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원의 눈]농업 미래 없인 국가 미래 없다](https://img.khan.co.kr/newsmaker/802/98_a.jpg)
농업은 단순한 산업이 아니라 '생명산업'이다. 농업의 붕괴는 단순히 농민의 붕괴에서 멈추지 않고 대한민국의 붕괴로 이어진다는 사실을 사람들은 의식하지 못한다.
최근 중국국가발전위원회는 2020년까지 중국의 식량자급률을 95%로 수준으로 끌어올리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현재 중국의 식량자급률은 92%인데, 이것으로는 미래의 식량 안보가 걱정스럽다는 것이 그 이유다. 오늘날 선진국의 지표는 공산품을 통한 무역 이익이 아니라 식량자급률이다. 실제로 일본을 제외한 서방 선진국들은 모두 식량자급률 100%를 넘어서고 있다.
그러나 한국의 사정은 정반대다. 2008년 현재 한국의 식량자급률은 28% 수준이지만, 주식인 쌀을 제외하면 겨우 5% 수준이다. ‘식량 안보’라는 차원에서 보자면 거의 ‘붕괴 수준’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벼농사라고 해서 안심할 수 있는 수준은 아니다. 정부의 농업 무시 탓에 논농사를 통해서 생계를 유지할 수 없는 상황이다 보니, 1년에 평균 2ha의 농지가 사라지고 있다.
반면 전 지구적인 차원에서 식량위기는 일시적이기보다 구조적으로 항진하는 양상을 보여주고 있다. 지구온난화에 따른 기후변화와 물 부족 현상으로 지구적인 차원에서 식량 생산은 급격하게 감소하고 있다. 세계 곡물가는 말 그대로 천정부지로 치솟아 애그플레이션(agflation)이라는 신조어도 생겨났다. 한국의 밀과 옥수수의 자급률은 0.3%에 불과하다. 그런데 최근 밀과 옥수수, 콩의 국제 가격이 적게는 300% 이상 상승했다. 문제는 가격 상승이 적어도 향후 10년 이상 계속될 것이라는 사실에 있다.
그러나 한국 농업이 직면한 위기는 어쩌면 지금부터인지 모른다. 한·미 FTA를 체결하기 위해 정부는 농업 부문을 자동차와 반도체와 같은 제조업 부문의 희생양으로 전락시켰다. 조약이 발효된 후 농산물 수입시장이 완전히 개방된다면 한국 농업의 완전한 붕괴는 불 보듯 뻔한 일이다. 문제는 이러한 상황에 대처하는 정부의 안일한 발상이다. 국내 농업 기반이 절멸할 상황에 처해 있는데, 정부의 대책이란 해외 농업기지를 개척하겠다는 것이다. 국내 농업 기반을 강화해야지, 번지수가 잘못되도 한참 잘못된 정책이 아닐 수 없다.
강조하지만 한국의 농업 기반은 급격히 붕괴하고 있다. 한국의 농업 인구 가운데 대다수는 60~70대의 노년층이다. 농업을 통해 생계 보전이 안 되니 젊은이들은 농촌을 떠난 지 오래고, 농지는 급격하게 줄어가고 있다. 게다가 환율 상승에 따른 비료값 폭등은 판매가보다 생산비가 높은 상황을 연출하고 있건만, 직불금 부당 수령 사태에서 알 수 있듯 정부의 농업지원정책은 생색내기 수준에도 못 미치고 있다.
그렇다면 대안은 무엇인가. 정부와 일부 농업경제학자는 한국도 미국식으로 ‘기업농’ ‘규모농’ ‘산업농’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진정한 대안은 김종철 <녹색평론> 발행인이 역설하는 것처럼 소농(小農)에 입각한 자작농 체제의 강화에 있다. 그래야 땅도 살고, 농민도 살고, 농촌공동체도 살 수 있다. 동시에 농지 소유와 관련해서 ‘경자유전’의 원칙을 철저히 준수해야 한다.
농업은 단순한 산업이 아니라 ‘생명산업’이다. 농업의 붕괴는 단순히 농민의 붕괴에서 멈추지 않고 대한민국의 붕괴로 이어진다는 사실을 사람들은 의식하지 못한다. 그러나 그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고, 그래서 오늘의 농업 위기는 우리가 직면한 가장 중요하고도 근본적인 위기인 것이다.
<문학평론가·문학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