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란 우편물은 배달 안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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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 우정당국과 법정공방을 벌인 섹스당 존 인체 총재와 문제의 선거 유인물.

캐나다 우정당국과 법정공방을 벌인 섹스당 존 인체 총재와 문제의 선거 유인물.

'음란 우편물은 배달하지 않는다.’
캐나다 우정공사인 캐나다 포스트가 최근 천명한 원칙이다. 우편물이라고 해서 무조건 접수하고 무조건 배달하지는 않겠다는 선언이다. 내용물에 따라 배달 여부를 판단할 권한이 우정공사에 있음을 분명히 한 것이다.

캐나다 포스트의 이 같은 원칙 천명은 캐나다 서쪽 브리티시 콜롬비아(BC) 주에서 이 문제로 법정 공방을 벌인 뒤 나왔다는 점에서 한층 눈길을 끈다. 이 문제로 고소당해 재판에서 졌는데도 배달 거부를 고수하겠다고 한 것이기 때문이다. 어떤 논리가 있는 걸까. 사정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간의 진행 상황을 되짚어볼 필요가 있다. 2007년 11월 우정이야기(뉴스메이커 749호)에 소개한 내용을 다시 한 번 훑어보자.

2005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BC 주 최대 도시인 밴쿠버에 섹스당이란 이색 정당이 생겨났다. 섹스숍을 운영하는 존 인체(John Ince)라는 전직 변호사가 성을 개방과 자유라는 긍정적 관점에서 보자며 당을 만든 것이다. 매춘 금지, 누드 금지, 자위행위 금지와 같은 성의 네거티브를 지양하고 누드 허용 장소 확대, 성교육 확대 등과 같은 성의 포지티브를 확산시켜야 한다는 내용을 강령으로 내걸었다.

섹스당은 당시 선거에서 후보 3명을 냈으나 참패했다. 누구 하나 의미 있는 득표를 하지 못했고, 자연히 정치권은 물론 시민들에게도 전혀 주목받지 못했다. 그런데 예상치 않은 일이 발생했다. 섹스당이 선거 유인물 배달을 거부한 우정공사를 상대로 고소한 사실이 보도되면서 일약 전국적으로 유명해진 것이다.

우정공사는 섹스당의 유인물이 성을 노골적으로 표현해 어린이 정신세계에 상처를 줄 수 있다는 이유로 우편물의 접수를 거부했다. 그런 우편물은 배달하지 않아도 된다는 내규가 있다는 것이다. 이에 섹스당은 우체국이 표현의 자유를 부당하게 억압했다며 반박했다.

논란 끝에 법원은 섹스당의 손을 들어주었다. 문제의 우정공사 내규는 무효이며 6개월 내 새로 만들라고 판결한 것이다. 섹스당은 환호했고, 우정공사는 고민에 빠졌다.

그런데 판결문을 자세히 들여다보니 그게 아니었다. 배달 거부가 잘못되었다는 게 아니라 “법률에 근거하지 않고 내규를 사용해 국민 권리를 제약한 것은 잘못”이라는 취지였다. 상황은 역전됐다. 우정공사는 개정 법안을 들고 나왔고, 섹스당은 다시 반발했다.

캐나다 포스트는 우체국이 배달을 거부할 수 있는 배달거부물품규정(Non-mailable Matter Regulations)에 “노골적 성물질”(SEM·Sexually Explicit Material)이란 조항을 추가하고, SEM의 정의를 “성 행위를 암시하는 누드 이미지나 표현, 성교를 나타내는 이미지나 표현, 성 행위를 순수하게 기술하는 것 이상으로 묘사하는 글”이라고 규정했다.

이로써 SEM에 해당하는 사진이나 그래픽, 유인물 등은 노출된 상태로는 캐나다 전역에서 우편 송달이 불가능하다. 주소가 있는 우편물(addressed)이든 주소가 없는 우편물(unaddressed)이든 마찬가지다. 속이 비치지 않는 봉투에 내용물을 담고 겉봉에 ‘성인물’이라고 썼을 때만 우체국에서 받아준다.

이렇게 되자 섹스당의 존 인체 총재는 법원과 우정공사를 향해 독설을 날렸다. 우정공사를 향해서는 “어린이를 보호하기 위해 배달을 거부한다는데, 그렇다면 동성애물은 왜 배달하느냐”고 공격했다. 법원에 대해서는 1983년 미국에서 있었던 유사 사례를 들어 비판했다. 미 우정청이 콘돔 광고물 배달을 거부했다가 광고주에 의해 피소된 사건이다. 당시 우정청의 방어 논리도 지금의 캐나다 우정과 다를 바 없었으나, 대법원에서 원고 승소 판결을 내렸다. 미국에서 이미 판정이 난 사안을 캐나다 법원이 부당하게 뒤집었다는 것이다.

이 사례에서 보면 캐나다 사회는 미국보다 보수적이다. 하지만 우정사업에서 그런 보수와 진보의 구분은 별 의미가 없다. 그보다는 우정을 우편물의 단순 전달자 역할로 보는 게 아니라 서비스 제공자로서 사회적 책임까지 포함하는 것으로 보는 캐나다 우정당국의 인식이다. 우편의 보편적 서비스를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그래서 우편의 국가 독점 원칙이 있는 둥 마는 둥 하는 우리나라에서는 이런 사건이 애초부터 일어날 수 없다.

<이종탁 경향신문 논설위원> jtle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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