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습관을 바꾸자
소화율 높고 열량 낮은 완전식품으로 외국서도 즐겨

광고 모델들이 다양한 생식 두부 요리를 들어 보이고 있다. <강윤중 기자>
미국 앨라배마주 몽고메리시 제퍼슨데비드 하이스쿨에서 최근 있었던 일이다. 몽고메리시는 현대자동차 공장이 진출한 곳이어서 종종 한국인을 만날 수 있는 곳이다. 학교 급식 메뉴로 ‘투후(Tofu)’라는 음식이 나왔다. 바비큐 소스를 바른 두부였다. 한국의 한 유학생은 “두부가 미국에서는 투후로 불리는 모양”이라고 여겼다. 하지만 미국 학생은 “일본 음식”이라면서 “건강에 좋은 웰빙음식”이라고 맛있게 먹는 것을 봤다고 한다.
고려말 승려들에 의해 중국서 전래
몽고메리시는 미국에서 결코 부유한 도시가 아니다. 이런 곳에 두부가 학교 급식으로 제공되고 있는 것이다. 조금 안타깝지만 일본의 ‘투후’라는 이름으로 이미 세계의 입맛을 자극하고 있다. ‘투후’는 스시·라멘에 버금갈 정도로 세계적으로 잘 알려진 음식이다. 물론 ‘투후’는 중국에서 발명되어 한국을 거쳐 일본이 전수받은 음식이다. 한·중·일 삼국이 모두 종주국인 중국을 따라 거의 비슷한 명칭을 사용한다. 떠우푸(중국), 두부(한국), 도우후(일본)로 불린다. 가장 뒤늦게 400년 전에 일본에 전해진 두부가 일본 음식으로 변해 세계를 지배하는 안타까운 현실이다. 우리 고유의 음식이었던 기무치(김치)·가루비(갈비)·부루고기(불고기)와 같이.
두부는 기원전 2세기께 한나라 류안(劉安)이 처음 만들었다는 게 정설이다. 원래 승려들이 사찰음식으로 먹던 것을 류안이 그맛을 본 뒤 대량 제조했다고 한다. 그것을 고려 말에 승려들이 한반도로 전했다. 고려 말 성리학자 목은 이색은 ‘목은집’에 실린 ‘대사구두부내향’이라는 시에서 ‘나물국 오래 먹어 맛을 못 느껴/ 두부가 새로운 맛을 돋우어주네/ 이 없는 사람 먹기 좋고/ 늙은 몸 양생에 더 없이 알맞다’라고 두부찬가를 불렀다. 당시만 해도 두부가 흔하지 않은 식품이었음을 짐작케 한다.
한국 순두부 ‘가장 이상적 겨울식품’
조선으로 넘어오면서 두부는 대중화했다. 조선시대에 명문가에 시집을 가려는 규수는 99가지 음식의 제조·조리법을 터득해야 했다. 장과 김치 그리고 두부 만드는 법을 각각 33가지씩 알아야 했다고 한다. 그만큼 제조·조리법이 많았다는 얘기다. 김영치 교수(경남대)의 저서 ‘식품과 영양’을 보면 두부의 종류가 얼마나 많았는지 알 수 있다. 이 책에는 ‘새끼로 묶어서 다닐 만큼 단단한 막두부, 처녀의 고운 손이 아니고는 문들어진다는 연두부, 콩즙을 끊일 때 약간 태워서 탄내를 내는 탄두부, 굳히기 전에 먹는 순두부, 속살을 예쁘게 한다는 약두부, 명주로 싸서 굳히는 비단두부, 삭혀 먹는 곤두부, 기름에 튀겨 먹는 유부, 얼려 먹는 언두부, 두부를 끓일 때 생기는 두부피(유바) 등 두부의 종류와 이름도 헤아릴 수 없이 많았다’고 적혀 있다. 이 책은 또 ‘지방의 이름을 넣어 정선두부, 초당두부, 만월두부, 향림두부 등으로 불리며, 특산물을 첨가하고 첨가되는 부재료의 이름에 따라 잣두부, 황기두부, 솔잎두부, 해조두부, 야콘두부, 검은콩두부, 야채두부 등으로 불렸다’고 씌어 있다.
