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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초수급자는 무능하고 외모 혐오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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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지부 근로능력 판정 기준 인권침해 논란… 대상자 “인간적 모멸감”

대표적으로 기초생활수급자가 다수 거주하는 서울 동자동 쪽방촌의 모습. <김정근 기자>

대표적으로 기초생활수급자가 다수 거주하는 서울 동자동 쪽방촌의 모습. <김정근 기자>

보건복지가족부가 2010년 1월부터 적용하기 시작한 국민기초생활수급자 근로능력판정제도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보건복지부는 “질병·부상으로 생활이 어려운 기초생활수급자에 대해 공무원의 면담 및 실태조사 등을 통해 근로능력을 판단, 수급비를 지급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보건복지부는 기존 의학적 판단과 더불어 공무원의 객관적인 판단을 추가해 부정수급자를 걸러내기 위한 조치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일부 시민단체 및 기초수급자는 근로능력 판정 기준에 인권침해 소지가 있으며 객관적 판단이 불가능한 제도라고 비판했다.

“인간적인 모멸감을 느낀다.” 기자에게 직접 전화를 건 기초생활수급자 김형태씨(가명·61)는 울분을 토했다. 근로능력 판정 기준에 ‘혐오감을 주거나 산만하다’ 등 수급자의 인권을 무시하는 항목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김씨는 “복지부에 항의해도 문제가 없다는 태도를 보여 더 화가 난다”면서 좀처럼 흥분을 삭이지 못했다.

부정수급자 판별조치 불구 문제 소지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2010년부터 기초생활수급자 가운데 질병·부상으로 인해 ‘근로능력이 없는 자’로 판정받기 위해서는 의학적 평가와 활동능력평가를 동시에 받아야 한다. 의학적 평가는 의료기관을 통해 육체적 근로능력을 의학적으로 진단받는 것이다. 활동능력평가는 시·군·구청 공무원이 수급대상자와의 면담과 실태조사를 통해 최종적으로 근로능력을 판단하는 과정이다. 수급대상자는 두 과정을 모두 통과하면 근로능력이 없는 자로 판정, 조건 없이 수급비를 받을 수 있다. 근로능력이 있다고 판정되면 일을 해야 기초생활수급이 이뤄지며, 의료급여 혜택은 줄어든다.

지난해까지는 의료기관에서 ‘질병·부상 또는 그 후유증으로 인해 3개월 이상의 치료나 요양이 필요하다’는 진단서만 발급받아 제출하면 근로능력이 없는 자로 분류됐다. 즉 현행 제도는 공무원 평가가 새로 추가돼 기초생활수급비 지급 기준이 까다로워진 것이다.

[사회]기초수급자는 무능하고 외모 혐오감?

문제는 추가된 시·군·구청 공무원이 실시하는 활동능력평가다. 활동능력평가 판단 기준은 모두 10개 항목이며, 각각 0~4점이 배점된다. 질병·부상이 있는 수급대상자는 의학적 평가에 따라 25~35점을 받아야 ‘근로능력이 없는 자’로 판정된다.

그러나 각 항목을 살펴보면 곳곳에서 인권침해 요소를 발견할 수 있다.<표참조> 예를 들어 외모관리 부분은 ‘외모에 혐오감을 주거나 심한 냄새가 난다.(0점)’에서 시작해 ‘철에 맞지 않는 옷을 입거나, 옷이 늘 더럽다.(1점)’ ‘외모관리를 잘하고, 옷을 단정이 입는다.(4점)’ 등으로 구성됐다. 즉 외모가 혐오감을 주거나 차림새가 더러워야 수급비를 받을 확률이 높아진다는 뜻이다.

참여연대 사회복지위원회 전은경 팀장은 “수급대상자에 대해 ‘더럽다’ ‘무능하다’ 등의 기준으로 근로능력은 판단하는 것은 인권침해”라고 지적했다. 전 팀장은 인권침해 문제뿐만 아니라 활동능력평가 자체가 비현실적인 제도라고 주장했다. 활동능력평가 인력의 부족과 판단 기준의 객관성 결여도 논란의 소지가 있기 때문이다. 전 팀장은 “1800여 명의 담당공무원이 18만명의 수급대상자를 객관적으로 심사하는 것은 비현실적이며, 판정 기준도 주관적이어서 선정 과정에 논란의 소지가 있다”고 말했다.

