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고 인프라의 그늘,
후유증 대처방안 마련 사회적 손실 막아야

서울 시내 한 PC방에서 게임을 즐기는 사용자(사진은 인터넷 중독과는 관련 없음).
지난 1월 9일 서울중앙지법은 흥미로운 판결을 내렸다. PC방 요금 2만 원을 내지 않은 30대 우모씨에게 징역 6월, 집행유예 2년, 사회봉사 120시간을 선고한 것이다. 처음이었다면 훈방 정도로 끝났겠지만, 경찰 조사 결과 우씨는 지난 반년간 같은 범죄를 10여 회나 저지른 것으로 드러나 결국 실형을 선고받았다.
이런 일은 얼마나 자주 있을까. 우씨처럼 실형을 선고받는 경우야 드물지만, 멀쩡해 보이는 손님들이 PC방 이용 요금을 떼먹고 달아나는 일은 심심치 않게 벌어진다. 서울역 근처에서 PC방을 운영하는 김모씨(44)는 “그런 사람들이 간혹 있는데 대개는 실직자”라고 말한다. 이런 이들은 대부분 주인이나 아르바이트 학생이 청소를 하느라 잠깐 자리를 비운 사이에 사라지기 때문에 현장에서 잡히는 일은 거의 없다. 잡히더라도 경찰서로 직행하는 경우는 드물다. 돈이 없다며 뻗대면 어떻게 할 도리가 없기 때문에 신분증이나 물건을 맡기게 하고 보내주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휴대전화·옷 맡기고 PC방 이용

이른 아침 서울 시내 한 PC방의 모습.
서울 종로구 창신동의 한 PC방에서 일한 지 8개월째라는 조대호씨(27)는 “이곳은 회원제 손님들이 주로 찾기 때문에 그런 일은 거의 일어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조씨가 말하는 이유는 두 가지다. 하나는 주거지기 때문에 뜨내기 손님이 드물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단골이 아닌 경우에는 반드시 중간 정산을 하기 때문이다. ‘먹고 튀는’ 손님들이 발생할 소지를 사전에 차단하기 위해서다. 가끔 만취한 상태에서 PC방에 들어오는 사람도 있지만, 그런 경우에는 다른 손님에게 방해가 되지 않도록 깨워서 내보낸다.
신촌의 한 프랜차이즈 PC방 매니저인 한모씨(29)는 “그런 일은 비일비재하다”고 말했다. “우리는 오픈한 지 얼마 되지 않고 요금이 만 원이 넘으면 그때까지 사용한 요금을 받기 때문에 그런 손님이 드물지만 후미진 곳으로 가면 그런 일이 꽤 많을 것이다.” 이곳은 출입구 바로 앞에 계산대가 자리 잡고 있어서 손님의 수상한 움직임을 바로 잡아낼 수 있지만 그래도 “한 달에 두세 번은 그런 일이 있다.”
이런 일들이 워낙 많고 소문이 퍼져 있다 보니 대부분 PC방에서는 행색이 초라하거나 노숙자처럼 보이는 사람은 아예 받지 않는다. PC방 아르바이트만 다섯 번째라는 이진혁씨(26)는 “뜨내기처럼 보이는 사람들은 아예 못 들어오게 한다”고 설명했다. 이씨는 다른 곳에서 일할 때의 경험을 들려줬다. “동네 PC방인 경우 아예 자리를 깔고 살다시피하는 사람이 간혹 있다. 나잇대는 20대 초반부터 40대 중·후반까지 다양했다. 휴가를 받아 3일 동안 게임만 하다 가는 군인도 봤다.” 이씨가 일하는 곳은 화장실이 PC방 외부에 있어서 돈을 안 내고 사라지는 손님이 하루에 두세 명으로 다른 곳에 비해 상대적으로 많은 편이다. “돈이 없다는 손님은 휴대전화나 옷을 맡기게 하는데, 창피해서 그런지 다시 찾으러 오는 사람은 드물다.”
2005년 8월 대구의 한 PC방에서는 한 20대 남성이 50시간 동안 게임을 하다 사망하는 사고가 일어나 충격을 준 적이 있다. 실제로는 극단적인 경우도 있다. 지하철 2호선 이대역 부근의 한 PC방에서 일하는 정우철씨(32)는 두 달 전 극한적으로 게임에 몰두하는 사람을 보고 기겁했다. “30대 초반의 남자였는데 운동선수들이 쓰는 커다란 가방을 하나 들고 와서는 거의 일주일 동안 라면과 과자만 먹으면서 버티더라. 저러다 큰일나겠지 싶으면서도 어쩔 도리가 없어서 답답했는데 마침 그때쯤 PC방 리모델링 공사를 시작해서 ‘위험한 일’을 피할 수 있었다.” 이런 극단적인 경우가 아니더라도 10시간에서 15시간 정도 온라인 게임에 빠져 있는 사람은 흔하다. “30대가 많은데, 리니지 같은 게임에 빠지면 시간 가는 줄 모르는 것 같다”고 정씨는 말한다.
PC방은 호주머니가 가벼운 사람들이 일반 숙박업소 대신 찾기에 좋은 곳이다. 지역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PC방 이용 요금은 시간당 1000원으로, 24시간 동안 있더라도 2만4000원이다. 게다가 정액제로 이용할 경우 요금은 1만6000원 수준으로 떨어진다. 정씨에 따르면 이곳의 경우 1년 전만 하더라도 날씨가 추워지면 주변 공원의 노숙자들이 한두 시간씩 있다가 나가곤 했다. “들어와서 컴퓨터를 켜지도 않고 한두 시간 앉아 있다가 그냥 나간다. PC를 켜지 않으면 요금 계산이 안 되니 돈을 달라고 할 수도 없다. 올해는 그런 사람이 없었다.”
해외 언론서도 ‘한국의 중독’ 조명

