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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급점검 | 삼성 운명 좌우할 4대 핵심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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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희 회장, 최후의 결단 내리나”

삼성그룹의 운명에 대해서는 크게 2가지 전망이 엇갈린다. 우선, 삼성이 특검조사를 통해 그룹의 명운이 달라지는 ‘혁명적 상황’에 직면하리란 전망이다. 특검조사 결과 광범위한 범죄 혐의가 발견되고 삼성에 대한 비판적 사회 여론이 최고조에 이를 경우다. 둘째는 최고위급 임원에 대한 사법처리 가능성에도 불구, 삼성의 지배구조와 소유 관계에 결정적인 변화는 없을 것이란 전망이다. 이건희-이재용 부자가 창사 이래 최대 위기를 나름대로 극복할 것이란 시나리오이기도 하다.

특검이 과연 이건희-이재용 부자를 기소할 수 있을 만한 ‘결정적 혐의’를 찾아낼 수 있느냐도 삼성의 운명을 좌우할 변수로 작용한다. 사법처리의 대상으로 떠오를 경우 이 회장은 ‘특단의 조치’를 통해 스스로 삼성의 운명을 재조정할 가능성도 있다. 막대한 금액의 ‘사재 출연’을 뛰어넘는 자기 결단이 나올 수도 있다는 얘기다. ‘뉴스메이커’는 삼성과 이건희 부자의 운명을 가름할 핵심 4대 변수를 긴급 접검했다. <기획취재팀>

삼성그룹 비자금 의혹 사건과 관련해 압수수색을 마친 검찰 직원들이 지난 12월 3일 서울 수서동 삼성증권 전산센터에서 압수 물품이 든 상자를 든 채 걸어나오고 있다. <남호진 기자>

삼성그룹 비자금 의혹 사건과 관련해 압수수색을 마친 검찰 직원들이 지난 12월 3일 서울 수서동 삼성증권 전산센터에서 압수 물품이 든 상자를 든 채 걸어나오고 있다. <남호진 기자>

1 이건희 회장, 특검 출두와 사법처리 가능성은
삼성 쪽의 최대 관심사는 이 회장의 사법처리 가능성 여부다. 특검에 소환되는 것 자체도 엄청난 부담으로 여기고 있다는 징후가 곳곳에서 발견되고 있다. 그룹 법무팀에서 가장 첨예한 당면과제로 대응하고 있는 부분도 바로 이 대목이다. 이명박 후보로의 정권교체 가능성에 큰 기대를 걸고 있다는 얘기도 나온다. 삼성과 정권 차원의 빅딜설이 그것이다.

그러나 총수의 검찰 출두와 사법처리를 극구 피하려 했던 삼성의 과거 전략이 이번에도 그대로 먹힐지는 의문이다. 이명박 정권이 성립한다 해도 정권 초기 삼성을 노골적으로 두둔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 4월 총선에 악재로 작용할지도 모를 자충수를 함부로 두기 어렵다는 얘기다. 현재까지 터져나온 삼성의 비리 꾸러미는 과거 시민단체에서 제기한 추상적인 법적 공방과는 차원이 다르다.

이 회장은 1995년 전두환·노태우 비자금 사건과 관련해 검찰에 출두한 적이 있다. 이번에 특검에 소환되면 두 번째 출두다. 1995년에는 정치자금 제공 사건이라서 다른 재벌기업 총수들과 함께 출두했지만 이번에는 사정이 다르다. 당시에는 어쩔 수 없는 과거의 정경유착 관행이라는 여론의 면죄부를 받았지만, 내년 특검 상황은 전방위적으로 폭로된 총체적인 비리 의혹을 이 회장 혼자 감당해야 하는 절체절명의 국면이다. 특검 출두를 둘러싼 이 회장의 운명은 일단 가혹한 시련을 예고하고 있다.

2 이재용 전무 그룹 승계, 결정적 파국 오나
지금까지의 정황을 종합하면 결정적 파국의 가능성은 희박하다. 적어도 법적으로는 이재용 전무가 그룹을 승계하는 길을 막을 방법이 별로 없다는 뜻이다. 김용철 변호사의 폭로가 메가톤급임에도 불구하고 비자금 조성, 분식회계, ‘삼성에버랜드 사건’ 증인·증언 조작의 법적 책임에서 이 전무는 한발 비껴 서 있다. 구조본의 이학수 부회장, 김인주 사장이 처벌받을 가능성은 물론 크다.

