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나나를 잡곡밥에 비할쏘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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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농산물의 재발견⑤ 잡곡밥

[캠페인]바나나를 잡곡밥에 비할쏘냐

바나나가 ‘밥’이란다. 세계 최대 농산물 판매업체인 돌(Dole)의 주장이다. 얼마 전부터 이 회사는 ‘굿모닝 바나나’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아침식사를 거르지 말고 바나나를 먹으라는 것이다. ‘바나나는 밥’이라는 캐치프레이즈를 앞세워 대량의 물량 및 광고 공세도 펴고 있다. 광고 내용도 파격적이다. 광고의 배경은 한 마트의 쌀 판매 코너다. 바나나 인형을 뒤집어쓴 모델(‘바나나맨’이란다)이 바나나가 수북이 쌓인 매대를 밀고 와서는 “바나나는 밥”이라고 외치다가 마트 관계자들에게 끌려나가는 내용이다. ‘싸구려 수입 과일’로 여겨지는 바나나의 이미지를 리포지셔닝하고, 아침식사 대용이라는 신규 시장을 개척하려는 돌의 의도를 짐작하고도 남는다. 하긴 1991년 수입 개방이 되기 전 바나나는 평소 맛보기 힘든 최고급 과일이었다. 1980년대 정부가 특별 수입한 바나나를 축협에서 할인 판매하자 사람들이 이를 사기 위해 줄지어 섰고, 급기야 한 사람이 살 수 있는 개수를 제한하는 일조차 벌어졌다.

학생들도 아침으로 밥과 국 선호
분명한 것은 바나나는 밥이 아니다. 무리한 의욕에서 비롯한 이 같은 ‘사실 왜곡’ 마케팅은 소비자들에게 잘못된 식습관 상식을 심어주고, 건강을 해치게 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우려스럽다. 딱 하나 캠페인 내용 가운데 수긍가는 게 있다면 아침에 무엇이든 먹어야 한다는 점이다. 즉 아침을 거르는 것보다 바나나라도 먹는 게 훨씬 몸에 좋다. 물론 바나나만이 아니라 어느 음식물에도 해당되는 말이다. 물론 바나나가 탄수화물 함량과 열량이 높다지만 그것만으로 밥이 될 수는 없다.

국어 사전에 따르면 밥은 ① 쌀, 보리 따위의 곡식을 씻어서 솥 따위의 용기에 넣고 물을 알맞게 부어, 낟알이 풀어지지 않고 물기가 잦아들게 끓여 익힌 음식 ② 끼니로 먹는 음식이다. 첫 번째 정의에 따르면 더 말할 나위도 없고, 두 번째 정의를 보더라도 ‘바나나를 끼니로 먹을 수 있는가’라는 의문이 남는다. 서울대 식품영양학과의 한성임 교수는 “아무리 좋은 음식이라도 하나만 먹어서는 영양 불균형 상태에 빠진다”고 강조했다. 미국 정부가 아침 결식 어린이들을 위해 마련한 아침 급식 프로그램의 영양 규정을 보면 하루 중 필요한 열량의 4분의 1, 단백질과 비타민, 무기성분의 3분의 1을 충족하도록 돼 있다. 물론 바나나 하나로는 턱도 없는 양이다.

게다가 바나나는 칼륨 함량이 높아 신장에 문제가 있는 소비자가 계속해서 먹을 경우 병을 유발할 수 있다. 또 혈압을 높이는 성분이 있어 좋지 않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열량이 높으니 비만으로 이어질 우려도 있다. 식이섬유가 많아 한 개만 먹어도 쉽게 포만감을 느끼기 때문에 식욕을 떨어뜨려 건강한 식습관을 그르치게 한다.

가장 좋은 것은 밥과 국, 그리고 몇 가지 반찬을 갖춘 제대로 된 아침밥을 먹는 것이다. 되도록 잡곡밥으로 말이다. 원래 우리나라에는 밥과 찬이었지, ‘메인 디시’의 개념이 없었다고 한다. 농촌진흥청이 2006~2007년까지 2년 동안 서울의 중·고등학교 학생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자료에도 아침식사로 과일이나 우유 한 잔보다 밥과 국을 선호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우리 아이들에게 콘플레이크나 스프·토스트, 심지어 바나나 하나를 내미는 것은 너무 미안한 일이 아닌가 싶다. 갓 지은, 김이 모락모락 나는 잡곡밥 한 공기가 ‘가족 사랑’인 것이다. 옛말에 ‘밥은 하늘’이라고 하지 않던가.

윤덕한<농민신문 경제부 식품팀 기자> dkny@nongm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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