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쇠고기 이력추적제 ‘무늬만 한우’엔 허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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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 외모 위주로 판별 방법 허점… 교잡우도 한우 둔갑 가능성 높아

서울시 식품안전감시단원이 서울 서대문구 금화초등학교에 납품된 한우 고기의 진위를 판별하기 위해 시료를 채취하고 있다. <정지윤 기자>

서울시 식품안전감시단원이 서울 서대문구 금화초등학교에 납품된 한우 고기의 진위를 판별하기 위해 시료를 채취하고 있다. <정지윤 기자>

4월 18일이면 한·미 쇠고기 협상 타결 1주년이 된다. 미국산 쇠고기 파동으로 식품 안전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우리나라는 지난해 12월 22일 부분적인 쇠고기 이력추적제를 실시했고, 6월 22일부터 전면적인 이력추적제를 실시한다. 하지만 정부가 추진하는 이력추적제에 중대한 허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보완하지 않고 제도를 강행, 비난이 일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력추적제를 본격 실시하면 소비자가 한우와 육우 및 국내산과 수입산 쇠고기를 구분하는 데 어느 정도 도움이 되겠지만 판매점에서 국내산과 수입산 혹은 한우와 육우 등의 둔갑 판매를 제도적으로 막을 수 없다고 지적한다. 특히 이력추적제에서는 한우와 비한우(교잡우·젖소·수입육)를 구분하는 데 허술한 점이 많아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문제되고 있는 것이 젖소와 한우를 인공 수정한 교잡우다. 교잡우는 한우와 외모가 비슷하기 때문에, DNA검사를 하는 한우판별법이 아니면 외모로 구분하기 힘들다. 소비자들이 한우로 믿고 먹었는데, 한우가 아닌 교잡우를 먹을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는 것.

교잡우는 한우와 외모 거의 비슷
지난해 수원 한 초등학교에서는 교잡우 문제가 불거졌다. 수원 축협에서 납품한 한우가 DNA검사 결과 비한우 즉 교잡우로 밝혀진 것이다. 당시 한우라고 납품했던 농가에서는 한우와 젖소를 모두 사육하는 농가였고, 한우와 외형이 비슷한 교잡우를 출하했던 것. 이와 비슷한 일이 경기 남양주시 한 고등학교, 서울 양천구 한 중학교, 서울 구로구 한 초등학교에서도 일어났다. 한우가 아닌 교잡우라는 것을 사육 단계부터 도축 단계, 판매 단계 등을 거치면서 잡아내지 못한 것이다.

수원 축산농협의 한 관계자는 “도축장에 소를 도축 의뢰했는데, 수의사가 한우라고 판명해 한우로 납품한 것”이라면서 “우리가 한우를 판별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난감하다”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축산과학원 동물유전체과 윤두학 연구관은 “한우 판별사들이 한우와 교잡우를 판별할 수 있느냐가 관건”이라며 “교잡종 1세대일 경우 외모가 확실히 차이나지만, 잡종 2~3세대로 내려가면 한우와 거의 흡사하기 때문에 교잡우를 잡아내는 것이 어렵다”고 설명했다.

이에 반해 한국종축개량협회 담당자는 “그런 경우는 드물다고 생각하는데, 판매 전 도축 과정에서 교잡우를 걸러줄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서강대 신형두 교수(생명과학과)는 “한우 판별 여부를 판별사들의 결정에만 의존하기 때문에 벌어지는 일”이라고 비판했다.

교잡우에 대한 문제는 과거에도 불거진 적이 있다. 2004년 소 중간상인들이 교잡우 암소를 집중적으로 구입해 번식우로 재활용하는 사례가 많아져 논란이 일기도 했다. 교잡우에 한우 정액을 넣으면 외견상 한우와 비슷한 송아지가 나온다는 소문 때문이었다. 당시 한국종축개량협회에서는 “교잡우를 한우 정액으로 누진 교배하면 한우와 털이 비슷한 송아지가 나올 확률이 높아져 겉모습만 보고는 전문가도 식별하기 어렵다”고 지적할 정도였다.