서울 시내 한 PC방에서 게임을 즐기는 사용자(위 사진은 인터넷 중독과는 관련 없음).
한국의 인터넷 기반시설이 세계 최고 수준이라는 것은 이미 상식이다. 그러나 높은 수준의 인터넷 접근성은 인터넷 중독이라는 그늘을 만든다. 세계 최고 수준의 인터넷 접근성이 낳은 인터넷 중독의 심각성은 해외 언론에서도 주목할 정도다. 일례로 지난 18일 뉴욕타임스는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한국의 인터넷 치료 캠프를 소개하면서 아이들이 각종 장애물 통과와 상담을 받는 사진을 같이 실었다. 그러면서 인터넷 중독증이 미국을 포함한 다른 나라에서도 서서히 사회문제로 대두하고 있지만 한국에서는 특히 그 문제가 심각하다면서 한국 인터넷 중독의 심각성을 꼬집었다.
뉴욕타임스가 소개한 이 프로그램은 국가청소년위원회 산하 한국청소년상담원에서 주관한 ‘Jump-Up 인터넷 Rescue School’이다. 2007년 8월과 10월 두 차례 11박 12일 동안 천안 국립중앙청소년수련원에서 합숙으로 진행됐다. 이 프로그램을 이수한 청소년들은 인터넷 중독 고위험군에 해당하는 33명이었다. 이들은 심리검사, 진단상담, 체력단련 등으로 구성된 프로그램을 이수했다. 청소년상담원은 올해에도 같은 프로그램을 실시할 계획이다. 지난해에는 지자체 교육청과 학교로 공문을 발송하여 참가 신청을 받았으나 올해는 해당 지역에서 곧바로 신청할 수 있는 방식으로 보완할 방침이다.
한국이 정부 차원에서 본격적으로 인터넷 중독에 대응한 것은 2002년 한국정보문화진흥원 산하 인터넷중독예방센터를 설립하면서다. 예방센터는 2002년 서울대연구소에 자가중독진단 기준 수립을 의뢰하고 40문항으로 된 자가중독진단 도구를 마련했다. 현재 예방센터 홈페이지에 올라와 있는 자가중독진단 문항들이 그것이다. 예방센터는 현재 40개 문항으로 된 진단 항목을 20개로 줄이고 부모와 상담자를 위한 진단지를 이달 중으로 추가할 예정이라고 한다.
‘은둔형 외톨이’ 인터넷과 연관성
2006년 기준으로 현재 한국의 인터넷 중독자 인구는 청소년은 전체의 14.1%, 성인은 7%다. 청소년은 고위험 사용자군, 잠재적 위험 사용자군, 일반 사용자군으로 분류되며, 성인의 경우에는 일반 사용자군을 자기관리 필요성의 정도에 따라 A군과 B군으로 나눈다.
인터넷중독예방센터 엄나래 상담사에 따르면 현재 인터넷 중독에 대한 완벽한 해결책은 없다. 다만 인터넷 중독은 충동성 장애, 폭력성 장애, 우울증 등의 증상을 동반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약물 등 정신과 치료 방법을 사용할 수 있다.
일본의 경우 ‘6개월 이상 자기방에서 나오지 않는 사람’을 일컫는 소위 ‘히키코모리’가 등장하면서 사회문제로 비화하고 있다. ‘히키코모리’는 한국식으로 말하면 ‘은둔형 외톨이’라고 표현할 수 있는데 왕성한 사회활동을 해야 할 30대의 비율이 30%를 차지하는 것으로 알려지면서 일본 사회에 비상신호를 보내고 있다. 엄나래 상담사에 따르면 ‘히키코모리’를 인터넷 중독과 직접적으로 연관시키기는 힘들지만 이들이 주로 인터넷 환경이 갖춰진 곳을 선호한다는 점에서 인터넷과 연관성을 짐작해볼 수 있다.
전반적인 인터넷 중독은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증상이 아닌데다 인터넷 중독자 대부분은 PC방이나 가정 등 다른 사람들과 접촉이 제한된 상황에 있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접근 자체가 쉽지 않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인터넷 중독이 사회부적응과 각종 심리적 불안 등을 비롯한 개인적 손실뿐 아니라 개인이 사회적으로 소외됨으로써 사회의 잠재적 역량이 줄어드는 사회적 손실을 동반한다는 점이다. 따라서 인터넷 인프라에 못지않게 인터넷 후유증에 대응할 수 있는 방법을 마련하는 문제가 시급하다.
<정원식 기자 bachwsik@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