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과 길

최홍이 서울시 교육위원회 교육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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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자율화 논란

“교육현장 ‘신호등’ 꺼진 것과 마찬가지”

[말과 길]최홍이 서울시 교육위원회 교육위원

지난 4월 15일, 교육과학기술부는 ‘학교 자율화 추진 계획’을 발표했다. ‘다양하고 질 높은 교육을 위한, 학교 중심의 자치 기반 마련’을 위해서 자율성을 저해하는 29개 지침을 즉시 폐지하고, 규제성 법령 조항 13개를 6월 중에 정비한다는 계획이다. 이 계획이 발표된 후 교육 전문가들은 “학교 자율화라는 미명하에 정부가 공교육을 포기했다”며 비판하고 있다. 지난 4월 22일 참여연대, 전교조, 참교육학부모회 등 교육·시민사회 단체가 주최한 ‘학교 자율화 추진 계획’에 대한 긴급 정책 토론회에서는 ▲ 0교시 부활 ▲ 밤 10시 이후 심화 보충학습 ▲ 수능 이후 학원수강 학교 출석 인정 ▲ 촌지와 불법 찬조금 안 주고 안 받기 관련 지침 폐지 ▲ 교복 공동구매 권장 지침 폐지 ▲ 부교재 채택 관련 지침 폐지 ▲ 어린이 신문 단체 구독 금지 지침 폐지 ▲ 사설 모의고사 허용 ▲ 방과 후 학교에 사설학원 참여 가능 등에 문제가 많다는 목소리가 쏟아져나오기도 했다. ‘평교사는 아름답다’라는 책의 저자이자, 학교 교사 출신인 서울시 교육위원회 최홍이 교육위원을 만나 이번 학교 자율화 방침에 대해서 이야기를 들어봤다. 최 교육위원은 이번 학교 자율화 추진 계획에 대해서 “광화문 네거리에 있는 신호등이 나간 것과 마찬가지다”라고 표현한다.

교육과학기술부가 발표한 학교 자율화 추진 방안에 대한 총평을 해달라.
“자율화라는 대명제는 찬성한다. 하지만 이번에 교육과학기술부가 발표한 것에 대해서는 반대한다. 이번 학교 자율화 추진 방안은 ‘광화문 네거리에 신호등이 사라진 것’처럼 교육 현장을 아수라장으로 만들 것이다. 자율화는 계획과 절차에 따라 만들어야 하는데, 개혁 드라이브를 흉내내서 이벤트처럼 하는 것 같다. 자율을 반대하는 사람이 어디 있나. 하지만 교육 상황은 별로 달라진 것이 없는데, 규제를 없애면 어떻게 되나.”

문제가 많이 생길 것 같은 정책은 무엇인가.
“많은 문제가 있다. 특히 어린이 신문 단체 구독 금지 지침을 폐지하면 교장이 신문사 지국장 노릇을 하는 것이다. 어린이 신문은 교육을 이용한 거대 신문의 영리행위 아닌가. 신문사가 가만히 있겠나, 리베이트가 오고 갈 소지가 크다. 아이들이 어린이 신문을 보고 싶어한다는 것은 변명밖에 안 된다. 또한 교복 회사의 담합 때문에 많은 부모가 피해를 봤다. 얼마나 심했으면 나 몰라라 했던 공정위까지 나서서 과징금까지 물렸겠나. 그래서 공동구매 권장 지침을 만든 것이다. 그런데 아무 준비 없이 지침을 폐지한다고 하니 걱정이다.”

