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아이 식습관을 바꾸자
정치권 ‘어린이 식생활안전관리 특별법안’ 추진
초등학교 6학년 생인 김미라 어린이(가명·서울 성수동)는 최근 한 성장클리닉 병원에서 믿기지 않는 진단을 받았다. ‘성조숙증’으로 인해 성장판이 거의 닫힌 성장장애가 왔다는 것이다. 그는 반에서도 키가 제일 작다(키 140㎝에 체중이 42㎏이다). 그의 짧은 다리를 보고 “짧고 뚱뚱한 게 거북이 다리 닮았다”는 반친구들의 놀림을 견디지 못하고 미라가 성장클리닉에 가겠다고 보채 찾은 병원이었다. 미라는 이미 여자 어린이의 급성장기(초등학교 4~5학년)를 지났다. 보통아이처럼 17~18세까지 성장을 한다고 해도 예상 성장키는 150㎝에 미치지 못한다. 이 아동이 성장장애를 겪는 직접적인 원인은 비만이다. 그 비만도 어른이 만들었다. “잘 먹어야 큰다” “어느 정도 살집이 붙어야 키도 큰다”는 등과 같은 잘못된 부모의 상식이 이 아이에게 ‘독’을 준 것이다. 그가 성장에 약간의 도움을 받으려고 하면 성장호르몬 주사를 맞는 방법밖에 없다. 성장호르몬 주사 비용은 한 달에 200만 원 이상 든다. 월경을 늦춰 성장을 돕는 방법이 있지만 이런 것도 무용지물이 됐다. 성조숙증을 앓고 있는 미라는 이미 1년여 전에 초경을 시작했기 때문이다. 생리불순까지 있다고 한다. 이 역시 비만 때문이다. 김미라 어린이의 어머니인 정은숙씨는 “미라의 키만 생각하면 가슴이 꽉 막힌다”면서 “거리를 오갈 때 늘씬한 학생들의 다리만 보인다”며 안타까움을 표시했다.
시판 과자류 대부분 포화지방 과다
비만은 지나친 풍요로움의 대가다. 한국 어린이들이 하루에 섭취하는 당(糖)량은 무려 61g. 세계보건기구(WTO)의 권고량(50g)을 훌쩍 넘어선다. 또 한국의 독특한 식문화 때문에 어린이들이 어른과 비슷한 양의 소금을 섭취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어른 한 사람의 하루 소금 섭취량은 13.5g이다. 이 역시 WTO 권장량(5g)의 약 3배 수준이다. 당과 염분 그리고 지방이 많이 함유된 음식으로는 우선 과자를 꼽을 수 있다. 시중에 판매되는 과자 10개 중 9개에 포화지방산이 과다 함유된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소비자원이 지난달 15일 시중에서 판매되는 어린이 과자류 70개 제품의 영양성분을 영국 식품기준청 및 소비자협회 기준으로 분석한 내용을 발표했다. 그 결과는 상상 이상이었다. 전체 제품 중 포화지방 과다 91%, 지방 과다 77%, 당 과다 66%였다.
못 먹어서 생긴 병은 적절한 영양을 공급하면 곧 치료가 되는 게 보통이다. 하지만 많이 먹어서 생긴 병은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게다가 비만은 개인적인 질병에 그치지 않는다. 사회적 병리현상이라는 데 더 큰 문제가 있다. 보건복지가족부의 통계에 따르면, 최근 들어 우리나라 비만 인구는 32.4%(체질량지수 25% 이상)라고 한다. 지난 10여 년 동안 무려 1.6배가 증가(여자 1.3배, 남자 2배)했다. 적절한 조치가 없다면 비만 인구는 더 늘어난다는 데 걱정이 커지고 있다. 성인 인구의 비만 비율을 좌우하는 소아 비만 증가 속도가 성인 비만보다 현저히 높기 때문이다. 어린이 비만은 80% 이상이 성인 비만으로 연결된다.