그뿐 아니다. 두부가 대중적 음식이었음은 두부와 관련된 속담에서도 알 수 있다. ‘두부 먹다가 이빠진다’(방심하다가 뜻밖의 실수를 한다) ‘말이 고우면 비지 사러 갔다가 두부 사온다’(말 한마디라도 잘 하면 이득을 본다) ‘콩밭에 가서 두부 찾는다’(지나치게 성급하게 행동함) 등에서 두부가 보편적 음식이었음을 알 수 있다. 음식 관련 속담으로 두부는 콩 다음으로 많다는 게 언어학자의 설명이다.

남한산성 산성로터리 주변에 위치한 한 전통두부집. <서성일 기자>
조선시대 땐 우리의 두부 만드는 솜씨가 뛰어나서 중국과 일본이 그 기술을 배워 갔다고 한다. 세종대왕 시절 사신으로 명나라를 다녀온 박신생이 명나라 황제의 친서를 갖고 돌아왔다. 그 친서에는 ‘조선에서 보낸 여인네들의 음식솜씨가 뛰어나고 특히 두부를 만들고 요리하는 솜씨가 절묘하여 앞으로도 두부를 잘 만드는 여인네들을 골라 보내달라’고 간곡히 요청하고 있다. 탱자가 한수를 넘어 귤이 된 것이다. 일본으로 두부가 전수된 것은 임진왜란 때다. 진주성 싸움에서 경주성장 박호인이 일본에 붙들려가 두부 제조법을 일러줬다고 한다. 박호인이 머물렀던 곳이 바로 일본이 자랑하는 두부, 즉 당인두부 원산지인 고치지(고치시)다. 사실 두부를 개발한 것은 중국이었지만 진정한 두부문화가 꽃피기 시작한 곳은 조선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우리의 두부 전통은 일제 36년 동안 사라졌다. 고단백질 식품인 콩은 전쟁의 중요한 징용품이 됐다. 이 때문에 그 많던 전통 두부 기술이 전수되지 못하고 손두부만 전해지고 있다. 손두부는 굳히기 전의 두부인 순두부, 그리고 베에 싸서 굳힌 베두부, 콩물을 무명자루에 넣어 짜서 굳힌 무명두부(일반 두부)로 구분된다. 이 때문에 우리나라 두부 제조법은 일본과 중국에 비해 단순한 편이다. 중국과 일본 것은 맛과 모양이 매우 다양하다. 대체로 일본 것은 콩 향기가 강하고 맛이 깔끔한 것이 특징이다. 중국 것은 유별난 미각을 자랑하는 것이 많다. 특히 유명한 것은 ‘썩은 두부’로 일컬어지는 처우떠우푸(臭豆腐). 두부를 볏짚으로 덮어 썩혀 발효한 두부다. 우리의 청국장이나 일본의 낫도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독특한 냄새(구린 냄새)를 풍긴다. 하지만 중국 음식에는 빠지지 않는 향신료로 쓰인다고 한다.
한국 두부는 비록 곡절을 겪었지만 최근에 와서 그 맛의 우수성을 인정받고 있다. 치즈를 즐기는 외국인들이 한국 두부의 부드럽고 고소한 맛에 반하고 있는 것이다. 미국 뉴욕타임지는 2004년 다이닝 아웃(Dinning Out) 면에 머릿기사로 한국의 순두부를 소개하면서 ‘가장 이상적인 겨울 식품’이라고 찬사를 보냈다. 사실 두부는 균형적인 영양 공급이 쉽지 않은 겨울철에도 영양 보충이 충분한 완전식품이다. 체내의 신진대사와 성장 발육에 꼭 필요한 아미노산, 칼슘, 철분 등 무기질이 다량 함유되어 있는 단백질 식품이다. 또 두부는 소화율이 콩(65%)보다 훨씬 높은 95%나 된다. 소화율이 높음에도 불구하고 열량이 낮아 금상첨화라고 할 수 있다. 또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이 이달 초 한국을 방문했을 때 밥상에 오른 송이요리, 갈비와 함께 두부 요리에 대해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한국 두부가 세계로 진출하고 ‘두부문화 종주국’으로 위상을 재정립할 기회가 왔다. 한국 두부의 우수성이 속속 알려지면서 적어도 사회적 분위기는 조성됐다. 두부처럼 겉은 부드럽지만 영양이 풍부한 외유내강형 전략이 필요할 때다. 미국의 경제잡지 ‘경제전망’에서 미래 10년간의 가장 성공적이고 가장 시장 잠재력이 큰 품목은 바로 두부라고 보도한 적이 있은 뒤라 더욱 그런 생각이 간절하다.
<김경은 기자 jjj@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