이번 조치로 방과 후 학교에 사설학원이 참여할 수 있는 길이 생겼다. 하지만 사설학원이 별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는 기사가 나오기도 했는데.
“그렇지 않다. 둑에 조그마한 구멍이 뚫리면 무너지는 것은 한 순간이다. 사설 학원이 학교에 들어간다는 것은 아주 심각한 문제다. 학원 강사는 방과 후 학교에서 맛만 보여줄 것이고, 학생들은 더 배우려고 학원에 갈 수밖에 없다. 사교육비는 전체적으로 더 증가할 것이다. 사교육은 지식 위주의 족집게 교육이다. 그렇다고 공교육 교사가 그대로 따라갈 수는 없는 것 아닌가. 공교육은 학생의 인성과 소양을 길러주는 교육도 해야 한다. 하지만 이젠 학교가 사설학원의 공급처 노릇을 하고, 공교육은 사교육의 지배를 받을 것이다. 이건 야만적인 교육이다. 어느 나라가 학교에 학원 강사를 데려다 쓰나.”

교육감 회의에서 ‘0교시 부활’과 ‘우열반 제도’는 하지 않겠다고 했다. 하지만 실질적인 제제 수단이 없다는 비판이 많은데.
“자율에는 책임이 따른다. 규제가 있으면 그것을 따르지 않을 때 책임을 물을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지침이 없으면 교육자의 상식과 관례를 믿어야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4월 15일 학교 자율화 방침이 발표된 날 상위 1% 특목고 학생이 자살한 사건이 있었다. 그런데 그 아이를 두고 한 교육위원은 ‘얼마나 의지박약하면 그러나’라는 이야기를 하는 것을 듣고 너무 놀랐다. 그만큼 교육자의 상식은 여전히 구태의연한 경우가 많다. 이번 발표로 교육위원회가 할 일이 많아질 것 같다. 학원 자율화 방침의 의도와 목적에 어긋나면 다시 조례 등을 만들어 학교를 묶어놓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때까지 치러야 할 기회비용이 너무 크다. 피해는 모두 학생의 몫이 된다는 것이 가슴 아프다.”

사설 모의고사도 부활했다. 학생들에게 자신의 실력을 알아볼 수 있는 기회가 되지 않나.
“공정택 교육감이 들어오면서 사설 모의고사가 부활했다. 모의고사나 일제고사의 문제는 1등부터 꼴찌까지 학생들을 줄세우는 것이다. 입시 교육에 치중하면서 학생들의 인성교육은 사라졌고, 학생들은 문제 푸는 기계로 변했다. 이런 문제 때문에 모의고사가 사라진 것이다. 그런데 이것을 다시 살려놨으니, 학생들은 다시 정답 고르는 기계로 변할 것이다. 일시적으로 성적은 오르겠지만 학생들은 지쳐갈 것이고, 창의성도 사라져버릴 것이다. 교육마저도 경쟁과 효율을 강조하는 것은 학교가 학원 역할을 하라는 것이다.”

학교 자율화 방안으로 교장의 권한이 커졌다.
“의견 수렴의 절차가 많이 줄어들 것이다. 이제 교장은 무소불위에 가까운 힘을 갖는 것이다. 학교 운영위원회의 기능도 교장의 뜻대로 갈 것이다. 선진국의 경우 학교운영위원회가 학교의 예산, 교육과정, 학사행정을 모두 결정한다. 교장의 경우에는 진행 역할만 하고 있다. 만일 학운위의 결정에 문제가 있다면 교장은 재심 절차를 신청하게 된다. 이것이 학교의 민주주의다. 우리에게도 민주적인 리더십이 정말 필요한 시기다.”

학교 자율화 방안이 추진될 것으로 보이는데, 피해를 줄일 대안은 없나.
“지금 학교 자율화 방안을 되돌릴 수는 없을 것이다. 이명박 정부가 권위주의 시대보다 더 강력하게 추진하니까, 공무원은 따라갈 수밖에 없다. 대안은 학생과 교사 그리고 학부모가 단결하는 일뿐이다. 파행적으로 운영되고 있는 학교운영위원회부터 정상화해야 한다. 학교운영위원회를 정상적으로 운영하면 이번 자율화 방안의 피해를 너끈히 이겨낼 수 있을 것이다. 학교 자율화로 생기는 피해를 줄이는 것은 학교운영위원회의 정상화에 달려 있다.”

<글·최영진 기자 cyj@kyunghyang.com>
<사진·김석구 기자 sgk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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