나이가 들수록 비만으로 인한 건강상의 문제는 더욱 심각해질 수 있다. 최근 3년 동안(1998년~2001년) 초등학생의 비만 비율은 2배나 늘었다. 남학생 비율은 7.2%에서 15.4%로, 여학생 비율은 8.7%에서 15.9%로 높아진 것이다. 우리나라 어린이의 5명 중 1명꼴로 과체중인 셈이다. 우리나라에서 비만 치료를 하는 데 드는 사회·경제적 비용도 만만치 않다. 전체적인 비용은 1조8000원 정도로 추산된다. 이중 3분의 1은 아동비만에서 비롯된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비만으로 인한 질병 부담이 수십 년에 걸쳐 나타나고 인구 고령화가 가속화하고 있는 점 등을 감안한다면, 우리나라의 비만 해소 비용이 급격히 증가할 것은 명약관화하다. 보건복지가족부 이선규 보건사무관은 “비만한 사람은 정상인보다 평균 입원 일수가 85%가 많다”고 말했다. 그만큼 소아 비만을 예방하는 데 대한 투자가 절실한 상황이다.
정부는 2005년부터 국가비만관리위원회를 설치하고 비만 문제를 직접 관리하고 나섰다. 정부는 같은 해 12월 ‘국민건강증진종합계획(Health Plan 2010)’을 마련해 적정체중 인구 비율을 68.7%(2001년)에서 75%(2010년)로 높이는 목표를 설정했다. 이를 위해 보건복지가족부, 문화광광부, 교육부, 노동부 학회 및 단체 등 민간 전문가 등이 참여한 ‘국가비만대책위원회’를 구성했다. 그러나 소아비만과 관련한 정부의 통합적 전략이 제시되지 못하고 있어 안타깝게 하고 있다. 보건복지가족부의 한 관계자는 6월 11일 “정부도 미래의 주역인 아동의 비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면서 “관련 부처가 세부적인 계획을 마련하고 있는 중이다. 오늘도 이 문제를 논의하는 회의가 있었다”고 말했다.
체력저하 해결 학교체육 혁신안 발표
교육과학기술부는 지난 4월 소아 비만 증가와 체력 저하 현상을 해결하기 위한 학교체육 혁신방안인 ‘PAPS’(학생건강체력평가시스템)를 발표했다. PAPS는 학생들의 체력 수준을 종합 평가해 맞춤형 신체활동 처방을 제공하고, 최고 2개월 단위로 점검하는 것을 주된 내용으로 하고 있다. 지난해 비만연구학교로 지정된 부산 백산초등학교의 교사들은 “PAPS를 도입한 뒤 건강 체력 정보를 토대로 운동 처방을 함에 따라 어린이들의 건강 증진과 비만 예방에 크게 도움이 되는 것을 눈으로 확인하고 있다”고 입을 모았다.
보건복지가족부에서도 지난해 8월 아동비만관리사업을 시범 운영한다고 발표하고 55만 명에 달하는 비만 초등학생 중 5만 2000여 명에게 운동 처방 및 지도, 영양교육 등 각족 비만 치료 정보를 전달하고 치료비를 지원하기로 하는 등 소아 비만 대책 마련에 나섰다.
정치권에서도 어린이들을 유해식품으로부터 차단하는 내용의 ‘어린이 식생활 안전관리 특별법안’을 추진하고 있다. 이 법의 주요 내용은 ▲어린이 식품안정보호구역 지정 ▲어린이 기호식품 전담관리원 지정 ▲우수판매업소 지정 ▲고열량, 저영양 식품 등의 판매 금지 ▲어린이 정서 저해 식품 판매 금지 ▲위반업소 처분(과태료 1000만 원 이하) 등이다. 특히 어린이 식품안정보호구역 지정 제도는 어린이 건강 증진을 목적으로 학교 주변 200m 안에 있는 문구점 구멍가게 분식점 등에서 위생상태가 불량한 제품이나 값싼 저질 제품의 유통을 막고 안전하고 위생적인 어린이 식품 판매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마련됐다.
<김경은 기자 jjj@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