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 중 이산화탄소 양이 지구 온도 결정…
‘순환 메커니즘’을 파괴하면서 기후 변화 발생
여러분의 코앞에 이산화탄소 분자 하나가 둥둥 떠다니고 있다. 이름을 탄돌이라고 붙여보자. 바로 이 탄돌이가 이번 기후 변화 이야기의 주인공이다.
![[기후변화 A to Z]기구한 여행자 ‘탄돌이’의 운명](https://img.khan.co.kr/newsmaker/772/83_a.jpg)
이산화탄소는 지구 온난화를 일으키는 온실가스 가운데 가장 중요한 자리를 차지한다. 기후 변화를 막는 일은 대기 중의 이산화탄소를 줄이는 것이라고 해도 틀리지 않다. 따라서 우리의 불쌍한 주인공 탄돌이는 시작부터 쫓기는 신세다.
아슬아슬하게 여러분의 콧김을 피한 탄돌이는 환풍구를 통해 밖으로 빠져나갈 것이다. 대기 중의 이산화탄소 분자는 오랜 세월 동안 바람에 실려 지구 곳곳을 날아다닌다. 탄돌이도 10년째 대기에 머물면서 지구의 끝에서 끝까지 몇 번을 떠돌았다.
탄소는 지구 상 모든 생물의 기본 요소
지구의 기후와 거기에 사는 인간의 미래는 탄돌이의 운명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계속 대기에 남아 지구라는 온실의 유리 역할을 할 수도 있고, 어딘가에 붙잡혀 잠시 또는 영원히 지구 온난화의 무대에서 모습을 감출 수도 있다.
탄돌이의 운명은 우연히 결정된다. 산들바람이 들판의 나뭇잎 위에서 잠깐 멈춘다. 거기에 한낮의 뜨거운 태양이 내리쬔다.
그때 탄돌이의 몸이 나뭇잎의 조그만 숨구멍으로 빨려들어간다. 탄돌이의 운명이 순식간에 바뀐다. 두 개의 산소 원자를 잃고 수소, 질소, 그리고 다른 탄소 원자와 새로운 화학적 결합을 하면서 탄돌이는 식물의 몸을 이루는 수많은 원자 중 하나가 된다.
탄소는 지구 상의 모든 생물을 구성하는 기본 요소다. 대기 중에서는 온실가스였던 탄돌이도 광합성 작용을 통해 생명을 가진 유기물로 재탄생한 것이다. 탄돌이의 변신은 여기서 끝나는 것이 아니다. 소가 잎을 먹으면 탄돌이는 이제 동물의 몸의 일부가 된다. 운이 좋다면 그 소의 고기를 먹은 여러분 몸의 한 부분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어떤 경우든 결국 탄돌이는 다시 대기 중의 이산화탄소 분자로 되돌아가게끔 되어 있다. 동물의 살이 되더라도 그 동물이 죽은 뒤에는 박테리아에 의해 분해될 것이기 때문이다. 잎이 소에게 먹히는 일 없이 그냥 땅에 떨어지더라도 마찬가지다. 잎 속의 탄소 원자 역시 흙 속에 있는 박테리아에 먹히면서 이산화탄소가 되어 대기로 날아간다.
대기 중의 이산화탄소가 동식물의 몸의 일부가 되었다가 다시 대기로 되돌아가는 탄소 순환은 지구의 온도를 높이고 낮추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즉 지구의 탄소 순환 메커니즘이 대기 중의 이산화탄소 양을 어느 수준으로 조절하느냐에 따라 지구의 온도가 결정되는 것이다.
그래서 탄돌이는 억울하다. 이산화탄소는 지구 온난화의 원흉이기에 앞서 지구의 기후 조절과 생명 유지에 반드시 필요한 존재라는 걸 사람들이 잘 모르기 때문이다. 대기에 이산화탄소가 없다면 어떻게 될까. 온실효과가 일어나지 않아 지구는 평균 기온이 영하 18℃의 얼음 행성으로 변한다고 한다. 식물이 광합성을 하기 위해서는 이산화탄소 농도가 150ppm은 되어야 한다는 연구도 있다. 다시 탄돌이 이야기로 돌아가보자.
대기와 생물체 사이의 순환을 수백 번 반복하던 탄돌이에게 어느 날 엉뚱한 일이 벌어진다. 흙 속에 탄소 원자 상태로 있던 중에 홍수에 휩쓸려 바다까지 떠내려가면서다. 바다 밑바닥에 가라앉은 탄돌이 위로 새로운 물질이 계속 쌓였다. 그곳에는 산소도, 생물도 없다. 산화되지도, 생물에게 먹히지도 않는 환경에 꼼짝 없이 갇힌 것이다. 세월이 흘러 탄돌이를 둘러싼 흙은 단단한 바위로 변했다. 이제 탄돌이는 대기로 되돌아가 지구 온난화에 기여할 수 없게 되었다. 말하자면 ‘탄소 통조림’이 된 셈이다.
150년 사이에 농도 100ppm이나 증가
석탄과 석유, 천연가스와 같은 화석연료는 지구 온난화를 일으키는 온실 가스를 밀봉해 저장해놓은 탄소 통조림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자연적인 탄소 순환을 통해 지구의 기후가 안정화되었고, 지금과 같이 다양한 생물이 번성하고 인간이 문명을 이루기에 적합한 환경이 만들어졌다.
오늘날 기후 변화 문제는 자연적인 탄소 순환을 인간이 깨뜨린 데서 비롯한다. 산업혁명 후 석탄과 석유 등 화석연료를 대량으로 사용하면서 대기 중의 이산화탄소 농도가 급속도로 높아지고 있다. 산업혁명 이전에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는 280ppm이었고, 지금은 380ppm 정도다. 과거 16만 년 동안 이산화탄소 농도가 300ppm을 넘은 적이 없었는데 불과 150년 사이에 100ppm이나 증가한 것이다. 걱정스러운 것은 갈수록 그 증가폭이 크다는 것이다. 이대로 간다면 100년 뒤에는 970ppm까지 치솟을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인간이 깊은 땅 속에서 꺼냈기에 대기로 되돌아온 탄돌이 앞에는 어떤 여정이 기다리고 있을까. 과거에 비해 숲도 많이 파괴되고 사막이 확장되었으니 광합성의 기회가 준 것은 틀림없다. 어쩌면 끝없이 대기를 떠돌며 온실가스 역할에만 충실하게 될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런지 탄돌이의 표정이 그리 밝지 않아 보인다.
<신동호 NIE연구소 소장 hudy@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