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지역 마땅한 ‘꺼리’ 없어 안전 불안해도 일본인들 자주 찾아

일본인 관광객들이 11월11일 ‘관음성지 33순례’의 한 곳인 도선사를 둘러보고 있다. <한국관광공사>
‘사격장에는 왜 갔을까.’ 지난 11월14일 발생한 부산 신창동 실탄 사격장 화재로 16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이 가운데 11명이 일본인 관광객이다. 이들은 왜 안전·방재 시설도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사격장을 찾았을까. 그 이유는 즐길 것 없는 한국관광산업의 문제점과 맞닿아 있다.
“실탄 사격에 대한 욕구도 있겠지만 쇼핑 외에 마땅히 할 것이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부산 실탄 사격장 화재 사고에 대한 여행 전문 업체 체스투어즈 관계자의 말이다. 그에 따르면 안전·방재 시설이 미비한 사격장을 찾는 이유는 두 가지다. 실탄 사격에 대한 욕구와 이를 대체할 만한 관광 상품의 부재다.
볼거리 많은 서울, 사격장 인기 별로
부산을 방문한 일본인 관광객들은 실탄 사격장을 즐겨 찾는다. 일본은 모병제를 실시하며, 영업용 사격장 운영을 금지하고 있다. 이에 따라 실탄 사격을 경험할 방법이 없다. 부산 해운대 실탄 사격장의 한 관계자는 “이번 사고로 인해 발길이 끊겼지만 평소에는 꽤 많은 일본인 관광객이 찾았다”고 전했다.
부산을 방문한 일본인들에게 실탄 사격장은 자국에서 경험할 수 없는 문화를 즐길 수 있는 관광 상품이다. 화재 사고가 발생한 신창동 사격장 역시 재래시장 근처에 위치해 있어 쇼핑을 목적으로 방한한 일본인 관광객들의 발길이 잦은 곳이다.
전국의 실탄 사격장은 8곳. 이 가운데 절반이 부산에 있고, 서울에는 3곳이다. 당연히 부산과 서울을 방문한 외국인 관광객이 사격장을 접할 기회가 많다. 그러나 부산과 달리 서울에서는 일본인 관광객이 실탄 사격장을 즐겨 찾지 않는다. 명동의 한 실내사격장 관계자는 “일본인 관광객이 종종 있지만 즐겨 찾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서울은 쇼핑은 물론 경복궁이나 남산 등 관광명소가 많고 공연까지 쉽게 즐길 수 있다. 이 때문에 굳이 실탄 사격장을 찾는 경우가 드물다. 이에 비해 부산은 상대적으로 관광 상품이 빈약해 사격장 등은 필수코스가 됐다.
이번 사고로 인해 여행사와 관련 업체는 근심에 빠졌다. 희생자가 난 일본인이 전체 외국인 관광객의 40%를 차지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엔고 현상으로 일본인 관광객이 전년 대비 35% 가량 증가하는 등 일본인을 대상으로 한 관광산업은 호황을 누리고 있었다. 이번 사고로 인해 일본인 관광객 감소의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하나투어 인터내셔널 오정환 팀장은 “아직까지 화재 사고로 인해 예약이 취소된 경우는 없다”면서도 “한국에 대한 이미지가 나빠지면 장기적으로 영향을 줄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이에 비해 한국관광공사 권병전 일본팀장은 “안전과 관련해 한국관광의 이미지가 나빠졌을 수는 있겠지만 큰 영향은 없을 것”이라고 낙관했다.
올해 외국인의 한국 관광은 전년 대비 15% 증가했다. 관광수지도 지난 2000년 이후 9년 만에 적자에서 벗어났다. 9월까지 3억2000만 달러 흑자를 기록하는 등 한국 관광산업은 호황을 맞고 있다. 그러나 전체 관광객의 40%를 차지하는 일본인 관광객이 엔고 현상을 맞아 일시적으로 늘어난 특수성을 고려하면 무작정 반길 일만은 아니다. 이런 호황을 지속하기 위해선 무엇보다 한국만의 관광상품 개발이 시급하다. 관광공사 권 팀장은 “천편일률적인 관광 상품에서 탈피해야 지속적 성장이 가능하다”면서 “중앙정부 차원에서 상품 개발에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안전성이 확보되고 한국의 색을 드러낼 수 있는 관광상품이 관광공사를 중심으로 개발·제공되고 있다. 대표적인 상품으로 ‘해랑2호’와 ‘관음성지 33순례’가 있다.
일본인 고려한 열차여행상품 호평

일본인 관광객들이 11월8일 고급침대열차여행 ‘해랑2호’ 탑승에 앞서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한국관광공사>
지난 11월8일 관광공사와 한국철도공사가 공동으로 선보인 ‘해랑2호’는 일본인을 대상으로 한 고급침대열차여행 상품이다. 전세열차를 이용한 것으로, 일본인의 취향을 고려한 맞춤형 여행상품이다. 서울에서 출발한 열차는 목포·부산·안동을 거쳐 2박 3일만에 서울로 돌아왔다. 눈에 띄는 점은 기점마다 열차가 멈춰 근처의 관광명소를 탐방하는 것. ‘여름향기’등 각종 한류 드라마의 촬영지인 보성 녹차 밭이나 한국의 색채가 강하게 묻어나는 안동 하회마을 등지를 여행코스로 선정해 관광객의 만족도를 높였다.
지난해 8월부터 시작한 ‘관음성지 33순례’도 일본인 관광객을 주요 대상으로 한다. 조계종 한국불교문화사업단이 선정한 33곳의 관음 성지를 순례하는 사찰탐방 상품이다. 한국과 일본의 공통문화인 불교를 소재로 한국만의 독특한 멋이 있는 사찰을 순례하고 머무르는 내용으로 짜여져 있다.
두 상품 모두 중저가 관광 일색인 일본인 대상의 틈새시장을 공략했다. ‘해랑2호’는 비싸지만 편안하고 지방까지 두루 경험할 수 있어 경제적으로 여유로운 일본의 장년층을 대상으로 삼고 있다. ‘관음성지 33순례’도 종교 순례지를 문화 상품으로 전환해 불교와 한국 사찰에 관심있는 이들을 대상으로 한다. 관광공사 권 팀장은 “두 상품 모두 안전은 물론 한국적 색을 뚜렷하게 나타낼 수 있는 특별한 관광상품”이라고 강조했다.
이런 틈새상품이 개발되고 있지만 종류는 미미한 상태다. 한양대 이연택 관광학부 교수는 “안전성을 제대로 확보하지 않고 특색도 없는 천편일률적 관광 상품은 여전히 존재한다”면서 “안전성 확보는 물론 다양한 상품이 개발되고 알려져야 한다”고 말했다.
현재 외국인을 대상으로 한 관광 상품은 단순하다. 자유여행객이 아닌 단체관광객의 경우 난타·비보이 등 대외적으로 알려진 공연과 경복궁이나 남산 등 관광명소, 한류 드라마 촬영지 등이 상품의 주를 이룬다. 이마저도 서울과 수도권에 몰려 있다. 이 교수는 “인명 사고가 난 것은 안타까운 일이지만 이를 계기로 한국 관광산업을 되돌아보는 계기가 돼야 한다”면서 “중앙정부와 지자체 및 사업체가 협력해야 한다”고 제시했다.
<임석빈 인턴기자 zomby011@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