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적 분쟁 당사자간 합의 조정이 주 업무”
그동안 억울한 일을 당해도 하소연할 곳이 없던 중소기업에 든든한 버팀목이 생겼다. 지금까지 거래상 제기되는 각종 불공정거래 행위에서 기존 공정거래위원회의 문턱은 높았던 것이 사실이다. 중소기업 입장에서 피해 구제는 소송으로 가능하지만 시간이나 비용이 많이 들어 피해 당사자의 물질·정신적 손해의 실질적인 해결책이 되지 못했다.
또 공정거래위원회의 입장에서도 경미한 사적 분쟁 성격의 폭주하는 업무량 때문에 사건 처리의 효율성이 떨어지고, 현행 공정거래법 위반 행위에 대한 제재조치(시정명령 및 과징금 부과 등)만으로는 실질적인 권리 구제에 한계가 있었다. 올해 2월 정식 업무를 시작한 한국공정거래조정원은 이러한 중소기업과 공정거래위원회의 불편사항을 동시에 해결할 수 있는 불공정거래 분쟁조쟁의 ‘원스톱 서비스’를 제공한다. 자율적 경쟁질서 확립에 앞장 설 것으로 주목받고 있는 조정원의 첫 번째 원장에 취임한 신호현 원장을 만나 조정원의 설립 배경과 운영방침, 비전을 들어봤다.
아직 일반인이나 중소기업에 조정원이 생소한데 설립 취지를 간략히 설명하면.
“한국공정거래조정원은 2008년 공정거래법을 개정하면서 근거가 마련됐고 올 2월 업무를 시작했다. 조정원의 주된 업무는 소상공인이나 중소기업이 기업활동에서 발생하는 불공정거래 행위와 가맹사업에서 분쟁조정을 당사자의 합의를 전제로 조정하는 일이다. 중소규모 사업자가 덩치 큰 사업자에게 당하는 불공정 행위는 거래 거절, 차별적 취급, 상대방의 우월적 지위나 거래상 지위의 남용으로 인한 사업 활동의 방해 등이 있을 것이다. 조정원은 공정거래위원회의 규제 조치와 달리 당사자 간 합의를 전제로 조정하고 이것이 성사되면 모든 절차가 일단락돼 공정위 추가 조사가 면제되기 때문에 중소기업 입장에서 간편하고 효율적인 제도다.”
조정원이 별도로 생긴 배경은.
“2002~2006년까지 공정위에 접수된 공정거래법 위반 신고 사건 약 5000건 중 70%가 당사자 간의 사적 분쟁 성격이다. 이걸 처리하느라 공정위의 과부하가 심각한 상태였다. 공정위가 이런 사적 성격의 분쟁까지 처리하다 보니 정작 본연의 업무인 카르텔, 시장지배적 남용행위 같은 중요한 업무에 전념하지 못하는 폐단이 발생했다. 따라서 비교적 사소한 업무와 시장에서 경쟁제한성이 큰 업무를 분리하는 것이 좋겠다는 의견이 많았다. 공정위가 선택과 집중을 통해 본연의 임무에 충실하자는 취지가 조정원의 설립 취지라고 볼 수 있다.
중소기업들이 조정원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이익은 무엇인가.
“분쟁이 생겨 공정위에 찾고 법원에 소송을 제기하면 권리 구제는 되겠지만 문제는 시간과 비용이다. 시간과 돈이 부족한 소상공인에게 기존 제도는 사실 신속한 피해 구제가 어려웠다. 공정위을 통해 시정명령을 얻어내는 것까지는 좋으나 공정위는 손해배상을 해주는 기능은 없다. 손해배상을 받으려면 법원에 가서 판결을 받아야 한다. 하지만 조정원은 당사자 간 합의로 피해 구제가 신속하게 이루어질 수 있다. 분쟁조정 비용도 국가 비용으로 하기 때문에 별도의 비용 부담도 없다. 일부에서는 실비라도 받아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지만 설립 취지 상 국비로 하는 것도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올 2월 초에 첫 업무를 개시했는데 성과를 평가한다면.
“공정거래 분야는 올 2월 업무를 개시한 후 125건을 접수해 75%의 조정성립률을, 가맹사업거래 분야는 291건 접수에 64%의 조정성공률 보여 66%의 조정성립률을 기록했다. 공정거래와 가맹사업거래 접수 건수가 차이를 보이는 이유는 공정거래조정 분야는 2월부터 처음 시작된 분야라 상대적으로 덜 알려져 있고 가맹사업거래 분야는 이미 프랜차이즈협회 산하에 프랜차이즈 분야 가맹 본부와 가맹 사업자 간 분쟁을 조정하는 분쟁조정협의회가 있다. 이 협의회에서 지난 5년간 분쟁을 조정했지만 협의회가 가맹 본부 산하에 있어 형평성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으로 올해 우리 조정원에 다시 위임해 업무를 맡고 있다.”
굳이 공정위에 전담 부서를 두지 않고 조정원을 설립한 이유에 대해 전관예우를 위한 몸집 불리기 아니냐는 비판도 있는데.
“설립 초기 공정위에 전담 부서를 두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라는 주장도 있었다. 하지만 조정원을 둔 취지는 중소기업 관계자의 편의를 고려한 측면이 크다. 중소기업은 불공정거래 당사자로 우월적 지위에 있는 가맹 본부나 대형 유통업체와 계속 거래해야 한다. 그런 중소기업이 공정위에 가려면 상당한 부담을 느끼고 차라리 제3의 기관에서 화해를 전제로 분쟁조정을 받는 게 좋겠다는 의견이 많았다.”
분쟁조정업무 외에 시장 연구 기능은 어떻게 운영해나갈 계획인가.
“설립 초기의 원래 기능으로 봐서는 시장분석, 거래행태, 시장관행 등을 장기간에 걸쳐 조사해야 하는데 기구 규모가 당초 계획에 못 미쳤다. 연구 기능을 보완하기 위해 현재 외부 전문가와 연구협력체제를 구축하고 있다. 이번에 조정원에서 법경제연구그룹(LEG)이라는 외부 전문가 단체를 만들었다. 30명 정도 구성된 이 그룹에는 경쟁법학자, 경제학자, 공정위 과장급 공무원, 대형 로펌 공정거래 전문변호사 등이 참여해 현재 9개 연구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향후 조정원을 어떻게 이끌어나갈지 비전을 제시한다면.
“선진국의 추세는 분쟁 발생 시 규제 조치나 재판보다 화해를 전제로 한 조정이 대세다. 향후 공정위 이관 업무 외에 하도급 분쟁조정 등 기타 관련 분야에서도 조정원이 분쟁조정을 총괄하는 것이 좋지 않겠냐는 의견이 이번 국감에서도 제기되었다. 조정원의 설립 취지를 잘 살려 소상공인과 중소기업에 ‘효율적인 원스톱 행정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관으로 발전시켜나가겠다.”
"올 2월 업무개시 이후 125건을 접수해 75%의 조정성립률을, 가맹사업거래 분야는 291건 접수에 64%의 조정성공률을 보여 66%의 조정성립률을 기록했습니다."
신호현 초대 한국공정거래조정원장 1. 생년월일 : 1955년생 |
<글·김태열 기자 yolkim@kyunghyang.com>
<사진·김석구 기자 sgkim@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