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른바 ‘성지’ 게시글에 달린 성지순례 댓글들. |DC인사이드
‘성지순례‘라는 말이 있다. 인터넷 검색 엔진에 ‘성지순례‘라는 단어를 넣으면 이스라엘·요르단을 간다는 여행사 광고나 방문기만 주르륵 뜬다. 하지만 누리꾼이 말하는 성지순례는 다르다. 성지(聖地)는 말 그대로 성스러운 곳이다. 하지만 여기선 종교적 뉘앙스는 거의 없고, ‘인터넷에서 의미 있는 사건이 처음 발생한 장소’를 뜻한다. 단지 의미만 있어서는 성지가 되기 어렵다. 성지가 새로 만들어낸 코드를 읽고 재해석한 누리꾼의 ‘반응’이 결합되어야 한다(따라서 댓글을 달 곳이 없으면 근본적으로 인터넷 성지가 되기가 어렵다). 그리고 이 ‘반응을 확인하는 재미’에 누리꾼이 정기적으로 오가야 성지가 된다.
위키피디아에 따르면 ‘성지순례‘의 첫 시작은 2001년 7월, ‘복숭아 맛’이라는 누리꾼이 쓴 “오늘 산 중저가 형 모델 싸게 팝니다”라는 게시물부터다. 게시물에서 비롯된 소동은 이미 DC인사이드 김유식 대표가 책에서도 쓴 적 있고, 여러 차례 보도도 되었으니 생략하자. ‘성지’는 꾸준히 탄생한다. 지난해 11월 말, 조선일보의 한 신입기자가 자신의 블로그에다 ‘미네르바의 IP 추적기(記)’를 올렸다. 이 기자는 “미네르바의 IP 주소를 보면 ‘여의도의 SK브로드밴드 주식회사’이며 구글 등으로 IP를 검색해보면 미네르바로 추정되는 사람의 실명까지 나온다”라고 주장하며 “내가 혼자서 2시간 만에 찾은 걸 왜 아무도 안 찾았는지 좀 의문이다”라고 글을 남겼다. 누리꾼은 “그런 식으로 검색하면 나는 KT방배동 근무 직원”이라며 조소했다. 유동IP에 대한 ‘오해’가 ‘대참사’를 낳은 것이다. 성지순례가 막 시작될 순간, 해당 기자는 블로그 게시글을 삭제했다.
뒤늦게 성지로 발견된 곳도 있다. 제목은 평범하다. ‘삼성전자 vs 온게임넷, 신한은행 프로리그 2008 결승전’. 소녀시대 축하무대 사진 기사다. 누리꾼의 관심을 끈 것은 사진 설명이다. “어리다고 놀리지 말아요, 빠밤” 소녀시대의 노래 ‘소녀시대’의 가사다. 누리꾼은 열광했다. “기자질 쉽다”는 비아냥도 있지만, 압도적인 것은 ‘빠밤’이라는 후렴구의 응용이다. “여친 좀 생기게 해주세요 빠밤”, “헌터즈 카페에서 왔다감 빠밤” “소시갤에서 성지순례 빠밤” 식이다. 성지순례 글들을 보면 “~빠밤” 이야기가 다양한 인터넷 커뮤니티에 지금까지 계속 퍼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나저나 저 사진 설명에 얽힌 사연이 궁금하다. 기사를 전송한 e스포츠포털 포모스의 강영훈 기자는 “기사를 보면 알겠지만 지난해 8월에 찍은 건데 화제가 된 지는 뒤늦게 알았다”라며 “덕분에 메일도 몇 통 받았고 MSN에 등록한 친구들로부터 오랜만에 안부 인사도 받았다”고 말했다. 예상대로 사진 기사는 전송한 시리즈 기사 중 하나인데, 연속된 사진 중 하나의 사진만 떼어내 사진 설명을 읽으니 생긴 오해라는 것. 그는 “기자생활 쉽게 한다는 말은 오해라고 생각해서 그리 기분 나쁘지 않다”라며 “사실 소녀시대 얼굴도 구분 못하는데 ‘기자가 ‘소시빠(소녀시대 마니아)’가 아니냐’는 이야기는 조금 억울하다”고 덧붙였다.
<정용인 기자 inqbus@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