특검조사 결과에 따라서는 이건희 회장에게도 법적 책임의 화살이 돌아갈 수도 있다. 그러나 최악의 상황에서도 이 전무의 법적 지위는 비교적 안전하리란 전망이 나오고 있다. 그 이유는 2가지다.

첫째, 이재용 전무가 삼성에버랜드 전환사채(CB)를 헐값에 인수하는 과정에서 그룹 차원의 ‘공모’가 있었는지 밝히기가 만만치 않다. 특검의 조사 대상에 명시적으로 포함돼 있긴 하지만 삼성 쪽에서도 필사적으로 방어하고 있는 핵심 대목이다. 특검이 이 대목의 조사에서 괄목할 만한 성과를 내지 못하면 이 전무의 법적 책임은 바로 ‘면피’가 된다.

둘째, 공소시효 문제와 관련이 있다. 그룹 차원의 조직적인 공모가 있었다는 것이 특검 조사에서 명확하게 드러나고 법원에서 이를 인정받는다고 해도 이재용 전무의 ‘법적’인 지위에 치명타를 입히기는 어렵다. 이 전무의 지분 획득이 1996년에 벌어진 일이라 부당이득 반환청구의 공소시효(10년)가 이미 지났기 때문이다. 참여연대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민변)의 11월 6일 고발장 피고발인 명단에 이 전무의 이름이 빠진 것도 이 같은 한계 때문이다.

3 이건희 회장, 마지막 결단 가능할까
대선 이후 한국 사회의 최대 이슈는 삼성 문제로 모일 것이 확실하다. 대선 직후부터 특검 구성과 활동이 시작되기 때문이다. 1960년대 산업화가 시작된 후 그 공과를 평가하는 최대의 분수령이 바로 삼성 문제다.

그간 삼성그룹의 명운에 이 회장의 위치가 절대적인 영향력을 발휘해온 것도 발목을 잡는 대목이다. ‘삼성=이건희’라는 등식이 워낙 강하게 각인돼 있어 이 회장의 결단 없이는 난마처럼 얽힌 그룹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을 것이란 전망이 나오고 있다.

이 회장은 1987년 그룹을 승계한 후 영욕의 길을 걸었다. 그의 그룹 회장 취임 후 삼성의 연간 매출액은 17조 원에서 152조 원으로 8배가 늘었다. 2700억 원에 불과하던 세전이익은 14조2000억 원으로 50배 이상 증가했다. 그 과정에서 이 회장의 강력한 리더십은 삼성의 성공을 이끈 원동력으로 평가받았다. 삼성은 이 회장 취임 뒤 2002년 대선 자금 수사, 안기부 X파일 사태, 삼성에버랜드 전환사채(CB) 발행 사건 등 여러 위기를 겪었으나 지금처럼 심각한 불신에 직면하지는 않았다.

삼성이 위기를 돌파하기 위해 그간 사용한 카드도 이제는 그 효용이 한계에 직면했다. 인적 청산, 거액의 사회 헌납 같은 방법은 다시 쓸 수 없는 카드다. “편법 승계를 통해 절약한 비용이 그것을 수습하기 위해 써야 할 비용을 커버할 수 없는 수준에 도달한 것 아니냐”는 위기감이 삼성그룹 직원들의 입을 통해서도 터져나오고 있을 정도다.

이 회장의 고민은 이번에 불거진 사안이 워낙 방대하고 다양한 데다 경영권 불법 승계라는 본질적인 문제와 직결돼 있다는 데에 있다. 개별 사건 차원을 넘어 총수 일가에까지 닿는 구조적인 대응이 필요한 상황이다. 이 회장의 ‘결단설’은 이런 배경 속에서 흘러나오고 있다. 이 회장이 포괄적인 책임을 인정하고, 그룹의 소유와 지배구조를 스스로 혁파하는 결단이 나올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이 같은 대전환의 가능성은 특검의 수사 강도·성과와도 밀접하게 관련돼 있다.