현재 한우 판별사로 활동하려면 한국종축개량협회에서 1년에 한 번씩 여는 ‘심사기술교육’을 받아야 한다. 대부분 각 지역에 있는 생산이력추적제 대행기관인 축협 직원들이 교육받는다. 이들은 송아지가 태어나고 2개월 정도 지난 후 현장에 가서 한우 여부를 결정한다. 또 소비자에게 팔리기 전 도축 과정에서도 한우 여부를 결정한다. 수원 축산농협 관계자는 “축협이 소를 도축 의뢰하면 일차적으로 수입검역원에서 나온 수의사가 질병과 외모 등을 검사해 한우라고 판명하면 한우로 도축한 후 유통한다”면서 “도축한 후에 사후 근육 강직이 일어나기 때문에 냉동체 가공과 냉각을 거쳐 등급 판정사가 한우의 등급을 판정한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도축장에서도 소의 외모 위주로 판별하기 때문에 허점이 생길 수 있다.

도축장에서도 외모 위주로 한우 판별

대형 마트에서 마련한 한우 소비 촉진 시식 행사. 쇠고기 이력추적제에서는 DNA 검사를 통한 한우판별법을 사용하지 않을 것으로 보여, 비한우를 한우로 알고 먹는 소비자도 생길 가능성이 높다. <경향신문>

대형 마트에서 마련한 한우 소비 촉진 시식 행사. 쇠고기 이력추적제에서는 DNA 검사를 통한 한우판별법을 사용하지 않을 것으로 보여, 비한우를 한우로 알고 먹는 소비자도 생길 가능성이 높다. <경향신문>

전국한우협회와 한국종축개량협회에서 내세운 한우의 기준은 ▲한우외모 심사 기준에 의거해 등록된 한우 ▲황갈색 모색에 눈주위-뿔-발굽-항문 등이 흑색이나 체형상 한우라고 인정되는 소 ▲백반이 있으나 10㎝ 이내 작은 백반 등이다. 한우판별법은 모색유전자(MC1R)를 이용한 방법을 널리 이용했다. 한우와 젖소의 DNA를 검사하면 사람의 혈액형처럼 T, CT, C/C 구분이 됐기 때문이다. 한우에는 T형만 나타나고, 젖소는 CT와 C/C형만 나타나 한우와 젖소를 구분했다. 하지만 브라운스위스, 샤롤레, 헤어포드, 수입육에서도 T형이 나타날 수 있기 때문에 새로운 판별법을 개발할 필요성이 제기됐다.

이에 농촌진흥청과 식품의약청은 2005년께부터 한우확인시험법을 개발했고, 농촌진흥청은 2007년 12월, 식약청은 2007년 6월 개발하는 데 성공했다. 농진청과 식약청은 한우 확인 검사 시범사업을 벌여 100%에 가깝게 한우와 비한우를 구별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식약청에서 개발한 한우판별법은 한우와 교잡우까지 구별했고, 2008년 말 ‘국가연구개발 우수성과 100선’에 선정되기도 했다. 농진청이 개발한 한우판별법은 교잡우를 확실하게 잡아내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DNA검사를 통한 한우판별법을 6월 22일 쇠고기 이력추적제 전면 실시 이후에도 별다르게 사용하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신형두 교수는 “이력추적제가 전면 실시되면 송아지 때 한우로 판정받으면 소비자가 먹을 때까지 한우가 된다”면서 “비록 도축장에서 수의사나 심사관이 다시 한 번 검사한다고 해도 체형이나 모색 등 외모로만 한우를 판별하기 때문에 교잡우를 잡아내는 것은 어렵다”고 지적했다.

동일성 검사보다 DNA 검사가 확실
쇠고기 이력추적제는 송아지 때 한우로 판정받으면 소비자에게도 한우로 팔려나갈 가능성이 높다. 만일 소비자나 단체 급식을 하는 곳에서 한우 여부 검사를 의뢰하면 이력추적제 시스템에서는 ‘동일성 검사’를 실시한다. 동일성 검사는 말 그대로 소비자가 먹은 쇠고기가 도축장에서 도축된 소와 같은 것인지 검사하는 것이다. 도축장에서 한우로 판명돼 도축된 소와 동일하면 ‘무조건’ 한우로 인정받는 것이다. 만일 식약청의 DNA 검사를 통해 비한우 즉 교잡우라는 결과가 나오면 어떨까. 동일성 검사를 통해 한우라고 판단되면 식약청 검사 결과와 아무 상관 없이 ‘한우’로 인정받는다.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힘든 상황이 생길 수도 있는 것이다.

