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석기 경찰청장의 사퇴로 일단락되는 듯했던 용산 참사 문제가 다시 언론에 오르내리고 있다. 청와대의 ‘이메일 홍보지침’ 논란 때문이다. 청와대 행정관이 용산 참사에 대한 비판 여론의 확산을 막기 위해 연쇄살인범 검거 사건을 적극 홍보하라는 내용의 이메일을 경찰에 보낸 사실이 드러난 것이다. 이에 대해 응답자 절반 이상이 우려를 나타냈다.
자세히 보면, ‘사실상 여론조작 시도로 매우 심각한 문제다’라는 의견이 57.2%로 ‘청와대 행정관 개인의 돌출행동으로 확대 해석할 필요 없다’는 의견 27.3%에 비해 2배 이상 높았다(KSOI, 2월 16일 조사).
“용산 참사 추가 진상 규명 필요” 54%
야당에서는 용산 참사를 덮으려는 청와대의 조직적인 개입이 드러났다며 연일 비판하고 있지만 청와대는 문제를 일으킨 행정관 개인의 문제로 국한시키며 사건을 무마하려는 분위기다. 그러나 이번 조사 결과를 보면, “행정관 개인의 아이디어를 사적인 이메일로 전달한 것으로 공식 지침이 아니었다”는 청와대의 해명을 국민이 선뜻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뿐 아니라 이후 여러 의혹이 제기되었음에도 청와대와 경찰이 뚜렷하게 해명하지 못하고 있는 것도 이번 사태를 국민이 심각한 문제로 여기는 데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이와 함께 용산 참사 문제 처리와 관련해서도 ‘특검·국정조사 등의 추가적인 진상 규명이 있어야 한다’는 의견이 54.3%로 ‘충분히 조사했으므로 이제는 마무리지어야 한다’는 의견 36.8%보다 우세하게 나타났다. 이러한 조사 결과는 지난 2월 9일 조사에서 검찰의 ‘경찰 무혐의 결정에 공감하지 않는다’는 의견이 55%로 높게 나와 검찰 수사 결과에 대해 일정 정도 불신을 드러낸 여론의 연장선이라고 보면 될 것 같다. 또 앞서 언급한 청와대 이메일 홍보지침 논란으로 용산 참사 문제가 다시 부각된 탓도 커 보인다.
그러나 TK 지역과 50세 이상 등 일부 계층에서는 이제 마무리짓자는 여론이 더 높게 나오는 등 전반적으로 논란이 더 커지는 것을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여론(37%)도 만만치 않아 특검제가 여론의 힘을 받아 시행될 수 있을지 의문이다.
“방송법 개정 통한 일자리 창출” 공감 낮아
한편, 정부 여당은 방송법 개정을 적극적으로 추진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신문과 방송의 겸영, 대기업의 방송사 소유 등의 내용이 담긴 방송법 개정이 2만 개의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다며 홍보를 강화하고 있다. 일자리 창출로 이어질 수 있는 경제 살리기 법안이기 때문에 조속한 국회 통과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국민의 공감도는 높지 않은 상황이다.
‘경쟁 심화로 인력 감축이 발생할 것이므로 공감하지 않는다’는 의견이 51.5%로 응답자의 절반을 넘긴 가운데, ‘규제 완화로 방송시장 규모가 커질 것이므로 공감한다’는 의견은 28.1%에 머물렀다(KSOI, 2월 16일 조사). ‘방송법 개정이 대규모 일자리를 창출할 것’이라는 정부 여당의 홍보 논리가 그다지 효과를 발휘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방송 분야의 규제를 완화할 경우, 업체 간 경쟁이 치열해지고 이로 인해 구조조정이 단행되면 오히려 실업이 증가할 수 있다는 반대 측 주장을 더 수긍하고 있는 것이다.
사실, 방송법 개정과 관련해 정부 측 주장이 설득력을 얻지 못하는 것은 이전부터 예견된 바다. 현 정부 들어 숱한 논란 속에 이 대통령의 선거 캠프 특보 출신들이 방송사 사장 등 방송계 주요 인사로 발탁된 바 있다. 이 과정에서 현 정부의 방송정책의 정당성은 상당 부분 손상되고 말았다. 이미 스스로 방송정책 전반에 대한 불신을 자초하고 방송법 개정에 국민이 호응하기를 기대하는 형국이다.
만약 정부가 지금까지의 방송계 고위직 인사를 잡음 없이 하면서 국민의 신뢰를 차곡차곡 쌓은 후에 대통령이 미디어산업 발전과 경제 살리기를 위해 법 개정이 필요하다고 국민을 설득했다면 이번 조사 결과처럼 국민이 외면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윤희웅 | KSOI 정치·사회조사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