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 시금치 - ‘철분왕’이 아니라 ‘비타민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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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농산물의 재발견

한 할머니가 시금치 밭에 비료를 뿌리고 있다. <경향신문>

한 할머니가 시금치 밭에 비료를 뿌리고 있다. <경향신문>

어머니는 시금치밭에 늘 / 앉아 계시는 거로 우리 형제들을 가르쳤습니다 / 시금치라는 것이 먹어보면 / 아무 맛도 안 납니다 / 그러나 김밥에라도 / 한 번 빠져 보세요 (…) 우격다짐으로 배운 게 / 우리는 하나도 없습니다 (…) 어머니가 교과서에 골고루 밑줄 쳐 / 놓았듯이 우리 형제들은 골고루 그 밑줄을 읽고 자랐습니다.

전쟁 같았던 2006년, 지금은 무너지고 없는 평택 대추리 분교 담벼락에 <대추리 도두리 만인보> 스무 편을 남겼던 서수찬 시인은 지난해 봄 17년 만에 처음으로 시집을 엮어냈다. 그 제목으로 올린 시가 ‘시금치학교’다. 남들은 ‘대추리 시인’으로 기억하는 그이지만, 그의 가슴엔 겨우내 시금치밭에서 일만 하신 어머니가 오롯이 계신가보다.

카로틴 많이 함유, 암 발병 억제
요즘 학생은 초록색 스커트와 재킷에 체크무늬가 있는, 전국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여학교 교복(이 친구들 말로는 같은 교복 입는 학교가 1000개쯤 될 거라고 한다)을 빗대 ‘시금치학교’라고 부르기도 한다. 다소 반항적인 의미로 쓰이는 말인데, 아마도 어린 학생들이 시금치를 싫어하기 때문인 것 같다. 급식 때 시금치만 쏙 골라놓는 학생이 적지 않다고 한다. 우리나라뿐 아니라 세계적인 현상이었는지 1930년대 미국에선 ‘어린이 시금치 먹이기 프로젝트’를 대대적으로 벌였다. <뽀빠이(Popeye)>라는 만화가 대표적이다. 악당 브루투스에게 잡혀가 “도와줘요, 뽀빠이!”를 외치는 올리브를 구하기 위해 뽀빠이는 시금치 캔을 손으로 터뜨려 먹는다. 시금치가 몸에 좋다는 홍보를 톡톡히 했다. 그 덕분에 시금치 소비가 무려 33%나 증가했다고 한다.

[캠페인](37) 시금치 - ‘철분왕’이 아니라 ‘비타민왕’

또 하나, 시금치는 다른 채소보다 철분이 월등히 많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한국식품연구원이 펴낸 <식품이야기>라는 책에 따르면, 시금치의 실제 철분 함량은 100g당 2.5~4.2㎎으로 다른 채소와 비슷할 뿐 아니라 같이 함유된 수산(Oxalate acid) 성분이 철분을 흡수하지 않고 몸 밖으로 배출되도록 하는 역할을 한다. 철분하고는 거리가 한참 먼 채소라는 것이다. 그런데도 ‘철분의 왕’으로 잘못 알려진 것은 1870년 E. 폰 울프라는 독일의 과학자가 시금치의 영양 성분에 대한 논문을 작성하면서 철분 함량의 소수점 한자리를 잘못 찍은 데서 비롯했다. 그 때문에 시금치에는 실제보다 10배나 많은 철분이 들어 있는 것으로 잘못 알려진 것이다. 이 오류는 1937년 다른 독일 과학자들이 재조사하여 실수였음을 밝혀 정정됐지만 잘못된 처음 데이터는 <뽀빠이> 만화와 함께 오래 이어졌다. 1981년 영국의 T.J 햄블린이 <브리티시 메디컬 저널>에 ‘논문의 사소한 오류가 발단이 돼 시금치와 관련한 잘못된 지식이 일반의 상식으로 굳어지는 과정’이라는 기사를 실으며 비로소 대중에게 올바른 지식이 알려지게 됐다. 무려 110년이 걸린 오류 정정이었다.

대신 시금치는 비타민이 무척 많이 함유돼 있다. 또 100g에 카로틴이 2500~2600㎍나 들어 있어 모든 종류의 암 발병률을 낮춘다. 시금치를 끓는 물에 데치면 초록색이 더 선명해지는데 열에 의해 세포 사이 공간에 있던 공기가 밖으로 빠져나가고 수분이 그 공간을 채우기 때문이다.

<김경은 기자 jjj@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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