하던 경찰관은 ‘대박’ 수사거리임을 직감하면서도 내심을 숨기며 지나가듯 슬쩍 물었다. 임 장학사는 “절대 그런 일 없다”며 펄쩍 뛰었다. 경찰이 뇌물 사건임을 직감하고 본격 조사에 나섰다. 임 장학사는 고 장학사에게 접촉해 “조직은 살려야 하지 않느냐”며 무마를 시도하기도 했다.

경찰 및 검찰에 따르면 사건은 2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2008년 초부터 시작된다. 임 장학사는 고 장학사가 살고 있는 아파트 근처에서 교육전문직 임용시험(장학사 시험)을 준비 중인 당시 ㅅ중학교 교사인 고 장학사에게 “장학사시험에 합격시켜 주겠다”며 돈을 요구했다. 은밀한 제의가 이뤄진 장소는 임 장학사의 승용차 안이었다. 둘은 같은 학교에 근무하는 동료 교사 사이였다. 먼저 장학사시험에 합격해 서울의 중등 교원의 인사를 담당하게 된 임씨는 “교육전문직 임용고시 2차시험인 현장실사에서 교장, 교감, 장학사와 장학관들로 이뤄진 평가단의 주관적인 평가가 개입될 수 있다”면서 “평가자들에게 부탁해 좋은 점수를 받을 수 있도록 해 주겠다”고 고 장학사에게 제의했다.

반년 뒤 고 장학사는 임 장학사에게 돈을 건넸다. 고 장학사는 2008년 여름 장학사시험에 합격하기 위한 대가로 2000만원이 입금된 자신 명의의 통장과 체크카드를 임 장학사에게 줬다. 고씨는 그해 장학사시험에 합격하게 된다.

검찰 수사 결과 임 장학사의 혐의는 이것뿐이 아니었다. 지난해 장학사시험에 응시해 합격자 발표를 앞두고 있던 ㅇ고등학교 교사인 노 모 교사에게도 돈을 요구했다. 임 장학사는 노씨에게 “당신은 전교조 활동을 많이 해서 장학사시험에 합격하기가 곤란할 것”이라면서 “담당 장학관에게 잘 부탁해 시험에 합격시켜 줄테니 1000만원을 달라”고 말했다. 한 달 뒤 노씨는 임 장학사에게 1000만원을 건넸다. 그도 그해 시험에 합격하게 된다.

장학사 선발 평가방식 허점 이용
임 장학사가 이처럼 뇌물을 받게 된 것은 그가 장학사 선발시험의 빈틈을 익히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2008년부터 2009년까지 2년 동안 서울의 모든 교사와 교원전문직의 인사를 담당하고 있는 서울시교육청 교원정책과의 중등 교원 인사를 담당했다. 1년에 한 번 치러지는 교육전문직 임용시험은 1·2차에 걸쳐 실시된다. 객관식 시험(50점)과 논술(50점)로 1차를 통과한 뒤 2차에서 면접(30점)과 교과전문성 시험(40점), 현장실사(30점)를 치르도록 돼 있다. 대개 교사들이 장학사 시험에 합격하려면 보통 3년 정도의 준비기간이 필요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더러는 재수나 삼수를 하는 경우도 있을 정도로 쉽지 않은 시험이다. 임 장학사가 “좋은 점수를 받게 해 주겠다”라고 밝힌 것은 현장실사를 염두에 두고 한 말이다. 현장실사는 현직 교감과 교장 등으로 이뤄진 3, 4명의 실사단이 교과그룹별로 시험을 치르는 교사의 학교를 직접 방문해 평가한다. 이 때문에 다른 과정과 달리 평가관과 평가를 받는 이가 누구인지 파악이 된다.

서부지검은 이 사건을 계기로 대대적으로 수사에 나설 조짐이다. 지난 12일 임씨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하면서 검찰은 “임씨가 자신의 지위를 이용해 다른 공무원의 직무에 속한 사항의 알선에 관해 합계 3000만원의 뇌물을 수수한 알선 뇌물 수수의 죄를 범했다고 의심할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다”고 밝혔다. 또 “이러한 점을 모두 고려하면 사안이 중대하고 죄질이 불량함으로써 높은 선고형이 예상돼 피의자가 도망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남녀 장학사 간의 뇌물수수와 동기가 석연치 않은 말다툼과 하이힐 폭행, 취중 실토 등 입방아를 찧기 좋은 소재여서 사건을 둘러싼 추측도 빠르게 번지고 있다. 이들을 조사한 노원경찰서 측은 “고 장학사가 술에 취해 뇌물 수수·공여 사실을 털어 놓긴 했지만 이튿날 찾아와선 다시 이 사실을 부인하는 등 오락가락하는 모습을 보였다”고 전했다. 또 “사건 당일 둘은 격하게 싸움을 한 상태였지만 나중엔 서로 처벌을 원치 않았다”고 덧붙였다.

현재 사건 당시 서울ㄱ교육청에 근무하던 고 장학사는 병가를 낸 상태로 연락이 닿지 않는다고 시교육청은 밝혔다. 구속된 임 장학사와 고 장학사는 모두 직위해제됐다.

<사회부·심혜리 기자 grac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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