4 삼성의 운명, 금산법도 중요 변수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한택근 사무총장(오른쪽)과 참여연대 김민영 사무처장이 지난 11월 6일 검찰청 민원실에 삼성그룹 불법행위 관련 고발장을 접수하고 있다. <강윤중 기자>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한택근 사무총장(오른쪽)과 참여연대 김민영 사무처장이 지난 11월 6일 검찰청 민원실에 삼성그룹 불법행위 관련 고발장을 접수하고 있다. <강윤중 기자>

삼성그룹 총수 일가의 그룹 내 소유 지분은 4.5%에 불과하다. 제왕적인 지배권을 행사하는 이 회장 부자 입장에서는 그룹의 미래를 좌우할 수도 있는 최대 고민거리다. 그룹 내에서는 “삼성전자를 중심으로 한 그룹의 덩치가 너무 커져버린 상황에서 생긴 불가피한 현상”이라고 말한다.

참여정부 들어 강화된 ‘금융과 산업자본의 분리’ 원칙도 삼성을 옥죄는 그물 중 하나다. 현재 삼성은 금산분리 원칙을 담아놓은 ‘금융산업 구조개선법’을 위반한 상태이고, 현재 이를 해소하는 과정에 있다.

지난해 국회를 통과한 개정 금산법은 그 강도가 약하다는 시민단체의 주장에도 불구, 삼성 총수 가문에는 여전히 부담스러운 법률이다. 올해 8월부터 시행한 개정 금산법은 금융회사가 취득한 동일 기업 집단 내 비금융 계열사 주식 중 5% 초과분에 대해 1997년 3월 이전 취득분은 2년 유예 뒤 의결권을 제한하고, 그 이후 취득분은 즉각 의결권 제한과 함께 5년 내에 자발적으로 매각하도록 하고 있다. 이를 이행하지 않을 경우 금융감독위원장이 처분 명령을 내릴 수 있도록 하는 조항이 담겨 있다.

이 법률안을 따르자면 현재 삼성카드가 보유한 삼성에버랜드 지분 25.6% 중 5%를 초과한 20.6%는 앞으로 5년 안에 매각해야 한다. 또 삼성생명이 갖고 있는 삼성전자 지분 7.3% 가운데 5%를 초과한 2.3%에 대해선 2009년부터 의결권이 제한된다. 삼성카드의 삼성에버랜드 지분과 삼성생명의 삼성전자 지분은 총수 가문의 지배력을 보장해주는 핵심 장치이므로 어떤 방식으로든 그룹 지배구조는 변화할 수밖에 없다.

이건희 회장(3.7%)이 이재용 전무(25.1%) 및 계열사 등 특수관계인과 더불어 보유하고 있는 삼성에버랜드 지분은 90.2%다. 삼성카드 보유 지분 중에서 20.6%를 덜어내더라도 총수 일가의 지배력이 크게 흔들리지는 않는다.

문제는 삼성생명이 상장될 경우다. 증권 전문가들은 삼성 총수 일가가 삼성생명 지분 일부를 매각하고 그 자금으로 삼성카드가 보유한 삼성에버랜드 지분을 매입하는 방안을 고려할 것이라고 전망한다. 그러나 삼성생명이 상장되는 순간 삼성그룹의 지배구조는 ‘금융지주회사법’과 충돌한다.

기업이 보유한 자산 중 금융회사 지분이 총자산의 50%를 초과하면 그 회사는 금융지주회사법 시행령(제2조 4항)에 따라 금융지주회사로 분류된다. 금융지주회사가 되면 법 제19조에 따라 금융업종 외 다른 회사의 지배를 원칙적으로 할 수 없다.
이런 법규는 삼성의 지배구조에 결정적인 변화를 예고하고 있다. 삼성그룹의 지주회사 격인 삼성에버랜드의 총자산 중 49%는 삼성생명 주식(13.3%)이다. 문제는 이것이 장부가로 계상하는 편법적인 회계에 의해 겨우 유지되고 있다는 점이다. 삼성생명이 상장될 경우 사정이 달라져 ‘시가’로 평가해 계상해야 한다.

이에 따라 삼성에버랜드의 총자산 중 삼성생명 지분이 50%를 훨씬 넘게 되면서 에버랜드는 금융지주회사로 분류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재계 일각에서는 결국 삼성이 삼성전자를 중심으로 한 제조업 그룹과 삼성생명을 중심으로 한 금융그룹으로 분리될 수밖에 없다는 결론을 내리고 있다. 현재 불거진 삼성 비리 의혹과는 별개로 삼성그룹의 대변화가 목전에 닥쳤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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