보건복지부는 평가 기준에 대한 문제점은 일부 인정했다. 근로능력판정제도를 담당하는 보건복지부 기초보장관리단 관계자는 “수급대상자의 인권을 침해하는 의미가 아니지만 표현상 일부 부적절한 측면이 있다는 사실은 인정한다”고 밝혔다.

판정제도가 비현실적이라는 지적에는 정면으로 반박했다. 이 관계자는 “담당 공무원의 수를 최대 2000명까지 늘릴 예정”이라면서 “1년 내내 근로능력 판정이 진행되기 때문에 수급대상자를 충분히 관찰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또 판정 기준의 객관성 결여는 의도된 부분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담당 공무원의 판단을 통해 수급비를 받지 못할 조건의 수급대상자에게도 혜택을 줄 수 있다”고 말했다.

공무원의 활동능력평가를 통해 판단 기준에 미달됐지만 상황이 어려운 이들을 구제할 수 있다는 의미다. 그러나 반대로 공무원의 자의적 판단으로 수급대상자 근로능력 판정이 변할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는 객관적 판정제도를 도입하겠다는 보건복지부의 취지와는 상반된 내용이다.

“자활의지·환경고려 총체적 판단을”
“몸이 성하지 않아 세금을 받아먹는 입장에서 무슨 말을 하겠습니까.그래도 유치원생 어르는 것도 아니고 이건 너무한 것 아닙니까?” 이른바 서울 용산구의 남병욱씨(가명·59)의 하소연이다. 남씨는 5년 전 무릎수술을 받았다. 일상생활은 가능하다. 외형상으로도 별 이상이 없다. 그러나 노동은 불가능하다. 지난해까지 6개월마다 병원에서 의사 소견서를 끊어 제출하면 매달 약 40만원의 수급비를 받았다. 15만원의 월세와 각종 세금을 제외하면 20만원이 채 안되는 생활비로 근근이 살아 왔다. 그러나 올해부터 동사무소 공무원의 근로능력 판정에 따라 수급 여부가 결정된다. 남씨의 생활은 생면부지의 공무원 판단에 달린 셈이다.

남씨는 “공무원이 한 번 나와 외모로 근로능력을 어떻게 판단한다는 건지 모르겠다”면서 “수급 혜택을 받기 위해 허름하게 입고 살아야 하는 거냐”고 하소연했다. 그는 이튿날 기자에게 전화를 걸어 자신의 이야기를 공개하지 말아 줄 것을 부탁했다. 그는 구청 관계자가 기사를 보면 자신의 근로능력 판정에 악영향이 미칠 것이라며 걱정했다. 이처럼 더 많은 혜택을 줄 수 있다는 보건복지부의 생각과 달리 기초생활수급 당사자는 공무원의 자의적인 판정으로 수급이 끊길까 염려하고 있었다.

기초수급자들을 돕고 있는 임상호씨(가명)는 “인권침해 소지 등 문제뿐만 아니라 공무원의 자의적 판단이 가능한 제도로 인해 기초생활수급자들은 불안감을 느낀다”고 전했다. 평가항목이 주관적이기 때문에 예산 등 이유로 언제든지 수급 대상에서 제외될 수 있기 때문이다. 엄씨는 “수급 여부는 자의적 판단에 따른 근로능력 여부보다 자활의 의지나 환경 등을 고려해 총체적으로 판단해야 한다”면서 “새 제도는 기초생활수급자의 현실을 외면한 탁상행정”이라고 주장했다.

동아대 사회복지학과 남찬섭 교수는 “근로능력판정제도 개선은 인권침해는 물론 객관성마저 떨어진다”고 비판의 수위를 높였다. 남 교수는 “정부의 인위적인 판단이 아니라 수급자 스스로 일을 할 수 있도록 하는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며 제도 개선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임석빈 인턴기자 zomby01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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