하지만 주무부처인 농림부는 뚜렷한 대안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 원산지관리과의 담당자는 “한우판별법은 이력추적제를 목적으로 만든 것이 아니고, 이력추적제를 하면 한우판별법은 그리 필요치 않을 것이다”고 답변했다. 농림부 축산물위생팀의 한 사무관 역시 “이력추적제 하에서는 동일성 검사를 통해 한우가 맞다면 DNA검사와 별개로 한우로 인정하게 되어 있다”고 설명했다. 즉 쇠고기 이력추적제 하에서는 DNA검사 결과가 아무 영향을 줄 수 없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식약청의 한 연구관은 “쇠고기 이력추적제에서는 이력이 시작된 후에는 검증 과정이 없으니까 교잡우가 한우에 포함될 가능성도 있다”면서 “한우판별법이 도축 과정 등에 함께 포함되는 것이 좋을 것 같은데, 현재로서는 그런 이야기를 듣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신형두 교수는 “한우판별법을 어떤 단계에서도 사용하지 않으면 소비자가 비한우를 한우로 먹을 가능성이 있다”면서 “유전자 검사가 개발되어 있는데도 동일성 검사만 하겠다는 것을 이해하기 어렵다”고 비판했다.

얼마 전 서울시는 관내 초등학교 급식소에 납품되는 쇠고기에 대한 한우 유전자 검사를 4월 14일부터 연중 무료로 실시한다고 밝혔다. 급식 시설장이나 영양교사 등이 서울시 식품안전과에 요청하면 시에서 쇠고기를 수거해 검사하겠다는 것. 검사 결과 한우가 아닌 것으로 판명되면 납품업체는 영업정지 등 행정처분을 받는다. 6월 22일 쇠고기 이력추적제의 전면 실시를 앞둔 상태에서 현재 개발된 한우판별 DNA검사를 이용한다면 각 지자체가 직접 나서서 한우판별을 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소 및 쇠고기 이력추적제’ 어떻게 이뤄지나

지난해 12월 22일부터 사육 단계의 쇠고기 이력추적제를 실시했고, 6월 22일부터는 유통 단계까지 전면 실시한다. 쇠고기 이력추적제는 출생부터 도축·가공·포장·판매 과정까지 소의 정보를 기록 관리하는 것이다. 쇠고기 이력추적제는 ‘소 및 쇠고기 이력추적에 관한 법률’에 따라 진행한다. 이 법안에 따르면 쇠고기 이력추적제의 목적은 ‘방역의 효율성과 쇠고기 안전성을 확보’하는 것이다.

쇠고기 이력추적제는 ▲사육 단계 ▲도축 단계 ▲포장처리 단계 ▲판매 단계로 나눌 수 있다. 사육 단계에서는 송아지가 출생하거나 수입 신고를 한 소에 대해 개체식별번호를 표시한 귀표를 부착한다. 귀가 없는 기형소의 경우 목줄을 이용해 부착한다. 개체식별번호는 소 한 마리마다 부여하는 고유번호이고, 귀표는 개체식별번호를 표시하는 문자와 숫자 및 바코드 등으로 기재해 귀에 부착할 수 있도록 제작한 표다.

도축 단계에서는 도축검사 신청서를 접수한 소의 귀표에 표시된 개체식별번호가 일치하는지, 이력추적 시스템에 등록했는지 확인한다. 도축된 후에는 개체식별번호가 표시된 라벨을 갈비 내부 등에 붙인다. 도축 단계에서는 모든 소의 시료를 채취해 개체식별번호를 기록한 후 축산물등급판정소에 우송한다(이 시료는 나중에 문제가 생겼을 때 ‘동일성 검사’를 하는 데 사용한다). 그후 축산물등급판정사가 개체식별번호를 확인한 후 등급을 판정한다. 이후 도축해 나온 쇠고기는 ▲포장처리 단계인 가공장으로 넘어간다. 가공장에서 개체식별번호 일치 여부를 확인하고 부위별로 나눠진 후 포장한다. 포장한 부분육에 개체식별번호가 표시된 라벨을 부착한다. 그후 부위별로 포장한 부분육을 박스로 포장하는데, 라벨을 포장지에 부착한 후 정육점이나 마트 등 판매 단계로 이동한다. 판매장에서는 거래내역서에 개체식별번호를 기록하게 되어 있고, 개체식별을 확인 후 포장정육에 동일한 번호를 표시한다. 그리고 진열대 식육표시판 등에 개체식별번호를 기재해야 하고, 소포장 단위로 판매할 경우 식별번호가 표시된 라벨을 포장지마다 부착해야 한다. 소비자들은 식별번호를 휴대전화나 인터넷 등을 통해 쇠고기의 이력을 확인할 수 있다.


<최영진 기자 cyj@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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